결정사(결혼정보회사)를 통한 만남을, 일반적인 만남과 똑같이 생각하면 곤란하다. 결정사를 통한 만남에는
- 결혼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두고 만나는 것이라는 점.
- 이미 조건으로 한 차례 필터링을 한 상황이라는 점.
- 자력으로 찾는 것보다 더 좋은 상대를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점.
- 서로에게 아직 몇 번의 매칭 기회가 더 남아있다는 점.
등이 작용하는 까닭에 결정사 특유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곤 한다. 잘 된다 하더라도, 연애에서 '거래'의 측면에 무게를 둔 채 만나는 사례가 많고 말이다.
오늘은 그간 도착했던 결정사 관련 사연들을 모아, '그 남자들은 왜 그러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볼까 한다. 최근 몇 달간 내게 도착한 사연 중 남성대원이 보낸 사연은 한 편도 없기에, 여성대원들의 사연을 토대로 작성하는 매뉴얼이라는 걸 밝힌다. 출발해 보자.
1. '잘난 사람 VS 잘난 사람'의 구도가 되는 경우.
조건 좋은 사람 둘을 매칭해줄 경우, 조건으로만 따지면 둘 다 상위권에 랭크된 사람들이라 문제없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좋은 조건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면 마찰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남자 - 나 공부 많이 했고 고소득자니 당신은 내조해라.
여자 - 나도 공부 할 만큼 했고 돈 잘 번다. 헌신해라.
라는 구도로 대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기 정도의 조건이면 상대가 내조 잘 하며 순종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 그리고 역시 자기 조건이면 남자가 알아서 헌신하며 호강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자의 만남이라 보면 되겠다. 서로의 조건만 볼 때면 '이 정도 조건이면 괜찮음'이라고 생각했지만, 둘 모두 이후 대우받고 싶어 하지 희생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라는 지점에서 마찰이 생기는 것이다.
한 여성대원이 보낸 사연 속 남자를 보자. 그는 의대를 나와 현재 피부과에서 근무하는 중이다. 본인 소유의 병원은 없지만 다른 원장 밑에서 일하며 1억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부모님은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계시며 당신들 소유의 집과 차가 있다. 그의 조건이 좋은 건 분명하다. 여기서 내가 사연을 보낸 여성대원에게 묻고 싶은 건,
- 왜 저 사람이 이쪽에게 구애하고, 헌신하며, 결혼 후 경제권까지를 주어야 하는가?
라는 부분이다. 상대가 자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워 결정사를 찾았기 때문에?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이쪽이 많이 배웠으며 소득도 상위권이라서?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이쪽 부모님에겐 상대의 병원을 열어줄 수 있는 경제력이 있으니까? 그의 입장에선 병원 열어준다고 데릴사위처럼 들어가 돈 벌어다 주는 기계가 되느니, 좀 더 기다렸다 자력으로 병원 열어 그 수입으로 즐기며 사는 게 나을 수 있다.
이렇듯 두 사람이
'나 정도 되는 사람 만나는 걸 고마운 줄 알아야지.'
라고 생각할 뿐이라면, 타협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서로를 이기적이고, 무례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게 될 수 있다. 이렇게 대립하게 된 상황에서 그저 '상대가 이상하다'며 내게 호소하는 사례들이 있는데, 그게 정말 '상대만' 이상한 게 맞는지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2. 결정사를 통해 나온 상대를 얕잡아 보는 경우.
인간이라면 대부분 남이 하면 뭐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생각하기에,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도
- 남은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사람.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
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럴 수 있긴 한데, 그걸 사실로 여기며 상대만 얕잡아볼 경우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결정사와 관련된 사연을 보낸 대원 중 꽤 많은 대원이, 조건 좋은 상대를 두고
- 조건 좋은 멍충이.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 하는 얘기다. 어느 대원은 상대를 두고 '전형적인 강남보이'라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게 비하나 폄하의 표현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내가 다 안다.'
