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남친을 엄청나게 이해하며 사귀었는데, 결국 헤어졌어요.

by 무한 2017. 4. 5.

이렇게 가정해 보자. 은아씨가, 일 꼼꼼하게 한다고 소문 난 이삿짐 업체와 4월 10일에 이사를 하기로 예약을 했다. 그런데 ‘몇 시’에 이사를 시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은아씨는 어차피 그날 하루 종일 이사에 할애하기로 마음먹었기에 업체 사람들 편한 시간에(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주겠다고 생각하며) 오라고만 말해 놨다.

 

4월 10일이 되어 업체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점심이 되도록 사람들이 오질 않는다. 은아씨는 아침도 안 먹은 채 오전부터 기다리다 지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에 도착해 음식을 주문하니 이삿짐 업체에서 연락이 온다. 도착했는데 집에 아무도 없다고. 그래서 은아씨는 점심을 먹고 있으니 좀 기다려 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업체에서는 어쩔 수 없으니 기다리겠지만, 다음 스케줄도 있으니 빨리 먹고 와달라고 말한다. 은아씨는

 

“전 오전부터 기다렸는데 안 오시더라고요. 그걸 전 늦게 오시는 것도 이해하고 넘어갔던 건데, 다음 스케줄 운운 하시며 제가 잘못한 것처럼 말씀하시니 좀 황당하네요.”


라고 대답한다. 상대는

 

“계약할 때 몇 시라고 약속 잡자고 했더니 ‘아무 때나 와도 좋다’고 하셨잖아요? 오전부터 이사하길 원하셨으면 오전이 좋다고 말씀해 주셨으면 된 건데….”

 

라고 받아친다. 그런 통화로 감정이 상한 채 은아씨는 밥을 먹다 남긴 채 가서 열쇠를 주고, 업체 사람들도 기다리느라 짜증이 났는지 뭐 씹은 표정으로 일을 시작한다.

 

 

 

위와 같은 일은, ‘언제든 당신이 편한 시간에 와라’라고 할 게 아니라 그냥 정확히 이쪽이 원하는 바만 말했더라도, 아니면 당일에라도 계속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그냥 연락해서 언제 오라고 말하기만 했더라도 해결될 일 아니었을까?

 

 

바른 연애를 위한 덕목이라는 게 서서히 깊이 친해지는 것이든, 설렘이 정으로 치환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든, 이해와 존중이 함께해야 하는 것이든 뭐든, 그런 것들보다 훨씬 중요한 게 ‘짐작이 아닌 대화로써의 의사소통’이라는 얘기를 난 은아씨에게 해주고 싶다.

 

은아씨와 남친의 연애를 보면, 그냥 둘 중 하나가 먼저 말만 꺼내도 해결될 수 있었던 간단한 일을 두고도, ‘대화’를 하지 않아 결국 감정 다 상한 후 틱틱거리다 각자 알아서 해소하고 만 일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이번 주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 은아씨는 안 만나는 거라 생각해 다른 약속을 잡고, 남친은 금요일 쯤 ‘주말에 우리 뭐 할지’를 이야기하다 은아씨가 선약을 잡았다고 하니 알았다고 대답하고 마는 일이 있다. 이거 그냥 은아씨가 남친의 스케줄을 짐작만 해서 ‘못 보겠거니’하며 다른 약속을 잡을 게 아니라 남친에게 주말에 뭐하냐고 물어봐도 되고, 그게 싫으면 약속 잡을 때 주말에 이러이러한 약속을 잡으려 한다고 말만 해도 되는 일인데, 그런 대화 없이 맹목적으로 상대의 사정을 생각하며 이해해주겠다는 태도를 보이니 자꾸 어긋나고 마는 거다.

 

이해와 존중은 분명 좋은 덕목이지만, 서로간의 대화 없이 그냥 맹목적으로 베풀면 ‘과유불급’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그것에 대해

 

‘난 그렇게까지 이해해주고 존중해줬는데,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지? 계속 그러니까 난 당연히 그러는 사람처럼 보이나?’

 

하며 꾹 참다 한 번씩 터트리면, 상대 입장에서는 이후 은아씨가 이해를 해준다고 해도 그게 이해해주는 게 아니며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화 안 난 척’, ‘안 서운한 척’을 해가면서까지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려 할 필요 없다. 그러느라 그저 속으로 짐작하고 눈치를 봐가며 내 맘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마는 게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꾹꾹 참다가 나중에

 

“나, 요새 우리 일로 좀 화나려고 해.”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면 상대는 이미 채점 끝나 점수까지 나온 마당에 이제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혼나기만 하는 느낌이 들 뿐이고 말이다.

 

은아씨에게 조언을 해준 다른 분께선

 

“그 남자를 다시 만나려면 다 내려놓고 버리고 맞춰야 한다.”

 

라고 했다고 하는데, 난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그 남자와 사귀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해주고 싶다. ‘너랑 결혼해서 잘 살 것 같지 않다’는 결론을 낸 남자에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버리고 맞춰가며 사귀면 행복할까? 그게 행복일까? ‘전에 만났던 여자들이 이해를 못해서 결국 헤어졌다고 내가 말했는데 기억 못하냐’고 하는 남자에게 과연 은아씨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긴 한 걸까?

 

여기서 보기엔, 남친이 연애 초반부터 ‘과거 여친들은 날 이해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니, 은아씨가 은아씨 특유의 ‘그러려니’하는 성격에 더해 ‘그럼 너도 이해 받는 연애 한 번 해봐라. 내가 다 이해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절대 불평불만 한 번 하지 않고 사귀려고 했던 것 같다. 때문에 그러느라 아예 상대의 눈치를 보고 상대의 상황을 짐작해가며 ‘혼자서도 잘 놀며 불평 안 하는 여친’모드를 강제 구동했고, 그럴수록 남친이 은아씨를 방치하게 되니 참고 참다 결국 폭발하고 만 것 같다. 그 폭발을 경험한 남친은 ‘것 봐 너도 이해 못하잖아’라며 이별통보를 한 것이고 말이다.

 

은아씨는 바짝 엎드려 일단 남친을 다시 관계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데, 난 은아씨가 자신의 감정을 전부 감추며 억지로 괜찮은 척 하고 전부 이해해야 하는 이 연애는 그만 했으면 한다. 그런 식으로 한 3년 해서 남친이 뭔가 보상을 해주는 거라면 참고 견뎌보라 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만히 있으면 사람을 가마니로 보며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알게 되는 법이다.

 

은아씨는 내가 이 사연을 읽고 어떻게 느끼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는데, 나 역시 은아씨의 지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은아씨에 대한 그의 애정이 느껴지질 않으며 그는 자기 혼자만 접대 받는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벚꽃 보러 가자는 말도 눈치 봐가며 상대가 승낙할만한 타이밍 잡아서 해야 하는 연애. 그런 건 이쯤에서 그만 하는 게 몸과 마음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카카오스토리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다사다난했던 일본여행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곧 여행기록 올리겠습니다.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