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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물고기가좋다

물고기를 너무 키우고 싶었던 한 남자

by 무한 2010. 6. 6.
물고기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처음 든 건, 열 두살 때였다.

목욕탕을 가려면 버스를 타야했던 작은 동네, 이렇다 할 놀이거리가 없어 "잠자리를 잡아 날개를 양 옆으로 잡아당기면 안에 참치(응?)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동네 형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신촌 세브란스병원 신생아실 출신'이라는 이력은 경의선 열차가 밟고 지나가 버린 십원짜리 동전처럼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봄에는 뱀을 찾아 막대기로 후려치고, 가을이면 메뚜기를 잡아먹거나 밤을 주으러 다니는 것이 유일한 놀이였다. 여름은, 그래 여름은 로망의 계절이었다. 이미 블로그에 연재중인 '사슴벌레'가 나오는 시즌이었고, 사슴벌레 만큼이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물고기'가 있었으니 말이다.


1. 물고기와의 첫 만남
 

여름, 팬티만 입고 즐기는 '물놀이'는 아이템풀(학습지)과 해법수학(문제집)에서 벗어난 '일탈'의 시간이었다. 손발이 퉁퉁 불고, 몇몇의 슬리퍼는 물살에 떠내려갔지만 그래도 좋았다. 동네 육학년 누나들은 쿨한척 하며 겨우 발만 담그곤 "그 물 똥물이래" 같은 멘트를 날리다가도 형들이 물에 잡아 끌면 물에 들어와 미친듯이 놀아댔다. 그때부터 난 여자사람의 속마음을 연구하기 시작했, 잠깐, 이게 아니지.

아무튼 신나게 물놀이를 하던 열 두살 어느 날, 무언가가 내 팬티 속으로 들어왔다. 블로그에서 밝히기 좀 민망한 부분이라 간략히 설명하자면, 갑자기 꿈틀 거리며 파고드는 그 녀석 때문에 온 몸의 털이 곤두섰고 팬티에 불이 붙은 사람처럼 물밖으로 뛰어나가 팬티를 벗었다.


메기였다.



▲ 당시의 녀석과 가장 비슷한 색의 메기 (출처-
간지낙타의 생물도감)


검지손가락 만한 새끼 메기가 돌틈인 줄 알고 팬티속으로 파고 든 것이다. 온 몸으로 침 같은 것을 흘리는 녀석을 그때 처음 봤다. 그때의 충격으로 지금도 허벅지 이상 깊어지는 물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있다. 종아리에 거머리가 붙어 피를 빨아도 떼고 놀았지만, 팬티속에 물고기가 들어온 것은 트라우마가 되어 더이상 '물놀이'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물놀이는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온 그 메기를 잊을 수 없었다. 마치 뭔가를 말하려는 듯 깊숙하게 파고 들던 녀석. 물론 큰 녀석이 먹이(응?)를 찾아 들어온 것이었다면, 난 지금쯤 세계적인 카스트라토(변성기 전에 거세한 남성 가수)가 되었을 지도 모르지만 꿈틀거리는 생명이 다가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물에 들어가지 않고 물고기를 만나볼 수 있는,

낚시를 시작했다.

낚시는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고기가 물지 않았다. 오학년 여름방학 시즌 내내 아침에는 낚시를 가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자는 어부의 생활을 했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다. 여름방학이 며칠 남지 않았던 어느 날, 변함없이 낚시를 하고 있던 나에게 한 노인이 다가왔다.

노인 - 너 혼자 온거야? 아빠는 어디있어?.

나 - 아빠는 없어요. (아빠와 같이 안 왔다는 의미)

노인 - 음... (아빠 없는 아이로 인식하고 있음)

나 - ......(아빠는 집에 있다고 말하려다가 귀찮아서 말 안함)

노인 - 미끼는 뭐 쓰냐?

나 - 지우개요.

노인 - 헐... 보통 놈이 아니구나.



의정부 쪽에서 2미터 되는 잉어를 잡아 본 적 있다던 그 노인(원래 낚싯꾼들은 뻥이 쎄다)은 지우개로 고기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도 지렁이를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살아있는 지렁이를 바늘에 끼워 죽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충 비슷하면 물고기가 먹으리라 생각하곤 지우개를 잘라 미끼로 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눈에서 땀이날 정도로 순수한 시절이었다.

