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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고향에 돌아와 대인관계도 바닥난 상황인데, 연애는 어찌….

by 무한 2019. 12. 19.

바다에서 배를 원하는 곳에 대어 두기 위해선, 무거운 닻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을 경우 조류에 의해 배는 계속 바닷물이 흐르는 방향대로 흘러갈 테니 말입니다. 당연한 얘깁니다만, 세워두려면 그렇게 닻을 내리고, 다시 또 출발할 땐 닻을 올려야 합니다.

 

인생에서도 그렇게, 닻을 내리고 올려야 할 시기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저는 합니다. 보금자리로 삼고 있던 곳에서 새로운 곳으로의 물리적 이동이 생겼을 때가 그렇고, 마음 두고 있던 어떤 관계가 끝났을 때가 그러하며, 줄기에서 가지로 갈라진 것처럼 인연의 갈림길을 꽤 지나왔을 때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닻을 내리고 올리는 것이, 마음 여린 사람들에겐 참 힘든 것 같습니다. 겁이 나는 까닭에 닻을 다 올리진 못한 채 닻과 연결된 줄만 조금씩 늘여 움직이기도 하고, 한 번 닻을 올린 후엔 어디에 가든 다시 정박하지 못한 채 금방 또 떠날 사람처럼 그 주위만 맴돌기도 하며, 이번에 닻을 내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냥 모든 게 안정되고 보장되길 바라게 되기도 합니다.

 

여린마음동호회 회장인 저 역시, 마음속엔 닻을 내릴까 말까, 올릴까 말까 했던 고민의 흔적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벗어나고는 싶지만 닻을 올리긴 못내 아쉬워 질질 끌다가 걸려서 고생했던 일이라든지, 아니면 닻을 내렸어야 했는데 우물쭈물하다가 멀리까지 흘러가고 만 일, 뭐 닻과 관련된 현재진행형의 고민들이 여전히 곁에 있을 정도입니다.

 

고향에 돌아와 대인관계도 바닥난 상황인데, 연애는 어찌….

 

연애에 대한 질문에 왜 닻 얘기만 하냐고 하실 수 있는데, 여기서 보기에 Y님께 당장 필요한 건 ‘서울에 있을 때 몇 번 모임에서 본 남자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아니라, ‘아직 올리지 못했거나 내리지 못한 닻 정리하기’인 것 같습니다. 이전 연애를 봐도 그렇고, 현재 상대와의 관계를 봐도 그렇고, 거기다 현재 주변환경 및 대인관계를 봐도, 아주 오래전에 내린 닻을 그대로 둔 채 너무 멀리까지 줄만 길게 이어온 까닭에 안정감도 없고 닻도 제 기능을 못 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일단 제가 권하고 싶은 건,

 

-인연이라는 건 지금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보통 이게 고교시절, 대학시절, 사회초년생 시절, 회사 짬밥도 좀 찼을 시절, 가장 최근 등으로 닻을 내리는 포인트가 형성되기 마련인데, Y님의 경우 고교시절이나 대학시절 정도에서만 닻을 내린 후 그냥 계속 줄만 이어 온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과는 필연적으로 멀어지거나 달라지거나 할 수밖에 없는 것들도 전부 상실이나 변심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홀로 낙오된다거나 잊힌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맺었던 대인관계가 풍화작용을 겪는 건, 누구나 겪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꼬꼬마시절 어울려 놀던 친구들과도 일 때문에, 연애 때문에, 이사 때문에, 또는 관심사가 달라져 이렇다 할 공감대가 없기에 멀어질 수 있고, 나이가 들어 결혼한 후에는 가정 때문에, 육아 때문에 만나기는 더더욱 힘들어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와중에 이십 대 초반에 내린 닻 하나만 두고 그것만을 의지할 경우, 이후에 다가오는 인연들은 모두 번외편으로 여기며 흘려보내게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항해를 하며 일 년에도 몇 번씩 새로운 곳에 닻을 내리는데 말입니다.

 

너무 막 ‘좋은 친구’, ‘정말 괜찮은 사람’, ‘변치 않을 지인’, ‘나에게 100% 호의적인 타인’ 들과의 관계를 기대하거나, 그런 사람들을 알게 되었을 때 닻을 내릴 거라 마음먹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것이며, 겪기 위해서는 일단 어느 정도 마음과 곁을 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Y님의 경우 ‘대인관계에서의 결벽’이라고 할 정도로 세밀하며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계신데, 그걸 만족시키려면 천운과 함께 타이밍, 날씨, 온도, 습도, 말, 표정, 행동 등이 다 맞아 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럴 경우 Y님이 오래전 닻 내린 곳 이외에선 전혀 닻을 못 내린 채 9할 이상을 흘려보낼 수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새 포인트들에 닻을 내려보셨으면 합니다.

