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편안한 사이로 지내자고 매달리는 남자들
우리 동네의 가장 이해 안 가는 시설물이 벤치다. 이 벤치는 분명 이 동네에 살지 않거나, 이 동네에 살더라도 벤치에 앉을 일 없는 사람이 디자인 했을 것이다. 벤치라면 사람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동네의 벤치는 '앉아서 쉬는 기능'이 거세되어 버렸다. 오로지 '특이함'을 목적으로 만든 것 같다. 사진으로 찍어 올리면 독자들도 단번에 알 수 있을 텐데, 내가 그 벤치 옆을 지날 때면 그걸 디자인한 사람을 욕하느라 바빠 미처 사진을 찍을 시간이 없었으니, 간략히 글로 적어두도록 하자.
제일 위에는 침대매트만한 지붕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어른 다리통만한 네 개의 기둥이 가운데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부터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설계다. 지붕의 바로 밑은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공간을 기둥에 내 준 것이다. 기둥이 쉬라는 건지, 사람이 쉬라는 건지 알 수 없다. 그 기둥에서 반 발짝쯤 떨어져 큰 돌이 12시, 3시, 9시 방향으로 놓여 있다. 흔히 '벤치'라고 하면 등받이가 있는 나무 벤치를 떠올리지만, 이 벤치의 설계자는
라고 생각했는지 돌덩이를 놓아두었다. 대충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그 돌들은 매트만한 지붕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 그 돌들은 비가 올 땐 비에 다 젖게 되고, 햇빛이 강할 땐 작은 그늘도 없이 모두 햇빛에 노출된다. 이런 벤치가 신도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고르게 포진되어 있다. 지붕에 조명이라고 몇 개 붙여 놓긴 했는데, 그 밝기가 내 핸드폰 액정화면 최대 밝기와 비슷하다.
난 올 3월달까지만 해도 '저게 끝이 아닐 거야. 아직은 제작 중이라 저 정도만 기초공사를 해 놓은 거고, 조만간 덧붙여지는 큰 지붕이 설치되고, 돌과 돌 사이엔 진짜 등받이 있는 나무 벤치가 설치 될 거야.'라고 굳게 믿었다.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저기에 앉아서 쉴 수 없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게 '완성품'이었고, 5월이 되자 지붕의 조명엔 불이 들어왔다.
이렇게만 적어놓으면 내가 과장해서 말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기에, 방금 나가서 사진을 찍어왔다.
▲ 기둥들이 쉬는 걸 사람이 지켜봐야 하는, 답이 안 나오는 벤치.
친구들과 벤치에 앉으면 서로 기둥 사이로 얼굴을 확인하려 계속 목 운동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하고 싶지만, 벤치 얘기가 너무 길어지면 '시설물 관리자 매뉴얼'이 되어 버리니 이쯤하자. 여하튼 저런 벤치를 앉아서 편하게 쉬라고 만들어 두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상대를 계속 불편하게 만들면서 "부담은 갖지 않아도 된다. 편안한 사이로 지내자."고 말하는 남자들이 있다. 오늘은 그런 남자대원들의 이야기를 좀 해보자.
개와 주인의 친밀감에 대해 군견병으로 복무했던 친구가 해 준 이야기가 있다. 그 친구가 복무하던 부대엔 다른 군견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셰퍼드가 한 마리 있었다고 한다. 공식행사에서 군견 시범을 보이면 언제나 대표로 나섰던 군견인데, 얼마나 똑똑한지 그 군견은 계급장을 보고 자기 주인 병사보다 계급이 낮으면 으르렁 거리며 갈구기까지 했다.
그런데 주인 병사가 제대 한 후(병사인 까닭에 복무기간이 지나면 제대한다.) 녀석은 의욕을 잃은 채,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았다. 부대의 그 누구도 녀석을 훈련시킬 수 없게 되자 녀석은 퇴출될 위기에 놓였고, 그 소식을 부대 간부가 제대한 주인 병사에게 알렸다. 소식을 들은 주인 병사는 한걸음에 부대로 달려왔다. 주인 병사를 본 녀석은 언제 우울했었냐는 듯 신나게 날뛰었다. 다른 병사들이 먹이로 유혹하거나 겁을 줘도 들은 척 안 하던 녀석이, 주인 병사의 목소리만 듣고도 예전처럼 척척 따랐다.
