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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카톡으로 안부만 묻는 남자를 위한 연애매뉴얼

by 무한 2013. 1. 16.
카톡으로 안부만 묻는 남자를 위한 연애매뉴얼
사연을 보낸 대원(이후 K씨)은 아침저녁으로

[아침]
갑. 안녕하세요 지현씨~
을. 식사 하셨어요?
병. 힘찬 하루 시작하세요!

[저녁]
자. 언제 퇴근하세요?
축. 퇴근 하셨어요?
인.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라며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있다. 갑자, 을축, 병인… 그렇게 육십갑자 만들듯 멘트를 따로 떼어 붙여 조합해가며 안부만 묻는 전형적인 안부머신이다. 간간이 대화를 길게 늘여보긴 하지만, 그것도 두 번의 주고받음을 넘지 못한 채 '네, 그럼 이만….'의 느낌으로 마무리를 하고 만다.

"이제 더는 말 걸 이야깃거리도 없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열심히 말 건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될 것 같으면 내가 뭐 하러 매뉴얼을 발행하겠는가. 차라리 "여자에게 꺼내기 좋은 이야깃거리 4,082개" 같은 리스트나 발행하겠지. 손톱얘기, 미용실얘기, 치과얘기… 뭐 그런 식으로. 

그녀는 이미 눈치 챘다. K씨에게 재미와 감동, 센스와 박력이 부족하다는 걸 말이다. 때문에 이쪽에서 무슨 얘기를 하면,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시계 버튼 눌러 끄듯 "네. 님도요~" 정도의 대응으로 대화를 종료시켜 버린다. K씨는 조만간 그녀에게 말을 놓자고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말 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같은 태도에서 말까지 놓았다간, 어쭙잖은 '오빠행세' 하다 차단당할 위험이 크다. 그걸 막기 위해 이 매뉴얼을 준비했다. 출발해 보자.


1. 막연한 요청 말고 확실한 약속을!


그러니까 K씨의 "오늘 야근 하세요? 안 하시면 제가 집까지 데려다 드려도 될까요?"라는 물음이 이상하진 않다. 물론 딱딱한 저런 태도 말고, 좀 유쾌하게("집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옵션으로 야식이 있는데, 이건 추가금이 붙습니다." 정도로) 말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여하튼 나쁘지 않다.

문제가 되는 건 저 물음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아침) "오늘 야근 하세요? 안 하시면 제가 집까지 데려다 드려도 될까요?"
(점심) "확정 됐어요? 야근 안 하시게 된 거면 집에 같이 가요~"
(저녁) "끝나셨어요? 전화 주시면 주차장 입구로 차 몰고 갈게요. 같이 가요~"



징징거리기 스킬이 수준급이다. 뭐, 이건 그래도 승낙을 받아 집까지 데려다 주었으니 '성공'으로 치자. 하지만 집에 데려다 주며 꺼내기 시작한 '식사 약속'과 관련해서, K씨는 여전히 상대에게 요청만 하는 중이다.

(데려다 준 날) "회사 내에서는 대화하기 힘드니, 언제 밖에서 밥 한 번 먹어요."
(같은 날 감사문자 받고) "정말 밥 한 번 같이 먹어요."
(며칠 후) "새해네요. 새해엔 정말 같이 밥 한 번 먹어요."



왜 그녀에게 새해 소원을 빌고 있는가? 내가 K씨였다면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던 날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이미 한 번 물었을 거고, 그 답을 디딤돌 삼아 "칼국수 맛집 알아냈어요!" 정도로 자연스레 약속을 잡을 것이다. 당일 당황한 까닭에 미처 못 물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밥 같이 먹어요. 같이 먹어요. 같이 먹어요."라고 조르는 것 대신, "국물 있는 게 좋아요, 아니면 없는 게 좋아요?"정도의 질문으로 식사 약속을 구체화 시킬 것이다.(사실, 저렇게까지 묻지도 않을 것이다. 주꾸미를 먹기로 마음먹은 뒤, 입 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주꾸미 스토리텔링'을 해 바로 함께 주꾸미 토벌에 나설 테니.)

