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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당신이 그 여자를 놓아줘야 하는 이유

by 무한 2009. 12. 21.
베란다의 하수구가 얼어 빨래를 못하는 까닭에 난감해 하고 있다가 비밀댓글로 달린 사연들을 읽으니 우울해졌다. 연애를 결코 면접과 비교할 순 없지만, 여자사람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실, 그 고통은 스스로에게 내리고 있는 형벌인- 솔로부대 남자대원들의 사연을 보며 차라리 그녀를 '입사하고 싶은 회사'로 생각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회사 면접에 탈락한 거라면 적어도,

"그 면접관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제 영혼을 바라보는 눈빛이었어요."
"그런 회사 또 없습니다. 정직원이 아니라도 들어가고 싶은 이 맘 아나요."
"내 가슴이 그 회사를 놓지 못하는데, 입사도 못하고 끝인 건가요."



이런 이야기들은 꺼내진 않을 것 아닌가. 일정한 기간을 두고 간이역 지나듯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그녀주변에서 건널목 차단기 처럼 묵묵히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이야기도 가슴아팠다. 오죽하면 연애상담은 하지 않는다는 노멀로그 댓글창에 "메이데이, 메이데이."를 외치고 있겠는가. 그래서 준비했다. 당신이 그 여자를 놓아줘야 하는 이유. 남자대원들을 대상으로 매뉴얼을 작성하면 "야, 싸우자. 내가 더 잘 알어." 이런 댓글이 달리는 데에도 불구하고 매뉴얼을 적는 이유는, 그대도 알고 있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곤 '내가 돌아서면 작은 가능성도 다 끝나는 것 같아서……' 라며 들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두게 하고 싶은 까닭이다.


1. 가장 친한 이성친구와 여자친구, 그 사이


예전 매뉴얼에서도 이야기 한 적 있지만, 여자사람의 경우 '영화를 보고, 밥을 함께 먹으며,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걷는 일'"동성친구와도 서슴없이 하는 일인데, 왜 그걸 관심이라고 착각하는 거죠?" 라고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 일도 있었다. 대부분의 남자대원은 기절했고, 나머지는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KO패 하고 말았다. 세렝게티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렝게티에는 30여 종의 초식동물과 500종이 넘는 조류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만신창이가 되어 힘겹게 붙잡고 있던 정신줄을 세게 움켜쥐며 그룹 <피노키오>는 이런 노래를 부른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내 자신보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아끼던 내가 미워지네
연인도 아닌 그렇게 친구도 아닌 어색한 사이가 싫어져 나는 떠나리
우연보다도 짧았던 우리의 인연 그 안에서 나는 널 떠나네

- 피노키오, <사랑과 우정사이> 중에서


위의 노래제목처럼 '사랑과 우정사이'에 위치하게 되면 자연히 '희망고문'이 뒤따른다. 분명 이 코딱지만 파 내면 시원할 것 같은데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새끼손가락을 넣으면 뭔가 만져지긴 하는데 이게 뼈인지 코딱지인지 몰라 한참을 후빈다. 이미 코는 헐기 시작했고 손가락을 넣을 때 마다 통증이 수반된다. 너무 아파서 흥, 흥, 콧바람을 뿜어 보기도 하고 풀어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콧 속의 이질감이 느껴진다. 아무 일에도 집중할 수 없을 만큼 코에만 신경이 쓰인다. 이런 심정을 그룹 <브라운 아이즈>가 노래로 표현했다.

For you 돌아가줘 나로인해 사랑이 넌 더 쉬워진 것만 같아 take on your life
너의 사랑이 끝날 땐 왜 나를 찾아 니가 올까봐 나는 다른 사랑도 못하잖아

- 브라운 아이즈, <For You> 중에서


코딱지가 곧 나올 것 같아서 아무 일도 못하고 코에만 신경을 쏟고 있는 상황. 이제 그대는 새끼손가락을 빼길 바란다. 더 후벼봐야 콧구멍만 아플 뿐이다. 가장 친한 이성친구가 꼭 여자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코딱지 때문에 코가 막혀 죽은 사람은 이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코를 파다간 죽을 수도 있다. 코에서 피를 나르는 정맥은 뇌까지 이어지는데 코를 파다 난 상처에 병균이 들어가면 뇌는 그 침입을 막귀 위해 뇌 속에서 피가 순환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으며, 이런 증세를 '내두개 혈전정맥염' 이라 하고, 뇌가 풍선처럼 부풀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아주 드문 경우라고 하지만, 우리는 아주 드물게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사망에 이른 소식들을 뉴스를 통해 듣기도 한다.  


2.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은 운명론인가?


메일과 댓글로 남겨진 사연 대부분은 '운명론'을 신앙처럼 가지고 있다. 이런 일이 있어서 이렇게 되었다 라거나 이러이러해서 이랬으니 이런 것 아니겠느냐는 물음까지, 인과관계를 엮은 플롯(plot)은 소설의 뺨을 후려칠 정도로 치밀하다. 버스 안에서 그녀와 팔꿈치가 여러번 닿았는데, 그녀가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며 마침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다는 것, 그러니 이것이 운명이 아니면 뭐겠냐고 묻는 대목에선 소름이 돋았다. 앞으로 만원버스를 탈 때에는 운명을 주의해야 할 것 같다.

