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글모음/작가지망생으로살기

해외송금 받으러 간 은행, 직원은 왜 손을 떨었을까?

by 무한 2009. 12. 2.

드디어 그동안 모아뒀던 블로그 광고 수익을 찾으러 가는 날. 블로그로 월 500 버는 사람도 있고, 한달에 천만원 버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그건 나사가 달 충돌실험을 했다는 이야기 같이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고 반년치의 블로그 광고 수익을 모아보니 회사다닐 때의 월급과 비슷한 액수가 되었다.

구글에서 달러로 광고료를 보내주는 까닭에 수표로 받아 추심을 거친 뒤 원화로 바꿔야 했지만, 이번에는 간편한 시스템이 나와 구글에서 은행으로 송금을 해 주면, 내가 신분증과 몇가지 사항만 메모해 가져가 5분 안에 찾을 수 있는 '해외빠른송금'을 받으러 갔다.

여직원둘 - 안녕하세요. oo은행 입니다.

처음 받아보는 환영이었다. 보통 은행에 가면 문 앞에 계신 분이 한 번 인사를 해 주시고, 번호표를 받아 자리에 앉으면 담당직원이 인사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번잡한 일산을 피해 일부러 파주 외곽으로, 그리고 영업마감시간을 30분 남겨두고 찾았더니, 앞쪽에서 입출금등을 담당하는 두 여직원이 모두 일어나 반겨주었다. 은행이 아니라 패스트푸드점에 온  착각이 들었다.

무한 - 달러 송금 좀 받으려구요.

여직원1 - 네, 이쪽으로 오세요

그렇게 칸막이가 쳐진 쪽으로 따라가는데 앞쪽에 아무도 앉아 있질 았았다. 여직원이 말했다.

여직원1 - 임계자어러(@%&$%^!# 식사?

무한 - 네?

여직원1 - 아, 아니요.

무슨 소린가 궁금해 하는 순간, 다른 쪽 여직원이 소리쳤다.

여직원2 - 응 식사 하러 가셨을 거야.

여직원1 - 여기 잠깐만 앉아 계세요.

무한 - 네……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 물음표를 던진 머쓱함이 몰려왔다. 손님도 나 하나 밖에 없어서 고요한 은행에, 방금 내 뻘쭘한 행동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차별화된 수익 보장, 이라는 문구만 고개 숙여 읽고 있는데 남자직원이 들어와 맞은편에 다급히 앉았다.

남직원 -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무한 - 달러 송금 좀 받으려구요.


난 그가 방금 해장국이나 김치찌개같은 고춧가루가 다량 함유된 식사를 하고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치는 하고 온 듯 치약 냄새가 났지만 와이셔츠 카라 부분에 국물이 말라붙어 고춧가루 화석처럼 번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매운 음식을 먹었는지 이마에 땀도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남직원 - 보내시는 거죠?

무한 - 아뇨, 받는 거에요.

남직원 - 아… MTCN 번호 아세요?

무한 - 네. 적어왔어요.

남직원 - 자, 그럼… 이거 하나 적어주시구요.


신상정보와 송금받을 때 필요한 서류였다. 작성을 마친 후 신분증도 필요할 것 같아 지갑에서 빼 함께 건네주었다.

남직원 - 구글에서 보내는 거네요?

무한 - 네. 구글 애드센스 수익이에요.

남직원 - 애드센스요? 구체적으로 어떤…?


이때부터 낌새가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신분증과 서류만 작성하면 5분 내로 받아서 올 수 있다는데, 앞에 앉은 이 직원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보였다. 종종 이런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은행 내의 짬이 찬 직원에게 물어 해결했다는 글이 떠올랐다.

무한 - 애드센스라고,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에 광고를 집어 넣어서 방문자가 클릭하면 그 수익을 광고계정이 등록된 사람에게 얼마씩 제공해 주는 서비스가 있어요. 거기에 등록해서 받은 수익을 구글이 송금해주고, 그걸 찾으러 온거예요.

남직원 - 아… 구글을 광고해주고 받으신 거라구요?


무한 - 아뇨. 구글이 광고주를 모집하고 그 광고들을 모아서 계약된 커뮤니티나 블로그에 노출시켜요. 그리고 그 노출된 광고를 방문자가 클릭하면, 클릭으로 발생한 수익을 등록된 커뮤니티나 블로그에 나눠 주는 거예요.

남직원 - 그럼, 사업자세요?

무한 - 아뇨. 사업자는 아니고, 개인이에요.

