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에게 하는 말, 필터링이 필요한 세 가지 이유
지혜로운 여자들은 이미 이 '필터링'을 하고 있다. 그녀들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훗날 그 대화가 괴상한 모습으로 자라나 곤란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또, 말이라는 것은 마치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아서 너무 많이 뿌리면 말들 간에 거리 확보가 안 되어 서로 영양분을 뺏기는 까닭에 잘 자라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말에 무게감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때문에 그녀들은 '하고 싶은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그리고 '해야 할 말'과 '할 필요가 없는 말'에 대해 어느 정도 구분을 두는 편이다.
그런데 이제 막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했거나, 그때그때의 감정에 의존해 연애를 하는 여자들은 이 '필터링'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훗날 자신이 했던 말이 상대의 마음속에서 괴상하게 자라 있으면, 그 모습을 보곤 기겁을 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간 말을 너무 많이 한 까닭에, 중요한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오늘은 '필터링'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마마걸'과 관련된 매뉴얼에서 했던 이야기의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매뉴얼에선 부모님께 '남자친구와 싸운 이야기', '남자친구에게 실망한 이야기', '남자친구의 단점' 등을 모두 털어 놓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대해 이야기 했었다. 딸의 남자친구에 대한 이미지는 모두 '딸이 한 얘기'들을 근거로 갖게 되는 까닭에, 어두운 이야기들로 남자친구를 묘사하면 부모님이 남자친구를 어두운 사람으로 보게 된단 얘기였다.
그 반대의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가 일어난다. 부모님에 대한 불만이나, 부모님과 관련해 과거에 상처 받았던 이야기들을 여과 없이 할 경우, 남자친구는 그대의 부모님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만을 가지게 된다. 그대 부모님과 남자친구 사이엔 '가족의 끈끈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야 부모님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어도 그 때 잠깐 속상했다가 '가족의 끈끈함'으로 금방 희석이 되겠지만, 남자친구는 그 얘기들을 듣고 그대의 부모님에 대해 악감정을 가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남자친구가 저희 부모님을 무시해요."라는 대표적인 사연이 있었다. 저 제목만 보면 남자친구의 인격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용을 보면 여자친구의 잘못이 더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부모님의 어두운 과거사'를 모두 털어 놓았고, 부모님과 마찰이 있을 때마다 남자친구에게 털어 놓으며 위로를 구했다. 당시엔 남자친구가 자신의 편이 되어 주니 좋았겠지만, 남자친구는 그녀의 말들로 인해 그녀 부모님을 '괴물'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그녀의 부모님에 대해 악감정만을 갖게 된 남자친구는 그녀의 부모님을 무시하게 되었고, 결혼을 생각했던 그녀는 남자친구의 그런 모습에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르겠다. 그간 그녀가 남자친구에게 '부모 자격도 없는 부모님'이라는 인식을 너무 깊게 박아 버렸으니 말이다. 내가 그대에게 내 A라는 친구에 대해 "걘 별 볼 일 없는 애야. 좀 멍청해."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해보자. A를 만나 보기 전 그대에게 만들어진 그 이미지 때문에, 그대는 A를 만났을 때 내 얘기를 토대로 '별 볼 일 없고 멍청한 애.'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걸 모른 채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만이나 좋지 않은 감정을 모두 남자친구에게 털어 놓으면, 훗날 남자친구는 그대 주변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세트구성'으로 그대 역시 존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말이다. 대충 '흩뿌리기' 식으로 씨를 뿌려 놓으면, 그 당시엔 편하지만, 나중에 작물들이 엉망으로 자라 있는 밭을 보게 된다는 걸 잊지 말자. 그대가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남자친구 역시 존중하지 않게 된다는 것도.
이 역시 전에 자존감과 관련된 매뉴얼에서 이야기 한 적 있는 부분이다. 그대에게 늘 묻고, 그대의 조언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을 귀찮게-혹은 하찮게- 생각할 수 있다는 얘기로 말이다. 처음엔 남자친구가 열정적으로 연애에 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무덤덤해 진 것 같다는 사연을 보내는 대원들이 이 '확인의 늪'에 빠진 경우가 많다.
"우리 이번 주말에 뭐해?"
"오빠 나 싫어진 거 아니지?"
계속되는 저런 질문들은 상대를 오만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든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위와 같이 늘 의존하고 확인하는 여자친구를 만나 모든 결정권을 가지게 된 남자도 있다.)
