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할머니댁에 갔을 때 할머니께서 그러셨다.
평안남도가 고향이신 할머니께선 '벌레'를 '벌걱지'라고 하신 거였고, 여기서 그 '벌레'는 '사슴벌레'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전에 우리 집에 오셨다가 사슴벌레를 키우는 모습을 보시곤 일종의 '컬쳐쇼크'를 받으셨던 것이다.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겐 이상하게 보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내 주변엔 "나이트 갈래, 밤낚시 갈래?"라는 물음에 당연히 "밤낚시"라고 답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나 역시 밤낚시가 우선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므로, 그간 한 번도 사슴벌레를 키우거나 물고기를 키우는 일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러니까, 일기는 일기장에 써야 하는데 2부를 시작할 마땅한 말이 없어서 잠깐 일기를 적어 봤다. 아무튼 내 책상 위 물탱크에 살다간 녀석들, 그리고 물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 그 2부를 시작해 보자. 아직 1부를 안 보신 분들은 [여기]를 클릭해서 먼저 읽으시길 권한다.
▲ 소심한 가재씨와 억척스런 암컷 줄새우.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며 싸우는 모습이다.
가재를 잡는 데에는 친구들의 추억이 총동원 되었다. 어렸을 적 가재를 잡아 본 친구들의 증언을 토대로 경기도 일산과 파주의 산들을 뒤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돌만 들추면 나왔다던 가재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약수터를 신식으로 고친 까닭에 예전과 달리 물이 지속적으로 흐르지 않아 물줄기가 말라버렸거나, 수로가 콘크리트로 교체된 까닭에 가재가 살 수 없게 된 곳이 많았다.
그렇게 열심히 여러 산들을 돌아다닌 끝에 파주의 S산에서 가재를 만날 수 있었다. 돌을 들추는 순간 푸라라라락, 하며 빠르게 뒷걸음질을 치던 가재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이런 채집여행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나를 알아주는 대학 오산대학이다.(응?) 채집여행 중 나뭇가지에 온 몸이 긁히는 건 예사고, 날벌레가 눈과 입과 코로 돌진하며, 뱀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려야 하고, 모기와 일촌을 맺어야 한다.
아무튼 저 사진 속의 소심한 가재씨는, 이론대로라면 앞에 있는 줄새우를 '먹이'로 대해야 하지만 여린마음동호회 회원인 까닭에 숨거나 도망다니기 바빴다. 자유를 꿈꾸고 낭만을 즐길 줄 알던 그는, 어항 물갈이 후 뚜껑 덮는 것을 깜빡했던 어느 날, 어항을 탈출했다. 그리곤 현관문 구석에서 싸늘히 식은 채로 발견됐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지, 현관문을 열려다가 변을 당한 듯 보였다. 손잡이를 돌려야 문이 열린다는 걸 미리 말해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
▲ 채집여행 시 쉽게 만날 수 있는 동사리. 사진 속의 녀석은 '얼룩동사리'다.
가장 불쌍한 민물고기가 뭐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동사리'라고 대답하겠다. 지방마다 불리는 이름이 가지각색인데,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멍텅구리'라고 불린다. 다른 이름들도 '먹통이', '멍챙이', '멍청이', '도둑놈', '바보고기', '뿌쭈구리', '후구락지' 따위로 좋은 뜻을 담고 있진 않다.
동사리를 처음 만난 것은 파주의 한 저수지에서 였다. 친구와 낚시를 갔는데, 준비해간 미끼를 다 쓸 때까지 붕어 외에는 별반 잡은 것이 없었다. 밤은 깊었고, 미끼는 없고, 주변의 상점이 열 때 까지는 한참 남은 까닭에 빈 바늘만 담가놓곤 별을 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심심하다며 손전등으로 저수지를 비추며 놀던 친구가 소리쳤다.
