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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세 달 동안 썸만 타는 중입니다. 이 여자, 무슨 생각일까요?

by 무한 2016. 10. 5.

난 캡사이신 들어간 주꾸미를 먹곤 고생중이다. 순한 맛으로 달라고 했는데도 딸꾹질이 날 정도로 매웠다. 그럼 그때 그만 먹었어야 하는데, 미련하게도 다 먹어 버렸다. 가끔은 캡사이신을 소화시킬 수 없는 내가 별로다. 폭탄 맛 먹고도 다음 날 멀쩡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야.(응?)

 

맥주도 특정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반드시 다음 날 근육통으로 고생하고, 옷도 화학섬유가 많이 섞인 옷을 입으면 약속한 듯 피부가 불긋불긋해지며 가렵다. 나는 인간 리트머스 뭐 그런 건가? 친척누나는 순금이나 순은 제품이 아닌 액세서리를 착용하면 눈알까지 가려워지는 능력이 있다던데, 조만간 주변의 이런 사람들을 모아 ‘이상반응 어벤져스’를 창설할 생각이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독자 분들은 댓글로 제보 바란다.

 

연휴 끝난 직후라 집중도 잘 안 되고 마음도 아직 좀 붕 떠있으니, 오늘은 짧고 굵게 짚으며 가보자. 세 달 동안 썸만 타는 중이라는 이십대 후반 남성대원의 사연이다. 출발.

 

 

1. 박력과 투박함 사이.

 

K씨가 상대에게 데이트 신청한 멘트를 보자.

 

“토요일 점심에 일 없으면 초밥이나 먹자 ㅋㅋㅋㅋㅋ”

 

저녁인사로 택한 멘트도 보자.

 

“잘 자고 내일 일어나면 연락해라 ㅋㅋㅋㅋ”

 

영화 보자고 권한 멘트도 보자.

 

“토요일에 부산행 보자고 ㅋㅋ 다른 거 보고 싶으면 말하고”

 

투박하다. 저런 말투는 내가 군대 동기나 후임들과 연락할 때 사용하는 말투인데, K씨는 겨우 한 살 차이 나는 상대에게 저 말투로 이야기하며, 상대는 K씨에게 존대를 하고 있다.

 

‘한 살 오빠’라는 것 때문에 K씨가 너무 ‘리드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K씨가 스무살 때 스물여섯의 누나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떠올려보길 바란다. 다 큰 어른 같고, 나보다 세 살 많은 누나보다도 세 살이 더 많다는 것이 좀 까마득하게 느껴지지 않았는가? 상대는 바로 그런 스물여섯인데, K씨는 그런 상대를 저 강박 때문에 고등학생 대하듯 대하고 있다.

 

더불어 상대가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고 했을 때,

 

“으이그, 잘 좀 하지.”

 

라고 말한 것도 상대의 기분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은 채 불난 집에 부채질 한 모습이며, 저 말에 대해 상대가 기분 나빠하자

 

“그 잘 좀 하라는 게 기분 나쁘게 들렸니?”

 

라고 말한 것 역시, 사과해야 할 타이밍을 놓친 채 ‘2차전’으로 가는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다행히 잘 풀리긴 했지만, 썸을 탈 때 보인 저런 모습은 그대로 ‘K씨라는 사람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난 K씨가 상대보고 말을 놓으라고 하든지, 아니면 K씨도 상대가 말을 놓기 전까지 다시 존대를 하든지 하길 권하고 싶다. 그래야 이 이상한 상하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K씨 역시 까닭 없이 엄하고 투박한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두 사람이 썸남썸녀의 관계라기보다는, 과외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와 더 비슷하니 말이다.

 

 

2. 얻따 대고? 어따 대고? 얻다 대고?

 

안 쓰는 말이다 보니, 맞춤법이 잠시 생각 안 나서 헷갈리는 세 개를 제목으로 적어봤다. 마지막으로 적은 ‘얻다 대고’가 맞는 말이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K씨의 썸녀는 K씨의 말투에, 바로 이 ‘얻다 대고!’라는 생각을 한 적이 종종 있었다. 모닝콜을 부탁하는 K씨의 멘트를 보자.

