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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편한 연애하고 싶다는 남친, 제가 맞춰줬어야 하나요?

by 무한 2019. 1. 16.

이 사연 속 남자가 말하는 ‘편한 연애’라는 건 ‘나만 편한 연애’이며, 그건 마치 애완견을 키우고 싶긴 하지만 죽지 않을 만큼의 물과 사료를 줄 뿐 간식을 주거나 산책을 하거나 놀아주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을 때만 하고 싶다는 거라 할 수 있겠다.

 

때문에 이런 사람과는 긴 연애를 하는 게 불가능하며, 이 사람은 자신의 그런 속내를 숨기고 젠틀한 듯 들이댈 때는 썸을 타거나 연애를 시작할 수 있겠지만, 그 이기적인 태도를 드러나는 순간 곧바로 상대에게 차일 가능성이 크다. 지가 놀고 싶을 때만 연락을 하거나 대화를 할 뿐 그렇지 않을 때는 귀찮게 말도 걸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데, 그걸 다 참고 이해하며 ‘어쩌다 한 번 집 밖 데이트’를 해준 것을 위안 삼아 또 몇 주 혼자 버티는 연애 할 여자는 없지 않겠는가.

 

-대화의 8할이 졸리다, 피곤하다, 자고 싶다. 2할은 뭐 먹을까.

-집으로 오라고 해선 TV 보고 밥 먹다가 자는 게 데이트.

-카톡엔 성의 없이 ‘응, 어, 그래, ㅇㅇ’ 하는 대답만이 한가득.

-난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그냥 놔둬라, 하며 짜증 냄.

 

등이 벌어지고 있는 연애에선 벗어나는 게 맞는 거다. 연애란 어쨌든 서로를 보듬고 함께 행복하기 위해 사귀는 것인데, 저런 연애는 ‘사귀긴 하는 거니까, 다른 건 다 양보하고 불평하지 않기’로 해버리는, 연인이란 간판만 달았을 뿐 경영은 엉망인 관계를 그저 버티는 것 아니겠는가.

 

편한 연애하고 싶다는 남친, 제가 맞춰줬어야 하나요?

 

 

여린 마음을 지닌, 그러면서 동시에 아픈 걸 버티는 게 노력인 거라 생각하고, 상대가 화를 내면 패닉에 빠져 얼른 무릎이라도 꿇어 그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대원들이 저런 사람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만다. 보통의 여성대원들이라면

 

“그래 자라. 영원히 자 그냥.”

“맞는 말이네. 처맞는 말.”

“너 하고 싶은 거 실컷 하면서 살아. 연앤 뭐하러 해.”

 

라는 반응을 보이며 ‘뭐 이런 게 다 있어?’ 했을 텐데, 여린 마음의 수도자 같은 대원들은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또는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하며 님에 대한 기다림과 헌신적인 사랑을 몸소 실천하려 하곤 한다. 저 시들의 해석처럼, ‘애소, 자탄, 원망, 체념의 기다림이 아닌 사랑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적극적 기다림’ 같은 걸 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 하나는, 바로

 

-상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귀기만 하면 일단 100% 신뢰하고 마는 것

 

이다. 연애를 시작하면 얼른 그 연애가 더 행복하고 예뻐지길 바랄 뿐, 상대가 겉으로만 젠틀맨인 척 했던 개차반이라는 걸 알게 될 경우 헤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나, 말도 안 되는 요구들을 할 경우 그 부당함이나 불편함에 대한 어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대원은, 전날 새벽까지 노느라 당일 약속시간에도 잠만 자고 있던 남친이

 

“이미 시간 지났는데 어쩌라고? 내가 일부러 늦게 일어났어? 급한 것도 아닌데 저녁에 만나면 될 거 아냐. 아 됐고, 이런 기분으로 만나 봐야 좋은 소리 안 할 것 같으니까 그냥 가. 내가 지금 분명 그냥 가라고 했다. 진짜 사람 짜증나게 할래?”

 

라는 소리를 하는데도 그걸 그냥 다 들으며 혼자 상처받고 속상해할 뿐이었다. 이번 사연의 주인공 역시, 상대를 생각해 선물을 사고 그걸 상대 직장에 맡겨두고 갔을 때, 상대로부터

 

“시키지도 않은 짓을 뭐하러 해. 그리고 줄 거면 다음부턴 네가 직접 줘. 불편하게 만들지 말고.”

 

라는 얘기를 듣고 말았다. 이것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는 게 속상했지만, 그냥 넘겼어요.”

 

라는 이야기만 내게 했을 뿐이고 말이다.

 

 

이렇듯 ‘그래도 되는 여자’‘뭘 어떻게 하든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가 될 경우, 상대는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다 못해 이쪽 보고 자기 누워서 뒹굴게 구석에 서 있으라고 할 수 있으며,

 

“내가 너한테 뭐 바란 거 있어? 없잖아? 근데 넌 뭘 자꾸 바라는 거야? 난 원래 이래. 그러니까 난 원래 이런대로, 넌 원래 그런대로 살면 되잖아? 그냥 놔두면 아무 문제 안 되는데, 제가 나더러 뭘 어떻게 해주길 바라니까 문제가 되는 거 아냐.”

 

라는 얘기를 듣고도 ‘그래, 연애는 맞춰가는 거니까….’라는 생각만 할 경우 팔자는 연애 때문에 네 갈래로 꼬일 수 있다.

 

늘 얘기하지만, 관계에서 지금 안 되는 것이 나중엔 저절로 알아서 잘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 연락과 만남에 목마르다면 나중엔 그 갈증이 더 심해질 수 있으며, 상대가 바라는 ‘너는 너 나는 나, 간섭하지 않는 편한 연애’를 받아들이려다간 ‘상대가 놀고 싶을 때만 내가 맞춰서 놀아줘야 하는 연애’를 하게 될 수 있다.

 

말이 편한 연애지, 따지고 보면 그건

 

-같이 하고 싶은 거, 별로 없음.

-연락은 내가 외롭고 심심할 때 하면 됨.

-연애 말고도 난 하고 싶은 거 많으니 터치 금지.

-그럼에도 넌 나만 바라보고 나만 좋아해야 함.

 

에 가까운 것 아닌가. 더불어 이쪽은 상대와 가장 친밀한 관계인 연애를 하는 중이니, 당연히 같이 고기도 먹으러 가고 싶고 수다도 떨고 싶으며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공유하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건데, 그 가장 기본적인 것마저 부담스럽고 귀찮다고 말하는 사람에게선 로그아웃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 놓인 대원들을 보면 상대가 초반 2~3주 사이에 보인 ‘지금과 전혀 다른 적극적인 모습’을 위안 삼아 버텨가는 걸 볼 수 있는데, 그건 상대가 초반에 120%의 호의를 보이며 좋은 사람을 연기했던 거지 원래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나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변한 게 아니니, 이런 와중에 자책까지를 하며 ‘차라리 혼자인 것 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연애’를 하진 말았으면 한다. 낭만과 희생 뭐 그런 것만 생각하며 미화하자면 가시 같은 현실도 버텨가며 미화할 순 있겠지만, 그러다간 인생의 황금기를 뒷방에 갇혀 배식만 받는 사람마냥 보내게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라며, 자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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