물가에서 손전등을 비추며 빈 바늘을 움직이던 친구의 낚싯대에 고기가 걸려 올라왔다. 그 고기가 바로 동사리였다. 꽤 많은 녀석들이 저수지 바닥에 배를 깔고 있었는데, 모든 녀석이 낚싯바늘을 흔들면 덥석, 물었다. 잡은 녀석을 놔주고 다시 그 앞에서 바늘을 흔들어도 또 물었다. 한 마리를 낚는데 걸리는 시간이 5초를 넘지 않았다. 당시 민물고기 이름을 잘 몰랐기에, 친구와 나는 그 고기를 '바보고기'라 불렀다. 나중에 알아보니, 아마 이런 일을 미리 겪은 분들이 있었는지 동사리를 일부 지역에선 이미 '바보고기'라고 칭하고 있었다.
▲ 뭐라 할 말이 없는, 새코미꾸리
뭔가를 키우며 커뮤니티 활동을 해 본 사람이라면, 커뮤니티에선 그 분야에 대한 '동정(同定)'이 매우 중요한 일임을 알 것이다. 물고기와 관련된 커뮤니티에서도 역시 그 '동정'이 그 사람의 레벨(응?)을 말해주는 큰 요소로 작용된다. 특히 '미꾸라지'와 '미꾸리'의 구분은 논란의 단골이다.
동정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인터넷에서 본 "이 새가 무슨 새인가요?"라는 게시물이 생각난다. 어느 분이 집 앞에 자주 찾아오는 새라며 한 새 사진을 찍어 한 커뮤니티에 올렸고, 그 새 이름을 묻는 게시물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화질이 구지(나쁘다)다고 이야기한 댓글에 수많은 '아는 척 쟁이'들이 달려든 것이다. 아무튼 그 화질구지 논란은 하나의 댓글로 마무리 된다.
▲ 낚시로 잡은 까닭에 입에 상처가 난 민물두줄망둑
▲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 꺽지.
꺽지회가 바닷고기의 회보다 훨씬 맛있다고 하길래, 친구와 함께 회를 뜨려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반두(고기잡는 그물)와 가위를 들고 물가로 향했다. 이미 어느 돌을 들춰야 꺽지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잡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친구 둘 다 여린마음동호회 소속이었고, 서로에게 가위질을 미루다 결국 꺽지를 그냥 돌려보냈다. 그런 까닭에 꺽지회 맛은 모르겠고, 기억에 남는 것은 꺽지가 유난히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에 민감하다는 거다. 눈앞에 뭔가가 나타나면 등지느러미를 세우고 입을 벌린다. 앞에 있는 대상이 무엇이든 목숨 걸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꺽지의 반만큼이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 도감을 한참이나 뒤적이게 했던 갈문망둑.
'밀어'인 줄 알고 뛰는 가슴으로 데려왔지만, 아무래도 생김새가 '밀어'와 다른 것 같아 열심히 찾아보니 '갈문망둑'이었던 녀석. 갈문망둑도 착했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 당시 '쏘느님'이라고 부르던 쏘가리.
물생활이 막바지로 접어들 때쯤엔 육식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장 키우고 싶었던 '가물치'를 구할 수 없었을 때, 친구를 통해 "일산에 쏘가리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삼고초려 끝에 물고기 관련 커뮤니티에서 그와 채팅을 할 수 있었다.
그분과의 대화는 대략 위와 같은 루트로 시작해, 늘 그분의 '지 얘기'를 늘어놓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나중엔 그분이 13살 이라는 걸 알았지만, 나와 친구는 혹 그분의 기분이 상해 쏘가리 서식지를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열심히 존대를 했다. 물론, 우리끼리는 녀석을 '쏘가리'라고 불렀다.
