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으로 안부만 묻는 남자를 위한 연애매뉴얼
사연을 보낸 대원(이후 K씨)은 아침저녁으로
라며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있다. 갑자, 을축, 병인… 그렇게 육십갑자 만들듯 멘트를 따로 떼어 붙여 조합해가며 안부만 묻는 전형적인 안부머신이다. 간간이 대화를 길게 늘여보긴 하지만, 그것도 두 번의 주고받음을 넘지 못한 채 '네, 그럼 이만….'의 느낌으로 마무리를 하고 만다.
열심히 말 건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될 것 같으면 내가 뭐 하러 매뉴얼을 발행하겠는가. 차라리 "여자에게 꺼내기 좋은 이야깃거리 4,082개" 같은 리스트나 발행하겠지. 손톱얘기, 미용실얘기, 치과얘기… 뭐 그런 식으로.
그녀는 이미 눈치 챘다. K씨에게 재미와 감동, 센스와 박력이 부족하다는 걸 말이다. 때문에 이쪽에서 무슨 얘기를 하면,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시계 버튼 눌러 끄듯 "네. 님도요~" 정도의 대응으로 대화를 종료시켜 버린다. K씨는 조만간 그녀에게 말을 놓자고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말 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같은 태도에서 말까지 놓았다간, 어쭙잖은 '오빠행세' 하다 차단당할 위험이 크다. 그걸 막기 위해 이 매뉴얼을 준비했다. 출발해 보자.
그러니까 K씨의 "오늘 야근 하세요? 안 하시면 제가 집까지 데려다 드려도 될까요?"라는 물음이 이상하진 않다. 물론 딱딱한 저런 태도 말고, 좀 유쾌하게("집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옵션으로 야식이 있는데, 이건 추가금이 붙습니다." 정도로) 말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여하튼 나쁘지 않다.
문제가 되는 건 저 물음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징징거리기 스킬이 수준급이다. 뭐, 이건 그래도 승낙을 받아 집까지 데려다 주었으니 '성공'으로 치자. 하지만 집에 데려다 주며 꺼내기 시작한 '식사 약속'과 관련해서, K씨는 여전히 상대에게 요청만 하는 중이다.
왜 그녀에게 새해 소원을 빌고 있는가? 내가 K씨였다면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던 날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이미 한 번 물었을 거고, 그 답을 디딤돌 삼아 "칼국수 맛집 알아냈어요!" 정도로 자연스레 약속을 잡을 것이다. 당일 당황한 까닭에 미처 못 물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밥 같이 먹어요. 같이 먹어요. 같이 먹어요."라고 조르는 것 대신, "국물 있는 게 좋아요, 아니면 없는 게 좋아요?"정도의 질문으로 식사 약속을 구체화 시킬 것이다.(사실, 저렇게까지 묻지도 않을 것이다. 주꾸미를 먹기로 마음먹은 뒤, 입 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주꾸미 스토리텔링'을 해 바로 함께 주꾸미 토벌에 나설 테니.)
저렇게 보내고 7시 정도에 시간이 된다는 답이 오면, "아아. 안타깝네요. 저건 6시에 딱 먹어줘야 하거든요. 7시엔 등갈비가 괜찮은데, 이번 주는 등갈비로 하죠 그럼." 정도로 능청을 한 번 떨어주고 등갈비를 먹는다. 그럼 자연히 다음 주말엔 삼계탕도 먹을 수 있는 법인데, 하아. 왜 "정말 같이 밥 한 번 먹어요."만 외치고 있는가. 소원은 그만 빌고 확실한 약속을 잡자.
초등학교 시절 일기쓰기를 처음 배울 때, 매일 반복되는 일이나 주제와 상관없는 얘기는 빼라는 걸 배운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한다거나, 옷을 입는 다거나, 아침밥을 먹는다는 얘기 같은 거 말이다. 저걸 다 쓰면 일기가 산만해질 뿐더러 일기를 쓰는 의미도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K씨는 저런 실책을 상대와의 카톡대화에서 저지르고 만다.
대체 왜?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다. 저 얘기를 꺼낸 특별한 의도 같은 게 있는 것인가? 저 말을 듣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대화를 이어가야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있지 않은 이상
정도의 답 말고는 해 줄 반응이 없다. 속으로는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자연히 들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K씨의 대화는
정도로 끝나고 만다. 공을 받아치기 쉽게 던져줘야 타자에게도 방망이 휘두를 마음이 생기는 거다. 저렇게 깔끔하게 혼자 마무리를 해 버리면 타자는 멍하니 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얘기를 꺼냈으면, 최소한 상대와 연결 지어 질문 하나 정도를 던져주는 것이 좋다. 워낙 흉물스런 참치통조림 얘기라 어떻게 손을 대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통조림 얘기를 꼭 해야 한다면 "지현씨는 참치 통조림 중에 뭐가 제일 좋아요?" 정도로 아리랑볼을 던져줄 수 있다.
