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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남자의 바람기와 매너, 뭐가 다를까?

by 무한 2010. 3. 5.
노멀로그 방명록과 메일등에 얼마나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는지 안다면, 연애 같은 건 무서워서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좋아하던 남자가 자신의 과거 엔조이 경험담을 들려주며 "우리 엔조이 할까?" 라는 말을 한 것 부터(물론, 이 남자분은 이렇게 말을 꺼내기 까지 지구 두 바퀴 반을 돌리는 화술을 구사했다. 너 나 좋아해? 라는 이야기 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남자친구의 스펙이 별로니 헤어지라는 충고를 하던 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술마시고 전화해 둘이 꿈의 궁전 305호에(응?) 갔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나, 사랑하던 그녀가 군대 면회 오며 위병소에 신분증을 맡겼는데, 위병소 근무를 서던 고참이 훗날 그녀의 미니홈피를 찾아내 연락했고 그녀는 그 고참과 사귀게 되었다는 '이게 뭐 이러냐.' 같은 사연들까지 말이다.

이러한 사연들을 읽으며 '와, 저런 피콜로들은 더듬이를 뽑아 버려야 되는데.'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사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나 나 역시 '내 마음'이라는 선에서 한 발짝만 더 밖으로 내 딛으면 벌일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오늘 소개할 아래의 사연들을 읽으며 착한편 나쁜편을 나누기보다 '이런 경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바람기와 매너를 구분하는 것 역시, 매너에서 한 발짝만 더 선을 넘게되면 바람기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 선을 한 번 넘으면 다음 번에 넘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것만 적어두며, 오늘도 달려보자.


1. 그 남자가 보여준 작업의 정석
 

한 사연을 두 개로 나눠 보겠다. A를 읽고 난 후와 B를 읽고 난 후의 소감을 200자 원고지 25매 내외로 써 보라는 것은 훼이크고, 사연의 여주인공에게 빙의되어 읽어보자.

A.
호감을 가지고 있던 남자가 있었어요..
아는 친구의 친군데, 알게 된 지는 한 달 정도 되었죠.
며칠 전 친구의 결혼식이 끝나고 가진 술자리, 그 남자도 참석했고
저녁까지 술자리가 이어지게 되었어요.
제 치마가 짧은 것도 아닌데 그 남자가 양복 벗어서 덮으라고 주고
(춥다고 옆에 언니가 계속 노래를 불렀는데도 저에게 덮어주더군요)
제가 술을 좀 많이 마시게 되니까 빈 물컵을 가져와서는 저에게
술 마시는 척만 하고 그 물컵에 뱉으라고 하더군요.
제가 그것도 잘 하지 못하자, 술병에 물을 따라서는
그 물 담긴 술병으로 제 술잔에 물을 계속 따라 주더라구요.
그 남자가 차를 가지고 왔다며 중간에 집으로 가 버리고
저는 괜히 헛물켰다는 생각에 우울해 있었는데...
집에 오는 길에 문자가 와서 봤더니, 그 남자 였어요.
자기 번호니까 놀라지 말고 저장하라고..
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생각했는데, 술자리에서
그 남자가 제 핸드폰을 잠시 만지작 거린게 생각 나더군요.
통화 목록에 그 사람 전화로 건 번호가 있더라구요.


좋은 작업이다. 솔로부대 고위 관계자 분들은 저 상황에서도 "마셔요. 괜찮아요. 이런 날은 취해도 되요. 받으세요." 따위로 계속 들이붓고 여자분이 컵에 술을 뱉는 걸 발견하면 TV출동 카메라고발 취재팀이 출동한 것 처럼 "술 먹는 척 하며 물컵에 뱉는 사람이 요기있네~"라며 특종을 보도할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술 다신 안 먹는다며 쓰린 속 부여잡고 구토만 계속하고 말이다. 그래놓고 친구에게 전화해서 "야, 어제 왼쪽 두 번째에 앉아 있던 여자, 전화번호 혹시 아냐?" 이런 이야기만 한다는 얘기다. 이건, 작업이라기 보단 자빠링이다. 소주 세병은 가뿐히 마신다고 자랑이나 하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이거 그냥 웃으라고 적어둔 말이 아니다. 관심있는 여자가 옆에 있으면 괜히 장난을 치거나 괴롭히거나 놀리려는 일부 남자들의 '관성'에 대한 얘기다. 겨드랑이 털이 수북할 나이가 되었다면 이제 이런 모습은 내려놓고 '매너'를 손에 들어야 할 때다.

자, A까지만 이야기를 읽으면 이제 둘 사이에는 핑크빛 러브러브가 시작 될 거란 예상이 든다. 하지만 둘의 사이를 질투한 큐피드는 나머지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쏘았으니, B부분을 읽어보자.

