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관심이 있으면 상대가 먼저 연락하고 할 텐데, 안 하는 거 보면 관심이 없다는 거겠죠? 제게 보낸 톡을 봐도, 제가 별 관심 없는 남자들에게 보낼 때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한 번 만나고 이런다는 게 웃기긴 한데, 정말 모르겠어요.”
라는 얘기를 하시면, 나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뭐 아직 둘 사이에 이렇다 할 이야깃거리도 없는데, 그 와중에
“제가 너무 조급한가요? 자연스럽게 다가가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빨리 마음 접는 게 나을까요?”
라고 하시면, 역시 난 “네, 조급증을 좀 내려두고 가도 될 것 같습니다. 아직 둘이 영화 한 편도 안 봤잖아요.”라는 얘기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첫 번째 사연의 주인공인 L양이 2월부터 보낸 사연을 난 다루지 않았다. 뭐가 너무 없기도 했거니와, 신청서의 항목들도 공란으로 둔 것이 많았고, 상상이나 예측이 8할 이상일 땐 차라리 ‘친구 찬스’를 쓰는 것이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양이 포기하지 않고 4월 중순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사연을 보내고 있기에, L양이 보낸 모든 사연을 읽고 든 내 솔직한 생각을 짧게 적어둘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짝사랑 하는 남자와 나쁘진 않은데, 좋지도 않아요.
나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적극 활용하면 된다. 어떤 부분이 나쁘지 않은지를 먼저 보자.
- 연락을 하면 바로바로 답장 옴.
- 밥 먹자고 하면 상대와 밥 먹을 수 있음.
- L양이 연락하면, 상대는 연락해줘서 고맙다고 말함.
-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며, 30분 이상 대화 가능함.
이 정도로 넓은 길이라면 탱크도 지나갈 수 있다. 발 헛디딜 위험 없고 포장도 잘 되어 있어 다가가기엔 전혀 문제가 없는 길인데, L양은 ‘좋지도 않은 부분’을 생각하며 걸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 상대에게 먼저 연락이 오진 않음.
- 만나서 밥도 먹었지만 상대가 다가오지 않음.
- 나름의 호감표현도 했지만 관계가 진전되지 않음.
L양 입장에선 ‘나름의 호감표현’을 한 것일지 모르지만, 여기서 보기엔 같은 동호회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또, 상대는 L양이 자신에게만 그러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는지 알 수 없으며, L양이 상대에게 이야기 한 것들은 ‘안부인사’에 속하는 까닭에 이성이 안부 몇 번 물었다고 맹렬하게 들이댈 이유도 없다.
더불어 상대와 L양이 만났을 때, 상대는 자신이 진로를 선택한 이유와 함께 사회생활 초반의 이야기들을 했는데, L양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딴 생각을 했다. L양의 말을 보자.
“단둘이 만나는 거라 나름 그래도 뭔가 러블리하고 엄청 두근대고 찌릿찌릿 그런 게 느껴질 줄 알았는데,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은 없었어요. 밥 먹고 나와서 걸을 때도, 오빠랑 걷고 있는 그 상황은 참 좋은데 오빠는 저에게 마음이 없는 것 같아서 씁쓸했던 것 같아요.”
상대가 L양에게 마음이 있든 없든, 둘은 같이 밥 먹었고 밥 먹은 뒤엔 얘기하며 전철역 세 개를 그냥 지나칠 정도로 걷지 않았는가. 이 정도면 상대와의 관계가 아무래도 긍정 쪽으로 좀 더 기울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렇게 만난 후 상대가 계속 연락하는 건 아니라고 해서 씁쓸해 할 게 아니라 말이다.
러블리 찌릿찌릿 같은 건 7월쯤 하게 될 거라 생각하며, 좀 여유로운 마음으로 상대와 연락하고 만나보길 권한다. L양이 연락하면 상대가 답장 꼬박꼬박 잘 하고, 또 밥 먹자고 하면 기꺼이 나오는 상황에서, 굳이 ‘연락하고 밥도 먹었지만 나에게 들이대지 않는다. 고로, 날 이성으로 생각하며 내게 호감을 가진 것 같진 않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기대만을 앞세우다 기회를 날리진 말길 바란다.