군견과 주인 병사의 그 끈끈한 정이 막 느껴지지 않는가? 모든 군견병과 군견들이 위와 같은 친밀함을 가지는 건 아니다. 또, 저 주인 병사 역시 처음에는 그 군견과 그렇게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은 함께 공유한 시간 속에서 애정을 가꿨고, 그 애정이 무럭무럭 자라 2년 후 둘은 '상대가 아니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갑자기 군견 얘기를 꺼낸 것은, 상대에게 '편안한 사이로 지내자'고 말하는 남성대원들이 저 '애정을 가꾸는 시간'을 생략한 채 곧바로 상대에게 친밀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대와 만난 지 몇 주 되지도 않아 상대가 자신만 바라봐 주길 원한다. 멀리서 보자면 둘은 '이제 막 알아가는 사이'일 뿐인데, 그들은 남자친구라도 된 듯이 상대를 통제하려 한다. 상대가 카톡을 확인하지 않으면 전화를 하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몇 통의 부재중 전화 표시를 남긴다. 좀 심한 대원들은 상대의 사생활에 간섭하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상대에게 "나냐, 그 친구냐. 선택해." 따위의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한다.
애정을 키우지 못한 관계에서 상대에게 친밀감만 요구하면, 화를 내거나 애원하는 일 밖에 생기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그건 마치 어제 막 입양해 온 강아지가 "손, 앉아, 엎드려, 돌아. 빵. 악수……." 따위의 명령을 다 수행하길 바라는 것과 같다. 내 마음은 어떻고 내가 뭘 원하는지 말해준 적도 없으면서, 상대에게 내 마음 알아주길 애원하거나, 내 마음도 모른다며 상대를 갈구게 된다. 프랑스 사람이 그대에게 다가와 불어로 뭐라고 얘기한 후, 제발 알아들으라고 애원하거나 왜 못 알아 듣냐고 화를 내면 그대는 어떨 것 같은가? 이 황당한 녀석은 대체 뭐냐며 자리를 피할 것 같지 않은가? 그게 바로 그녀가, 그대의 연락에 더 이상 답장을 하지 않는 이유다.
지난주에 발행한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그녀에게 해선 안 될 행동들]에서 '훼이크'에 대해 이야기 한 적 있다. 편안한 사이에 만족하는 척 해놓고, 그녀가 다가오면 재빨리 태도를 바꿔
따위의 말로 상대의 마음을 떠보려 하는 행동. 그들은 오른손에는 '고백', 왼손에는 '편안한 사이'를 들고 있다. 상대에게 말을 걸 땐 '편안한 사이'를 내밀어 안심시킨다. 그걸 본 상대가 무장을 풀고 다가오면, 즉시 '편안한 사이'를 거두고 '고백'을 들이댄다. 그것도 새로운 고백이 아니라, 예전에 했던 고백을 재활용 한 고백이다.
이런 훼이크로 상대를 질리게 만들었다면 방법이 없다. 다시 고백해서 실패하면 또 편안한 사이 운운 하며 연락만이라도 하고 지내는 사이로 지내자고 하고, 그렇게 연락하다 상대를 떠보고, 상대가 부정적인 대답을 내 놓으면 별 거 아니었다는 식으로 다시 편안한 사이를 운운하는 것.
상대는 열심히 자기 마음을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대가 계속 '고백'과 '편안한 사이'를 번갈아 들이대니, 이 늪 같은 관계를 벗어나고 싶어진 것이다.
원래 훼이크는, 쓴 사람은 장난이었다며 가볍게 말하지만 당한 사람은 질색을 하는 법이다. 다단계에 빠진 친구가 그대에게 우정을 앞세워 계속 물건 살 것을 요구 한다면, 그대는 절교할 것 같지 않은가? 물건 얘기 좀 그만 하라는 그대에게, 그 친구가 "난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건 살 의사가 있나 물어본 건데 왜 그리 까칠해?"라고 말한다면, 그대는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얘기가 길어질까봐 자세히 적을 순 없고 짧게 적자면, 몇 년 전에 보험사에 들어간 친구가 계속해서 보험가입을 권하는 까닭에 곤란했던 적이 있다. 거절해도 막무가내로 선물을 보내고,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은 계속해서 문자로 보내며, 안부를 핑계로 연락해 보험 얘기를 하는 까닭에 난 그 친구의 번호를 스팸등록했다. 상대를 대하는 그대의 모습이 저 다단계에 빠진 친구, 보험사에 들어간 친구와 닮은 점은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외로움에 마음이 바싹바싹 타들어간다면, 그 마음부터 물을 축이든가 어떻게 좀 하자. 그렇게 말라 있다간 지나가던 여자사람이 길만 물어봐도 활활 타오르게 된다. 실제로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며 혼자 연애를 시작해 버리는 대원들이 많다.