상대가 어떻게 끼어들어야 좋을지 모를 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전달하고, 그 말에 상대가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면 또 다른 소소한 일상을 꺼내 전달한다. 그러다보니 대체 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러는지 모를 정도로 대화가 산만해지고, 그 일이 잦아지며 대답해 주는 게 부담스러운 지경까지 이르고 만다. 상대가 짧은 대답만 한다고 불평하기 전에, 그런 답밖에 할 수 없는 대화를 본인이 이끌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길 권한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난 치킨을 성의 없이 먹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닭다리를 네 입 정도 살만 뜯어 먹고 그냥 버리는 유형의 사람들 말이다. 튀김옷이 잔뜩 묻어 있는 관절 부분과, 아직도 많은 살이 남아 있는 (다리뼈 바로 옆에 이쑤시개처럼 붙어 있는)작은 뼈 부분을 발라 먹지 않는 사람들. 날개의 끄트머리에 작게 네 등분 된 뼈 부분(그걸 곱씹는 게 치킨의 맛이다.)을 그냥 버리는 사람들. 그건 치킨에 대한 모욕이다.
K씨의 카톡대화가 '잘 발라먹지 않고 버린 닭다리'의 느낌이라, 웃자고 한 소리다. 아침식사와 관련된 둘의 대화를 보자.
저기서 파생될 수 있는 대화만 하더라도 어림잡아 서른두 가지는 된다.
그런데 K씨는 저 대화를 그저 "부지런하시네요." 한 마디로 끝내 버린다. 거의 대부분의 대화가 저런 식이다.
참 아깝다. 뭘 시켰냐고 묻고, 그걸 보니 군침 돈다며 똑같은 메뉴를 이쪽에서도 시키고, 그걸 비교해 보자며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고, 뭐 그런 무수히 많은 '가지 뻗기'의 방법이 있는데, K씨는 '대화를 했으니 된 거지.'라며 서둘러 말을 거둔다. 그러면서 '매일 대화를 했으니, 이제 밥 같이 먹자고 해도 어색해 하지 않겠지?'라며 "주말에 시간 괜찮으세요? 저녁 같이 먹어요~" 따위의 이야기만 한다. 가지를 뻗지 못하니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K씨는 말한다.
내 머리가 더 아프다. 이해하기 쉽게 학업에 비유해 설명하자면, 지금의 상황은 K씨의 '평소점수'라고 할 수 있다. 내신이란 얘기다. 상대와 만나서 밥을 먹으며 자신을 어필하는 건 중간이나 기말고사 정도다. 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내신이 형편없으면 최종 평가가 좋지 않다. 내신이 별로라는 건 수업태도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이므로, 시험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말이다.
모든 상황이 다 갖춰지고 내게 유리한 조건이 되면 그 때 제대로 하겠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 순간을 소홀이 흘려보내면 그런 상황은 찾아오지도 않을 뿐더러, K씨는 계속 상대에게 징징대기만 할 것이다. '말 할 기회'는 이미 찾아와 있는데 왜 눈치 채지 못하는가. 그리고 카톡대화를 근거로 그녀의 스케줄을 살펴보면 그녀가 솔로부대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또, 톡을 보내다 보면 친해지는 거지 친해지고 난 다음에 톡을 보내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대신 그녀를 찾아가 K씨와 제발 식사를 같이 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 그때서야 '아 이제 됐네. 덕분에 식사약속이 잡혔으니 제대로 할 수 있겠어.'라며 나설 생각인가? 상대가 먼저 안부를 묻고 인사도 건네는 이 황금 같은 기회를, 엄하게 폭투하다 놓치지 말길 바란다. 집에 데려다 준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차 함께 타고, 밥 먹자고 하면 알았다고 답하고, 회사에서 안 보인다며 먼저 톡까지 보내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는가? 돌다리는 그만 두드리고 어서 좀 건너자.
▲ "아는 누나가 노래방에서 <여가>를 불렀는데요." <말달리자>불렀으면 큰일 날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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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을 보낸 대원(이후 K씨)은 아침저녁으로
[아침]
갑. 안녕하세요 지현씨~
을. 식사 하셨어요?
병. 힘찬 하루 시작하세요!
[저녁]
자. 언제 퇴근하세요?
축. 퇴근 하셨어요?