시간이 흘러도, 나중에 데려가겠다는 채집여행은 점점 미뤄지고, 녀석이 키우고 있다는 쏘가리의 사진도 볼 수 없었던 까닭에 결국 우리는 녀석에게 '사기꾼' 판정을 내리려고 했다. 바로 그 즈음, 녀석에게 채집여행을 같이 가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친구는 밑져야 본전이라며 가자고 했지만, 난 녀석이 아무 곳이나 지정해서 우리를 데려간 후, "어? 예전엔 분명히 있었는데 지금은 없네." 따위의 이야기를 할 거라 생각해 가지 않았다.
친구와 녀석, 그리고 녀석의 아버지 세 명이 채집여행을 갔고, 그들은 쏘가리 치어를 다섯 마리나 데려왔다. 물생활 중 가장 놀라운 반전으로 기억되는 일이다. 아무튼, 다섯 마리의 쏘가리 치어를 어항에 기르자니 당장 '먹이'가 문제였다. 생먹이를 먹는 녀석이지만, 냉짱(냉동 장구벌레)으로 사료순치를 성공한 사례도 있다는 말에 시도해봤다. 그러나 먹지 않았다.
한 물고기 관련 커뮤니티에서 '전문가'로 통하는 어느 분이 "쏘가리는 동족포식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했기에 서로 잡아먹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배가 고프니 큰 놈이 자기보다 약간 작은 녀석을 꿀꺽, 삼켜버렸다. 작은 물고기들을 넣기 전까지, 사진의 녀석이 나머지 네 마리를 모두 먹었다.
▲ 내가 만난 가장 난폭한 포식자, 베스
생먹이를 구할 수 없어 쏘가리는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고(응?), 어항엔 쓸쓸함만 감돌았다. 그 즈음, 낚시를 다녀온 친구가 손가락만한 베스와 참붕어 몇 마리를 줬다. 말로만 들었던 베스는, 실제로 보니 생김새가 바닷고기 같았다.
쏘가리와 베스의 사냥하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왜 베스가 가는 곳 마다 민물고기들을 '도장깨기' 하는 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쏘가리는 매복해서 사냥감을 지켜보다가 기회를 노리고 한 번에 달려 나간다. 만약, 그 공격이 실패하면 다시 자리로 돌아와 매복해 기회를 노린다. 베스는 "나 님 안 먹음."이라고 얘기하듯 어정쩡한 모습으로 있다가 기회가 오면 빛의 속도로 먹잇감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그 공격이 실패해도 지구 끝까지 쫓아갈 기세로 계속해서 먹잇감을 쫓는다. 그렇게 결국, 베스는 먹고자 한 먹잇감을 먹고 마는 것이다.
어항에 베스만 남게 되었을 때, 난 민물고기를 먹이로 줄 수 없기에 베스를 안락사 하기로 결정했다. 어항에 소금을 집어넣었다. 어? 베스가 살아 있다. 어항에 라면 스프를 집어넣었다. 어? 베스가 살아 있다. 어항에 설탕을 집어넣었다. 어? 베스가 살아 있다. 어항에 잉크를 풀었다. 어? 베스가 살아 있다. 이후 진행된 이야기는 너무 잔혹한 까닭에 글로 옮기지 않겠다. 베스는 그렇게 4일을 버티다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
▲ 군대 가기 직전까지 키웠던 버붕이(버들붕어).
▲ 올해 새롭게 시작한 베타사육. 수컷이 암컷의 몸을 감싼 짝짓기 모습이다.
버들붕어를 잊을 수 없어 같은 등목어과인 '베타'를 기르기 시작했다. 알을 붙이기 위해 필요한 부상수초와 배포장지도 띄우고, 암수의 얼굴을 익히는 과정 등도 열심히 자료를 참고해 실행했다. 그리고 녀석들은 그 노력에 보답하듯 5일 만에 짝짓기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합사 시 수컷의 공격을 너무 많이 받은 암컷은 분리한 이후 며칠을 먹지 않고 버티다 별이 되었고, 수컷은 하는 일 없이 먹이만 받아먹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별이 되었다. 혹시 수면에 알을 붙여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로 몇 주를 기다려 봤지만, 기다리던 치어 대신 어항엔 이끼가 찾아왔다. 의욕저하. 어항은 아무 생물도 살지 않는 빙하기를 맞았다.