저건 서로 알아가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뿐이다. 연애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사람의 키에 비유하자면, 저건 발바닥이다. 아직 발목도 안 온 거다. 저 관계에서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발목에 도달한 거다. 만남을 갖고 식사를 함께 한다면 무릎에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좀 더 발전해 긴 대화를 지루하지 않게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거나, 타인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면 허리쯤 온 거다.
상대 역시 연애가 궁한 상태가 아니라면, 최소한 무릎까지는 와서 고백을 해야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법인데, 연애 궁한 남자는 발바닥에서 고백을 한다. 관심에 목말라 하며 외로움에 허우적거리는 여자라면 그런 고백에도 승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대가 반할만한 매력이 있는 여자라면 발바닥이 간지럽다며 피할 것이다. 발목에서 고백을 하면 왜 발목을 잡냐며 피할 것이고 말이다.
둘의 관계는 발바닥이나 발목쯤인 상황에서, 상대에게 무릎 이상이라 생각하라고 강요하진 말자. 그건 권하거나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그대와 대화를 나누거나 연락을 하는 것이 편안해야 '편안한 사이'가 되는 것 아닌가. 무릎이나 허리쯤 까지 빨리 가려 상대에게 매달리지 말고 여유롭게 다가가길 권한다. 목적지까지 천천히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빨리 가려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분명 문제가 생긴다는 걸 잊지 말자.
끝으로 몇 가지 더 이야기 하자면, 남자친구의 역할은 남자친구가 된 뒤에 해도 충분하다. 연인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연인이 된 뒤에 해도 충분하고 말이다. 승부욕과 추격본능 등에 이끌려 상대가 부탁하지도 않은 일을 마구 벌이는 것도 자제하자. 데리러 안 가도 되고, 선물 안 해도 되니까 평소 자신의 모습에서 한 발짝 이상 멀어지지 말길 권한다. '착한남자'로 보이려 너무 연출하지 말잔 얘기다. 평상시의 모습대로만 하면 충분할 걸, 오버하다가 망치고 마는 대원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에게 확인 받으려 하거나 허락 받으려 하는 걸 멈추길 바란다. 편안한 사이로 지내자고 말 안 해도, 편안하게 다가가면 편안한 사이가 된다. 연락하기 전에 연락해도 되냐고 묻지 않아도 된다. 자꾸 카톡을 보내서 상대에게 미안하거든, 사과를 하기 보단 알아서 카톡을 줄이자. 동성친구와 친해지고 싶을 때 "나 너랑 친해지고 싶다. 괜찮지?"라고 묻는 사람 아무도 없지 않은가. 확인과 허락을 구하는 꼬꼬마의 마음을 내려두고, 다시 시작해 보길 권한다.
▲ 앉으라고 하기 전에, 앉을 자리가 편안한지 꼭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추천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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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의 가장 이해 안 가는 시설물이 벤치다. 이 벤치는 분명 이 동네에 살지 않거나, 이 동네에 살더라도 벤치에 앉을 일 없는 사람이 디자인 했을 것이다. 벤치라면 사람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동네의 벤치는 '앉아서 쉬는 기능'이 거세되어 버렸다. 오로지 '특이함'을 목적으로 만든 것 같다. 사진으로 찍어 올리면 독자들도 단번에 알 수 있을 텐데, 내가 그 벤치 옆을 지날 때면 그걸 디자인한 사람을 욕하느라 바빠 미처 사진을 찍을 시간이 없었으니, 간략히 글로 적어두도록 하자.
제일 위에는 침대매트만한 지붕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어른 다리통만한 네 개의 기둥이 가운데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부터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설계다. 지붕의 바로 밑은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공간을 기둥에 내 준 것이다. 기둥이 쉬라는 건지, 사람이 쉬라는 건지 알 수 없다. 그 기둥에서 반 발짝쯤 떨어져 큰 돌이 12시, 3시, 9시 방향으로 놓여 있다. 흔히 '벤치'라고 하면 등받이가 있는 나무 벤치를 떠올리지만, 이 벤치의 설계자는
'남들이 다 만드는 그런 나무 벤치는 식상해.