는 식으로 상대를 규정한 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훤히 들여다보려는 태도는, 결국 그 관계를 파탄 낼 가능성이 높다. 그 태도엔 '존중'이 결여되어 있으며, 결여된 존중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말이나 태도, 행동을 통해 어떻게든 상대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만났을 때 지긋이 바라보며 어필하고 물개박수를 치며 리액션을 한다 해도 결국은 드러난다. 연락의 빈도라든가 질문의 깊이, 맹목적으로 짓는 미소 등을 통해 상대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종종 자신은 상대와 만났을 때 100점에 가까운 리액션을 했고 센스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자신은 그렇게 느낄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서 보기엔 그게 그냥 열심히 접대나 서비스를 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건 좋은 멍충이'는 없으며, 잘난 사람은 자기가 잘난 걸 안다. 이쪽이 자신이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 것처럼, 상대 역시 무엇이 자신의 강점인지를 안다. 자신의 학력과 직업이 후광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자신이 어느 정도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도 잘 안다. 오히려 그걸 더 부풀려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를 가지면 가졌지, 고소득 고학력자이면서 '을'의 자리에 앉으려 하거나, 결혼이 급하니 제발 결혼만 좀 해달라고 애원할 사람은 없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조건 좋은 상대'를 만난다는 생각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상대'를 알아간다는 생각으로 만나보길 권한다. 다만, 이쪽에서 아무리 그런 마음을 가지고 만난다 해도, 상대가
- 난 그저, 결혼하면 집안 일 잘 하고 애 잘 키워줄 이성을 원함.
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역시 그것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3. 복잡한 밀당이나 연애 말고 쉽고 편안한 결혼을 추구하기 때문.
결정사를 통해 이성을 만나는 대원들 중엔 '지금 내 주위에 괜찮은 사람이 없어서'인 경우도 있지만, 자력으로 시도했던 썸이나 연애가 모두 만족스럽지 않았다거나, 기대대로 잘 되지 않으니 '결혼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결정사를 통해 그저 얼른 결혼까지 진행하고 싶어 하는 대원들도 있다.
연애하는 게 복잡하고 귀찮으니 그냥 빨리 결정사를 통해 결혼으로 직행하려는 남자가 있다고 해보자. 그런 남자가 매칭 된 상대를 만난 후, 계속해서 그 관계를 가꿔나가려는 노력을 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그의 입장에선 그게 싫어 좀 편하고 쉽게 가고자 결정사를 찾은 건데, 매칭 된 상대가 그런 노력을 요구하면 '패스'를 외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애초 상대의 마음가짐이 저 정도인 까닭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설명하고자 꺼낸 얘기다. 내게
"이 사람 뭐죠? 분명 젠틀하고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딱 거기까지예요. 수줍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초식남이라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면 게이(응?)인지, 정말 모르겠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여성대원에게, 바로 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상대는 그냥, 지금 자신이 유지하고 있는 일상의 루틴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거기에 결혼만 추가되길 원한다거나, 기본적인 호감 표현 정도만 하면 나머진 결정사든 상대든 누구든 그냥 좀 알아서 해주길 원하는 걸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 먼저 선톡을 하긴 하지만, 대답해도 몇 시간 동안 확인 안 함.
- 만나서 대화할 땐 괜찮은데, 그 외의 시간엔 그냥 타인일 뿐임.
- 약속 역시 잡긴 하는데, 할당량 채우듯 약속 잡는 느낌이 강함.
- 이쪽은 다른 약속도 취소해가며 만나려 하는데, 상대는 다른 일 있다며 약속 미룸.
꼭 상대가 그만큼만 반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상대의 최대치가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인 경우도 있다. 결혼이 별로 급하지 않은데 그냥 결정사의 연락이나 주변의 성화 때문에 가입했다거나, 연애에 대한 환상이 깨지거나 없는 까닭에 그냥 거래하듯 만나고 싶어 한다거나, 조건 보고 괜찮으면 좀 쉽고 편안하게 일이 진행되길 바란다거나 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때문에 저런 상대를 만난 여성대원은 십중팔구
'취향도 잘 맞는데 뭐가 문제지? 왜 진전이 없지?'
하는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상대가 저런 모습을 보이지만 그래도 꼭 잡고 싶다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럼 이쪽에서 보다 능동적으로 나서서 상대를 이끌어 내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다. 이걸 그저 보통의 소개팅처럼 생각하며 이후의 진행을 상대가 다 알아서 해주길 기다리고 있다간, '파퀴아오 VS 메이웨더'의 경기처럼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풀밭에 누워 꿈쩍 않는 소, 고삐 당겨 데리고 가듯 가보는 것 말고는 딱히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다. 미안하다.
4. 그 밖의 경우들.
위에서 말한 것들 이외에 자주 등장하는 사례로는,
- 예비 시아버지 될 분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남자.
라는 사례가 있다. 무례한 것과 솔직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듯 다짜고짜 "그런 업무라면 길게는 하지 못하겠네요."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례가 있고, "결혼하면 어느 정도까지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라는 걸 대놓고 물어보는 사례도 있다. 이쪽의 나이나 학력을 지적하거나, 다 아는데 뭘 튕기냐며 대충 괜찮으면 결혼이나 하자는 식으로 나오는 사례도 있다.
