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친에게 말로 아무리
“이거 저울질하는 거 절대 아니고 궁금해서 묻는 건데….”
라고 해도, 행동을 봤을 때
-다른 남자와 연애 중이면서, 내게는 가능성을 떠보는 질문을 함.
이라면, 그 속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증명이 되기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그렇게 간을 보는 빈도가 적지 않으며 기간마저 길어진다면, 이쪽의 진심이 어떻든 간에 그건 그냥 ‘사랑 어쩌구’ 하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H양은 제게
“제가 현남친과 헤어지고 전남친을 만나려고 해도, 전남친의 마음이 저와 같지 않다면 전 솔로가 되는 거잖아요.”
라고 하셨는데, 그런 이유로 현재 H양이 간만 보고 있다는 걸 전남친도 절대 모르진 않을 겁니다. 이미 그는 ‘그건 연애 중인 네가 내게 물을 게 아닌 것 같다’는 식으로 말한 적도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그렇게 가면 갈수록 구남친은 더 냉담해지는 것 같고, 이제 H양이 멍석을 깔아도 그가 사양하는 상황이 되니 H양은 더 다급해져서 제게 사연을 주신 걸 텐데, 이렇듯 H양은 절대 손해 보는 일 없이 자신만 안전한 상황을 만들려 한 태도들이 그에게는 ‘H양에 대한 인간적인 실망’으로 전부 치환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두 사람의 재회 가능성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닙니다. 만약 제게 두 사람의 재회를 두고 ‘된다/안 된다’에 돈을 걸라고 하면, 제가 돈을 거는 건 ‘된다’쪽일 겁니다. 둘의 대화를 보면, 아직 둘에겐 추억이나 미련 후회 등이 여전히 남아있으니 말입니다. ‘쉽게 재회가 가능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뿐이지, 지금이라도 H양이 상대에 대해 여전한 호감을 표현하며 잡는다면 잡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재회가 가능하다’는 게, 다시 만나기만 하면 문제없이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H양은 배려와 헌신의 아이콘인 현남친과 연애하고 있는 지금, ‘전남친과 케미가 잘 맞았던 것’에만 초점을 맞춰 생각하고 있지만, 전남친과 연애할 때를 다시 떠올려보면 그에겐 현남친에게 있는 것들이 많이 부족하지 않았습니까?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전남친도 이제 많이 유해지고 착해졌다던데요.”
“재회한다면, 저는 진짜 최선을 다하는 연애를 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재회한다면, 저는 결혼까지 올인하고 싶습니다.”
아주 솔직히 얘기해도 괜찮다면, 전 H양이나 전남친이나 둘 다 ‘깍쟁이’인 타입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카톡대화만 봐도 둘 다 양보하지 않으며, 떠보려는 자와 내보이지 않으려는 자의 철저한 두뇌게임이 볼만할 정도입니다. 전남친은
“자 그럼 이제, 네 패 까 봐.”
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하던데, 저러면 또 H양은 말 돌려가며 방어하지 않았습니까? 당장의 둘의 관계가 이러할 진데 연애를 시작한다고 해서 상대가 갑자기 무릎 꿇은 채 배려와 헌신을 시작할 것 같지도 않고, H양이 ‘최선을 다하며 결혼까지 올인하는 마음으로 만나는 중이다’라는 걸 내세운다 해도 그는 그저
“말은 그렇게 하지만 행동은 그닥 그래 보이지 않는데? 행동으로는 분명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지점이 있는데, 말로만 최선 결혼 올인 운운한다고 다 정당화되는 건가?”
라며 괴리가 느껴지는 지점을 적나라하게 짚을 것 같기도 합니다.
더불어 남친, 남자에 대해 ‘날 케어해 주는 존재여야 함’ 라고 생각하는 H양의 연애관 역시, 재회 후 삐걱거릴 거란 전망에 힘을 보탭니다. 아마 인기도 많고, 대시도 많이 받고, 배려와 헌신을 일방적으로 받는 연애도 해봐서 그런 것이겠지만, 제가 늘 말하듯 그런 120%의 호의엔 유효기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호의에 감사하기보다는 점점 당연하듯 여기는 이쪽의 태도에 상대의 태도 역시 변하게 될 수 있고, 콩깍지가 벗겨진 까닭에 반년에선 일 년 반 정도 후에 완전히 변할 수 있으며, 초반 전력질주 후 점점 현타를 겪다 연애 판타지가 깨져 심드렁해질 수 있습니다.
