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한 관심녀를 둔 남자, 대처하는 방법은?
K씨가 보내 준 -A4용지 421페이지의- 카톡대화는 잘 읽었다. 덕분에 눈이 빠질 뻔 했다. 사실 난 이 사연에 대해 K씨가 상대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상대 역시 '외로움 킬러'로 K씨를 고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아무 참견 없이 그냥 두면, 곧 여자의 마음이 누군가를 향해 뛰기 시작할 때 자연히 K씨로부터 멀어질 것이며, K씨 역시 그 시기에 살짝 집착 하다가 끝날 것이라 예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뉴얼을 발행하는 이유는, K씨가 상대에게 점점 말려 자신의 생활을 돌보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연을 읽으며 난, 이제 막 면허를 딴 남자가 스포츠카를 사려는 걸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초보라 운전이 미숙해 차에 파손이 생길 수 있는데, 스포츠카의 수리비는 일반차보다 월등히 높다. 또, 운전에 대한 감이 없는 상황에서 빠른 판단과 섬세한 조작을 요구하는 스포츠카를 몰다간 핸들 한 번 잘못 돌려 훅, 갈 수 있다.
저런 건 그냥 어젯밤 꾼 꿈 얘기 같은 거다. 상대가 딱 다섯 번만 더 남자를 만나 본 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K씨와 결혼하겠다고 하니까, 아이폰 예약주문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가? 그런 농담 같은 말 하나 붙잡고 상대에게 올인하다 결국 한강다리 찾아간 선배대원들이 많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한강물 차다. 자 그럼, 출발해 보자.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까닭에 아이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 다 들어주는 아빠가 있다고 해보자. 어느 날은 아이가 아빠에게 운전이 해보고 싶다며 차키를 달라고 한다. 아이는 아직 운전하기에는 한참 어린 열 두 살의 꼬꼬마다. 거절하면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봐, 또 그 상처로 인해 미움이라도 품게 될까봐 아빠는 아이에게 차키를 준다. 절대 사고 내지 말라는 얘기를 덧붙이며 말이다.
아빠의 저 행동을 두고 '자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상대의 요구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K씨의 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는 앞으로 다섯 명의 남자를 더 만나 본 후 K씨와 연애를 하겠다고 했다. K씨와는 결혼까지 할 생각이 있으니 그냥 연애로 끝내고 싶지 않다며, K씨와 사귀는 것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다른 남자들을 만나보겠다고 했다.
보통 상대가 저런 얘기를 하면 "피콜로 더듬이 빠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라고 대답해 주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인데, K씨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
그러니까, 제 정신이 아닌 거다. 가끔 K씨처럼 상대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다 받아 주곤 그게 지고지순한 태도라고 생각하는 대원들이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보통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한다고 해서 그게 '위대한 기다림'같은 게 아니라는 걸 먼저 깨닫길 바란다. 아이에게 차키를 주고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아빠의 기다림은, 그냥 멍청한 짓일 뿐이다. 마음 졸이고, 괴로워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는 일. 지금 K씨도 똑같이 하고 있지 않은가. 상대가 다른 남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놀러 가고, 연락을 주고받는 동안 K씨는 피가 바짝바짝 말라 간다.
따위의 평가라도 받고 싶은 것인가? 지금처럼 월급 탈탈 털어 선물 보내고, 저녁마다 상대가 구시렁거리는 소리들을 들어주고 있으면 언젠가 연애하게 될 거라 생각하는가? 틈날 때마다 상대 페이스북 모니터링 하며 "힘들지? 힘들 땐 실컷 울어." 따위의 말을 보내는 게 그레이트한 위로라고 생각하는가? 상대는 "왜 울라고 해? 나 울 일 없는데? ㅋㅋㅋㅋ 너 술 마셨어?"라는 전혀 다른 얘기하고 있는데? 영화, 소설, 만화적 상상력을 어서 내려두고 현실에 발 딛길 권한다.
소제목이 바로 지금 K씨가 처한 현실이다.
카톡대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 증거들을 보자.
그런데 또 저런 증거들과 달리 상대가 카톡으로 K씨를 장난스레 "여보"라고 부른 적도 있고, "보고 싶다." 등의 애정표현도 하기에, K씨는 헷갈리는 거다. 다정하고 연약한 그 모습이 진짜고, 위에서 보이는 저런 모습들은 아직 상대가 '말괄량이'인 까닭에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 버린다. '넌 참 좋은 사람이야'가 진짜고, '너랑 놀고 싶진 않아'가 가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카톡연애다. 주로 어장관리 하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건데, 상대 역시 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일상의 불만이나 하소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으면 죄다 늘어놓고, 마음이 들뜨는 날에는 스스럼없이 애정표현도 한다. 종종 "역시 너 밖에 없어."등의 이야기를 던지며 먹이를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정작 이쪽에서 뭘 좀 진행하려고 하면, "됐습니다. 괜찮습니다. 사양합니다. 아닙니다."라며 두 발짝 뒤로 물러난다.