인.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갑. 안녕하세요 지현씨~
을. 식사 하셨어요?
병. 힘찬 하루 시작하세요!
[저녁]
자. 언제 퇴근하세요?
축. 퇴근 하셨어요?
인.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라며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있다. 갑자, 을축, 병인… 그렇게 육십갑자 만들듯 멘트를 따로 떼어 붙여 조합해가며 안부만 묻는 전형적인 안부머신이다. 간간이 대화를 길게 늘여보긴 하지만, 그것도 두 번의 주고받음을 넘지 못한 채 '네, 그럼 이만….'의 느낌으로 마무리를 하고 만다.
"이제 더는 말 걸 이야깃거리도 없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열심히 말 건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될 것 같으면 내가 뭐 하러 매뉴얼을 발행하겠는가. 차라리 "여자에게 꺼내기 좋은 이야깃거리 4,082개" 같은 리스트나 발행하겠지. 손톱얘기, 미용실얘기, 치과얘기… 뭐 그런 식으로.
그녀는 이미 눈치 챘다. K씨에게 재미와 감동, 센스와 박력이 부족하다는 걸 말이다. 때문에 이쪽에서 무슨 얘기를 하면,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시계 버튼 눌러 끄듯 "네. 님도요~" 정도의 대응으로 대화를 종료시켜 버린다. K씨는 조만간 그녀에게 말을 놓자고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말 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같은 태도에서 말까지 놓았다간, 어쭙잖은 '오빠행세' 하다 차단당할 위험이 크다. 그걸 막기 위해 이 매뉴얼을 준비했다. 출발해 보자.
1. 막연한 요청 말고 확실한 약속을!
그러니까 K씨의 "오늘 야근 하세요? 안 하시면 제가 집까지 데려다 드려도 될까요?"라는 물음이 이상하진 않다. 물론 딱딱한 저런 태도 말고, 좀 유쾌하게("집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옵션으로 야식이 있는데, 이건 추가금이 붙습니다." 정도로) 말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여하튼 나쁘지 않다.
문제가 되는 건 저 물음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아침) "오늘 야근 하세요? 안 하시면 제가 집까지 데려다 드려도 될까요?"
(점심) "확정 됐어요? 야근 안 하시게 된 거면 집에 같이 가요~"
(저녁) "끝나셨어요? 전화 주시면 주차장 입구로 차 몰고 갈게요. 같이 가요~"
(점심) "확정 됐어요? 야근 안 하시게 된 거면 집에 같이 가요~"
(저녁) "끝나셨어요? 전화 주시면 주차장 입구로 차 몰고 갈게요. 같이 가요~"
징징거리기 스킬이 수준급이다. 뭐, 이건 그래도 승낙을 받아 집까지 데려다 주었으니 '성공'으로 치자. 하지만 집에 데려다 주며 꺼내기 시작한 '식사 약속'과 관련해서, K씨는 여전히 상대에게 요청만 하는 중이다.
(데려다 준 날) "회사 내에서는 대화하기 힘드니, 언제 밖에서 밥 한 번 먹어요."
(같은 날 감사문자 받고) "정말 밥 한 번 같이 먹어요."
(며칠 후) "새해네요. 새해엔 정말 같이 밥 한 번 먹어요."
(같은 날 감사문자 받고) "정말 밥 한 번 같이 먹어요."
(며칠 후) "새해네요. 새해엔 정말 같이 밥 한 번 먹어요."
왜 그녀에게 새해 소원을 빌고 있는가? 내가 K씨였다면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던 날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이미 한 번 물었을 거고, 그 답을 디딤돌 삼아 "칼국수 맛집 알아냈어요!" 정도로 자연스레 약속을 잡을 것이다. 당일 당황한 까닭에 미처 못 물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밥 같이 먹어요. 같이 먹어요. 같이 먹어요."라고 조르는 것 대신, "국물 있는 게 좋아요, 아니면 없는 게 좋아요?"정도의 질문으로 식사 약속을 구체화 시킬 것이다.(사실, 저렇게까지 묻지도 않을 것이다. 주꾸미를 먹기로 마음먹은 뒤, 입 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주꾸미 스토리텔링'을 해 바로 함께 주꾸미 토벌에 나설 테니.)
"인삼주에 능이버섯 삼계탕 먹어 봤어요?
먹고 한동안 고생했습니다. 또 먹고 싶어서.
저건 토요일 6시에 먹어야 제 맛인데, 어떠세요?"
먹고 한동안 고생했습니다. 또 먹고 싶어서.
저건 토요일 6시에 먹어야 제 맛인데, 어떠세요?"
