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시다. 누구랑 만나는 것이든, 그가 무슨 맹세를 했든, 이쪽의 이해와 헌신에 대해 어떤 감사를 표현하고 이후에 어떻게 갚겠다고 했든, 갈수록 연애가 힘들다면 헤어질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S양의 연애가 힘든 건, S양이 꼭 막장까지 다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접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상대를 괴물로 만드는 맹목적인 이해와 헌신도 문제긴 합니다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그곳이 살 곳이 못 된다는 걸 지상에서 확인한 후에도 지하 1층, 지하 2층, 지하 3층까지 내려가 다 겪어보려 한다는 점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지상만 확인하고도 얼른 돌아 나오는데 말입니다.
남친의 입에서
“널 만나면 좋고 즐겁긴 한데,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난 아직 결혼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결혼은 얼마나 좋아해야 하는 걸까.”
“시험 합격하면 커플 많이 된다던데, 그때 가면 지금도 이런 난 어쩌냐.”
라는 말들이 나오는 걸 경험했다면, 거기서 더 ‘좋게 바뀔 가능성’만 찾고 있을 게 아니라 그만 돌아 나오는 게 맞습니다. 그러고 있는 건, 배불러서 움직이기도 싫다는 사람에게 자꾸 먹을 것을 주며 ‘그래도 소화 다 되면 나랑 걸어갈 거지?’라는 확인을 받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로 헤어질 뻔 한 뒤로, 남친이 잘해주면요? 지금은 달라지려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S양과 제가 생각하는 ‘남친이 잘해준다’란 개념이, 좀 많이 다릅니다. S양은 신청서에 ‘~한 부분에 대해 전 크게 불만은 없었습니다’라고 거듭 적었던데, 전 그걸 10점 만점에 0점으로 본 거고, S양은 5점으로 본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때문에 지금 S양 남친이 ‘잘해준다’는 게 제가 봤을 땐 겨우 3~4점 정도인데, S양은 8점 정도는 되는 거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돌려 말하려다 보니 유치하게 점수 얘기까지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제 여동생이 S양과 같은 처지에 처해 있었다면, 전
“당장 벌이가 없다는 거 이해하며 데이트 비용 8할 내가면서 만나는 건 그럴 수 있다 쳐. 근데 그런 와중에 상대는 자기 공부가 우선이니 데이트 못 해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고, 그러면서 전화통화 하는 것 가지고도 구속하지 말라고 하고, 너한테 외모 지적질하고, 칭찬이나 애정표현하면 너한테 독이 될 수 있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고 있잖아. 거기다가 상대는 너한테는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없다고 하고, 자기 시험 합격하면 새로운 이성들과의 새 관계가 많을 텐데 그땐 어쩌냐는 고민이나 하고 있어.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얜 그냥 적당히 연애하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깝지만, 무딘 네가 여기까지 경험하며 내린 그 결론이, 맞을 거야.”
라는 이야기를 해줬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실 사귀게 된 것도 이쪽에서 옆구리 찔러가며 겨우 승낙받아낸 것이었다는 점, 사귀게 된 후 지금까지 온전히 하루를 할애하는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 한 적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말입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결혼을 생각하는 S양과, ‘취직하면 독립해서, 원룸이라도 내 공간을 가지고 싶어 하는’ 상대 사이엔 큰 벽이 존재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뜻을 가지고 결혼을 추진한다 해도 현실의 벽은 높을 텐데, 그건 둘째치고 상대는 시험 합격하고 나면 ‘공부하느라 못 했던 것들’을 할 생각에 부풀어 있는 상황이니, 그걸 보는 제겐 좀 까마득한 느낌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귀다 보면 그래도 어떻게 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만 들고 있기 보다는,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순간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걷는 길이 같아도 서로 생각하는 목적지가 다를 수 있으니, 상대와 S양이 향하는 목적지가 같은지에 대해서도 꼭 대화해 보셨으면 합니다.
들이대는 새 남자에 대해선, 제 여동생이 S양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면 전
“술 취했을 때만 전화해서 끼 부리는 애는 사실 잘라야지. 그 끼부림이 너무 달달해서 속는 셈 치고 믿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걔가 술 취했을 때와 안 취했을 때의 행동에 차이가 없는지는 꼭 봐야 해. 너 맨날 실수하는 게 이렇게 상대가 발행하는 공수표 다 받아들고는 그 힘으로 혼자 버티는 거였으니까, 사귀게 되더라도 이번엔 좀 ‘상대가 진짜 그러나 안 그러나’를 봐가면서 만나 봐. 사귀게 되었는데 상대가 술 취해서 안 얘기들 언제 그랬냐는 듯 접어놓고는, 이번 주 바쁘다 다음 주도 바쁘다 하는데 거기서 버티고 있으면 허송세월 시즌2 찍게 되는 거야. ‘되는 것 같으면 일단 올인’ 말고,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겪으면서 판단해 맺고 끊자.”
라는 이야기를 해줬을 것 같다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열심히 참아 오래 연애한다고 좋은 건 결코 아닙니다. 전 가끔
-주말 하루 할애해 데이트하기도 어려운 연애.
-맛난 걸 먹고는 내게 맛보여줄 생각도 안 하는 연인.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서로의 생사도 모른 채 지낼 것 같은 관계.
-자기 쓸 돈, 만날 사람, 해야 할 일 뭐 그런 게 연애보다 다 먼저인 상대.
등을 온 몸으로 겪고 있으면서, ‘그래도 곧 우리 500일’ 같은 것에 행복해하는 대원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만 갈래로 흐르는데, 저러면 그냥 앞으로도 쭉 저러는 게 당연한 게 될 확률이 99.82% 이상입니다. S양의 경우도 저런 대원들의 사례에 다리 하나 걸치고 있는 상황이니, 이쯤에서 얼른 그 위험선을 확인하시곤 벗어나셨으면 합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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