하지만 몇 달 후, 어항은 다시 활기를 띄게 되는데,
▲ 깜찍한 오렌지 클라키. 오렌지색의 가재들이다.
며칠 전 오렌지 클라키 치가재 다섯 마리가 어항을 찾아왔다.
라는 이야기로 회의를 하는 모습이다. 자, 그럼 다음시간 부터는 오렌지 클라키 오남매의 좌충우돌 물탱크 생활을 함께 들여다보기로 하며, 과거의 물생활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친다. 다음 이야기를 부르는 추천버튼들을 잊지 말고 누르시기 바라며!
▲ 다 적어 놓고 보니 가물치 얘기를 안 적었다. 가물치 얘기는 나중에 보너스로.
<연관글>
물고기를 너무 키우고 싶었던 한 남자
우리 동네에는 어떤 물고기가 살까?
사슴벌레 직거래, 일단 만나자는 고등학생
초딩에게 배운 사슴벌레 짝짓기 시키기
사슴벌레 잡으러가자는 남자, 알고보니
<추천글>
회사밥을 먹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같이 지내실분, 이라는 구인광고에 낚이다
내 차를 털어간 꼬꼬마에게 보내는 글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
"집에 벌걱지 아직도 키와?"
평안남도가 고향이신 할머니께선 '벌레'를 '벌걱지'라고 하신 거였고, 여기서 그 '벌레'는 '사슴벌레'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전에 우리 집에 오셨다가 사슴벌레를 키우는 모습을 보시곤 일종의 '컬쳐쇼크'를 받으셨던 것이다.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겐 이상하게 보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내 주변엔 "나이트 갈래, 밤낚시 갈래?"라는 물음에 당연히 "밤낚시"라고 답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나 역시 밤낚시가 우선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므로, 그간 한 번도 사슴벌레를 키우거나 물고기를 키우는 일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러니까, 일기는 일기장에 써야 하는데 2부를 시작할 마땅한 말이 없어서 잠깐 일기를 적어 봤다. 아무튼 내 책상 위 물탱크에 살다간 녀석들, 그리고 물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 그 2부를 시작해 보자. 아직 1부를 안 보신 분들은 [여기]를 클릭해서 먼저 읽으시길 권한다.
▲ 소심한 가재씨와 억척스런 암컷 줄새우.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며 싸우는 모습이다.
가재를 잡는 데에는 친구들의 추억이 총동원 되었다. 어렸을 적 가재를 잡아 본 친구들의 증언을 토대로 경기도 일산과 파주의 산들을 뒤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돌만 들추면 나왔다던 가재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약수터를 신식으로 고친 까닭에 예전과 달리 물이 지속적으로 흐르지 않아 물줄기가 말라버렸거나, 수로가 콘크리트로 교체된 까닭에 가재가 살 수 없게 된 곳이 많았다.
그렇게 열심히 여러 산들을 돌아다닌 끝에 파주의 S산에서 가재를 만날 수 있었다. 돌을 들추는 순간 푸라라라락, 하며 빠르게 뒷걸음질을 치던 가재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이런 채집여행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나를 알아주는 대학 오산대학이다.(응?) 채집여행 중 나뭇가지에 온 몸이 긁히는 건 예사고, 날벌레가 눈과 입과 코로 돌진하며, 뱀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려야 하고, 모기와 일촌을 맺어야 한다.
아무튼 저 사진 속의 소심한 가재씨는, 이론대로라면 앞에 있는 줄새우를 '먹이'로 대해야 하지만 여린마음동호회 회원인 까닭에 숨거나 도망다니기 바빴다. 자유를 꿈꾸고 낭만을 즐길 줄 알던 그는, 어항 물갈이 후 뚜껑 덮는 것을 깜빡했던 어느 날, 어항을 탈출했다. 그리곤 현관문 구석에서 싸늘히 식은 채로 발견됐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지, 현관문을 열려다가 변을 당한 듯 보였다. 손잡이를 돌려야 문이 열린다는 걸 미리 말해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
▲ 채집여행 시 쉽게 만날 수 있는 동사리. 사진 속의 녀석은 '얼룩동사리'다.
