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뿐만이 아니라 여러 지점에서 문제가 많은 사연인 까닭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이틀 정도 고민한 것 같다. 매뉴얼도 몇 번 쓰다가 너무 한 지점에 중점을 두고 쓰는 것 같아 여러 번 지웠는데, 이건 그냥 내 결론과 함께 그 이유들을 열거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내가 내린 결론은
-더 시간 끌 것 없이, 오늘이라도 바로 헤어지는 게 낫다.
라는 것이며, 그 이유들에 대해선 아래에서 하나씩 살펴봤으면 한다.
1. 상대에겐 비밀이 많으며, 거짓말을 거짓말로 덮으려 한다.
사연의 주인공인 A군은
-나이를 몇 살이나 속였냐는 게 문제라기 보다는….
이라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사실 상대가 속인 나이는 서너 살 정도가 아닌 까닭에 좀 심각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나이를 속인 것 역시 ‘A군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나이 때문에 안 될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래야 만났다가 헤어져도 실제의 나로 만난 건 아닐 수 있기 때문’인 까닭에, 의도 또한 결코 순수했다고는 할 수 없다.
또, 연애 중 상대는 A군에게 비밀로 한 채 반년간 야간알바를 하기도 했는데, 이건 연인이 반년간 투잡을 했는데도 A군이 몰랐다는 것도 당황스럽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분명 ‘몰래, 아닌 것처럼’ 연기를 한 상대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번에 A군이 상대의 진짜 나이를 알게 된 건 둘 모두를 아는 지인 때문인데, A군의 여친은 A군에게 ‘그 지인에게 우리는 헤어졌다고 말하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다른 거짓말로 덮으려는 건데, 이런 식으로 돌려막기를 하다간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짓말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보는 내가 다 걱정된다.
2. 미래를 고려하지 않던 관계이며, 일방적인 이해와 희생이다.
내가 이별을 권하는 두 번째 이유는, 상대가 나이를 속였다는 것을 알기 이전에도 A군은 이 관계에 불만과 피로감을 잔뜩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A군은 여친에 대해
-부정적이고 예민함. 사회성이 떨어지며 히스테릭한, 몸까지 약한 사람.
이라고 말했는데, 거기다 더해
-난 챙겨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고 여친은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
라고 한 것까지를 고려하면, 이 관계는 A군의 일방적인 이해와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유지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실제로 A군은 상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다 지쳐 헤어지자는 말까지 한 적 있는데, 그때 상대가 ‘사실 그건….’ 이라며 숨겨왔던 비밀을 공개해 A군이 용서하고 이해하기로 해 다시 만나왔다.
‘진짜 사랑한다면 충분히 용서해줄 수 있는….’이라는 말에도 함정이 있음을 기억하자. 다들 쉽게 말하지 못할 사정은 한두 개씩 가지고 살 수 있으며, 사람이라 실수도 할 수 있기에 사귀다 보면 용서와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오긴 하지만, 그게 늘 한 쪽의 이해와 용서를 요구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면 문제가 있는 거다. 게다가 그런 식이면, 저 말에 앞서 ‘진짜 사랑한다면 그러지 않았어야 하는….’이란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더불어 A군이 하는 그것들이, 둘이 하고 있는 게 ‘진짜 사랑’이라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걸 베푸는 게 아니라, ‘진짜 사랑이라면 그럴 수 있어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도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한다. 지금까지의 패턴이라면 ‘나이를 속인 문제’ 역시 상대가 속사정을 말하며 체념하는 듯하면 A군은 또 ‘이해와 용서’를 한다며 어찌어찌 이어나갈 게 분명한데, 그렇게 이해를 위한 이해나 용서를 위한 용서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3. 머뭇거림의 시간들이 둘을 더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서두에 내가 이별을 권하며 ‘오늘이라도 바로’라고 강하게 표현한 건, 바로 앞에서 말한 ‘용서를 위한 용서’의 문제도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 A군이
-신뢰가 크게 무너져 회복 불가
-알게 된 나이는 감당 못 할 무게감이 느껴짐
-피로하고 지쳤으며, 다른 이성을 만나볼 생각도 있음
이라고 말하면서도
-익숙한 관계가 송두리째 날아가는 게 무서움
-시험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감정소모가 클 것 같음
-여친도 상황이 어수선한데, 이별까지 하면 힘들어 할 것 같음
이란 이유로 ‘이별의 말을 꺼내는 시점’을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피곤하게 느껴지며 그 안에 비밀도 많은 이 연애’를 여기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저 후자의 이유들 때문일 수도 있는데, 역시나 지금까지 그런 이유로 ‘일단 더 해보기로’ 하며 끌어왔던 모습을 이번엔 되풀이 하지 말았으면 한다. 결국 정리할 걸 두고 지금 정리하면 아플 것 같다며 나중에 정리하기로 하며 역할극만 하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며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또, A군은 ‘상대도 힘들까 봐’라고 하지만, 실제로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는 것이 상대의 앞길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일 수 있다. 상대는 A군이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르곤 연애 중 몇 번 나왔던 결혼에 대한 이야기만을 생각하고 있을 텐데, 그러다 A군이 시험에 합격하고 난 후 이별통보를 하면 그 충격은 더 크지 않겠는가. A군과 만나온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상대의 배신감과 절망감은 커지기만 할 수 있고 말이다.
A군이 이별통보를 하면, 상대가 이제 아무도 못 만나며 슬픔과 절망 속에 살 거란 생각은 안 해도 좋다. 어떻게든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던 A군 입장에선 상대에게 문제가 많아 보일 수 있겠지만, 어쩌면 상대에게 필요한 건 그걸 다 받아만 줄 사람이 아니라 그러지 않도록 리드해주는 사람이 잘 맞았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난 지금까지 이야기 한 이유를 들어, A군에게 ‘빠른 선택’을 권하고 싶다. A군은 자신이 여자친구의 실제 나이를 알게 된 것도 여자친구에게 들은 게 아니라 지인에게 들어 안 것이기에
-여자친구에게는 내가 실제 나이를 알게 되었다는 걸 언제 말할지? 또 어떻게 말할지? 말하지 말고 실제 나이를 물어봐야 하는 건지? 그렇다면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 건지?
를 내게 묻기도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사실 그대로 털어놓길 권한다. 이럴 땐 질러가는 게, 가장 바르고 빠르며 후유증이 적은 방법일 테니 말이다. 상대의 반응은 나도 궁금하니 가능하면 후기를 한 번 보내주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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