 

그다음으로 권하고 싶은 건,

 

-상대와 뭐라도 나눠야 친해진다. 묻고, 듣고, 대화하자.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래전 내린 닻만 가지고 있을 뿐 새로 닻을 안 내렸을 땐, ‘다른 포인트들을 그저 구경만 하는 것’이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더불어 그 과정이 마냥 편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기에 ‘혼자 놀기’에만 골몰하거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거나, 성향이나 상황을 탓하거나, 원래 존재했던 관계들도 허물어지는 것을 보며 자신만의 울타리를 더 높게만 쌓는 일이 벌어질 수 있고 말입니다.

 

이거 언젠가 제가 ‘낚시 가서 질문하기’라는 예를 들어 이야기한 적도 있는 부분인데, 저는 필드에서 만나는 그 꾼들과 종일 수다를 떨 때도 있고, 소 닭 보듯 쳐다만 보다 돌아올 때도 있습니다. 여린마음동호회 회장인 까닭에 누군가와 그렇게 일시적인 관계를 맺더라도 에너지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인데, 여하튼 분명한 건 ‘내가 참여하는 만큼 기회는 늘어나는 것’이라는 겁니다. 필드에서 만난 꾼에게 많이 잡았는지, 뭐 잡았는지, 입질은 좀 있는지를 물어보며 먼저 나섰던 경우, 채비나 미끼를 좀 얻고 교환하거나 고기도 얻어 먹거나 음료수도 나누거나 하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지 않고 입 꾹 닫고 묻는 말에 단답으로만 답하면, 서로를 타인으로 둔 채 철수할 때까지 곁눈질만 몇 번 하게 되는 법이고 말입니다.

 

물론 저런 다가감이 모두에게 통하는 건 아닙니다. 저 역시 어디에 가서는 먼저 물었다가 대답조차 듣지 못한 적 있고, 괜히 말 걸었다가 미끼 좀 빌려달라, 바늘 있냐, 통 좀 같이 쓰자 등의 요청만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렇듯 모두 좋은 일만 생기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도 담글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마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호의적일 것이라든가 마냥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곤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구경만 할 게 아니라 Y님도 적극적으로 묻고, 듣고, 대화해야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상대에게 괜찮은 멘트 몇 개 건네보는 것으로, 또는 먼저라도 고백 한 번 해보는 것으로 다 해결되는 것이라면 저도 참 편하겠습니다. 하지만 현 상황은 Y님이 ‘상대가 있는 경기장’ 필드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벤치에 앉아 있는 것에 더 가깝다 할 수 있으니, 이런 와중에는 소리쳐서 한 번 쳐다보게 한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다는 얘기를 해드리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Y님이 이후에도 필드 안에 들어갈 생각이나 자신이 없다면 더더욱 그렇고 말입니다.

 

그래서 전 꼭 이 관계를 연애로 이어가지 않더라도, 상대와 소통할 수 있고 서로 좋은 마음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당장 어떤 속보가 떴을 때 “그 뉴스 봤어요?”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사이부터 되어보는 겁니다.

 

Y님은

 

“그러고 싶지만, 그와 전에 조금 친한 기색을 보이자 모임에 있는 다른 여자회원들의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했고….”

 

라고도 하셨는데, 남의 눈치 다 보다 보면 내 인생을 남의 입맛대로만 살게 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당장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해도 전혀 관심없이 자기들 술 약속 갈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 눈치 보느라 내 밥그릇도 못 챙기면 나만 손해인 것 아니겠습니까?

 

또, ‘모임 내에서 했던 Y님의 자기소개 때문에 그가 Y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블라블라’ 같은 얘기도 그만 넣어두셨으면 합니다. 그거 막 그렇게 추억과 기억의 0.01mm까지 다 계산하고 재단해서 살면 인생 정말 고달파질 수 있습니다. 남들은 10cm도 너무 짧다며 미터 단위로 사는데, 0.01mm 재고 재다간 출발선에서 3cm도 나아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앞으로 이십몇 년만 지나도 경로당에서 게이트볼 쳐야 할 나이인데, 이것저것 다 겁내고 남들 눈치 보느라 그 시간마저 더 허비하진 말았으면 합니다.

 

간단합니다. 대화하고 싶으면 연락을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싶으면 요청을 해보면 됩니다. 이것도 저 먼 얘기라고 생각하시면서 ‘상대와의 연애’를 꿈꾸시는 건, 호감 가는 남자가 생겼다고 영어 유치원 알아보는 것과 같으니, 시기와 순리에 맞게 차근차근 발을 내딛어 보셨으면 합니다. 좋은 사람과 행복한 관계를 꾸리는 것에 빠르고 늦음은 없으니 그건 걱정하지 마시길 바라며, 그것보다는 좋은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 그와 소통하며 보여주고 알아가는 것에 힘쓰셨으면 합니다. 신청서에 적어주신 이야기들을 상대에게 1/10 정도만 털어놔도 그가 관심을 보이며 조언해주려 할 것이 분명하니 그 이야기부터 해보시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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