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시, 이렇게 만들면 어땠을까?
사랑해 마지않는 만화 <슬램덩크>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산왕과 북산이 시합을 할 때, 북산의 강백호가 먼저 기선 제압을 위한 덩크를 한 뒤 상대편을 조롱하고, 이어 산왕의 이명헌이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아주 평범한 2점 슛을 성공시킨 뒤 하는 말.
만화책에는 캐릭터를 살리고자 "같은 2점이다용."이라고 쓰여 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들썩들썩 있는 기술 없는 기술 모두 보태 요란하게 넣으나, 침착하게 필드 골을 넣으나 같은 2점이란 뜻이다.
내가 본 <연가시>는 강백호의 덩크슛에 가까웠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들을 넣은 것이다. 단 걸 좋아하는 사람, 매운 걸 좋아하는 사람, 신 걸 좋아하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냉면에 설탕과 겨자와 식초를 잔뜩 넣은 느낌이랄까. 냉면 마니아가 아니라면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만 냉면 마니아들은 "이건 냉면입니까, 아니면 짬뽕입니까?"라고 묻게 된다.
영화 마니아가 아닌 -영화를 일 년에 한두 편 보시며,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는 <연가시>를 재미있게 보셨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재난영화와 좀비영화를 모두 섭렵했다고 자부하는 난, 이 영화를 '가족영화'로 분류하고 싶다. 아빠, 엄마, 아이(15세 이상) 모두를 조금씩 만족시키며 적당히 타협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라고 말이다.
노멀로그의 카테고리를 보면 알겠지만 난 물고기와 곤충에 관심이 많다. 이쪽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관심사가 많이 겹치는 까닭에, 사슴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이 민물고기도 좋아하고, 민물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가재도 좋아하고, 가재를 좋아하는 사람이 여치도 좋아하고, 여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사슴벌레도 좋아하고, 뭐 대략 그렇다.
때문에 활동하게 되는 커뮤니티도 겹치게 되는데, 이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 치고 '디씨 곤충갤러리(이하 곤충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연가시에 대해 최초로 알게 된 것도 디씨 곤충갤에서 였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좀 어렵겠지만, 그곳에선 사마귀를 '사막신(사마귀+신)'이라 부르며 곤충의 왕으로 대접한다. 그런데 그런 사막신을 자살하게 만드는 기생충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연가시였다.
연가시는 '디씨 기생충갤러리(이하 기갤)'에서 아니사키스와 '투톱 기생충'으로 불리는 녀석으로, 다들 알고 있듯 곤충의 신경계를 조종해 물로 뛰어들게 만드는 기생충이다.(아니사키스는 어떤 생물에게나 침투 가능하며 굵기가 파스타…, 이 얘기는 비위가 상할 수 있으니 이쯤하자.)
여하튼 칠 년 전쯤만 해도 '연가시' 얘기를 하면, 지인들은 내가 무슨 UFO 얘기를 하는 것처럼 믿지 않았다. 척추동물에게 감염된 사례가 없다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지인들은 "그래서 사람한테도 연까시(응?)가 걸려?" 따위의 질문만 해댔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 '꼽등이' 열풍이 불었을 때 연가시가 함께 소개되자 다들 연가시를 가지고 뒷북을 치는 상황이 찾아왔다. 당시 난 이미 연가시를 가지고 이런 저런 구상을 하다, 연가시 떡밥에 흥미를 잃고 기갤에서 '여신'이라 불리는 '시모토아 엑시구아(물고기에 기생하며 물고기의 혀를 다 먹어 치운 뒤 자신이 물고기의 혀 역할을 한다.)' 떡밥을 물고 있었다.
내가 '연가시'를 가지고 구상했던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영화 <연가시>에서 연가시가 수질을 따지지 않았던 것과 달리 내가 생각했던 건 1급수가 있는 지역에서의 사건이었다. 이 부분에선 내가 참 소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변종'이라는 가정을 할 거면 영화에서처럼 어디서든 연가시가 튀어 나올 수 있다고 가정해도 되었을 텐데, 난 연가시가 1급수에 산다는 룰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몸속에 연가시를 지닌 사람들이 물과 음식을 찾게 된다는 설정에서도 영화가 더 훌륭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서 난 연가시가 일반 기생충들과 같은 원리로 몸속에서 살며 영양분을 흡수한다고 설정했다. 때문에 연가시의 숙주가 되면, 몸은 마르는데 배는 불러오는 식의 이상증상이 나타는 것으로.