저렇게 보내고 7시 정도에 시간이 된다는 답이 오면, "아아. 안타깝네요. 저건 6시에 딱 먹어줘야 하거든요. 7시엔 등갈비가 괜찮은데, 이번 주는 등갈비로 하죠 그럼." 정도로 능청을 한 번 떨어주고 등갈비를 먹는다. 그럼 자연히 다음 주말엔 삼계탕도 먹을 수 있는 법인데, 하아. 왜 "정말 같이 밥 한 번 먹어요."만 외치고 있는가. 소원은 그만 빌고 확실한 약속을 잡자.
2. 참 재미없는 일기쓰기.
초등학교 시절 일기쓰기를 처음 배울 때, 매일 반복되는 일이나 주제와 상관없는 얘기는 빼라는 걸 배운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한다거나, 옷을 입는 다거나, 아침밥을 먹는다는 얘기 같은 거 말이다. 저걸 다 쓰면 일기가 산만해질 뿐더러 일기를 쓰는 의미도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K씨는 저런 실책을 상대와의 카톡대화에서 저지르고 만다.
"전 참치통조림이 좀 많이 생겨서 참치반찬 해서 저녁 먹으려고요."
"스마트폰을 바꿨더니 타자치기가 힘드네요. 노트2로 바꿨어요."
"전 퇴근하면 백화점 들렀다가 마트 가서 장 보고 들어가려고요."
"스마트폰을 바꿨더니 타자치기가 힘드네요. 노트2로 바꿨어요."
"전 퇴근하면 백화점 들렀다가 마트 가서 장 보고 들어가려고요."
대체 왜?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다. 저 얘기를 꺼낸 특별한 의도 같은 게 있는 것인가? 저 말을 듣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대화를 이어가야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있지 않은 이상
"아, 네…."
정도의 답 말고는 해 줄 반응이 없다. 속으로는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자연히 들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K씨의 대화는
K씨 - 전 참치통조림이 좀 많이 생겨서 참치반찬 해서 저녁 먹으려고요.
상대 - 네, 저녁 맛있게 드세요.
K씨 - 지현씨도 저녁 맛있게 드세요~
상대 - 네, 저녁 맛있게 드세요.
K씨 - 지현씨도 저녁 맛있게 드세요~
정도로 끝나고 만다. 공을 받아치기 쉽게 던져줘야 타자에게도 방망이 휘두를 마음이 생기는 거다. 저렇게 깔끔하게 혼자 마무리를 해 버리면 타자는 멍하니 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얘기를 꺼냈으면, 최소한 상대와 연결 지어 질문 하나 정도를 던져주는 것이 좋다. 워낙 흉물스런 참치통조림 얘기라 어떻게 손을 대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통조림 얘기를 꼭 해야 한다면 "지현씨는 참치 통조림 중에 뭐가 제일 좋아요?" 정도로 아리랑볼을 던져줄 수 있다.
상대가 어떻게 끼어들어야 좋을지 모를 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전달하고, 그 말에 상대가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면 또 다른 소소한 일상을 꺼내 전달한다. 그러다보니 대체 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러는지 모를 정도로 대화가 산만해지고, 그 일이 잦아지며 대답해 주는 게 부담스러운 지경까지 이르고 만다. 상대가 짧은 대답만 한다고 불평하기 전에, 그런 답밖에 할 수 없는 대화를 본인이 이끌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길 권한다.
3. 줄기를 탔으면 가지를 뻗자.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난 치킨을 성의 없이 먹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닭다리를 네 입 정도 살만 뜯어 먹고 그냥 버리는 유형의 사람들 말이다. 튀김옷이 잔뜩 묻어 있는 관절 부분과, 아직도 많은 살이 남아 있는 (다리뼈 바로 옆에 이쑤시개처럼 붙어 있는)작은 뼈 부분을 발라 먹지 않는 사람들. 날개의 끄트머리에 작게 네 등분 된 뼈 부분(그걸 곱씹는 게 치킨의 맛이다.)을 그냥 버리는 사람들. 그건 치킨에 대한 모욕이다.
죽은 치킨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식탁에 오르사 전능하신 치킨무 옆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먹은 자와 안 먹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 파닭복음 3장 1절 (출처-인터넷검색)
식탁에 오르사 전능하신 치킨무 옆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먹은 자와 안 먹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 파닭복음 3장 1절 (출처-인터넷검색)
K씨의 카톡대화가 '잘 발라먹지 않고 버린 닭다리'의 느낌이라, 웃자고 한 소리다. 아침식사와 관련된 둘의 대화를 보자.
