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와 결혼하면 행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으십니까? 제가 제일 궁금한 건 바로 이 지점으로, 혹시 이것에 대해 M씨가
“여친은 정말 착하며, 가족에게도 헌신적이고, 그렇기에 결혼하면….”
이란 대답을 한다면, 전
“착하고 나쁜 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자신의 가족에게 헌신한다고 남의 가족에게도 꼭 헌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 상황을 보면, ‘가족 VS M씨’ 중에 가족을 택한 거라 할 수 있고 말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M씨는 ‘잘 설득해서 결혼만 성사 되면….’이란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결혼 후에 벌어지는 다른 갈등들 역시 이 ‘결혼 설득시키기’와 맞먹는 수준의 고민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서로 얼굴 붉히지는 않는 현재의 갈등은 애교로 느껴질 정도의, 인생을 걸고 결판을 내야 하는 갈등이 찾아올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 여친이 결혼에 대해 생각을 얼마 안 해보거나, 단순히 결혼에 대한 겁이 많아서가 절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결혼에 대해서는 그녀가 훨씬 많이 생각을 해봤으며, 어떤 회로로 생각을 돌려 보든 결국 마음 아픈 일이 벌어질 거란 결론에 도달했기에 결혼에 부정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M씨가 ‘아직 그녀가 어린데다 걱정과 겁이 많아서’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녀는 M씨가 내거는 공약들에 유효기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나 그녀를 안심시키려 하는 말들이 뒤집어 질 수 있는 가능성들까지를 다 고려해 부정적 결론을 내린 걸 수 있단 얘깁니다.
여친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물은 M씨에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M씨가 다 이해해주고, 다 해결해주고, 다 포용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해 상대를 설득할 경우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마냥 그것들을 다 해줄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될 텐데, 그건 M씨와 제가 닭 뜯으며 소맥 마실 때처럼 별 문제가 없기 때문에 그런 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당장 치맥하러 가면 웃으며 호형호제 할 수 있겠지만, 자전거 여행을 떠났는데 하루 120Km를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 M씨 몸이 안 좋아 자꾸 쉬다 50Km도 못 가면 전 솔직히 좀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그게 길어져 2~3일간 지장이 생기면, 전 M씨에게 저 혼자 갈 테니 M씨는 일단 집에 돌아가서 쉬는 게 좋겠다고 할 수 있고 말입니다.
또, 다른 사람의 상황 또는 문제라는 건, 꼭 눈에 보이는 그것 하나가 전부인 건 아니라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문제로 인해 상대는 자기 삶의 질이 떨어진 듯 느낄 수 있으며, 다른 뭔가를 하기에 벅찬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순한 목감기만 와도 사람 만나기 싫고 만사가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가족이나 가정과 관련된 큰 문제가 있다면 삶을 대하는 태도나 세상을 보는 시각 자체가 좀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듯 상대는 자신의 사정까지를 다 고려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는 중인데, M씨는 이걸 단순히 ‘가치관의 차이’ 정도로만 해석하며, 상대에겐 심각할 수 있는 고민을 M씨가 근거 없이 낙관적으로만 바라보며 설득하려는 게 좀 안타깝습니다.
신청서가 ‘결혼에 대한 가치관 차이’를 주제로만 작성되었고, 첨부된 카톡대화가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한 부분’만 있는 까닭에, 전 M씨의 연애에 대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만남의 빈도가 평균 주 1회이며, 서로의 가족은 본 적 없고 지인들도 그다지 본 적 없는 걸로 봐서는, 1년 넘게 사귀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깊은 관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때문에 설렘이 귀찮음을 이겨서지 못할 정도면 연애가 시작되기 어렵듯, 이 관계에 대한 의미가 결혼에 대한 부담을 넘어서기 힘들다면 상대 마음 역시 쉽게 바뀔 수 없을 것 같고 말입니다.
그래서 전 맹목적으로 다 이해하고 맞춰줄 테니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달란 얘기 대신, 정말 상대가 뭘 걱정하고 있으며 그게 M씨에게는 정말 아무 문제도 안 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상대가 ‘오빠는 이해 한다고 해도 오빠 부모님들께서는 이해하지 못하실 수 도 있고….’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지금처럼 거기에 그저 ‘우리 부모님들께서 그러실 분들 아니다. 그런 게 걱정되면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서….’라고만 하진 말잔 겁니다. 그것보다는 M씨 역시 걱정되는 부분들에 이야기를 하며, ‘입장을 바꿔 내가 너의 상황에서 같은 고민을 한다면 넌 분명 내게 어떻게 해줄 것 같다’는 식으로 마음을 털어놓는 게 좋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상대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며, 너의 염려를 해결하기 위해 난 현실적으로 이러이러한 것들까지도 생각해 봤다 정도로 말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 더. 만약 M씨가 열심히 노력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없다면, 그땐 타협이 불가능한 이 관계에 대해선 미련을 놓는 것이 좋을 겁니다. 어쩌면 상대는 지금처럼
“오빠는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거구나. 결혼을 안 하면 날 더는 사랑하지 않는 거구나. 결혼을 안 한다는 이유로 헤어질 수도 있는 거구나.”
라는 뉘앙스로 꼭 그 이별의 책임이 M씨에게만 있는 것처럼 말할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자기 마음을 전혀 안 바꾼 건 상대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가족과 부모님들께 인사할 기회마저 차단해 버린 것은 상대였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때도 이상한 의무감과 죄책감만 가진 채 ‘기약이라도 해줄 수 없는지….’ 하며 기다리지만 말고, 현명한 선택을 하셨으면 합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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