남직원 - ……


이때부터 남직원의 손이 조금씩 떨렸다. 내가 설명을 했지만, 못 알아 들은게 분명했다. 작은 책자를 꺼내더니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기도 하고, 볼펜으로 내용을 훑기도 하며 열심히 뭔가 알아보고 있는 듯 했다.

무한 - 뭐 잘못 되었나요?

남직원 - 아, 아뇨. 왜냐면, 이게 사유를 적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사유가 분명해야 해요. 근데 지금 고객님은 광고로 돈을 받으시는 건데, 이게 좀… 근데, 사업자는 아니세요?

무한 - 네. 개인이에요.

남직원의 이마에 맺혀있던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세번째로 물었다.

남직원 - 사업자는 아니신데, 광고로 돈을 받으시는 거죠?

무한 - 네.

남직원 - 잠시만요.

그의 떨리는 손이 전화기를 향했다. 혹시 내가 비니(털모자)를 쓰고 가서 면도도 안한 채 달러를 받으러 왔다니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그는 수화기 너머의 수신음을 들으며 시선을 먼 곳으로 두고 있다가 상대가 전화를 받자 말을 더듬으며 통화를 시작했다.

남직원 - 여,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교수님, 00지점 임00입니다.

'응? 교수님?'

남직원 - 아, 여쭤볼게 있어서요. 송금받으러 온 고객님이 계신데, 광고 수익이라시는데, 네네, 아뇨, 그런건 아니고 구글에서 광고하시나봐요.

'구글에서 광고를 하는게 아니라 애드센스 라니까……'

남직원 - 아뇨, 사업자는 아니구요. 네네, 개인이신데 광고를 하셨나봐요.

'아…… 답답해. 그런게 아니라니까……'


수화기를 잠시 멀리 떨어뜨린 남직원이 다시 물어왔다.

남직원 - 구글하고의 계약서나, 얼마 얼마 이렇게 나와있는 서류가 있나요?

무한 - 계약서는 없고, 수익내역이 나와 있는 관리자 페이지는 있어요.

남직원 - 출력도 가능한 건가요?

무한 - 네.

그리곤 다시 통화를 이어갔다.

남직원 - 네, 그건 가능 할 것 같아요. 네네, 개인이시구요, 그건, 네, 출력도 가능하시구요. 네, 알겠, 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별 일 없으시죠?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네, 들어가세요.

젤을 발라 한껏 힘을 준 그의 머리카락도 떨리고 있었다. 요즘 뭐가 까다로워 져서 확실하게 하려는 것 뿐이라는 설명을 늘어놓으며 볼펜을 쥔 그의 손이 더 떨리고 있었다. 스스로도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주먹을 쥐곤 가슴으로 누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남직원 - 현금으로 다 찾으실 건가요?

무한 - 네.

남직원 - 아, 그럼, 음, 잠시만요.

통화를 마쳤지만 여전히 갈피를 못잡고 있는 직원이 잠시 자리를 뜬 사이 다른 블로거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벌써 30분을 훌쩍 넘겨 4시가 넘었고, 은행의 출입문엔 이미 셔터가 내려와 있었다. 악랄가츠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한 - 님 하이

악랄가츠 - 와우. 무슨일이셈?

무한 - 아, 놔, 여기 웨스턴 유니온 받으러 왔는데, 사유 뭘로 적어야 함?

악랄가츠 - 사유? 그냥 신분증이랑 그, 나와 있는 거만 적어가면 끝 아님?

무한 - 나도 그렇게 아는데, 여기 직원이 뉴비라, 개인사업자 찾고 난리 났음.

악랄가츠 - ㅋㅋㅋㅋ 다른 은행 고고씽.

무한 - 나 지금 여기 30분 있었음 ㄳ 직원은 바람과 함께 사라짐 ㄳ

악랄가츠 - ㅋㅋㅋㅋㅋ 버리셈

무한 - 암튼 오늘 꼭 찾아갈거임. 숙오.


잠시 후 서류를 들고 돌아 온 직원은 누구에게 뭘 물어보고 왔는지 자신감에 찬 표정이었다. 이마의 땀도 훔쳐내고 온 모습으로 보아 세수라도 한 듯 했다. 그의 은행생활에 괜한 시련을 준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남직원 - 저희 은행이랑 거래는 처음 이시죠?

무한 - 네

남직원 - 이거 작성해 주셔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도 거래가 가능하거든요.


들어본 적 없는 서류었지만. 열심히 이름과 사인을 반복해서 넣었다. 뭔가 일이 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그는 아까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손도 떨고 있지 않았다. 그때, 그의 뒷자리에 앉아있던 남자의 상사로 보이는 사람이 물음을 던져왔다.