이런 차이들로 인해 내가 생각했던 '연가시 이야기'는 '은폐'와 '격리'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시 연가시 이야기가 떠돌다 추가된 77세의 할머니 몸에서 연가시 3마리가 나왔다는 헛소문도 있었기에 난 이야기를 거기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제약사나 정부가 관련된 음모론은 그간 많은 영화들에서 다뤄왔으니 제외하기로 했다. 원래 돼지에 기생했지만,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돼지고기를 먹어 오며 사람에게도 적응한 갈고리촌충처럼, 연가시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의 몸에서 살게 된 것이다.
장소는 강원도의 한 마을로 동일하다. 상수원 보호구역인 그곳에 두 가족이 놀러간다. 주인공 가족은 물에 들어간 아빠와 딸이 감염. 밖에 있던 엄마는 멀쩡하다. 조연 가족은 물안경을 사러 갔던 아빠만 멀쩡하고 모두 감염된다.(조연 아빠는 물안경 파는 곳이 없어 헤매다가 늦게 돌아왔고, 다들 춥다며 숙소로 들어가자고 하는 까닭에 물에 들어가지 못했다.) 2박 3일의 여정 중 2일 째에 일이 벌어진다. 마을 사람 몇과 관광객 몇이 계곡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영화와 다른 점은 그렇게 물로 뛰어 드는 사람들의 의식이 멀쩡하다는 것이다. 연가시는 뇌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신경만을 조종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울부짖으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곡으로 걸어간다. 사인은 익사가 아닌 내장파열이다.
그 날 바로 조사가 이루어지고 연가시의 정체가 밝혀진다. 곤충의 몸에서 나온 연가시와 달리 워낙 거대한 크기의 연가시인 까닭에 정체는 금방 밝혀진 것이다. 연가시의 알을 통해 전염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정부에선 즉각 그 마을을 격리한다. 격리 직전 연가시 감염 여부를 확인한 뒤 일부를 내보내줬는데, 격리될 걸 모르는 비감염자 주연가족 엄마와 조연가족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다. 생필품을 가지고 그곳 치료소로 돌아가려 했던 것인데, 다시 그 마을을 찾았을 때 그 앞은 군인과 경찰들이 막고 있다.(치료소의 의료진들은 모두 마을을 빠져나갔다.)
그간 사람과 별 관련이 없어 연구가 되지 않았던 연가시에 대해 뒤늦게 연구를 시작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다. 밖에선 주연가족 엄마가 가족들을 다시 보러 가기 위해 벌이는 사투, 안에선 주연가족 아빠가 남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이어진다. 언론에서는 이 문제를 '신종 기생충'이라는 제목으로 다루며 그 마을 근처에 접근하지 말 것만을 권한다.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행여 자신들이 감염될까 그 마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몇몇이 그 마을에 사는 가족을 만나러 가거나, 취재하러 가지만 모두 차단된다. 마을 관계자들과 고위 관료들이 마을 입구까지 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내려간다. 갈증이 날 텐데도 관할 책임자가 건네는 생수는 거절한다.
비감염자 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야위어가는 사람들을 대신해 생필품을 받아온다. 그러고는 그 생필품을 감염자들의 돈이나 귀중품들과 바꾸어 준다. 밖에선 조연가족 아빠가 보험사와 (연가시 감염으로 사망했을 시에도 돈이 나오는지에 대해) 통화한다. 그 모습을 본 주연가족 엄마는 함께 움직이던 걸 포기하고 혼자 행동하기로 한다. 언론사를 찾아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언론사를 외면한다. SNS를 활용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정부의 통제로 막힌다. 인맥이라고는 없던 평범한 그녀는, 알고 지내던 동네 사람들에게 부탁하지만 다들 '왜 나한테 그러냐, 내가 무슨 힘이 있느냐.'라며 다들 한 발 물러선다. TV에선 연예인의 열애설 보도가 나오고 있다.
마을에 있던 72명의 사람들 중 40명이 죽는다. 몇몇 사람들은 아직 몸을 제어할 수 있을 때 자신이 물가로 가지 못하게 몸을 묶어 보지만, 연가시는 배를 뚫고 나온다. 조연가족 엄마는 희망이 없자 아이를 데리고 자살했다. 자살한 그녀와 아이의 몸 밖으로 연가시가 기어 나온다. 당사자들에게는 엄청나게 심각한 일이지만,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구제역' 정도의 사건으로 생각한다. 자신들과는 큰 관련이 없기에 안심한다.