그런 벤치 대신 큰 돌덩이 세 개로 벤치를 대신하자.'
그런 벤치 대신 큰 돌덩이 세 개로 벤치를 대신하자.'
라고 생각했는지 돌덩이를 놓아두었다. 대충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그 돌들은 매트만한 지붕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 그 돌들은 비가 올 땐 비에 다 젖게 되고, 햇빛이 강할 땐 작은 그늘도 없이 모두 햇빛에 노출된다. 이런 벤치가 신도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고르게 포진되어 있다. 지붕에 조명이라고 몇 개 붙여 놓긴 했는데, 그 밝기가 내 핸드폰 액정화면 최대 밝기와 비슷하다.
난 올 3월달까지만 해도 '저게 끝이 아닐 거야. 아직은 제작 중이라 저 정도만 기초공사를 해 놓은 거고, 조만간 덧붙여지는 큰 지붕이 설치되고, 돌과 돌 사이엔 진짜 등받이 있는 나무 벤치가 설치 될 거야.'라고 굳게 믿었다.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저기에 앉아서 쉴 수 없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게 '완성품'이었고, 5월이 되자 지붕의 조명엔 불이 들어왔다.
이렇게만 적어놓으면 내가 과장해서 말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기에, 방금 나가서 사진을 찍어왔다.
▲ 기둥들이 쉬는 걸 사람이 지켜봐야 하는, 답이 안 나오는 벤치.
친구들과 벤치에 앉으면 서로 기둥 사이로 얼굴을 확인하려 계속 목 운동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하고 싶지만, 벤치 얘기가 너무 길어지면 '시설물 관리자 매뉴얼'이 되어 버리니 이쯤하자. 여하튼 저런 벤치를 앉아서 편하게 쉬라고 만들어 두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상대를 계속 불편하게 만들면서 "부담은 갖지 않아도 된다. 편안한 사이로 지내자."고 말하는 남자들이 있다. 오늘은 그런 남자대원들의 이야기를 좀 해보자.
1. 친밀감 요구
개와 주인의 친밀감에 대해 군견병으로 복무했던 친구가 해 준 이야기가 있다. 그 친구가 복무하던 부대엔 다른 군견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셰퍼드가 한 마리 있었다고 한다. 공식행사에서 군견 시범을 보이면 언제나 대표로 나섰던 군견인데, 얼마나 똑똑한지 그 군견은 계급장을 보고 자기 주인 병사보다 계급이 낮으면 으르렁 거리며 갈구기까지 했다.
그런데 주인 병사가 제대 한 후(병사인 까닭에 복무기간이 지나면 제대한다.) 녀석은 의욕을 잃은 채,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았다. 부대의 그 누구도 녀석을 훈련시킬 수 없게 되자 녀석은 퇴출될 위기에 놓였고, 그 소식을 부대 간부가 제대한 주인 병사에게 알렸다. 소식을 들은 주인 병사는 한걸음에 부대로 달려왔다. 주인 병사를 본 녀석은 언제 우울했었냐는 듯 신나게 날뛰었다. 다른 병사들이 먹이로 유혹하거나 겁을 줘도 들은 척 안 하던 녀석이, 주인 병사의 목소리만 듣고도 예전처럼 척척 따랐다.
군견과 주인 병사의 그 끈끈한 정이 막 느껴지지 않는가? 모든 군견병과 군견들이 위와 같은 친밀함을 가지는 건 아니다. 또, 저 주인 병사 역시 처음에는 그 군견과 그렇게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은 함께 공유한 시간 속에서 애정을 가꿨고, 그 애정이 무럭무럭 자라 2년 후 둘은 '상대가 아니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갑자기 군견 얘기를 꺼낸 것은, 상대에게 '편안한 사이로 지내자'고 말하는 남성대원들이 저 '애정을 가꾸는 시간'을 생략한 채 곧바로 상대에게 친밀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대와 만난 지 몇 주 되지도 않아 상대가 자신만 바라봐 주길 원한다. 멀리서 보자면 둘은 '이제 막 알아가는 사이'일 뿐인데, 그들은 남자친구라도 된 듯이 상대를 통제하려 한다. 상대가 카톡을 확인하지 않으면 전화를 하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몇 통의 부재중 전화 표시를 남긴다. 좀 심한 대원들은 상대의 사생활에 간섭하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상대에게 "나냐, 그 친구냐. 선택해." 따위의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한다.