위와 같은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피부로 느껴보고 싶다면, 친구에게 친구의 관심사와 관련된 것에 대해 하루에 하나씩 질문을 해 보기 바란다. 이를테면, 골프를 치는 친구에게 골프에 관해 물어보는 것이다. 초보자가 골프를 배우려면 어떤 장비를 구매해야 하는지, 어디서 연습을 해야 하는지, 골프채를 싸게 사려면 어디서 구입해야 하는지, 골프 연습장의 회비는 얼마나 되는지, 골프채가 번호별로 다르던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지금 배우는 게 괜찮은지, 연습장에 가면 레슨을 해 주는 사람이 있는지 등을 하루에 하나씩 물어보는 것이다. 일주일 뒤, 그대는 "내가 지금 바쁘거든. 나중에 통화하자."라고 말하는 친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아 그냥 일단 등록부터 하라니까."라고 말하는 친구를.
연인 간 최악의 '확인'은 둘의 관계에 대해 상대에게 묻는 거다.
"이렇게 사귀다가 우리 연애만 하는 거 아니지?"
"오빠 나랑 결혼할 거지?"
저런 이야기들로 연애에 대한 모든 책임을 남자친구에게 전가하는 대원들이 꽤 많다. 저 물음이 얼마나 쓸데없는지는 1분만 생각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대와 친구인데, 그대에게 "우리 베스트 프렌드 맞지? 시간이 지나도 우리 베스트 프렌드지?"라고 매번 묻는다고 해보자. 그대가 우리 관계에서 오만을 부리는 건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저 물음은 우리의 관계를 제발 확인해 달라는 어리광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연인 간에 하지 못할 말은 없지만,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분명 존재한다. 연인 간에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읽다가 경악한 사연 중에 남자친구의 경제 문제를 발 벗고 나서서 지도하려 드는 여성대원의 사연이 있다.
"앞으로 술 담배 끊어. 그 돈 다 모으는 거야."
"내가 백만원 빌려 줄 테니까 우선 이걸로 해결해."
여자친구에게 저런 얘기를 들은 남자친구. 그에게 그 돈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을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갑자기 그대의 컴퓨터가 고장 나 동네 수리점에서 고쳐왔다고 가정해 보자. 당장 해야 하는 작업이 있었기에 남자친구가 고쳐준다고 하는 저녁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수리비는 20만원이 나왔다. 그 얘기를 들은 남자친구가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대기업 컴퓨터면 기업 수리센터를 가야지 왜 동네 수리점을 가? A/S 무상기간인데."
"20만원? 완전 바가지 썼네. 그냥 놔두고 PC방 가서 작업하면 됐잖아. 에휴."
유쾌한가? 저런 이야기를 듣고 유쾌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저 얘기를 한 남자친구가 수리비를 대신 내 준다고 하면, 그 때는 좀 유쾌해 질 수 있을 것 같은가?
이건 자존심 문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존심을 밟았던 사람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그 기억은 이후의 어떠한 일로도 희석되지 않는다.
화가 났을 때일수록 더욱 주의하길 바란다. 지금 막 도착한 사연을 보니, 카톡 답장을 늦게 한 남자친구에게 화를 내다가 '내일 약속 취소'를 외친 여성대원이 있다. 그 여성대원은,
라고 사연에 썼는데, 그건 상대를 두 번 죽이는 질문이다. 입장을 바꿔서 상대가 그대에게 카톡 답장 왜 늦냐고 화를 내다가 내일 만나지 말자고 했다고 해보자. 그대의 마음은 더럽고 찝찝한 기운으로 가득 찰 것이다. '아 몰라. 됐어. 끊어.' 이런 기분 말이다. 그런데 그대에게 화를 낸 남자친구는 "넌 어떻게 약속을 취소한다는 말에 한 번에 알았다고 대답해?"라고 묻는다면, 남자친구가 뭘로 보일 것 같은가? 신경질적이고 이기적이며 이해심 없는 괴물로 보이지 않을까? 얼른 전화 걸어 사과하고 다시 약속을 잡기 바란다.
위와 같은 일을 모두 겪고, 남자친구에게
결혼 생각 없이 만날 수 있는 거면, 계속 만나겠다."
라는 말을 들은 대원이 있다. 결혼 할 생각 있냐고 계속 물어보고, 남자친구의 팬클럽이 되어 남자친구의 동선만 따라다니고, 부모님이 보자신다며 닦달을 하니 남자친구는 오만해졌고, 그 대원은 남자친구에게 목매고 있는 너무 쉬운 여자가 되고 말았다. 그 구질구질한 시궁창같은 상황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하루 빨리 벗어나길 권한다. 조건을 걸어야 사귈 수 있다는 남자와 무슨 연애를 하겠는가. 아까운 시간 버리지 말고 당당히 걸어 나오길 바란다.
▲ 내기 하세요. 심남이가 한국에 걸면, 멕시코에 거세요. 승패를 떠나 약속만 잡으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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