가장 불쌍한 민물고기가 뭐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동사리'라고 대답하겠다. 지방마다 불리는 이름이 가지각색인데,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멍텅구리'라고 불린다. 다른 이름들도 '먹통이', '멍챙이', '멍청이', '도둑놈', '바보고기', '뿌쭈구리', '후구락지' 따위로 좋은 뜻을 담고 있진 않다.
동사리를 처음 만난 것은 파주의 한 저수지에서 였다. 친구와 낚시를 갔는데, 준비해간 미끼를 다 쓸 때까지 붕어 외에는 별반 잡은 것이 없었다. 밤은 깊었고, 미끼는 없고, 주변의 상점이 열 때 까지는 한참 남은 까닭에 빈 바늘만 담가놓곤 별을 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심심하다며 손전등으로 저수지를 비추며 놀던 친구가 소리쳤다.
"어? 나 고기 잡았다?!"
물가에서 손전등을 비추며 빈 바늘을 움직이던 친구의 낚싯대에 고기가 걸려 올라왔다. 그 고기가 바로 동사리였다. 꽤 많은 녀석들이 저수지 바닥에 배를 깔고 있었는데, 모든 녀석이 낚싯바늘을 흔들면 덥석, 물었다. 잡은 녀석을 놔주고 다시 그 앞에서 바늘을 흔들어도 또 물었다. 한 마리를 낚는데 걸리는 시간이 5초를 넘지 않았다. 당시 민물고기 이름을 잘 몰랐기에, 친구와 나는 그 고기를 '바보고기'라 불렀다. 나중에 알아보니, 아마 이런 일을 미리 겪은 분들이 있었는지 동사리를 일부 지역에선 이미 '바보고기'라고 칭하고 있었다.
▲ 뭐라 할 말이 없는, 새코미꾸리
뭔가를 키우며 커뮤니티 활동을 해 본 사람이라면, 커뮤니티에선 그 분야에 대한 '동정(同定)'이 매우 중요한 일임을 알 것이다. 물고기와 관련된 커뮤니티에서도 역시 그 '동정'이 그 사람의 레벨(응?)을 말해주는 큰 요소로 작용된다. 특히 '미꾸라지'와 '미꾸리'의 구분은 논란의 단골이다.
동정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인터넷에서 본 "이 새가 무슨 새인가요?"라는 게시물이 생각난다. 어느 분이 집 앞에 자주 찾아오는 새라며 한 새 사진을 찍어 한 커뮤니티에 올렸고, 그 새 이름을 묻는 게시물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 화질구지네요.
그리고 그 밑으로는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 선명하지 않아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화질구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 화질구지군요. 보기 쉽지 않은 새인데, 어디서 찍으신 건가요?
- 제가 어렸을 적 키우던 새 군요. 화질구지가 틀림없습니다.
- 화질구지 저희 동네에도 많아요.
- 화질구지군요. 보기 쉽지 않은 새인데, 어디서 찍으신 건가요?
- 제가 어렸을 적 키우던 새 군요. 화질구지가 틀림없습니다.
- 화질구지 저희 동네에도 많아요.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화질이 구지(나쁘다)다고 이야기한 댓글에 수많은 '아는 척 쟁이'들이 달려든 것이다. 아무튼 그 화질구지 논란은 하나의 댓글로 마무리 된다.
- 화질구지의 엄마는 해상도고, 아빠는 픽셀입니다.