당하는 사람들은 전부 '얘는 그래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런 애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K씨도 마찬가지 일 거라는 것에 며칠 전 선물 받은 내 멀티 퍼팩션 수퍼 크림을 걸 수 있다. 주름개선과 미백효과가 있는 기능성 화장품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상대가 K씨에게 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이야기들이다. 어디에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다거나, 누군가와 다투었다거나, 자기가 늙어가는 것 같아서 짜증난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 그러면 K씨는 그 말을 하는 상대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때로는 나서서 일을 해결해 주려 노력한다.
그 후엔 이런 일도 있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물론, 장난처럼 할 수 있는 얘기지만 K씨는 저걸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는 상대를 기쁘게 할 생각으로 저런 일들을 실제로 저지르려 한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아마 그는 조만간 백을 사서 보낼 것이다. 상대는 곰인형 선물 하나 받고도 며칠 동안 그 기쁨을 표현할 줄 아는 여자기에, K씨가 그녀를 더욱 기쁘게 하기 위해 무모한 일들을 벌일 가능성은 높다.
내 친구 중 하나도 그런 일들을 저지르다 한강다리를 찾은 적이 있다. 상대가 살찐 것 같다며 투정을 부리면 다이어트 약을 선물하고, 화장품에 대해 불평을 하면 화장품을 선물하고, 폰에 대한 불평을 하면 폰을 선물하고, 그러다 보니 차 사려고 모아놨던 돈을 그녀에게 다 쏟아 붓고, 나중엔 카드를 긁어가면서까지 그녀를 기쁘게 하려 노력했다. 그녀는 내 친구의 선물을 모두 고맙게 받았고 큰 선물에 대해서는 황송해 하며 눈물까지 흘렸지만, 지금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 내 친구는 그런 그녀를 두고,
라며 지금까지도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연애가 깨질 때마다 내 친구는 위로하겠다며 이것저것 사다 바치지만, 친구의 차례는 아직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스스로의 생활이 굳게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막연한 약속에도 기대고 싶어지는 법이다. 만나는 친구들이 있고, 꾸준히 마음을 쏟고 있는 취미가 있으며, 한 해의 계획을 세워 차곡차곡 살아갈 때에는 저런 이야기들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럴 땐
따위의 얘기에,
라며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K씨는 직장에서 돌아오면 상대의 불만이나 하소연을 들어주다 저녁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이면 또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까닭에, 상대의 약속에 기댈 수밖에 없다. 주말에 상대가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쁘면 미드나 보면서 기다리다가, 상대가 집에 돌아가는 시간에 통화하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듣고 있다. 그러다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다 싶으면 나서서 해결해 주는 식으로 말이다.
어떻게 해야 몇 년 후에 상대와 결혼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이런 답변을 해서 K씨가 살짝 충격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K씨 입장에선 저게 '장기전'이라 생각하며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일 테니 말이다. 상대를 향한 마음을 지키려고 다른 이성과는 얘기도 안 하는 그런 이상한 태도는 내려두고, '내일 일은 내일이 되어 봐야 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살기 바란다. 오늘을 유보한 채 미래의 어느 날만 기다리며 사는 사람에게는, 실망이 귀신같이 눈치 채고 다가오는 법이니 말이다. K씨 스스로의 삶을 먼저 돌보길 권한다. 자신을 돌볼 줄 모르면서 어찌 남을 돌보겠는가. 헌신을 돌봄이라 착각해 상대에게 무릎 꿇지 말자.
▲ 남자친구가 아빠역할'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지, 아빠역할'만'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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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가 보내 준 -A4용지 421페이지의- 카톡대화는 잘 읽었다. 덕분에 눈이 빠질 뻔 했다. 사실 난 이 사연에 대해 K씨가 상대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상대 역시 '외로움 킬러'로 K씨를 고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아무 참견 없이 그냥 두면, 곧 여자의 마음이 누군가를 향해 뛰기 시작할 때 자연히 K씨로부터 멀어질 것이며, K씨 역시 그 시기에 살짝 집착 하다가 끝날 것이라 예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뉴얼을 발행하는 이유는, K씨가 상대에게 점점 말려 자신의 생활을 돌보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연을 읽으며 난, 이제 막 면허를 딴 남자가 스포츠카를 사려는 걸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초보라 운전이 미숙해 차에 파손이 생길 수 있는데, 스포츠카의 수리비는 일반차보다 월등히 높다. 또, 운전에 대한 감이 없는 상황에서 빠른 판단과 섬세한 조작을 요구하는 스포츠카를 몰다간 핸들 한 번 잘못 돌려 훅, 갈 수 있다.
"이렇게 지내며 점점 가까워진 다음에, 몇 년 후 결혼하는 게 목표에요."
저런 건 그냥 어젯밤 꾼 꿈 얘기 같은 거다. 상대가 딱 다섯 번만 더 남자를 만나 본 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K씨와 결혼하겠다고 하니까, 아이폰 예약주문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가? 그런 농담 같은 말 하나 붙잡고 상대에게 올인하다 결국 한강다리 찾아간 선배대원들이 많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한강물 차다. 자 그럼, 출발해 보자.