결론은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 두었는데 여기다가는 한 가지만 적겠다. 가장 평범한 결론으로 '연가시 퇴치약'이 개발되는 것이다. 이미 내장기관과 밀접하게 연결된 연가시를 제거할 수는 없고, 연가시를 '수면상태'로 만드는 약이 만들어진다. 당뇨 환자가 인슐린 주사를 맞듯, 연가시 감염자들은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위에서 이야기 했던 조연가족 아빠는, 주연가족 아빠가 "그 가족은 자살했다."는 증언을 하는 까닭에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마을 사람 중 하나가 가을쯤 감기약을 먹고 난 뒤 약효로 인해 연가시가 깨어나며 이야기는 끝난다. 2부는 연가시에 감염된 사람들이 생식능력을 잃는 것과 사회에서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건 19금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응?) 생략한다.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은 재혁(김명민)이 약을 구한 뒤 어린 아이에게 한 알 주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약이 부서지는 장면이었다. 그 전까지의 이야기를 보면, 재혁은 그렇게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극의 흐름을 위해 뜬금없이 재혁이 착해진다. 난 차라리 거기서 재혁이 애써 외면하면 어땠을까 싶다. 약간의 죄책감을 가진 채 그 아이를 외면하고 돌아와 자기 가족들에게 약을 전하려고 하는 거다. 문제는 돌아와서 발생해도 된다. 격리된 가족들에게 약을 전해 줄 방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약이 있으니 제발 좀 들여보내 달라는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재혁을 공격하는 것으로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재필(김동완)의 캐릭터가 영화와 너무 거리감이 있다는 것도 좀 안타깝다. <공공의 적>에서의 형사가 형사연기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재필의 캐릭터는 그 마지노선을 넘어 헐리우드로 가 버렸다. 영화 초반에 재필의 캐릭터가 '쓸데없이 좀 과격하다.'고 생각했고, 중반 이후부터는 그냥 포기하고 봤다.
그 외에 구호소에 물이 생수통으로 잔뜩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스프링쿨러에 집착한 점이나, 싱크대에 이는 물도 마시던 경순(문정희)이 화장실 세면대에 있는 물은 마시지 않는 점 등이 좀 이상했지만 극의 흐름을 위해 그럴 수 있다고 치고 넘어갔다.
가장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재혁이 호텔방으로 약을 사러 간 장면이었다. 때마침 경찰이 들이닥치는 장면이나 약을 변기에 넣고 내리는 장면이 왜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절실하게 약을 구하러 다녔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구충제에 웃돈을 얹혀 파는 것이 문제가 되는지가 궁금했고, 딱 주인공의 차례에서 경찰이 들이닥치는 게 너무 뻔했다. 난 그 장면 대신 앞서 약을 산 사람에게 재혁이 약을 뺏거나, 돈만 받고 약을 주지 않는 판매자를 때려 눕혀 약을 빼앗는 장면이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 때문에 경찰에게 쫓기게 되고, 쫓기는 몸이라 가족에게 약을 전달해 주는 것도 쉽지 않아진 답답한 상황을 만들었으면 더욱 흥미진진하지 않았을까.
만약, 수영선수 박태환이랑 같이 바닷가에 놀러 갔는데 박태환 혼자 '접영-배영-평영-자유형'을 하고 있으면 놀 맛이 안 날 것이다. 박태환이 메달을 몇 개 딴 선수든 뭐든 그런 곳에서는 함께 튜브를 타며 파도를 즐기거나 잠수해서 조개를 캐야 제맛 아닌가.
연기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배우가 대한민국에서 연기력으로 손꼽히는 배우든 뭐든, 캐릭터에 알맞은 연기를 펼쳐야 빛을 발한다고 말이다. 김명민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영화에서 '이제 울어야 할 시간입니다.'라고 공지하는 순간이 와도 관객들 중 우는 사람은 없었다. 코끝이 찡해야 하는데, 연기를 구경하는 느낌만 들었다. <연가시>를 보고 집에 돌아와 가족애를 그린 1998년작 <아마겟돈>을 보았다. 난 눈물 콧물 가릴 것 없이 줄줄 쏟아냈다. 영화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오열하지도 않고, 그저 눈물 한 방울만 흘렸을 뿐인데 말이다.