 

“잘자렴 난 이제 들어가 ㅋㅋ 내일 좀 깨워줄 수 있으면 부탁 좀 할게”

 

자네 스마트폰은 알람이 안 되는감? 이건, 썸녀를 알람시계 대용으로 사용하는 아주 안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부탁을 핑계 삼아 아침부터 연락하고 싶은 거라면

 

“나 이 시간에 자면 아무래도 알람까지 못 들을 것 같은데, 혹시 내일 7시쯤에 전화 한 번 해줄 수 있을까?”

 

정도로 이야기를 해야지, 그냥 툭 던지듯 말해놓곤 ‘말했으니, 모닝콜 하겠지’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상대로서는 이걸 어떻게 확실하게 지적할 말을 찾지 못해

 

“말 좀 조심해서 해줘요.”

 

라고 했는데, 이건 상대가 자신을 꼬꼬마로 여기지 말고 ‘썸녀’로 대해 달라 말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되겠다. 말 좀 조심해 달라는 상대에게 K씨가

 

“(내가)오늘도 그랬니?”

 

라고 대답하는 걸 보며 난 또 담배를 물 수밖에 없었다. 한 살 차이잖아. 한 살! 한 살 차이!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진짜?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상대가 짚어줬으면 그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야지, 그걸 짚어준 상대에게

 

“(어떤 말이 기분 나빴는지 그때그때)말을 해줬으면 좋겠어.”

 

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으면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 상대는 썸녀지, <우리 썸남이 달라졌어요>의 오은영 선생님이 아니잖은가. 말 함부로 하는 것도 기분 나쁜데 거기다 대고 기분 나쁠 때마다 무엇이 왜 기분 나빴는지 그때그때 말해달라고 하면, 상대는 그냥 다 갑갑해질 수 있다. K씨 말투가 왜, 어떤 문제를 발생시키는지는 내가 지금까지 얘기했으니, 상대에게 개인교습을 부탁하지 말고 자율학습을 했으면 한다.

 

 

3. 마음은 결국, 보인다.

 

말투의 문제를 제외하면, K씨는 좋은 썸남이다. 먼저 하자고 권하는 것도 많고, 연락도 자연스레 꾸준히 하며, 자신의 분량과 상대의 분량을 적당히 분배해 대화할 줄도 안다.

 

그런데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따로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날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는데 어리바리 하길래 그냥 넘겼습니다. 그 다음에도 한 번 물었는데 대답은 확실히 안 해주고 뭐지 나랑 장난치는 건가 정내미 뚝뚝 떨어지길래 마지막으로 하고 안 받으면 그냥 지쳐서 그만둘 생각으로 또 물었습니다. (대답이 애매하기도 하고)제가 하루 간 개인적으로 기분이 안 좋아져서 카톡도 감정 없는 대화들로만 대했더니 전화 들어오는 횟수도 확 줄어 버리고 결국 어제 일이 터졌습니다. 아 그냥 이제 반 포기 상태로 연락을 완전 안 하고 있다가 저녁에 운동 끝나고 집 가다가 오토바이와 몸통박치기를 하는 바람에 핸드폰 액정이 나가서 온 세상이 핑크레이디에 발목은 돌아가고 병원 갔다 짐 들어가니 새벽 4시쯤 돼서 컴퓨터 켜서 카톡을 켜보니 ‘뭐하세요? ㅋㅋ’ 이렇게 카톡이 왔고(중략) 전화 끝나고 또 연락이 없네요. 그냥 감정 없는 연락들. 그래서 그냥 지쳐서 거의 포기했어요.”