▲ 낚시로 잡은 까닭에 입에 상처가 난 민물두줄망둑
상처의 악화로 인해 위 사진의 민물두줄망둑은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곳에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위의 녀석은 바닥이 개펄로 되어 있는 민물에서 잡았다. 녀석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인데 괜히 데려왔다는 생각을 두고두고 했다. 어쨋든, 민물두줄망둑은 착했다.(응?)
▲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 꺽지.
꺽지회가 바닷고기의 회보다 훨씬 맛있다고 하길래, 친구와 함께 회를 뜨려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반두(고기잡는 그물)와 가위를 들고 물가로 향했다. 이미 어느 돌을 들춰야 꺽지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잡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친구 둘 다 여린마음동호회 소속이었고, 서로에게 가위질을 미루다 결국 꺽지를 그냥 돌려보냈다. 그런 까닭에 꺽지회 맛은 모르겠고, 기억에 남는 것은 꺽지가 유난히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에 민감하다는 거다. 눈앞에 뭔가가 나타나면 등지느러미를 세우고 입을 벌린다. 앞에 있는 대상이 무엇이든 목숨 걸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꺽지의 반만큼이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 도감을 한참이나 뒤적이게 했던 갈문망둑.
'밀어'인 줄 알고 뛰는 가슴으로 데려왔지만, 아무래도 생김새가 '밀어'와 다른 것 같아 열심히 찾아보니 '갈문망둑'이었던 녀석. 갈문망둑도 착했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 당시 '쏘느님'이라고 부르던 쏘가리.
물생활이 막바지로 접어들 때쯤엔 육식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장 키우고 싶었던 '가물치'를 구할 수 없었을 때, 친구를 통해 "일산에 쏘가리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삼고초려 끝에 물고기 관련 커뮤니티에서 그와 채팅을 할 수 있었다.
무한 - 저, 혹시 쏘가리를 키우신다는 그 분?
상대 - ㅇㅇ
무한 - 쏘가리 치어도 있으신가요?
상대 - 치어는 없음.
무한 - 아... 그렇군요. 치어가 필요했는데.
상대 - 치어 잡을 수 있는데 앎.
무한 - 헉 어딘가요?
상대 - 근데 치어는 잡으면 안돼서 갈쳐줄 수 없음.
무한 - ......
상대 - 우리 집엔 황쏘가리도 있음.
무한 - 황쏘가리는 천연기념물 아닌가요?
상대 - 그건 잘 모름. 암튼 황쏘가리 지금 금붕어 사냥중임.
무한 - 혹시 황쏘가리 사진 있으면 좀 보여주세요.
상대 - 디카 없음. (당시엔 사진 찍을 수 있는 핸드폰 출시 전이었다.)
무한 - 나중에 채집가실 때 저도 좀 데려가 주세요.
상대 - ㅇㅇ. 근데 님 그거 앎?
상대 - ㅇㅇ
무한 - 쏘가리 치어도 있으신가요?
상대 - 치어는 없음.
무한 - 아... 그렇군요. 치어가 필요했는데.
상대 - 치어 잡을 수 있는데 앎.
무한 - 헉 어딘가요?
상대 - 근데 치어는 잡으면 안돼서 갈쳐줄 수 없음.
무한 - ......
상대 - 우리 집엔 황쏘가리도 있음.
무한 - 황쏘가리는 천연기념물 아닌가요?
상대 - 그건 잘 모름. 암튼 황쏘가리 지금 금붕어 사냥중임.
무한 - 혹시 황쏘가리 사진 있으면 좀 보여주세요.
상대 - 디카 없음. (당시엔 사진 찍을 수 있는 핸드폰 출시 전이었다.)
무한 - 나중에 채집가실 때 저도 좀 데려가 주세요.
상대 - ㅇㅇ. 근데 님 그거 앎?
그분과의 대화는 대략 위와 같은 루트로 시작해, 늘 그분의 '지 얘기'를 늘어놓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나중엔 그분이 13살 이라는 걸 알았지만, 나와 친구는 혹 그분의 기분이 상해 쏘가리 서식지를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열심히 존대를 했다. 물론, 우리끼리는 녀석을 '쏘가리'라고 불렀다.