▲ 다음 영화는 <도둑들>입니다. 후텁지근한 주말, 시원한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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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마지않는 만화 <슬램덩크>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산왕과 북산이 시합을 할 때, 북산의 강백호가 먼저 기선 제압을 위한 덩크를 한 뒤 상대편을 조롱하고, 이어 산왕의 이명헌이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아주 평범한 2점 슛을 성공시킨 뒤 하는 말.
"같은 2점이다."
만화책에는 캐릭터를 살리고자 "같은 2점이다용."이라고 쓰여 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들썩들썩 있는 기술 없는 기술 모두 보태 요란하게 넣으나, 침착하게 필드 골을 넣으나 같은 2점이란 뜻이다.
내가 본 <연가시>는 강백호의 덩크슛에 가까웠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들을 넣은 것이다. 단 걸 좋아하는 사람, 매운 걸 좋아하는 사람, 신 걸 좋아하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냉면에 설탕과 겨자와 식초를 잔뜩 넣은 느낌이랄까. 냉면 마니아가 아니라면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만 냉면 마니아들은 "이건 냉면입니까, 아니면 짬뽕입니까?"라고 묻게 된다.
영화 마니아가 아닌 -영화를 일 년에 한두 편 보시며,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는 <연가시>를 재미있게 보셨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재난영화와 좀비영화를 모두 섭렵했다고 자부하는 난, 이 영화를 '가족영화'로 분류하고 싶다. 아빠, 엄마, 아이(15세 이상) 모두를 조금씩 만족시키며 적당히 타협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라고 말이다.
1. 연가시의 추억.
노멀로그의 카테고리를 보면 알겠지만 난 물고기와 곤충에 관심이 많다. 이쪽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관심사가 많이 겹치는 까닭에, 사슴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이 민물고기도 좋아하고, 민물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가재도 좋아하고, 가재를 좋아하는 사람이 여치도 좋아하고, 여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사슴벌레도 좋아하고, 뭐 대략 그렇다.
때문에 활동하게 되는 커뮤니티도 겹치게 되는데, 이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 치고 '디씨 곤충갤러리(이하 곤충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연가시에 대해 최초로 알게 된 것도 디씨 곤충갤에서 였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좀 어렵겠지만, 그곳에선 사마귀를 '사막신(사마귀+신)'이라 부르며 곤충의 왕으로 대접한다. 그런데 그런 사막신을 자살하게 만드는 기생충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연가시였다.
연가시는 '디씨 기생충갤러리(이하 기갤)'에서 아니사키스와 '투톱 기생충'으로 불리는 녀석으로, 다들 알고 있듯 곤충의 신경계를 조종해 물로 뛰어들게 만드는 기생충이다.(아니사키스는 어떤 생물에게나 침투 가능하며 굵기가 파스타…, 이 얘기는 비위가 상할 수 있으니 이쯤하자.)
여하튼 칠 년 전쯤만 해도 '연가시' 얘기를 하면, 지인들은 내가 무슨 UFO 얘기를 하는 것처럼 믿지 않았다. 척추동물에게 감염된 사례가 없다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지인들은 "그래서 사람한테도 연까시(응?)가 걸려?" 따위의 질문만 해댔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 '꼽등이' 열풍이 불었을 때 연가시가 함께 소개되자 다들 연가시를 가지고 뒷북을 치는 상황이 찾아왔다. 당시 난 이미 연가시를 가지고 이런 저런 구상을 하다, 연가시 떡밥에 흥미를 잃고 기갤에서 '여신'이라 불리는 '시모토아 엑시구아(물고기에 기생하며 물고기의 혀를 다 먹어 치운 뒤 자신이 물고기의 혀 역할을 한다.)' 떡밥을 물고 있었다.
내가 '연가시'를 가지고 구상했던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2. 내가 구상한 <연가시> 이야기.
영화 <연가시>에서 연가시가 수질을 따지지 않았던 것과 달리 내가 생각했던 건 1급수가 있는 지역에서의 사건이었다. 이 부분에선 내가 참 소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변종'이라는 가정을 할 거면 영화에서처럼 어디서든 연가시가 튀어 나올 수 있다고 가정해도 되었을 텐데, 난 연가시가 1급수에 산다는 룰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몸속에 연가시를 지닌 사람들이 물과 음식을 찾게 된다는 설정에서도 영화가 더 훌륭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서 난 연가시가 일반 기생충들과 같은 원리로 몸속에서 살며 영양분을 흡수한다고 설정했다. 때문에 연가시의 숙주가 되면, 몸은 마르는데 배는 불러오는 식의 이상증상이 나타는 것으로.