애정을 키우지 못한 관계에서 상대에게 친밀감만 요구하면, 화를 내거나 애원하는 일 밖에 생기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그건 마치 어제 막 입양해 온 강아지가 "손, 앉아, 엎드려, 돌아. 빵. 악수……." 따위의 명령을 다 수행하길 바라는 것과 같다. 내 마음은 어떻고 내가 뭘 원하는지 말해준 적도 없으면서, 상대에게 내 마음 알아주길 애원하거나, 내 마음도 모른다며 상대를 갈구게 된다. 프랑스 사람이 그대에게 다가와 불어로 뭐라고 얘기한 후, 제발 알아들으라고 애원하거나 왜 못 알아 듣냐고 화를 내면 그대는 어떨 것 같은가? 이 황당한 녀석은 대체 뭐냐며 자리를 피할 것 같지 않은가? 그게 바로 그녀가, 그대의 연락에 더 이상 답장을 하지 않는 이유다.
2. 사귀거나 편안한 사이가 되거나?
지난주에 발행한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그녀에게 해선 안 될 행동들]에서 '훼이크'에 대해 이야기 한 적 있다. 편안한 사이에 만족하는 척 해놓고, 그녀가 다가오면 재빨리 태도를 바꿔
"근데, 전에 네가 한 대답, 변함없는 거지?"
따위의 말로 상대의 마음을 떠보려 하는 행동. 그들은 오른손에는 '고백', 왼손에는 '편안한 사이'를 들고 있다. 상대에게 말을 걸 땐 '편안한 사이'를 내밀어 안심시킨다. 그걸 본 상대가 무장을 풀고 다가오면, 즉시 '편안한 사이'를 거두고 '고백'을 들이댄다. 그것도 새로운 고백이 아니라, 예전에 했던 고백을 재활용 한 고백이다.
"원래 여자들은 부담스러우면 답장도 잘 안 하지 않나요?
고백 실패 후 오빠동생으로 지내기로 한 뒤로는 꼬박꼬박 답장이 잘 오는데,
지금은 제가 부담스럽진 않다는 얘기 같아요.
다시 한 번 고백해 보려고 하는데, 확실한 방법 없을까요?"
고백 실패 후 오빠동생으로 지내기로 한 뒤로는 꼬박꼬박 답장이 잘 오는데,
지금은 제가 부담스럽진 않다는 얘기 같아요.
다시 한 번 고백해 보려고 하는데, 확실한 방법 없을까요?"
이런 훼이크로 상대를 질리게 만들었다면 방법이 없다. 다시 고백해서 실패하면 또 편안한 사이 운운 하며 연락만이라도 하고 지내는 사이로 지내자고 하고, 그렇게 연락하다 상대를 떠보고, 상대가 부정적인 대답을 내 놓으면 별 거 아니었다는 식으로 다시 편안한 사이를 운운하는 것.
"이제 연락하지 마세요. 한번만 더 연락하시면 저 번호 바꿀 거예요."
상대는 열심히 자기 마음을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대가 계속 '고백'과 '편안한 사이'를 번갈아 들이대니, 이 늪 같은 관계를 벗어나고 싶어진 것이다.
"제가 카톡으로 물어본 것 때문에 그녀가 화 난 걸까요?
화는 날 수 있겠지만 저런 답장을 보낼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화는 날 수 있겠지만 저런 답장을 보낼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원래 훼이크는, 쓴 사람은 장난이었다며 가볍게 말하지만 당한 사람은 질색을 하는 법이다. 다단계에 빠진 친구가 그대에게 우정을 앞세워 계속 물건 살 것을 요구 한다면, 그대는 절교할 것 같지 않은가? 물건 얘기 좀 그만 하라는 그대에게, 그 친구가 "난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건 살 의사가 있나 물어본 건데 왜 그리 까칠해?"라고 말한다면, 그대는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얘기가 길어질까봐 자세히 적을 순 없고 짧게 적자면, 몇 년 전에 보험사에 들어간 친구가 계속해서 보험가입을 권하는 까닭에 곤란했던 적이 있다. 거절해도 막무가내로 선물을 보내고,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은 계속해서 문자로 보내며, 안부를 핑계로 연락해 보험 얘기를 하는 까닭에 난 그 친구의 번호를 스팸등록했다. 상대를 대하는 그대의 모습이 저 다단계에 빠진 친구, 보험사에 들어간 친구와 닮은 점은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3. 연애 궁한 남자
외로움에 마음이 바싹바싹 타들어간다면, 그 마음부터 물을 축이든가 어떻게 좀 하자. 그렇게 말라 있다간 지나가던 여자사람이 길만 물어봐도 활활 타오르게 된다. 실제로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며 혼자 연애를 시작해 버리는 대원들이 많다.