"인삼주에 능이버섯 삼계탕 먹어 봤어요?
먹고 한동안 고생했습니다. 또 먹고 싶어서.
저건 토요일 6시에 먹어야 제 맛인데, 어떠세요?"



저렇게 보내고 7시 정도에 시간이 된다는 답이 오면, "아아. 안타깝네요. 저건 6시에 딱 먹어줘야 하거든요. 7시엔 등갈비가 괜찮은데, 이번 주는 등갈비로 하죠 그럼." 정도로 능청을 한 번 떨어주고 등갈비를 먹는다. 그럼 자연히 다음 주말엔 삼계탕도 먹을 수 있는 법인데, 하아. 왜 "정말 같이 밥 한 번 먹어요."만 외치고 있는가. 소원은 그만 빌고 확실한 약속을 잡자.


2. 참 재미없는 일기쓰기.


초등학교 시절 일기쓰기를 처음 배울 때, 매일 반복되는 일이나 주제와 상관없는 얘기는 빼라는 걸 배운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한다거나, 옷을 입는 다거나, 아침밥을 먹는다는 얘기 같은 거 말이다. 저걸 다 쓰면 일기가 산만해질 뿐더러 일기를 쓰는 의미도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K씨는 저런 실책을 상대와의 카톡대화에서 저지르고 만다.

"전 참치통조림이 좀 많이 생겨서 참치반찬 해서 저녁 먹으려고요."
"스마트폰을 바꿨더니 타자치기가 힘드네요. 노트2로 바꿨어요."
"전 퇴근하면 백화점 들렀다가 마트 가서 장 보고 들어가려고요."



대체 왜?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다. 저 얘기를 꺼낸 특별한 의도 같은 게 있는 것인가? 저 말을 듣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대화를 이어가야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있지 않은 이상

"아, 네…."


정도의 답 말고는 해 줄 반응이 없다. 속으로는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자연히 들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K씨의 대화는

K씨 - 전 참치통조림이 좀 많이 생겨서 참치반찬 해서 저녁 먹으려고요.
상대 - 네, 저녁 맛있게 드세요.
K씨 - 지현씨도 저녁 맛있게 드세요~



정도로 끝나고 만다. 공을 받아치기 쉽게 던져줘야 타자에게도 방망이 휘두를 마음이 생기는 거다. 저렇게 깔끔하게 혼자 마무리를 해 버리면 타자는 멍하니 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얘기를 꺼냈으면, 최소한 상대와 연결 지어 질문 하나 정도를 던져주는 것이 좋다. 워낙 흉물스런 참치통조림 얘기라 어떻게 손을 대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통조림 얘기를 꼭 해야 한다면 "지현씨는 참치 통조림 중에 뭐가 제일 좋아요?" 정도로 아리랑볼을 던져줄 수 있다.

상대가 어떻게 끼어들어야 좋을지 모를 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전달하고, 그 말에 상대가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면 또 다른 소소한 일상을 꺼내 전달한다. 그러다보니 대체 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러는지 모를 정도로 대화가 산만해지고, 그 일이 잦아지며 대답해 주는 게 부담스러운 지경까지 이르고 만다. 상대가 짧은 대답만 한다고 불평하기 전에, 그런 답밖에 할 수 없는 대화를 본인이 이끌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길 권한다.


3. 줄기를 탔으면 가지를 뻗자.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난 치킨을 성의 없이 먹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닭다리를 네 입 정도 살만 뜯어 먹고 그냥 버리는 유형의 사람들 말이다. 튀김옷이 잔뜩 묻어 있는 관절 부분과, 아직도 많은 살이 남아 있는 (다리뼈 바로 옆에 이쑤시개처럼 붙어 있는)작은 뼈 부분을 발라 먹지 않는 사람들. 날개의 끄트머리에 작게 네 등분 된 뼈 부분(그걸 곱씹는 게 치킨의 맛이다.)을 그냥 버리는 사람들. 그건 치킨에 대한 모욕이다.