이런 차이들로 인해 내가 생각했던 '연가시 이야기'는 '은폐'와 '격리'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시 연가시 이야기가 떠돌다 추가된 77세의 할머니 몸에서 연가시 3마리가 나왔다는 헛소문도 있었기에 난 이야기를 거기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제약사나 정부가 관련된 음모론은 그간 많은 영화들에서 다뤄왔으니 제외하기로 했다. 원래 돼지에 기생했지만,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돼지고기를 먹어 오며 사람에게도 적응한 갈고리촌충처럼, 연가시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의 몸에서 살게 된 것이다.
장소는 강원도의 한 마을로 동일하다. 상수원 보호구역인 그곳에 두 가족이 놀러간다. 주인공 가족은 물에 들어간 아빠와 딸이 감염. 밖에 있던 엄마는 멀쩡하다. 조연 가족은 물안경을 사러 갔던 아빠만 멀쩡하고 모두 감염된다.(조연 아빠는 물안경 파는 곳이 없어 헤매다가 늦게 돌아왔고, 다들 춥다며 숙소로 들어가자고 하는 까닭에 물에 들어가지 못했다.) 2박 3일의 여정 중 2일 째에 일이 벌어진다. 마을 사람 몇과 관광객 몇이 계곡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영화와 다른 점은 그렇게 물로 뛰어 드는 사람들의 의식이 멀쩡하다는 것이다. 연가시는 뇌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신경만을 조종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울부짖으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곡으로 걸어간다. 사인은 익사가 아닌 내장파열이다.
그 날 바로 조사가 이루어지고 연가시의 정체가 밝혀진다. 곤충의 몸에서 나온 연가시와 달리 워낙 거대한 크기의 연가시인 까닭에 정체는 금방 밝혀진 것이다. 연가시의 알을 통해 전염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정부에선 즉각 그 마을을 격리한다. 격리 직전 연가시 감염 여부를 확인한 뒤 일부를 내보내줬는데, 격리될 걸 모르는 비감염자 주연가족 엄마와 조연가족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다. 생필품을 가지고 그곳 치료소로 돌아가려 했던 것인데, 다시 그 마을을 찾았을 때 그 앞은 군인과 경찰들이 막고 있다.(치료소의 의료진들은 모두 마을을 빠져나갔다.)
그간 사람과 별 관련이 없어 연구가 되지 않았던 연가시에 대해 뒤늦게 연구를 시작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다. 밖에선 주연가족 엄마가 가족들을 다시 보러 가기 위해 벌이는 사투, 안에선 주연가족 아빠가 남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이어진다. 언론에서는 이 문제를 '신종 기생충'이라는 제목으로 다루며 그 마을 근처에 접근하지 말 것만을 권한다.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행여 자신들이 감염될까 그 마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몇몇이 그 마을에 사는 가족을 만나러 가거나, 취재하러 가지만 모두 차단된다. 마을 관계자들과 고위 관료들이 마을 입구까지 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내려간다. 갈증이 날 텐데도 관할 책임자가 건네는 생수는 거절한다.
비감염자 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야위어가는 사람들을 대신해 생필품을 받아온다. 그러고는 그 생필품을 감염자들의 돈이나 귀중품들과 바꾸어 준다. 밖에선 조연가족 아빠가 보험사와 (연가시 감염으로 사망했을 시에도 돈이 나오는지에 대해) 통화한다. 그 모습을 본 주연가족 엄마는 함께 움직이던 걸 포기하고 혼자 행동하기로 한다. 언론사를 찾아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언론사를 외면한다. SNS를 활용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정부의 통제로 막힌다. 인맥이라고는 없던 평범한 그녀는, 알고 지내던 동네 사람들에게 부탁하지만 다들 '왜 나한테 그러냐, 내가 무슨 힘이 있느냐.'라며 다들 한 발 물러선다. TV에선 연예인의 열애설 보도가 나오고 있다.
마을에 있던 72명의 사람들 중 40명이 죽는다. 몇몇 사람들은 아직 몸을 제어할 수 있을 때 자신이 물가로 가지 못하게 몸을 묶어 보지만, 연가시는 배를 뚫고 나온다. 조연가족 엄마는 희망이 없자 아이를 데리고 자살했다. 자살한 그녀와 아이의 몸 밖으로 연가시가 기어 나온다. 당사자들에게는 엄청나게 심각한 일이지만,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구제역' 정도의 사건으로 생각한다. 자신들과는 큰 관련이 없기에 안심한다.