‘그랬던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다’는 것까지를 H양이 이미 좀 경험했으면 좋았을 텐데, H양은 넉 달이나 여섯 달 정도의 그런 연애를 하다 그저 지겨워하게 된 경험이 있어서, 아직은 ‘받고 더’의 입장에 있습니다. 제가 그런 사례를 좀 아는데, 대표적으로는
-치대 다니는 오빠가 나 쫓아다녔었다.
-난 외국 명문대 나온 애랑 사귀며 공주대접 받은 적 있다.
-포천 사는 애가 나 보려고 맨날 일산까지 출퇴근 도장 찍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77년생이나 81년생, 84년생의 솔로부대원들이 있습니다. 그저 살짝 썸을 타거나 6개월 미만의 연애를 했을 뿐인데, 그 대원들은 그런 경험이 있으니 다음 사람은 ‘그것보다 더(?)’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보입니다. 치대 다니던 오빠 어떻게 되었냐 물어보면,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 애가 중학생이라고 말하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H양에게 겁을 주려거나 안 좋은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라, 가장 풍요로운 황금기를 그렇게 시식코너 돌 듯 ‘받고 더’ 정도의 마음으로만 보내다간 이상하게 꼬일 수 있으며, 품절상품은 늘어나는데 뭐 하나 선택하지 못한 채 다음 코너만 계속 돌게 될 수 있단 얘기를 해주고 싶어서 꺼낸 말입니다.
만약 전남친과 재회한다면, ‘안전하고 완전한 게 보장되면 올인하겠다’는 마음 말고, ‘내 선택이 실패로 드러난다면 실패라는 걸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으로 만나보셨으면 합니다. 보장이 확실하지 않다고 해서 질질 끌며 떠본다면 앞서 말했듯 그게 상대에겐 인간적인 실망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며, 아무리 말로 ‘배려와 사랑’같은 걸 약속받고 공증까지 받는다 해도 갈등의 순간에 상대가 자기합리화하며 이기적으로 나오면 다 필요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무한님은, 제게 이렇게 잘해주고 맞춰주고 헌신하는 현남친이랑 헤어지는 것에는 찬성하시는 거네요?”
통화나 대화도 재미없고, 데이트해도 그냥 남친 비위 맞춰주는 느낌만 들며,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것도 매력 없다고 하는데, 그걸 두고 제가 굳이 나서서 H양을 설득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H양이 제 여동생이라면
“장담하는데, 너 나중에 반드시 한 번은 땅을 치고 후회할 거야. 자존심 때문에 일부러 후회 안 한다고 말은 해도, 그렇게 잘해주며, 착하고, 인성 좋고, 외모 괜찮고, 경제력 좋고, 술담배 안 하고, 온순한 사람과도 만났었다고 두고두고 말하겠지.”
라고 말해주겠지만 말입니다.
이게 꽤 된 사연이라 이미 H양은 전남친과 재회한 후일 가능성이 큰데, 그렇다면 H양이 손해 보지 않는 선택을 하려 늘 사용하는 그 ‘비교’는 이제 그만 하고, 상대라는 사람과 반평생을 같이 해도 되는지를 그를 경험하며 판단하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더불어 H양도 상대를 위해 양보를 하고 희생을 하고 손해를 볼 수 있을 때 상대도 H양에게 그래줄 수 있는 것이지, 손톱만큼도 손해 안 보려는 태도를 유지하며 무작정 ‘케어해 달라’는 걸 구실로 상대에게 바라는 것만 많다면, 그건 그저 이기적인 태도로 보일 뿐이라는 걸 기억하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 나도 누가 오늘 우럭회로 케어해줬으면 좋겠다. 깻잎이랑 마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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