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사연으로 받은 이야기들이지만, 이런 경우들로 헤어지고 나서도 "그냥 서로 잘 안 맞았어."라고 얘기할까봐 이 매뉴얼을 작성하게 되었다. 이거 모르면 다음에 누구랑 사귀더라도 데자뷰를 경험하며 "얘도 인연이 아닌 것 같아."라는 말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물론, 이게 남자들만 벌이는 일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메일로 도착한 수 많은 이야기들을 기초로 하다보니 남녀주인공 정하듯 '남자'와 '여자'로 적었을 뿐, 성별을 바꾸어 설명해도 이상할 것 없단 얘기다. 그리고 왜 남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매뉴얼이 적냐는 댓글을 계속 다시는 분이 있는데, 이 매뉴얼의 댓글을 잘 살펴보시길 바란다. 몇몇의 남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투모드'에 돌입한다. "내가 더 잘 알아." 라거나, "그냥 돈 많으면 해결될 일 아님?" 따위의 댓글이나, 어떻게든 자신의 의견을 꺼내놓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손에 든게 하트 세븐 인지, 다이아몬드 나인인지 구별도 하지 않고 들이밀 것이다. 뭐, 이렇게 적어 놓았으니 아닌척 하겠지만 말이다.
영화를 보더라도 마음에 잔잔한 바람 불게 놔두지 못하고, 그걸 분석하거나 자신이 뭘 느꼈는지 기를 쓰고 알아내려는 사람들, 꼭 나쁘거나 틀린 건 아니다. 그건 그렇게 놔 두고, 매뉴얼이 길어질 듯 하니 바로 출발하자.
처음과 달리 점점 짧아지고 줄어드는 남자의 문자에 힘들어하는 여자사람들이 많았다. 그건 크리스마스 다음 날 정상출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전에 예로 들었던 "남자-여자, 남자-남자 사이에 벌어지는 문자의 차이"를 기억하는가?
여자 - "난 이제 막 일 끝났어. 자기는 뭐하고 있었어?"
남자 - "잠깐 친구랑 피씨방 왔어. 내가 정발산 역으로 갈까?"
<남자 - 남자>의 문자
남자1 - "뭐하냐"
남자2 - "게임중"
이건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외국작가의 책에서 읽은 내용중에, "여자가 고양이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남자는 그렇다고 대답하지만, 여자가 옆에 없으면 남자는 고양이를 발로 찬다." 라는 부분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막 사랑이 싹 텄을 때에는,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라는 여자의 말을 견딜 수 있지만 연애가 지면에서 날아올라 공중에 있을 때는, 한 시간 넘게 통화하고 왜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또 해야 하는지 남자는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좀 다른 예로, 연애초기 남자의 "담배는 곧 끊을 거야."라는 말을 '약속'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더 피워대는 것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 남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나 뿐인가? 마음이 변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여자가 화장을 하지 않고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일이란 말이다.
개인적으로 의처증이 심한 어느 남성분을 아는데, 미안하지만 그 분이 결혼할 때 얼마 안가 헤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 살고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는 더욱 심한 의부증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구속하며 그 속에서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니, 역시 인간은 신비로운 존재다. '사랑하는 방법이 달라 고민입니다.' 라는 사연을 보자.
제가 애교 많고 귀엽고 다 좋은데.. 자긴 좀 혼자있는 시간도 필요하데요..
크게 싸운 적이 있는데.. 남자친구가 얘기하더군요..
자기 물건인데 하라는 대로 하고 다녀야 하고, 어디가면 어디 간다고,
약속잡는 것도 다 말해야 하는 게 힘들다고..
절대로 제가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무조건 '우리'만 생각하지 말고.. '나'도 생각해 달라고..
저도 제가 항상 관심받고 싶고.. 공유하고 싶어 하는 거..
인정하고 화해를 했어요.. 그리고 다음날 통화를 했죠..
여 : 어디야~
남 : 학교
여 : 응. 뭐했어?