죽은 치킨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식탁에 오르사 전능하신 치킨무 옆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먹은 자와 안 먹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 파닭복음 3장 1절 (출처-인터넷검색)


K씨의 카톡대화가 '잘 발라먹지 않고 버린 닭다리'의 느낌이라, 웃자고 한 소리다. 아침식사와 관련된 둘의 대화를 보자.

K씨 - 출근 하셨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상대 - 네. 밥 먹고 오느라 좀 늦었네요.
K씨 - 아침 꼬박꼬박 드시나 봐요.
상대 - 꼬박은 아니구요 ㅋ 먹으려고 노력해요.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서 비지찌개 해서 먹고 왔어요.

K씨 - 부지런하시네요.



저기서 파생될 수 있는 대화만 하더라도 어림잡아 서른두 가지는 된다.

"헉, 그럼 대체 몇 시에 일어나신 거예요?"
"비지찌개! 저 비지찌개 마니아인데, 한 그릇만…."
"아침 드시고 와도 늦지 않도록, 제가 카풀 서비스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K씨는 저 대화를 그저 "부지런하시네요." 한 마디로 끝내 버린다. 거의 대부분의 대화가 저런 식이다.

K씨 - 저녁 드셨어요?
상대 - 시켜 먹으려고요.
K씨 - 네, 맛있게 드세요.
상대 - 네.



참 아깝다. 뭘 시켰냐고 묻고, 그걸 보니 군침 돈다며 똑같은 메뉴를 이쪽에서도 시키고, 그걸 비교해 보자며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고, 뭐 그런 무수히 많은 '가지 뻗기'의 방법이 있는데, K씨는 '대화를 했으니 된 거지.'라며 서둘러 말을 거둔다. 그러면서 '매일 대화를 했으니, 이제 밥 같이 먹자고 해도 어색해 하지 않겠지?'라며 "주말에 시간 괜찮으세요? 저녁 같이 먹어요~" 따위의 이야기만 한다. 가지를 뻗지 못하니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K씨는 말한다.  

"단답하는 걸 보면 저에게 관심이 없다는 거겠죠?
회사에선 대화할 수 없기에 밖에서 만나고 싶은데 만나질 못하니….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친하지도 않은데 자꾸 톡 보내기도 좀 그렇고요.
아 그리고, 아직 그녀에게 남친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정말 머리 아프네요."



내 머리가 더 아프다. 이해하기 쉽게 학업에 비유해 설명하자면, 지금의 상황은 K씨의 '평소점수'라고 할 수 있다. 내신이란 얘기다. 상대와 만나서 밥을 먹으며 자신을 어필하는 건 중간이나 기말고사 정도다. 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내신이 형편없으면 최종 평가가 좋지 않다. 내신이 별로라는 건 수업태도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이므로, 시험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말이다.

모든 상황이 다 갖춰지고 내게 유리한 조건이 되면 그 때 제대로 하겠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 순간을 소홀이 흘려보내면 그런 상황은 찾아오지도 않을 뿐더러, K씨는 계속 상대에게 징징대기만 할 것이다. '말 할 기회'는 이미 찾아와 있는데 왜 눈치 채지 못하는가. 그리고 카톡대화를 근거로 그녀의 스케줄을 살펴보면 그녀가 솔로부대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또, 톡을 보내다 보면 친해지는 거지 친해지고 난 다음에 톡을 보내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대신 그녀를 찾아가 K씨와 제발 식사를 같이 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 그때서야 '아 이제 됐네. 덕분에 식사약속이 잡혔으니 제대로 할 수 있겠어.'라며 나설 생각인가? 상대가 먼저 안부를 묻고 인사도 건네는 이 황금 같은 기회를, 엄하게 폭투하다 놓치지 말길 바란다. 집에 데려다 준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차 함께 타고, 밥 먹자고 하면 알았다고 답하고, 회사에서 안 보인다며 먼저 톡까지 보내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는가? 돌다리는 그만 두드리고 어서 좀 건너자.



"아는 누나가 노래방에서 <여가>를 불렀는데요." <말달리자>불렀으면 큰일 날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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