K씨 - 출근 하셨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상대 - 네. 밥 먹고 오느라 좀 늦었네요.
K씨 - 아침 꼬박꼬박 드시나 봐요.
상대 - 꼬박은 아니구요 ㅋ 먹으려고 노력해요.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서 비지찌개 해서 먹고 왔어요.
K씨 - 부지런하시네요.
상대 - 네. 밥 먹고 오느라 좀 늦었네요.
K씨 - 아침 꼬박꼬박 드시나 봐요.
상대 - 꼬박은 아니구요 ㅋ 먹으려고 노력해요.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서 비지찌개 해서 먹고 왔어요.
K씨 - 부지런하시네요.
저기서 파생될 수 있는 대화만 하더라도 어림잡아 서른두 가지는 된다.
"헉, 그럼 대체 몇 시에 일어나신 거예요?"
"비지찌개! 저 비지찌개 마니아인데, 한 그릇만…."
"아침 드시고 와도 늦지 않도록, 제가 카풀 서비스를 준비하겠습니다."
"비지찌개! 저 비지찌개 마니아인데, 한 그릇만…."
"아침 드시고 와도 늦지 않도록, 제가 카풀 서비스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K씨는 저 대화를 그저 "부지런하시네요." 한 마디로 끝내 버린다. 거의 대부분의 대화가 저런 식이다.
K씨 - 저녁 드셨어요?
상대 - 시켜 먹으려고요.
K씨 - 네, 맛있게 드세요.
상대 - 네.
상대 - 시켜 먹으려고요.
K씨 - 네, 맛있게 드세요.
상대 - 네.
참 아깝다. 뭘 시켰냐고 묻고, 그걸 보니 군침 돈다며 똑같은 메뉴를 이쪽에서도 시키고, 그걸 비교해 보자며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고, 뭐 그런 무수히 많은 '가지 뻗기'의 방법이 있는데, K씨는 '대화를 했으니 된 거지.'라며 서둘러 말을 거둔다. 그러면서 '매일 대화를 했으니, 이제 밥 같이 먹자고 해도 어색해 하지 않겠지?'라며 "주말에 시간 괜찮으세요? 저녁 같이 먹어요~" 따위의 이야기만 한다. 가지를 뻗지 못하니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K씨는 말한다.
"단답하는 걸 보면 저에게 관심이 없다는 거겠죠?
회사에선 대화할 수 없기에 밖에서 만나고 싶은데 만나질 못하니….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친하지도 않은데 자꾸 톡 보내기도 좀 그렇고요.
아 그리고, 아직 그녀에게 남친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정말 머리 아프네요."
회사에선 대화할 수 없기에 밖에서 만나고 싶은데 만나질 못하니….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친하지도 않은데 자꾸 톡 보내기도 좀 그렇고요.
아 그리고, 아직 그녀에게 남친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정말 머리 아프네요."
내 머리가 더 아프다. 이해하기 쉽게 학업에 비유해 설명하자면, 지금의 상황은 K씨의 '평소점수'라고 할 수 있다. 내신이란 얘기다. 상대와 만나서 밥을 먹으며 자신을 어필하는 건 중간이나 기말고사 정도다. 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내신이 형편없으면 최종 평가가 좋지 않다. 내신이 별로라는 건 수업태도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이므로, 시험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말이다.
모든 상황이 다 갖춰지고 내게 유리한 조건이 되면 그 때 제대로 하겠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 순간을 소홀이 흘려보내면 그런 상황은 찾아오지도 않을 뿐더러, K씨는 계속 상대에게 징징대기만 할 것이다. '말 할 기회'는 이미 찾아와 있는데 왜 눈치 채지 못하는가. 그리고 카톡대화를 근거로 그녀의 스케줄을 살펴보면 그녀가 솔로부대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또, 톡을 보내다 보면 친해지는 거지 친해지고 난 다음에 톡을 보내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대신 그녀를 찾아가 K씨와 제발 식사를 같이 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 그때서야 '아 이제 됐네. 덕분에 식사약속이 잡혔으니 제대로 할 수 있겠어.'라며 나설 생각인가? 상대가 먼저 안부를 묻고 인사도 건네는 이 황금 같은 기회를, 엄하게 폭투하다 놓치지 말길 바란다. 집에 데려다 준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차 함께 타고, 밥 먹자고 하면 알았다고 답하고, 회사에서 안 보인다며 먼저 톡까지 보내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는가? 돌다리는 그만 두드리고 어서 좀 건너자.
▲ "아는 누나가 노래방에서 <여가>를 불렀는데요." <말달리자>불렀으면 큰일 날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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