남 : 애들이랑 뭐뭐 하고 피씨방 가려고
여 : 거시기는 다 한거야?
남 : 응 거시기 다했지.
여 : 학교는 언제갔어?
남 : 아까
여 : 에이~ 근데 연락 하나도 안하고!
남 : 어...
여 : 목소리 왜 그래? 어제 우리 화해한 거 아니야?
남 : 화해한 거 맞아.
여 : 근데 왜 그래?
(이 이후로는 노력했잖아, 나도 노력했어, 그게 노력한거야?, 넌 뭘 했는데, 어쩌라고, 생각이 달라, 서로 다른 걸 아니까 노력하자고 한 거잖아, 나도 모르겠어, 마음이 식어서 트집잡는거야?, 그게 아니라 좀 더 천천히 다가가도 되지 않을까, 조금 시간을 가지고 싶단 얘기야? 이런 대화들)
여 : 그럼 연락하지 말라고? 그걸 원해?
남 : 어, 내가 연락하면 받고, 먼저 하지는 마.
여 : ...... 어 그래.
남 : 어 끊어.
전 이게 헤어진거라고 생각을 하고 너무 우울하고 몸도 안 좋고 해서 회사를 조퇴하고 퇴근해 버렸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근데 원래 퇴근하던 시간이 맞춰서 전화가 오더군요.
(후반전)
여 : (막 울다가 목소리 가다듬고) 어.
남 : 어디야?
여 : 버스탔어.
남 : 아 그래? 난 너랑 같이 가려고 회사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여 : 그래? 좀 일찍 말하지. 나 오늘 좀 일찍 출발해서...
남 : 그럼 나 다시 학교가서 저녁 먹어야겠다.
여 : 내가 거시기 역에서 기다릴까?
남 : 아냐. 학교가서 저녁 먹을게. 조심히 들어가.
여 : 어......
전 우울한 마음에 이건 뭔가 싶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서 술을 먹고 집에 들어갔는데 연락이 안 오더라구요. 그러다가 12시 넘어서 살짝 잠들었는데 전화가 왔어요.
남 : 잤어?
여 : 응..
남 : 아 그럼 됐어. 내일 빙판될지도 모른다니까 조심하고. 잘 자.
여 : 아니야. 왜?
남 : 아냐. 또 깨서 잠 안오고 그러지 말고. 자~ 끊어~
왔다.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집착의 블랙홀. 안타깝지만 낫을 들고 있는 해골바가지의 타로카드를 보는 느낌이다. 이제 둘 사이에는, 인내와 지쳐가는 시간만 남은 걸까? 그렇다고 여자분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 역시 신혼시절이 찾아와도 "매일 가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친구들이랑 등산 가는 건데, 그것도 안돼? 일요일엔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하다고." 라고 말할 기세다.
차라리 남자와 여자 말고 자웅동체로 만들었으면 이런일이 안 생겼을텐데, 하며 난 열심히 담배를 피우는 수 밖에 없다. 둘이 가지는 가치관이 너무 다르다. 이 상황이라면 여성분이 퇴근 후에 뭔갈 배우거나 등록해서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리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 그래도 여유시간마다 핸드폰을 보며 실망하는 집착의 병이 쉽게 낫진 않겠지만 말이다.
상대에게 연락이 없다고 화가 나 있지만, 막상 연락이 와도 그 연락이 기다림을 채워주지 못한다. 계속 목마름을 느끼는 것이다. 상대는 상대대로 연락을 많이 하려 노력하지만 효력이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겠지만, 남자친구말고 당장 마음쏟을 수 있는 걸 찾아보길 권한다. 그게 스스로 붕괴되는 모습 보이며 헤어지는 것 보다는 낫다. 서로의 입장만 늘어놓는 대화는 줄이길 바란다. 둘다 알려고는 하지 않고 알아주기만 바라고 있으니, 그런 얘긴 벽보고 하는 게 낫다. 최소한 갈등이 깊어지진 않을테니 말이다.
