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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지금은 저만 들이대는 중인데, 이 남자랑 잘 되고 싶어요.

by 무한 2017. 4. 18.

혹 상대가 N양을 마음에 안 들어 해서 만날 마음 없다고 하면, 좀 많이 아쉽더라도 입술 한 번 깨물곤 접으면 되는 거지, 지금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의 눈치를 봐가며 쭈구리모드로 있을 필요는 없다. 그래버리면 호감과 관심을 구걸하는 사람처럼 보일 뿐이며, 제대로 된 대화는커녕 부정적인 질문을 던진 뒤 상대가 그걸 다시 부정해주기만을 간절히 기대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내가 솔로부대원이며 N양과 소개팅을 한 어떤 남자라고 가정해보자. 난 N양에게 –N양이 현재 상대에게 보내는 것처럼- 아래의 메시지를 보낸다.

 

“제가 톡 보내면 N양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걱정했어요.”

“제가 방해한 거죠? 미안해요.”

“근데 혹시 제가 귀찮거나 그러면 얘기해주셔도 돼요.”

“제가 너무 연락하는 것 같으면 말해주세요.”

“진짜 제가 아니다 이런 거면 솔직히 얘기해주셔도 돼요.”

“제가 계속 이래서 부담스러우시겠다….”

 

우린 2주간 9번 연락했는데, 연락을 할 때마다 난 저런 얘기를 N양에게 던진 후 N양이 부정해주는 것으로 확인을 받고 싶어 했던 것이다.

 

물론 나도 저런 얘기를 던졌을 때 상대가 부정해주면, 잠깐이지만 마음이 놓이며 희망이 샘솟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걸 안다. 알긴 아는데, 상대 입장에서 보면 계속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줘야 하는 까닭에 점점 짐처럼 느껴지며,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을 해줘야 하는 까닭에 나중엔 N양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 장난감처럼 여겨질 수 있다. 무릎 꿇은 N양이 상대에게 칼자루를 쥐어준 채 목을 내밀고 있는 듯한 상황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마음에 안 들면 내리쳐도 돼요.”

 

라는 말만 반복하며 말이다.

 

 

N양의 불안은 잠시 접어두고 ‘사실관계’를 좀 보자. 두 사람은 알게 된 이후 지금까지 잘 연락하고 지내며, 만나서 밥을 먹기도 했다. 상대가 N양의 연락에 응답하지 않는 일도 없었고, N양이 자꾸 부정적인 이야기를 던져 확인하려 할 때에도 상대는 긍정의 답을 해줬다. 이 정도면 절대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관계인데, N양은 상대와 만나고 돌아와 상대에게 뭐라고 했는가?

 

“저는 오늘 즐거웠는데, 저만 즐거웠던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ㅠㅠ”

 

N양의 기본적인 마인드 자체가

 

- 나는 상대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며, 상대는 결국 날 싫어하게 될 것. 어쩌면 지금도 날 싫어하는데 예의상 연락하거나 만나주는 것일 수 있음.

 

인 것이다. 이래버리니 N양에게 주어진 연락과 만남의 기회는 죄다 상대에게 사과하거나 내칠 거면 얼른 그냥 내쳐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정작 두 사람이 나눠야 할 대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야 N양이 신청서에 적어 내려간 글들을 읽으며 N양의 생각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지만, 상대는 N양이 보인 저런 태도만의로 N양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카톡대화에서 보이는 N양의 태도만 보면, 미안하지만 N양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꽉 찬 채 불안증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까닭에 닭꼬치 매운 맛 먹고 죽을 뻔 했던 이야기를 상대와 웃으며 나눠도 되는 시간을, N양은 “혹시 제가 싫은 거면 그냥 말씀해주세요. 오히려 그게 제겐 덜 상처가….” 따위의 이야기를 하느라 다 보내고 있잖은가.

 

또, 만나기로 한 날 약속을 미룬 사람이, 상대가 아니라 바로 N양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보길 바란다. N양이 상대에게 댄 핑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일에 상대가 “우리 오늘 밥 먹기로 한 날이에요!”라고 말하는데 그제야 약속을 바꾸자는 말을 하는 건 좀 예의 없으며 약속에 대해 별로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태도에 가깝다.

 

너무나 만나고 싶었지만 막상 당일이 되니 마음이 쫄리고, 게다가 오늘따라 특히 화장도 잘 안 된 것 같고 안 예쁘게 보이는 것 같아 약속을 미뤄버리고 싶을 순 있다. 역시나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닌데, 연락과 만남에 대해 자꾸 그렇게 쭈구리 같은 모습을 보일 경우 상대는 피로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뒀으면 한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마침 버스가 왔으면 일단 올라타서 지갑을 찾든 해야지, 버스 문은 아까부터 열려 있는데 밖에서 지갑 찾아 카드 꺼낸 뒤 올라타려 하다간 버스 떠날 수 있다.

 

겁먹을 거 없다. 이 정도면 멍석 깔린 거고, 상대가 스케줄표를 보여주며 N양에게 3주 가량 바쁠 것 같다고 말한 건 ‘이해’를 바란 거지 ‘N양을 만나기 싫어서 대는 핑계’인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그가 3주간 본격적인 데이트는 할 수 없지만 잠깐씩 커피를 마시거나 밥 한 끼 같이 먹을 수 있다는 의미로 말한 건데, N양은 그걸 전부 부정적으로 해석해 ‘거절인가? 돌려서 쳐내는 건가?’하며 울상을 짓고 있다.

 

먼저 연락해서는 혹시 내가 방해하는 거냐고, 민폐 끼치고 있는 거냐고, 나 싫은 거냐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편이 덜 상처받을 것 같다고 말하는 건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는 거다. 그러지 말고, 잠깐이라도 만나서 커피 한 잔 같이 마시거나,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거나, 뭐 좀 먹고 하라며 빵이라도 하나 건네자. 그러면 된다.

 

“마지막 만남을 끝으로 상대가 바쁠 것 같아서, 이후 제가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게 나중에 무슨 신호가 떨어져서 ‘요이 땅’하며 시작되는 게 아니고, 이미 시작된 거다. 출발신호는 떨어져서 시간은 흘러가는 중인데 N양은 ‘시작이 되긴 되려나? 언제 시작되는 거지? 상대 바쁜 거 끝나면 시작되는 건가?’하며 멍하니 있다.

 

연애라는 게 상대에게 면접을 봐서 시작되는 거 아니며 그런 면접을 상대 바쁜 거 끝나고 보게 되는 거 아니니, 이 글을 보는 즉시 상대에게 연락해 오늘 하루 잘 지내고 있는지 묻길 바란다. 그러면서 N양도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를 하고, 고생 많았다며 달달한 거 한 잔 마시자며 잠깐 또 보면, 그렇게 친해질 수 있는 거다. 너무 어렵고 복잡하고 무섭게만 생각하지 말고, 친구한테 연락해서 잠깐 보자고 말할 때처럼 그렇게 연락해 보길 바란다.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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