결론은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해 두었는데 여기다가는 한 가지만 적겠다. 가장 평범한 결론으로 '연가시 퇴치약'이 개발되는 것이다. 이미 내장기관과 밀접하게 연결된 연가시를 제거할 수는 없고, 연가시를 '수면상태'로 만드는 약이 만들어진다. 당뇨 환자가 인슐린 주사를 맞듯, 연가시 감염자들은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위에서 이야기 했던 조연가족 아빠는, 주연가족 아빠가 "그 가족은 자살했다."는 증언을 하는 까닭에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마을 사람 중 하나가 가을쯤 감기약을 먹고 난 뒤 약효로 인해 연가시가 깨어나며 이야기는 끝난다. 2부는 연가시에 감염된 사람들이 생식능력을 잃는 것과 사회에서의 차별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건 19금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응?) 생략한다.
3. 영화 <연가시> 이야기.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은 재혁(김명민)이 약을 구한 뒤 어린 아이에게 한 알 주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약이 부서지는 장면이었다. 그 전까지의 이야기를 보면, 재혁은 그렇게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극의 흐름을 위해 뜬금없이 재혁이 착해진다. 난 차라리 거기서 재혁이 애써 외면하면 어땠을까 싶다. 약간의 죄책감을 가진 채 그 아이를 외면하고 돌아와 자기 가족들에게 약을 전하려고 하는 거다. 문제는 돌아와서 발생해도 된다. 격리된 가족들에게 약을 전해 줄 방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약이 있으니 제발 좀 들여보내 달라는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재혁을 공격하는 것으로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재필(김동완)의 캐릭터가 영화와 너무 거리감이 있다는 것도 좀 안타깝다. <공공의 적>에서의 형사가 형사연기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재필의 캐릭터는 그 마지노선을 넘어 헐리우드로 가 버렸다. 영화 초반에 재필의 캐릭터가 '쓸데없이 좀 과격하다.'고 생각했고, 중반 이후부터는 그냥 포기하고 봤다.
그 외에 구호소에 물이 생수통으로 잔뜩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스프링쿨러에 집착한 점이나, 싱크대에 이는 물도 마시던 경순(문정희)이 화장실 세면대에 있는 물은 마시지 않는 점 등이 좀 이상했지만 극의 흐름을 위해 그럴 수 있다고 치고 넘어갔다.
가장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재혁이 호텔방으로 약을 사러 간 장면이었다. 때마침 경찰이 들이닥치는 장면이나 약을 변기에 넣고 내리는 장면이 왜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절실하게 약을 구하러 다녔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서 구충제에 웃돈을 얹혀 파는 것이 문제가 되는지가 궁금했고, 딱 주인공의 차례에서 경찰이 들이닥치는 게 너무 뻔했다. 난 그 장면 대신 앞서 약을 산 사람에게 재혁이 약을 뺏거나, 돈만 받고 약을 주지 않는 판매자를 때려 눕혀 약을 빼앗는 장면이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 때문에 경찰에게 쫓기게 되고, 쫓기는 몸이라 가족에게 약을 전달해 주는 것도 쉽지 않아진 답답한 상황을 만들었으면 더욱 흥미진진하지 않았을까.
만약, 수영선수 박태환이랑 같이 바닷가에 놀러 갔는데 박태환 혼자 '접영-배영-평영-자유형'을 하고 있으면 놀 맛이 안 날 것이다. 박태환이 메달을 몇 개 딴 선수든 뭐든 그런 곳에서는 함께 튜브를 타며 파도를 즐기거나 잠수해서 조개를 캐야 제맛 아닌가.
연기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배우가 대한민국에서 연기력으로 손꼽히는 배우든 뭐든, 캐릭터에 알맞은 연기를 펼쳐야 빛을 발한다고 말이다. 김명민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영화에서 '이제 울어야 할 시간입니다.'라고 공지하는 순간이 와도 관객들 중 우는 사람은 없었다. 코끝이 찡해야 하는데, 연기를 구경하는 느낌만 들었다. <연가시>를 보고 집에 돌아와 가족애를 그린 1998년작 <아마겟돈>을 보았다. 난 눈물 콧물 가릴 것 없이 줄줄 쏟아냈다. 영화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오열하지도 않고, 그저 눈물 한 방울만 흘렸을 뿐인데 말이다.
▲ 다음 영화는 <도둑들>입니다. 후텁지근한 주말, 시원한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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