- 내 농담에 웃은 병원 데스크의 간호사.
- 나에게 유난히 질문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보이는 미용실 스텝.
- 같은 시간 버스를 타며 눈이 몇 번 마주친 이름 모를 여인.
- 밝게 웃어주는 회사 1층 테이크아웃 커피점의 여자사람 종업원.
- 냉커피가 먹고 싶다는 말에 냉커피를 타준 당구장 알바녀.
- 퇴근하고 맥주 한 잔 하자고 말한 여자 직장 동료.
- 나에게 유난히 질문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보이는 미용실 스텝.
- 같은 시간 버스를 타며 눈이 몇 번 마주친 이름 모를 여인.
- 밝게 웃어주는 회사 1층 테이크아웃 커피점의 여자사람 종업원.
- 냉커피가 먹고 싶다는 말에 냉커피를 타준 당구장 알바녀.
- 퇴근하고 맥주 한 잔 하자고 말한 여자 직장 동료.
저건 서로 알아가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뿐이다. 연애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사람의 키에 비유하자면, 저건 발바닥이다. 아직 발목도 안 온 거다. 저 관계에서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발목에 도달한 거다. 만남을 갖고 식사를 함께 한다면 무릎에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좀 더 발전해 긴 대화를 지루하지 않게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거나, 타인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면 허리쯤 온 거다.
상대 역시 연애가 궁한 상태가 아니라면, 최소한 무릎까지는 와서 고백을 해야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법인데, 연애 궁한 남자는 발바닥에서 고백을 한다. 관심에 목말라 하며 외로움에 허우적거리는 여자라면 그런 고백에도 승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대가 반할만한 매력이 있는 여자라면 발바닥이 간지럽다며 피할 것이다. 발목에서 고백을 하면 왜 발목을 잡냐며 피할 것이고 말이다.
둘의 관계는 발바닥이나 발목쯤인 상황에서, 상대에게 무릎 이상이라 생각하라고 강요하진 말자. 그건 권하거나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그대와 대화를 나누거나 연락을 하는 것이 편안해야 '편안한 사이'가 되는 것 아닌가. 무릎이나 허리쯤 까지 빨리 가려 상대에게 매달리지 말고 여유롭게 다가가길 권한다. 목적지까지 천천히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빨리 가려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분명 문제가 생긴다는 걸 잊지 말자.
끝으로 몇 가지 더 이야기 하자면, 남자친구의 역할은 남자친구가 된 뒤에 해도 충분하다. 연인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연인이 된 뒤에 해도 충분하고 말이다. 승부욕과 추격본능 등에 이끌려 상대가 부탁하지도 않은 일을 마구 벌이는 것도 자제하자. 데리러 안 가도 되고, 선물 안 해도 되니까 평소 자신의 모습에서 한 발짝 이상 멀어지지 말길 권한다. '착한남자'로 보이려 너무 연출하지 말잔 얘기다. 평상시의 모습대로만 하면 충분할 걸, 오버하다가 망치고 마는 대원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에게 확인 받으려 하거나 허락 받으려 하는 걸 멈추길 바란다. 편안한 사이로 지내자고 말 안 해도, 편안하게 다가가면 편안한 사이가 된다. 연락하기 전에 연락해도 되냐고 묻지 않아도 된다. 자꾸 카톡을 보내서 상대에게 미안하거든, 사과를 하기 보단 알아서 카톡을 줄이자. 동성친구와 친해지고 싶을 때 "나 너랑 친해지고 싶다. 괜찮지?"라고 묻는 사람 아무도 없지 않은가. 확인과 허락을 구하는 꼬꼬마의 마음을 내려두고, 다시 시작해 보길 권한다.
▲ 앉으라고 하기 전에, 앉을 자리가 편안한지 꼭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추천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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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처음하는 남자가 저지르는 안타까운 일들
착한 성격 때문에 연애하기 힘들다는 남자, 정말일까?
금사빠 남자가 여자를 좋아할 때 벌어지는 일들
전 여자친구가 망나니 같은 남자와 사귄다면?
여자가 이별을 결심하게 만드는 남자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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