노인은 직접 자신의 지렁이 통을 가져와 바늘에 달아주었고, 난 그날 처음으로 붕어를 잡았다. 손바닥만한 붕어를 잡곤 얼마나 신이 났는지 낚싯대도 접지 않고 한 손에 붕어를 꽉 움켜쥔 채 집까지 뛰어왔다. 가족 모두가 기뻐하며 욕조에서 붕어를 키우게 될 거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욕조에서 키울 수 없다는 엄마의 청천벽력 같은 선언. 나와 엄마의 감정은 극한으로 치닫고, 난 "안 키우면 되잖아." 라며 고기를 화장실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

엄마가 쥔 하얀 옷걸이가 내 몸을 빨갛게 수놓았다. 물고기와 함께 살자며 발악을 해 봤지만 47분 정도 쉬지 않고 맞다보니 '내가 이렇게까지 해 가며 물고기를 키워야 하는가'라는 회의론자가 되었다. 결국 체벌을 끝내는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는 멘트로 마무리 하며 물생활(물고기와 함께 사는 생활)을 포기해야 했다.

그 후 10년간 동네 수족관을 지나거나 물가에 갈 때마다 물고기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얀 옷걸이로 막힌 봉인을 풀기란 쉽지 않았다. 2003년, 조지 W. 부시가 이라크를 캐발살 내겠다고 선언했을 때, 나도 엄마에게 선언을 했다.

물고기를 키우겠다고.


2. 드디어 내게도 어항이
 

첫 물생활은 '민물장어'였다. 파주 문산천에서 낚시를 하는데 장어가 낚인 것이다. 낚시로 잡은 장어를 바늘에서 빼는 일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했다. 온 몸을 낚싯줄에 휘감는 녀석에 난 손도 못 대고 친구 J군이 줄을 잘라가며 빼냈다. 가지고 간 아이스박스에 붕어, 잉어를 가득 채우고 장어까지 넣어서 가져왔다. 그리고 마트에서 아크릴로 된 채집통을 산 뒤 그 안에 모두 넣었다.

여과는 커녕 산소발생기도 넣어주지 않았던 시기, 전날 잡아온 고기들은 하루 뒤면 하늘로 배를 보이며 누웠고, 매일 매일이 장례식이 되었다. 이짓을 한 일주일 정도 계속 했다.



▲ 채집통에 키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놔 준 고기들(당시사진)


사진을 보며 "죽은 물고기를 다시 놓아줘서 어쩌자는 거냐!"라고 하실 분이 있을 지 모르지만, 저건 아직 죽기 전, 그러니까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과거 영광의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 붕어들의 모습이다.



▲ 이렇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위치를 찾아간다.(당시사진)

다시 마트 수족관코너로 달려가 산소발생기를 사오고, 직원이 "어항바닥에 깔면 아주 그냥 물고기들 때깔이 틀려집니다."라고 말한 '칼라스톤'도 사온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때 얻은 교훈은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자.'였다.



▲ 직원이 강력 추천한 돌 색깔이 날 슬프게 했다.(당시사진)

당시 '퓨전'이 유행이라, '민물고기'와 '열대어'의 퓨전을 시도하기도 했다.



▲ 몽크호샤와 왜몰개. 칼라스톤 만회하려 구슬 넣었다가 더 슬퍼짐(당시사진)

인터넷에 남들이 올리는 어항사진과 너무 다른 내 어항을 보며, '고기 탓인가?'라는 생각에 열대어들을 더 투입해 보기도 했다.



▲ 마름모형 물고기는 수마트라. 사진엔 안 보이지만 실버샤크도 있다.(당시사진)


이 시기에 '뭘 해도 더 나빠지던' 어항에 대해서는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혼자있고 싶어진다. 이후 '민물고기 박사가 되자'라는 슬로건 하에 새로운 어항을 사서 세팅하고, 경기도에 있는 민물고기들을 찾아다니게 된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더 나눠보자.



▲ 다슬기를 타곤 '하이여~' 라고 말하는 듯한 줄새우 사진. 다음 편에 등장.(당시사진)

요즘 나오는 핸드폰 화질보다 못한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사진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그닥 볼만한 사진들이 없는 점은 양해 부탁드린다. 다음이야기에선 중간에 카메라 기변도 있고, 활기찬 탐어기(물고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 사진들이 추가되니 이번 '지못미' 프롤로그 보다는 좀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자, 그럼 상상 그 이상의 다양한 민물고기가 등장하는 다음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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