 

라는 부분이다. 독해하기 힘들다고 불평하실 독자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 사연을 다 읽은 나는 어땠겠는가. 난 임진강 이남에서 독해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데, 나도 솔직히 K씨의 사연을 읽기가 힘들었다. 어디서는 자신을 ‘본인’이라고 했다가 다음 단락에선 상대를 ‘본인’이라고 했다가 하고, 또

 

“사람들에게 치이고 갈 길을 못 갈 때 하지만 자신의 남자 친구는….”

 

이라는 식의 판타스틱한 서술어 생략과 접속사 끼워넣기로 인해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여하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상대게 좀 잘해주다 상황 보곤 사귈 가능성 없으면 내칠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 마음이 결국은 상대에게도 가서 닿게 된다. 정말 좋고 친해지고 싶어서 다가오는 것과, 두 마음을 품은 채 일단 잘해줘서 넘어오나 보다가 안 넘어오면 연락 끊을 생각하는 건, 그 소리부터가 다르다. 밑장을 빼면 소리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K씨는 자신의 질문에 상대가 대답 확실히 안 했다며 정내미 뚝뚝 떨어졌다고 하고, 또 내 마음이 어떻다고 고백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날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 가능성만 따져보지 않았는가. 또, K씨가 아플 때 상대가

 

“아프지 마세요. 건강이 최고임.(이모티콘)”

 

라는 메시지를 보내자, K씨는 또 그걸로 삐쳐서는

 

“그런 말 친구들한테도 자주 써? 난 좀 그러네. 그냥 귀찮아하는 느낌이 들어.”

 

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가.

 

이러니 상대에게 K씨는 편하지도 않고, 다정하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꾸준히 연락하고 리액션 해주고 만나자고 하고 밥 사주는 것도 좋은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상대를 내 여자친구로 캐스팅 할 수 있느냐 없느냐만 따지는 게 아니라 정말 상대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는 것 아닌가. 그게 없으니, 피상적인 질문 좀 하고 적당히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다가, 몇 번 만났는데 사귈 가능성 없으면 접겠다느니, 지쳤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다.

 

 

정리하자. 난 K씨의 썸녀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사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K씨를 세 달 넘게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의 절반은 증명한 거다.

 

그런 그녀에게 K씨가 불만족을 느끼게 되는 건, 그녀가 금사빠가 아니며, 잦은 연락을 통해 서서히 친해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K씨는 몇 번 만나다가 서로 필이 통하면 얼른 사귀어 여행도 같이 가고 스킨십도 하고 싶을 텐데, 그런 연애에 비하면 지금 썸녀와의 관계는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지겠지만, K씨가 연락을 끊어도 그녀가 연락하고 만나려고 하는 게 그녀의 ‘애정’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그녀와 사귀는 게 쉽지 않고 빠르지 않은 거지, 그녀도 K씨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단, K씨가 현재 보이는 태도를 기반으로 미래를 그려봤을 땐 염려되는 부분이 많기에, 그녀 또한 고민될 수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이걸 단순히 ‘몇 달 썸탔는데 안 사귀며 날 가지고 장난치는 것’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K씨가 가만히 있는 지금, 그녀가 먼저 연락을 하고 또 먼저 다가오기까지 하지 않는가. ‘사귈 거냐, 아니냐’에만 초점을 맞춘 채 이 관계를 정리하려 하면, 훗날 K씨는 큰 후회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녀의 입장에서 그녀의 속도대로라면, 이건 아주 정상적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관계이니, K씨 혼자 조급해 하다 망치진 말았으면 한다. 그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걸으며 손잡는 것’을 못 하게 한다고, 빈정 상해 관계를 내팽개칠 생각까진 하지 말았으면 한다. 대신 내가라도 잡아줄 테니(응?), 손 잡는 건 나중에 하고 이 속도대로 친해지자. 연애 시작되어도 이 템포로 쭉 가는 게 정상이다. 서로의 하루를 공유하며 만나서 따뜻한 밥 같이 먹을 수 있는 게 연인인 것이니, 이게 가능한 현 관계를 내팽개치고 파랑새를 찾겠다며 멀리까지 가진 말았으면 한다.

 

자 그럼, 다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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