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씨의 사연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J씨의 사연을 받을 때마다 전
‘이거 사연 속에 답이 있는데? J씨 자신도 자신이 뭘 잘못한 건지 알고, 또 상대가 하는 얘기에 귀만 기울여도 해결될 문제인 건데, 내게 뭘 더 말해달라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J씨 문제의 8할은
-상대가 극도로 화내기 전까지 계속해서 내가 원하는 것 요구하지 않기.
-잠잠해질 때까지 아닌 척 하며 눈치 보다가, 같은 말 또 하지 않기.
-상대에게 잘해준 것에 대한 보상으로 내가 원하는 것 받아내려 하지 않기.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며, J씨의 문제들은 ‘몰라서’가 아니라 ‘못 참아서’ 벌어지는 것임으로 스스로 자제하려 노력하는 것이 해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게 ‘스킨십’이다보니 가치관의 차이나 조율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은데, J씨의 문제는 사실 ‘스킨십’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닙니다. J씨의 문제를 보려면 이걸 ‘연인과 함께 한 잔 하기’ 정도로 바꾸어 보면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귀는 사이니까, 술 한 잔 같이 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연인 중 한 사람이 거의 알코올중독 수준이라, 거의 모든 데이트를 ‘기-승-전-술 한 잔’으로 이끌어가려 합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야 뭐 자꾸 보고 싶으며 만나서 할 이야기들을 술 한 잔 곁들여서 할 수 있으니 상대도 질색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만나다 보니, 이건 술친구가 필요해서 자길 만나는 건지 아니면 술 마시는 것 빼고는 같이 하고 싶은 게 없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튀김 보면 맥주 생각난다, 국물 보면 소주 생각난다, 비오니까 막걸리 먹자, 이건 안주인데 어떻게 술 한 잔 안 할 수 있냐 하며 모든 만남에 술을 갖다 붙입니다.
거기에 지친 한 쪽에선
-우리 맨정신으로도 좀 얘기하고 그러자.
-주말에만 술 마시고 평일에는 자제하자.
-주말이라고 해 지기 전부터 취해있지 말자.
-술자리만 만들지 말고 여행도 좀 가고 그러자.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걸 다른 쪽은
-어제 맨정신으로 얘기했으니 오늘은 한 잔 하자.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니 평일 구분 없이 한 잔 하자.
-취할 정도 말고 그냥 딱 세 잔만. 아니면 시원하게 맥주 정도만.
-네가 가자는 여행 왔으니 여기선 실컷 마시게 해줘라.
라고 받습니다. 저런 거라면, 가치관이고 조율이고를 떠나서 그냥 더 말하는 것도 피곤해지며 조만간 관계를 끊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불어 같이 안 마셔줬다고 삐치고, 허락을 해줘도 정말 딱 세 잔만 마시게 하고는 세 잔 마신 뒤 병 치워버렸다며 기분 나빠하고, 제발 오늘만은 그냥 넘어가자고 했는데 ‘한 잔 만~ 딱 한 잔만~’하며 계속 노래를 부르고, 그러다 잠들었는데 자다 일어나서는 편의점 가서 소주 사와선 딱 반 병만 마신다고 하고, 이러면 뭐 그 괴롭힘에 질려버릴 정도가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제 지인 중 하나도, 꼬꼬마 때긴 하지만, 온라인 게임에 빠진 나머지 여친과 해외여행을 가서도 어렵게 피씨방을 찾아가 게임에 접속한 적이 있습니다. 해외에까지 가서 그럴 정도인데, 한국에서는 오죽했겠습니까? 맨날 피씨방 데이트만 하려고 하니 여친이 화를 냈고, 그래서 그런 여친을 달래준다고 지인이 경비도 거의 다 대가며 간 해외여행인데, 거기서까지 그래 버린 까닭에 결국 둘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J씨도 제 지인의 꼬꼬마 시절 이야기와 비슷한 상황을 겪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게 제 지인은 ‘게임’이었고 J씨는 ‘스킨십’이긴 했습니다만, 여하튼 저 와중에
‘오늘 12시간 중 여친 하고 싶어하는 거 10시간 했으면 내가 좋아하는 거 2시간은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며 합리화만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딱 그 순간만을 놓고 합리화나 정당화만 하려 하지 마시고, 지금까지의 연애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통틀어 살펴보며 문제를 받아들이고 답을 구하셨으면 합니다.
J씨가 사연에 첨부한 ‘여자친구에 관한 내용과 그녀의 호불호’는 잘 보았습니다. 그걸 보며 여친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까지 J씨가 다 메모해두고 기억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녀에 대해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정도로 많이 안다 해도 정작 그녀에게 J씨가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다 소용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J씨가 제게 무수히 많은 사연을 보내고 친구나 가족도 모르는 이야기들까지 다 털어 놓아 제가 J씨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해도, 제가 J씨에게 늘 ‘낚시 가자고 말하기’를 목적으로 대화를 걸며 ‘기-승-전-낚시 콜?’의 이야기를 한다면 고개를 가로젓게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J씨는 또 나름 억울하다며
“가기 전 상대가 만족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찾아봤다. 여행서적들을 수십여 권 뒤지고, 인터넷의 여행지와 현지 맛집들을 찾아보고, 지인들에게 물어봐 현지인들이 가는 맛집, 장소를 알아봤다. 걷는 걸 좋아하는 여친을 위해 트레킹 하기 좋은 장소와 거리 시간 등도. 여행할 때 사전에 준비하는 걸 싫어함에도 여친을 좋아하는 감정에 혼자 무리를 했다.”
라고도 했는데, 그것 이전에 ‘상대가 싫다고 한 것들’에 먼저 좀 귀를 기울이셨으면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상대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상대가 무얼 말하고 있는지를 듣는 게 더 중요한 겁니다. 상대가 진짜 답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건 치워두고 ‘내가 생각하는 답’만 반복해서 말하면 피곤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불어 ‘상대의 만족을 위해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상대는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도 생각하진 마셨으면 합니다. 그런 조건부의 노력은 안 하는 게 낫습니다. 저 위에서 예로 든 알코올 중독자 남친이, ‘여친에게 신발 하나 사줬으니 앞으로 내겐 일주일간 술 먹는 거 터치하지 않기’라는 조건 같은 것만 걸면, 잠시나마 유예는 될 수 있겠지만 결국 또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아니면 여친은 “신발을 달라는 게 아니야. 맨정신으로도 좀 대화를 하자는 거지.”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상대가 눈 앞에서 친절하게 말해주는 답을 무시한 채 애먼 곳에서 이상한 답을 찾으려는 건 이제 그만 하시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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