로미오처럼 줄리엣의 사촌오빠를 죽이고 나서 "l'm fortune's fool(난 운명의 꼭두각시다)" 이라고 외칠 정도가 된다면 어느정도 운명이라는 주장에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을 되짚어 가며 억지로 만들어 낸 당신의 '운명'은 어떤가. 관심은 있었지만 고백을 못하고 고교시절을 마쳤으며 그 이후로 볼 수 없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회사에서 출장을 갔는데 그곳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뭐, 운명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딱히 할 말이 없다. 나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연이 겹친 일을 때론 운명으로 생각하니 말이다.

좋다. 당신과 그녀는 여러 번의 우연이 겹쳐 운명이라 믿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고 치자. 그럼 이제 당신의 고백을 받은 그녀가 당신과 핑크빛 러브러브를 나누는 일만 남았을까? 그 운명이 '비극'이라면 어쩔 생각인가? 그 '운명'이 꼭 좋은 방향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니 충분히 가정해 볼 수 있는 일 아닐까? 계속 만나지만 결국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집게의 양 끝과 같은 운명이라면, 그것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당신의 자신감이나 구애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그 '운명론'을 무작정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당신에게 '힘'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단, 막연하게 당신의 사랑을 동전의 앞이나 뒤에 걸진 말란 얘기다. 정말 운명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애쓰지 않아도 좋다. 지금은 당신의 사랑이 예상대로 진행이 안되어 답답하겠지만, 운명이라면 당신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흘러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믿고 싶은 부분만 운명이라 믿는 건 결국 '억측'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3. 당신이 그린 그녀라는 그림


첫 인상으로 스케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바라본 상대의 모습을 하나씩 그려 넣는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 되도록이면 캄캄하며 감성적이 될 수 있는 저녁시간을 골라 낮에 그린 스케치에 색을 칠해 넣는다. 물감이 입혀진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이 붓을 대신한다. 내 감정이 모자라면 노랫말, 시, 소설, 영화, 가릴 것 없이 감정을 차용한다. 자, 이렇게 당신이 그린 그녀라는 그림이 완성되었다. 

이제 당신이 할 일은, 왜 내가 그린 그녀와 실제의 그녀 사이엔 무수한 차이점들이 존재하는지 미지수 'x'를 놓고 고민하는 것이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사랑의 시작도 위의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제 눈에 안경을 쓰는 일이며 콩깍지를 가져와 덮는 것에서 출발한다. 당신의 문제는 간단하다. 나는 반했는데, 상대는 반하지 않은 것이다. "x+1=2" 라는 식이라면 금방 답을 구하겠는데, "x+1=y" 라니,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된다. ("x=y-1" 이라고 푸신 분들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드리겠다.)

시즌1과 시즌2를 합쳐 100편이 넘는 이 매뉴얼을 작성하며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커플부대가 되어야 한다." 라는 말이 아니다. 당신이 그린 그녀라는 그림과 실제 그녀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당신의 외로움은 그 누구를 만나고, 그 무엇을 먹으며, 그 어떤 것을 함께 한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 불완전함은 배꼽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솔로부대탈출"이라는 말은, 자신의 외로움마저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린 그녀라는 그림은 실제 그녀와 어떻게든 차이를 가질 것이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그녀를 놓아주라고 하더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하겠지만, 다 집어 치우더라도 이 말은 꼭 해야겠다. 당신이 당신의 결핍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녀와 사귀든 결혼을 하든 그 결핍과 계속 마주할 것이다. 그럼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이건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닌데' 라고 말이다. 그 생각이 커지면 헤어짐이나 이혼이 된다. -헤어지는 연인들을 위해 매트는 깔아두도록 하자. "정말 최악의 싱크로율을 가진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라고 말이다.- 평생을 채워도 다 못채울 그 '결핍'을 채워 나가는 일이 '사랑'이다. 멋대로 그린 그녀라는 그림에 끊임없는 구애의 몸짓을 보이기 보다, 난 최대한 사실과 가까운 그녀의 모습을 그리길 권한다. 그것이 당신에게도, 그녀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왜 이번 매뉴얼의 제목이, 당신이 그 여자를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고 '놓아줘야 하는 이유' 인지 아는가? 당신이 팽이를 쥐고만 있다면 결코 팽이를 돌릴 수 없을 것이다. 당신과 그녀 사이의 인연의 끈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제 그 팽이를 놓아주자. 염려해야 할 것은 그 팽이가 잘 돌지, 아니면 넘어질지 걱정하는 일이 아니다. 당신이 그린 그녀라는 그림과 실제 그녀의 차이를 받아들여 무게중심을 잡는 일이다.

욕심이 변형된 집착, 소심함이 불러온 불안, 술에 의지한 객기, 멋대로 부풀린 실망, 혼자서 만든 기대, 다른 곳에서 표절한 슬픔, 어느 것 하나도 무게중심을 잡는 일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 손가락 버튼을 누르는 일이 다음 매뉴얼을 부른다는 것도 잊지 말자. 추천은 무료.


▲ "x+1=2"라는 식에서 "x"가 뭔지 내가 알게 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추천버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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