B.
그런데... 그 남자.. 연하의 여친이 있더군요..
제가 원래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계속 쳐다보고..
별거 아닌거에 의미를 자꾸 부여하게 되는데요..
이번에도 그런 것 같아서 답답하고 속이 터집니다. ㅠ.ㅠ
매너가 너무 좋은 건지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건지.. 헷갈려요..
여자친구 있다는 말에 마음을 접긴 했지만..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제가 계속 쳐다보고 웃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으니까..
어장관리 식으로 그런 걸까요?
제가 오해하는 건지.. 남자들이 원래 그런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가슴 아픈 얘기를 좀 하자면, 커플부대원들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미 '학습'된 경우가 많다. 그것은 타고 난 부분 외에도 여자친구와의 일들을 계기로 생겨났을 것이다. 쉽게 말해 단 둘이 밥을 먹더라도, 솔로부대원은 상대의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주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경우가 대부분 이지만, 커플부대원은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단 얘기다. 그럼 그 행동만으로도 상대는 '얘가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건가?'라며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듣고 있을 거다.

이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유부남을 좋아하게 된 여성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바로 그거였다.

"그 남자는 내가 원하는 걸 알고 있어요."

사랑받으며 살고 싶다는 여자의 작은 소망, 그 소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 처럼 상대는 바닥과 의자와 테이블 위에 만물상처럼 이것 저것 늘어놓는다. 물론,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내줄 순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과정에서 원래의 상대에게 배신을 하고 내어주는 경우도 있다.)

"무한님도 바람기 다분한 남자의 어장관리라고 말하실 건가요?"

나는 별자리가 청개구리자리라, "네."라고 안 할거다. 그 남자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매너가 좋으며, 당신에게 관심이 있을 수도 있다고 답하겠다. 옆에서 춥다고 노래를 부르던 언니에겐 신경도 안쓰며 당신에게 양복을 벗어 준 것과, 물컵과 술 얘기, 그리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그 찰나에 당신의 전화번호를 딴 것도 그가 당신에게 반했기 때문이라고 적겠다.

심지어 둘이 사귀게 될 지도 모른다고 적겠다. 그 남자분이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보다 당신의 매력에 더 빠졌고, 그 여자친구분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둘은 이별하고 당신과 그 남자가 사귀게 될 것 같다고 말이다. 사연에 적어주신 대로, 그 여자친구분과 남자는 아직 100일도 안된 사이가 아닌가. 그 연애를 물른다고 해서 법적인 책임같은 건 지지 않는다. 도의적인 책임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어차피 영영 안 보고 살 거면 약간의 죄책감만 가지고 이별 할 수 있을 거다. 자, 그럼 둘이 핑크빛 러브러브를 마음껏 즐기시길 바란다.

그리고 둘의 사랑이 곧 100일을 앞두고 있을 때,

그 남자에 대해 매너인지 바람기 인지 모르겠다며 메일을 보내는 다른 여자분이 계시다면, 그 여자분에게도 똑같이 적어서 보내드리겠다. 바가지는 원래 다 새냐고 묻진 말길 바란다. 바가지 중엔 새는 바가지도 있는 것 뿐이다.


2. 지금 여자친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남자


사실 이와 관련된 사연 중,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다른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노래를 불러줬다는 사연은 첫 단추부터 이상하게 끼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생각이란 워낙 다양한 까닭에 '노래를 불러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얘기하겠지만, 자기 여자친구에게 새벽에 어느 남자가 전화를 걸어 노래를 불러줬다는 얘기를 들으면, 무슨 표정을 지을 지 궁금하다. 그 후에 이어진 멘트,

"난 지금 여자친구를 사랑하지 않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날 좋아한다는 사람을 내가 받아주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조금이나마 행복할테니, 그래서 받아주는 거야. 앞으로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사랑한다는 말은 하진 않을 거야. 말만 그렇게 하긴 미안하잖아."


이 남자분의 크고 아름다운 인류애에 반해버렸다. '내가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날 좋다고 하는 여자와 사귀면 그 사람은 행복할 수 있으니 사귀어 주는 거야.'라니, 간디가 찾아왔다 울고 갈 정도의 멘트다.

안타까운 것은, 이 상황에서 이야기를 들은 대상은 정신을 못 차리게 될 가능성이 크단 거다. 상대의 여자친구보다 훨씬 우월한 입장에 서 있다고 착각하며, '그럼 난 사랑한다는 거겠지?' 라고 마음대로 생각해 버린다. 이후의 상황은 여러가지로 나뉘지만, 사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루트는 어느 계기로 둘만 있을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가게 되고,

"지난 번에도 술 취한 여자애 하루종일 보살펴주면서 아무 일도 없었어. 여자랑 한 방에 있다고 무슨 일 벌이고 그러는 사람 아니야."


이런 멘트 후에, (그 후 벌어지는 몇 가지 일들은 독자분들의 상상에 맡긴다.) 결국 "남의 남자 뺏으려고 한 여자사람" 취급을 당하게 되는 레퍼토리였다. 삼자대면을 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남자가 "내가 너한테 고백이라도 한 적 있냐?" 라며 돌변하는 건, 뭐, 차암 그르타.