이게 또 사람 미치는 거다. 그냥 친구라면서 여자한테 연락오고, 그게 좀 기분 나쁘다고 말하면 이런 것도 이해 못 해주냐고 연애하면 주변 인간관계 다 끊어야 하냐고, 그 시베리안 허숙희 같은 여자애는 남친 싸이에 "오빠~ 여기, 전에 우리 갔던 곳이네~ 퍼가요~" 해 대는데, 남친폰에는 '우리숙희' 라고 저장되어 있어서 도대체 무슨 관계냐고 계속 물으니 소울메이트 같은 거라고.
고마워요 소울메이트. ㅅㅂ
결국 여자는 허숙희에게 "소울메이트라는 말은 연인사이에 쓰는 말인 거 같은데, 연인이 있는 남자에겐 안 쓰는게 좋지 않을까요?" 라고 얘기했다가, 허숙히가 울고불고 남친한테 전화를 해서 정신병자 아니냐느니 하는 말을 해대고.
고마워요 소울메이트. ㅅㅂ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친은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며 이색히는 내 편인지 허숙희 편인지 속을 긁어 놓고, 엄마도 모르는 알콜중독자가 되어 방바닥에 동그라미 그리고 있으니 시간 지난 후에 남친은 "내가 잘못한 게 많은 것 같다. 미안하다." 라는 문자만 덩그라니 보내 우울증 증상까지 추가 시키고, 겨우 힘내서 "그래도 진심으로 사랑했었어. 그동안 고마웠어."라고 답장을 하니 남친은,
"넌 좋은 기억만 가지고 살아. 난 상처받고 살게."
이렇게 손 발 로그아웃 하는 맞장구를 쳐줬다는 사연이 있었다.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먼저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저런 상황에서는 왜 기분 나쁠 수 있는지 알려주면 된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행동이 왜 상처가 되는 지를 모른다. 그래서 추천하자면, 상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거울작전을 쓰는 것이다. 물론, 절대 안전한 방법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이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생각하니, 남친이 돌변해서 이것들 머리털을 오늘 다 뽑아 버리겠다고 할 수도 있다.
만날 때 마다 "여긴 예전 여자친구랑 왔던 곳이야." 라거나 "이 노래 예전 여친이랑 같이 듣던 노랜데..." 라며 하이킥을 날리던 남자친구에게, "전에 사귀던 남자 차가 아반떼였어." 라는 얘기를 했더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그 자식 아직 못 잊는 거 아니냐고, 자신은 다 잊어서 한 말인데, 니가 한 말에는 미련 같은게 느껴졌다고, 난 이제 아반떼만 봐도 화가 날 것 같다고, 이런게 사람이니 말이다.
다시 한 번, 위의 얘기들은 성별을 바꾸어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얘길 적어둔다. "맞아요. 남잔 다 그래요." 같은 초딩적 사고만 가능한 사람들 때문에 내가 이 지겨운 얘기를 매뉴얼마다 박아둬야 하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시몬 너는 아느냐. (닉이 시몬이란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별 사연 모집한다고 했더니 양다리 중인데 어느 다리를 놓아야 겠냐고 묻지 말길 바란다. 지금은 즐겁겠지만, 훗날을 대비해 베이시스는 이런 노래도 불렀다.
-베이시스 <세상의 모든 이별> 중에서
좋은 프라이데이 나잇이다. (아직 나잇은 아니다.) 그대들의 그 심각하고 오묘하며 세상의 고민이 모두 담긴 듯한 걱정거리에서 한 발 물러나면, 인생이 즐겁다. 걱정이라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가면 아무리 정신을 차려도 잡기는 커녕 도망나올 수 밖에 없다. 호랑이는 그냥 호랑이 대로 놔 둬라. 호랑이 잡겠다고 금 같은 청춘을 심각한 표정으로 보내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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