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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집순이인데, 과외 해주는 오빠에게 호감이 가요.

by 무한 2018. 12. 21.

대인관계의 셔터를 오래 내리고 살다 보면,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14박 15일의 여행준비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떼고 우체국에 가서 그 서류를 어딘가로 부치는 일만 하고도

 

‘하아, 오늘 정말 많은 일을 했어. 바쁜 하루였다.’

 

할 수 있으며, 동사무소에서 서류 뗄 때 이성인 직원이 내게 지은 표정이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한 망상까지를 하게 될 수 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머리하러 간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와의 짧은 수다가 당장 이쪽에겐 가장 가까우며 강렬한 대인관계이니 거기다 의미부여를 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했는데 친구 반응이 뜨뜨미지근하면 홀로 상처를 받곤 ‘역시 얘한테 연락할 필요 없는 거였어’라며 그 친구를 얼마 남지 않은 이쪽의 인맥관리장부에서 지워버리기도 한다.

 

집순이인데, 과외 해주는 오빠에게 호감이 가요.

 

 

짝사랑 관련 사연이라고 할 수 있는 C양의 사연을 두고 서두와 같은 이야기를 한 건, C양이 현재 사정상 사실 ‘집순이’라기보다는 ‘지박령’에 가까운 수준으로 집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C양은 준비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느라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소홀해지게 되었고, 이십 대 중반 이후로는 특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뉴페이스를 만날 기회도 적어지다 보니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 와중에 등장한 게 ‘과외 오빠’다. 그는 아는 것도 많고, 스펙도 좋으며, 한 주에 한두 번 리드하며 C양을 가르쳐준다. 이건 마치 건조해질 대로 건조해진 낙엽 옆에서 매주 한두 번 캠프파이어를 하는 것과 같아서,

 

-지금 내 삶에 끼어 들어온 유일한 남성이자, 가장 가까이에서 자주 보게 되는 남성.

 

그 과외 오빠에게 C양은 이런저런 생각할 틈도 없이 불부터 붙을 수 있다.

 

여기다 내가 하나하나 반박하는 건 내게 너무 고되며 C양에겐 너무 슬픈 일이 될 수 있으니, C양이 말한

 

-그래도 정말 아주 조금은 과외 오빠가 나에게 약간이나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부분들.

 

에 대해선

 

“응, 아니야.”

 

라고 뭉뚱그려서 대답하기로 하자. 저런 얘기 말고, “과외 오빠가 절 이성으로는 전혀 안 보는 것 같아서 제 자존감까지 떨어질 것 같아요.”라고 한 C양의 말이 현 상황을 잘 요약한 것이며, 그가 C양을 그저 학생으로 생각하는 건 C양이 심하게 낯가리거나 철벽녀 기질을 발휘해서 그런 게 아니라 C양의 예상대로 그가 다른 사람과 연애 중이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C양도 머리로는 그걸 알고 있는 까닭에 이 관계에 대해 ‘상대와 잘 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하루종일 상대를 생각하게 되는 마음을 끊는 방법’을 물었는데, 다행히 이제 상대에게 받던 과외가 끝난다고 하니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해결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매뉴얼을 작성하는 건, 이제 C양도 준비하던 게 거의 완성되어 집 밖으로 나가게 될 텐데, 그럴 때 이성과 친해지는 순서대로 전부 ‘연애 가능성 있는 사람’으로는 생각해 기대부터 하진 말았으면 해서다. 지금 C양에게 과외를 해주는 상대 역시 ‘알고 지내면 좋은 오빠. 내가 뭔갈 하다가 막히면 물어볼 수 있는 오빠’의 카테고리에 넣어두면 좋은 인연이 될 수 있는 건데, C양은 그렇게 되는 관계는 연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지 말고, 날 존중하며 잘 대해주는 사람은 나도 상대에게 그렇게 대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며 인맥 카테고리에 넣어두도록 하자.

 

C양의 대인관계나 사람들과의 인연이, 끝나거나 실패하거나 이제 내리막에 접어든 게 절대 아니다. 전에 한 번 이야기 했듯, 고립된 채 홀로 열심히 준비할 수밖에 없는 뭔가를 하던 사람들은 자신이 잉여인간이 된 듯한 느낌을 한 번쯤 받기 마련이며, SNS를 들여다 보면 남들은 다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자신은 방구석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 같아서 도태됐다는 착각을 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대인관계의 풀장에서 내가 가장자리를 찾아가 잠시 쉬고 있기 때문이지, 풀장 복판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처럼 수영을 할 수 없다거나, 이제 영영 복판으로 들어갈 일 없이 가장자리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C양의 경우 이제 막 C양이 준비했던 것에 발을 디디는 상황이니 앞으로 찾아올 기회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며, 풀장 복판에서 마음껏 수영할 수 있을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러니 바로 앞에 사람이 보인다고 그 사람만 붙잡고 가려 하지 말고, 서서히 복판으로 헤엄쳐 가본다는 생각으로 나아가 보길 바란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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