"여보, 아버님 댁에 귀뚜라미 좀 풀어 드려야 겠어요." 라는 심정으로, 관심남 집에 거짓말 탐지기라도 하나 놔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분명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연애를 시작하게 될 때와 다를 것 없는 상황이니 착각하거나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이 당신 잘못은 아니다. 그저 가지고 놀려는 마음이 아니라, 상대 역시 그 말랑말랑하고 황홀한 연애 초기의 감정을 즐겼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건 별로 권장하고 싶은 방법이 아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의 뒤통수를 친 어느 분의 사연을 공개할까 한다. 바람직하진 않지만, 상대의 어장관리를 역이용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기에 적어둔다. 이대로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이야기의 주인공은 상대의 어느 부분을 간파했는지를 잘 살펴보길 바란다.

처음엔 어장관리인 줄도 몰랐죠.
사랑하는 마음이나 관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 같았어요.
한 살 연하인 그가 나에게 해 줬던 그 일들이요.. 만나면 정말 행복했죠.

거리가 멀었지만.. 일을 제쳐두고 내려와 저와 만나기도 하고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 까지 그 사람이 다 챙겨줬어요.
연하인데도 저보다 훨씬 성숙한 것 같았죠..

다 말하지 않아도, 제가 공주가 된 듯한 느낌이라면.. 아시겠죠?
저와 있을 때 받지 않는 전화나 뭐 그런거..
사실 여자의 육감으로 어느정도 의심이 되긴 했지만..
그럴 리 없다고 혼자 합리화 했죠. 만약 다른 여자가 있어도..
이 사람은 분명 나에게 올 거라는 믿음 같은 게 있었어요.
하지만 그의 꼬리는 너무 길어서 밟혔고..
전 지구상에서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여자가..
저 말고도 세 명은 더 있다는 걸 알아버렸죠.
정말 많이 울었지만.. 말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봐야 이 남자는 저와 관계를 끊으면 그걸로 끝이니까요..
슬슬 다른 여자와 또 만남을 갖는지..
이제는 절 보러 내려오지도 않게 되었을 때.. 문자를 보냈죠..
그 전까지는 그 사람이 자꾸 보챘지만.. 제가 거절했던 거에 대해서요..
"나 전에 니가 말했던 그 진지한 관계.. 가져보고 싶어."
바쁜 일 있다며 연락도 줄고, 이번 주말도 약속이 있다고 한 남자가..
다 취소하고 내려갈테니 만나자고 하더군요..
하하하..
물론 만나진 않았죠.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았어요..
제발 나오라도 방 잡아 놓고 기다리겠다고 매달리더니..
그래도 나가지 않자 상상도 못했던 온갖 욕이 다 쏟아 지더군요..
그 후에 남남처럼 지내다가도 그 '진지한 관계' 얘기만 꺼내면
언제 어디서든 달려온다는 남자..
하하하...
이런 남자를 정말 사랑했던 제가.. 너무 바보같아요..


사연을 주신 분께는 좀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나는 여자분이 81년생, 그리고 남자분이 82년 생이라는 것에 놀랐다. 81년 생은 닭띠, 82년 생은 개띠.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고 있어......'

웃자고 한 소리고, 매너와 바람기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것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느냐'를 살펴보는 거라 생각한다. 아,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것은 누군가 당신에게 정말 좋은 매너를 보였다고 해도 그게 꼭 당신을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란 거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훈남이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자신에게 다가와 길을 물어보곤, 알려줘서 고맙다고 초콜릿을 하나 준 일을 두고,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신호 아니었을까요? 그때 연락처라도 묻지 않은 게 후회되요. 그 사람이 소심해서 저한테 묻지 못한 걸 수도 있는데..." 라며 병적인 착각의 메일을 보내시는 분이 종종 계셔서 하는 소리다. "저는 한채영 닮았다는 소리 좀 듣고요, 화장 별로 안하면 장진영 닮았다는 소리도 좀 들어요. 어딜 가든 보통 이상 정도는 되는 외모구요. 그냥 저 혼자 착각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그 사람 옆에 다른 사람들도 많았는데, 굳이 저한테까지 와서 말 걸 이유가 없잖아요." 라고 뒤에 더 써주신 것에 대해선,

"그건 니 생각 입니다."

라는 답장을 드리겠다. 전화번호 물었으면, 아주 그냥 내일 결혼할 기세다.




▲ 어제 프린터 A/S 받으러 가서, "어떻게 오셨나요?" 라고 묻길래, "버스 타고요." 라고 답하자 먼저 와 있던 아저씨손님이 커피를 뿜더군요. 사레 들려서 계속 켁켁 대시던데, 이런 개그에는 웃지 마세요. 사레까지 들리다니, 자존심 상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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