시간이 흘러도, 나중에 데려가겠다는 채집여행은 점점 미뤄지고, 녀석이 키우고 있다는 쏘가리의 사진도 볼 수 없었던 까닭에 결국 우리는 녀석에게 '사기꾼' 판정을 내리려고 했다. 바로 그 즈음, 녀석에게 채집여행을 같이 가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친구는 밑져야 본전이라며 가자고 했지만, 난 녀석이 아무 곳이나 지정해서 우리를 데려간 후, "어? 예전엔 분명히 있었는데 지금은 없네." 따위의 이야기를 할 거라 생각해 가지 않았다.
친구와 녀석, 그리고 녀석의 아버지 세 명이 채집여행을 갔고, 그들은 쏘가리 치어를 다섯 마리나 데려왔다. 물생활 중 가장 놀라운 반전으로 기억되는 일이다. 아무튼, 다섯 마리의 쏘가리 치어를 어항에 기르자니 당장 '먹이'가 문제였다. 생먹이를 먹는 녀석이지만, 냉짱(냉동 장구벌레)으로 사료순치를 성공한 사례도 있다는 말에 시도해봤다. 그러나 먹지 않았다.
한 물고기 관련 커뮤니티에서 '전문가'로 통하는 어느 분이 "쏘가리는 동족포식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했기에 서로 잡아먹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배가 고프니 큰 놈이 자기보다 약간 작은 녀석을 꿀꺽, 삼켜버렸다. 작은 물고기들을 넣기 전까지, 사진의 녀석이 나머지 네 마리를 모두 먹었다.
▲ 내가 만난 가장 난폭한 포식자, 베스
생먹이를 구할 수 없어 쏘가리는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고(응?), 어항엔 쓸쓸함만 감돌았다. 그 즈음, 낚시를 다녀온 친구가 손가락만한 베스와 참붕어 몇 마리를 줬다. 말로만 들었던 베스는, 실제로 보니 생김새가 바닷고기 같았다.
쏘가리와 베스의 사냥하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왜 베스가 가는 곳 마다 민물고기들을 '도장깨기' 하는 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쏘가리는 매복해서 사냥감을 지켜보다가 기회를 노리고 한 번에 달려 나간다. 만약, 그 공격이 실패하면 다시 자리로 돌아와 매복해 기회를 노린다. 베스는 "나 님 안 먹음."이라고 얘기하듯 어정쩡한 모습으로 있다가 기회가 오면 빛의 속도로 먹잇감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그 공격이 실패해도 지구 끝까지 쫓아갈 기세로 계속해서 먹잇감을 쫓는다. 그렇게 결국, 베스는 먹고자 한 먹잇감을 먹고 마는 것이다.
어항에 베스만 남게 되었을 때, 난 민물고기를 먹이로 줄 수 없기에 베스를 안락사 하기로 결정했다. 어항에 소금을 집어넣었다. 어? 베스가 살아 있다. 어항에 라면 스프를 집어넣었다. 어? 베스가 살아 있다. 어항에 설탕을 집어넣었다. 어? 베스가 살아 있다. 어항에 잉크를 풀었다. 어? 베스가 살아 있다. 이후 진행된 이야기는 너무 잔혹한 까닭에 글로 옮기지 않겠다. 베스는 그렇게 4일을 버티다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
▲ 군대 가기 직전까지 키웠던 버붕이(버들붕어).
키웠던 민물고기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녀석이 버들붕어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항에 다가가면 날 알아보고 어항 앞쪽으로 다가왔고, 어항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수면까지 올라와 내 손가락에 몸을 부비며 스킨십을 했다.
군 입대 며칠 전, 난 버들붕어들을 잡아왔던 곳으로 차를 몰아 녀석들을 모두 돌려보내 주었다. 녀석들은 물속에 들어가서도 한참동안이나 자리를 지키며 우리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는 건 내 생각이고 수온차이로 인한 쇼크로 잠시 움직이지 못했던 것 같다.