상사 - 임계장, 백만원 짜리 있어?

역시 은행원들이라 돈 거래도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만원이 있냐고 물어보다니. 얼마 전 뉴스에서 은행원들의 월급이 평균 500만원 정도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십만원도 아니고 백만원이라니, 은행원이 안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직원 - 아뇨, 저 돈 없는데요.

상사 - 아니, 서랍에 백만원 짜리 있냐고.

남직원 - 아, 있어요. 몇 개나 드릴까요?

상사 - 됐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직원들이 풋, 하고 뿜는 소리가 들렸다.

'이 남자…… 감싸주고 싶다……'

어깨를 다독여 주고 싶었다. 나도 방금 돈 빌리려고 물어 본 줄 알았다고, 세상을 살다보면 남들의 말귀를 정확히 다 알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괜찮다고, 세상은 가끔 우리를 속이기도 하지만, 그리도 인생은 아름답고 삶은 살아볼 만 한거라고, 마음 한 켠이 찡해졌다.

다시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남자 오른손 옆에 놔둔 인주가 흘러 책상 위로 떨어졌는데 그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마우스를 움직여대고 있었다. 순식간에 남자의 오른손과 책상은 인주로 범벅이 되었다. 찾은 돈을 통장에 넣어두겠다는 말을 하자 그는 서류를 또 한 뭉치 들고 왔는데, 그 서류에도 온통 인주가 묻어 있었다. 통장을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그 인주는 키보드에, 새로 만들 내 통장에, 현금카드에, 영수증에 모두 묻어 났다.

잔고가 없어도 된다면 외환통장도 하나 만들어 두고 싶었지만, 인주로 범벅이 된 거의 손과 책상, 그리고 키보드를 보니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 그래도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혹시 환율 등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이야기를 꺼냈다.

무한 - 아, 근데 혹시 달러를 이렇게 원화로 찾지 않고 외화 통장에 모아 둔다면 그게 더 나을까요? 아니면 원화로 찾아서 적금을 들어 두는 것이 나을까요?

남직원 - 글쎄요, 그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뭐야…… 이런 걸 말 안해주면 무슨 말을 해주겠다는 거야……'

무한 - 음, 그럼 환율은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전망하시는지?

남직원 - 그건, 지금은 애매한 시기라 오른다거나 내린다고 딱히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1500원 할 때에는 내려간다고 말씀드릴 수 있고, 900원 할 때에는 오른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는데, 지금은 거의 평균적이라, 그냥, 평균이라고 보시면 되요.

무한 - 그렇군요. 그럼,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어떻게 예상하세요? 한 5년 정도 기간을 두고 생각한다면?

남직원 -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지요. 원래 환율이나 주가는 예측 하는게 아니예요.

무한 - ……


'이 남자를 더 곤란에 빠뜨려선 안돼……'

물어보고 싶은 게 더 있었지만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엔화는 어떤가요?" 라고 물으면, "글쎄요,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겠죠." 라고 답하거나, "두바이 사태와 관련해서 환율은 어떻게 될까요?" 라고 물으면, "심리가 위축되면 영향이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금만큼 유지가 되겠죠." 라고 할 것 같았다. 그냥 묵묵히 그가 통장을 만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전히 인주 투성이었다.

남직원 - 자, 다 됐습니다. 인터넷뱅킹이랑 폰뱅킹은 등록해주셔야 하구요.

무한 - 네, 감사합니다.

남직원 - 아, 인터넷뱅킹은 비밀번호에 영문자가 하나라도 포함이 되어야 해요.

무한 - 네, 감사합니다.

남직원 - 네, 안녕히 가세요.

무한 - 제 신분증은 가져가도 될까요?

남직원 - 아, 죄송합니다. 여기있습니다.

무한 - 네, 수고하세요.

남직원 -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하고 나오는 내 뒤로, 그 남자가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 무한의 이야기를 더 보고 싶으신 분들은 손가락 버튼을 눌러주세요. 추천은 무료!





<관련글>

국군병원에서 사랑을 나누던 커플의 최후
파출소에 간 형의 진술서, 경찰을 사로잡다
가족같이 지내실분, 이라는 구인광고에 낚이다
내 차를 털어간 꼬꼬마에게 보내는 글
방금 경험한 네이트온 메신저 사기


<추천글>

여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남자의 행동 5가지
그와 헤어진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
그녀와의 만남, 실패하지 않는 대화의 기술
소개팅 이후, 마음에 드는 상대 공략방법
연락없는 남자에 대처하는 확실한 방법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