2. 26년 만에 처음으로 호감 가는 여자가 생겼습니다.
왜 다들 그 매뉴얼만 보는지, 호감 가는 상대가 생긴 남성대원 중 절반 이상이
“30분 이상 전화통화가 가능할 때 고백하라고 하셨죠?”
라는 이야기를 한다. 뭘 어떻게 하든 30분 이상 통화할 수 있게 되면 성공 보장 100%냐고만 묻는 것이다. 어느 대원은
“30분 이라는 게 생각보다 엄청 긴 시간이더군요. 10분 이상을 못 넘기고 있습니다. 오히려 갈수록 통화시간이 점점 줄고 있고요. 상대도 전과 달리 이제 제가 전화하는 게 싫다는 내색을 대놓고 하거나 전화를 안 받기도 합니다. 그래도 포기 하지 않고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계속 도전해도 30분 통화하는 게 어려우면 바로 고백이라도 해볼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라고 묻기도 하던데, 이런 사례들을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이런 것까지 밝혀 적어야 하나 싶기도 한데, 여기서 말하는 ‘30분’은 물리적인 의미만을 갖는 게 아니다. 최소한 서로의 생일을 알며, 생일이 되면 축하해줄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지잔 얘기다. 이게 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친해지는 거지, 전화 걸어서 ‘23분이네. 이제 7분만 더 버티면 돼.’라는 생각을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W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처음엔 별 생각 없었는데, 갈수록 호감이 가더군요. 그 친구 동기들이 그 친구에게 가볍게 터치하는 걸 보면 질투심도 좀 들고요. 무한님은 ‘30분 통화 할 수 있는 사이’를 얘기하셨는데, 그러다간 그 안에 누구한테 뺏길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듭니다. 친구들도 차라리 적극적으로 좋아한다는 티를 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고요.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과 상대에게 저에 대한 호감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방법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친구들 얘기를 듣기로 한 거라면, 그 방법도 친구들에게 물어보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둘은 카톡대화를 나누는 사이도 아니고 서로에게 형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아닌가. 난 그런 걸 알아가는 게 먼저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건데, 이런 내게 ‘그랬다간 너무 늦을 것 같으니 좋아하는 티를 내되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 남보다 먼저 사귈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난 할 말이 없다.
상대의 전화번호도 모를뿐더러 전화로 30분도 대화하기 어려운 사이라면, 정말 운이 좋아 연애를 시작한다 해도 그건 W군의 ‘연애 판타지’를 충족하기 위한 연애가 될 뿐이다. 그런 연애는 이틀에서 일주일 사이에 와해될 위험이 높으며, 실제로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연인이란 간판 걸었다며 W군이 ‘우리는 연인이니 얼른 더 사랑하기’를 재촉만 하다 끝날 수 있다.
먼저 호감을 가졌을 때의 그 조급함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급해도 도배는 끝나야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장판 깔고 벽지 바르듯 상대와의 관계를 어느 정도 만들어 놓고 가구 들여 놓아야지, 다짜고짜 가서 드러 눕는다고 ‘홈 스윗 홈’이 되는 게 아니다. W군과 상대는 매일 둘이 의무적으로 얼굴을 봐야하는 상황이니, 그럴 때 주말 잘 보냈냐고 말이라도 걸어보고, 간식도 좀 사가서 나눠 먹으며 친해져보길 권한다.
환절기 비염으로 고통 받고 있는 까닭에, 오늘 매뉴얼은 이쯤에서 줄여야 할 것 같다. 코막힘은 기본이고, 간헐적으로 눈에 눈물이 핑 돈다. 긁을 수도 없는 눈알이 간질간질하다.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었더니 입술이 바짝 말랐다. 마른 입술을 한 채 잠깐 웃었다가 찢어진 부분이 쓰라리다. 왼쪽 콧구멍이 막혔을 때 오른 쪽으로 누우면 기적처럼 왼쪽 콧구멍이 뚫리는데, 그러다 잠시 후 오른 쪽 콧구멍이 막힌다는 게 함정이다. 노멀로그 독자 분들은 고통 받지 않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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