군대에 있을 때에도 제대를 하면 꼭 버들붕어를 다시 키우겠다고 생각했다. 총 들고 근무를 서며 몇 번이나 녀석들이 뽈뽈 거리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게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찾아간 녀석들의 보금자리. 수로가 있던 그 자리엔 신도시 공사가 한창이었다.
군 입대 며칠 전, 난 버들붕어들을 잡아왔던 곳으로 차를 몰아 녀석들을 모두 돌려보내 주었다. 녀석들은 물속에 들어가서도 한참동안이나 자리를 지키며 우리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는 건 내 생각이고 수온차이로 인한 쇼크로 잠시 움직이지 못했던 것 같다.
군대에 있을 때에도 제대를 하면 꼭 버들붕어를 다시 키우겠다고 생각했다. 총 들고 근무를 서며 몇 번이나 녀석들이 뽈뽈 거리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게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찾아간 녀석들의 보금자리. 수로가 있던 그 자리엔 신도시 공사가 한창이었다.
▲ 올해 새롭게 시작한 베타사육. 수컷이 암컷의 몸을 감싼 짝짓기 모습이다.
버들붕어를 잊을 수 없어 같은 등목어과인 '베타'를 기르기 시작했다. 알을 붙이기 위해 필요한 부상수초와 배포장지도 띄우고, 암수의 얼굴을 익히는 과정 등도 열심히 자료를 참고해 실행했다. 그리고 녀석들은 그 노력에 보답하듯 5일 만에 짝짓기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합사 시 수컷의 공격을 너무 많이 받은 암컷은 분리한 이후 며칠을 먹지 않고 버티다 별이 되었고, 수컷은 하는 일 없이 먹이만 받아먹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별이 되었다. 혹시 수면에 알을 붙여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로 몇 주를 기다려 봤지만, 기다리던 치어 대신 어항엔 이끼가 찾아왔다. 의욕저하. 어항은 아무 생물도 살지 않는 빙하기를 맞았다.
하지만 몇 달 후, 어항은 다시 활기를 띄게 되는데,
▲ 깜찍한 오렌지 클라키. 오렌지색의 가재들이다.
며칠 전 오렌지 클라키 치가재 다섯 마리가 어항을 찾아왔다.
"어? 여기 누가 살던 냄새가 나는데?"
라는 이야기로 회의를 하는 모습이다. 자, 그럼 다음시간 부터는 오렌지 클라키 오남매의 좌충우돌 물탱크 생활을 함께 들여다보기로 하며, 과거의 물생활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친다. 다음 이야기를 부르는 추천버튼들을 잊지 말고 누르시기 바라며!
▲ 다 적어 놓고 보니 가물치 얘기를 안 적었다. 가물치 얘기는 나중에 보너스로.
<연관글>
물고기를 너무 키우고 싶었던 한 남자
우리 동네에는 어떤 물고기가 살까?
사슴벌레 직거래, 일단 만나자는 고등학생
초딩에게 배운 사슴벌레 짝짓기 시키기
사슴벌레 잡으러가자는 남자, 알고보니
<추천글>
회사밥을 먹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같이 지내실분, 이라는 구인광고에 낚이다
내 차를 털어간 꼬꼬마에게 보내는 글
공원에서 돈 뺏긴 동생을 위한 형의 복수
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
'취미생활과여행 > 물고기가좋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에서 키우는 가재, 먹이는 뭘 줄까? (56) | 2010.12.29 |
---|---|
오렌지 클라키(애완가재) 오남매 집에서 키우기 (43) | 2010.12.22 |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며 만난 사람들 1부 (44) | 2010.12.16 |
우리 동네에는 어떤 물고기가 살까? (67) | 2010.06.08 |
물고기를 너무 키우고 싶었던 한 남자 (79) | 2010.06.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