그 다음으로는,
- 부모님의 아바타인 남자, 또는 효도를 위해 나온 남자.
라는 사례도 있다. 저 위에서 이야기 한 '난 그저, 결혼하면 집안 일 잘 하고 애 잘 키워줄 이성을 원함.'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례와 비슷한데, 거기다 '부모님께 잘 할 여자'라는 것이 추가된 거라 보면 되겠다. 또, 아무래도 전문직을 가지거나 길게 공부를 하기 위해선 집안의 도움이 거의 필수적인 것이기에, 서른 중반이 지나도록 부모님의 큰 영향권에 속해 있는 사례도 있다. "나는 당신이 좋지만, 엄마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 여성대원들이 뒷목을 잡곤 한다.
둘 다 암묵적으로 조건을 맞춰 만난 건데,
- 이제 자신의 길을 갈 거라는 남자,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남자.
라는 사례도 존재한다. 현재 자신의 조건이 좋긴 하지만 그건 시키는 대로 살아온 껍데기에 불과하며,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때문에 간판 보고 들어왔다가 업종 변경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처럼 당황하게 될 수 있다. 또 그 중엔, 진심으로 그럴 생각이 아니라 '어떻게 반응하나 떠보기 위해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례도 있다.
- 몇 번의 매칭을 통해 눈만 높아진 남자.
이건 사실 여성대원들에게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문제긴 한데, 몇 번의 매칭을 통해 눈만 높아지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전 상대의 조건이 어쨌든 결국 이전 상대와 안 되었으면 안 된 건데, 그런 사람과는 언제든 사귈 수 있을 거라는 식으로 이번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에 비유하자면, "나 예전에 의대 다니던 오빠가 나한테 고백한 적 있어."라는 걸 가지고 10년 넘게 자기위안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결정사에서도 조건이 학력만 있는 게 아니니 외모, 나이, 경제력, 집안, 장래성, 안전성 등을 고려해 매칭 시켜주는 것일 텐데, 이전 사람의 개별 점수 중 가장 높았던 걸 이번 사람과 단순 비교해 미지근하게 생각해버린다. 이는 거듭된 만남으로 인해 매칭을 쇼핑처럼 생각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만약 그 이유 때문에 아무 성과 없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면, 그땐 오히려 높아진 눈 때문에 더욱 고생하는 사례도 있다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조건과 결혼'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둔 채 결정사를 이용하는 거라면, '낭만과 기대'보다는 '포기와 양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임하는 편이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는 효과적일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몇몇 대원들은 결정사가 만남에서의 복잡하고 껄끄러운 부분을 대신 처리해줄 거라 착각하던데, 결정사는 그저 만남을 주선해주는 회사일 뿐이다. 또, 혹시 그렇게 생각한다면, 매칭 되어 나오는 상대 역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결정사를 찾았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큰 기대를 걸거나 회비에 부담을 느끼면서까지 결정사를 찾는 게 아니라면, 난 결정사를 이용하는 것에 딱히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결정사를 통해 만나면 더 편하고 쉬울 거라 생각한다든지, 매번 문제가 되던 부분이 거기서는 문제가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든지 하진 않았으면 한다. 결정사 가입은 학원에 등록해 뭔가를 배워 달라지는 게 아니다. 그냥 상대나 이쪽이나 돈을 내고, 주선을 부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자.
또, 결정사가 이쪽에게만 돈을 받고 대신 좋은 사람 찾아주는 것 아니고, 결정사를 통해 만난 상대가 주변에 있는 이성들과 달리 특별히 더 훈련되었다거나 맞선에 최적화 된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정도의 의미만 둔 채, 거기서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만나보길 권한다.
▼ 하트 버튼과 좋아요 버튼 클릭을 해주시면 제 비염이 나을 것 같습니다.
'연애매뉴얼(연재완료) > 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감은 있는데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남자, 뭘까? 외 1편 (48) | 2016.04.12 |
---|---|
짝사랑 하는 남자와 나쁘진 않은데, 좋지도 않아요. 외 1편 (56) | 2016.04.11 |
다가왔다 멀어진 남자를 다시 오게 할 수 없을까? 외 2편 (68) | 2016.04.05 |
어플로 만난 남친, 스킨십이 목적인 걸까? 외 1편 (45) | 2016.03.31 |
긴 솔로생활 끝에 하게 된 연애, 뭘 어떻게 해야 해? (45) | 2016.03.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