1. 아이에게 차키 주는 아빠.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까닭에 아이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 다 들어주는 아빠가 있다고 해보자. 어느 날은 아이가 아빠에게 운전이 해보고 싶다며 차키를 달라고 한다. 아이는 아직 운전하기에는 한참 어린 열 두 살의 꼬꼬마다. 거절하면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봐, 또 그 상처로 인해 미움이라도 품게 될까봐 아빠는 아이에게 차키를 준다. 절대 사고 내지 말라는 얘기를 덧붙이며 말이다.
아빠의 저 행동을 두고 '자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상대의 요구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K씨의 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는 앞으로 다섯 명의 남자를 더 만나 본 후 K씨와 연애를 하겠다고 했다. K씨와는 결혼까지 할 생각이 있으니 그냥 연애로 끝내고 싶지 않다며, K씨와 사귀는 것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다른 남자들을 만나보겠다고 했다.
보통 상대가 저런 얘기를 하면 "피콜로 더듬이 빠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라고 대답해 주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인데, K씨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
"어, 난 기다릴 수 있어. 대신 네가 다섯 번의 연애를 하는 동안,
난 아무도 만나지 않고 기다릴 거야.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연애하고 와."
난 아무도 만나지 않고 기다릴 거야.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연애하고 와."
그러니까, 제 정신이 아닌 거다. 가끔 K씨처럼 상대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다 받아 주곤 그게 지고지순한 태도라고 생각하는 대원들이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보통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한다고 해서 그게 '위대한 기다림'같은 게 아니라는 걸 먼저 깨닫길 바란다. 아이에게 차키를 주고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아빠의 기다림은, 그냥 멍청한 짓일 뿐이다. 마음 졸이고, 괴로워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는 일. 지금 K씨도 똑같이 하고 있지 않은가. 상대가 다른 남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놀러 가고, 연락을 주고받는 동안 K씨는 피가 바짝바짝 말라 간다.
"너처럼 큰 이해심을 가지고 날 대해준 사람은 없어."
따위의 평가라도 받고 싶은 것인가? 지금처럼 월급 탈탈 털어 선물 보내고, 저녁마다 상대가 구시렁거리는 소리들을 들어주고 있으면 언젠가 연애하게 될 거라 생각하는가? 틈날 때마다 상대 페이스북 모니터링 하며 "힘들지? 힘들 땐 실컷 울어." 따위의 말을 보내는 게 그레이트한 위로라고 생각하는가? 상대는 "왜 울라고 해? 나 울 일 없는데? ㅋㅋㅋㅋ 너 술 마셨어?"라는 전혀 다른 얘기하고 있는데? 영화, 소설, 만화적 상상력을 어서 내려두고 현실에 발 딛길 권한다.
2. 넌 참 좋은 사람이야, 근데 너랑 놀고 싶진 않아.
소제목이 바로 지금 K씨가 처한 현실이다.
"넌 참 좋은 사람이야, 그런데 너랑 놀고 싶진 않아."
카톡대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 증거들을 보자.
(1)
상대 - 아 심심해.
K씨 - 통화할까?
상대 - 나 밥 먹을 거야.
(2)
상대 - 지원이도 커플 돼서 놀 사람이 없어.
K씨 - 그럼 나랑 놀아 ㅋ
상대 - 됐거든요.
(3)
상대 - 넌 근데 내가 어디가 좋아서 나랑 결혼 하려고?
K씨 - 다 좋아.
상대 - 그래. 꼭 나랑 결혼해라. 근데 내가 결혼해서 있으면 결혼 못 하네?
K씨 - 그렇지. 그럼 나 뭐하지?
상대 - 나 뺏으면 되잖아.ㅋ
(4)
K씨 - 크리스마스 때 만날까?
상대 - 크리스마스에 친척 오빠 결혼해서 지방 내려갔다 와야 해.
K씨 - 응 알았어.
상대 - 완전 처량하지 않냐? 크리스마스에 결혼식엘 가야해 ㅠ.ㅠ
K씨 - 그래도 간만에 친척들 보는 거니까, 좋게 생각해.
상대 - 아 심심해.
K씨 - 통화할까?
상대 - 나 밥 먹을 거야.
(2)
상대 - 지원이도 커플 돼서 놀 사람이 없어.
K씨 - 그럼 나랑 놀아 ㅋ
상대 - 됐거든요.
(3)
상대 - 넌 근데 내가 어디가 좋아서 나랑 결혼 하려고?
K씨 - 다 좋아.
상대 - 그래. 꼭 나랑 결혼해라. 근데 내가 결혼해서 있으면 결혼 못 하네?
K씨 - 그렇지. 그럼 나 뭐하지?
상대 - 나 뺏으면 되잖아.ㅋ
(4)
K씨 - 크리스마스 때 만날까?
상대 - 크리스마스에 친척 오빠 결혼해서 지방 내려갔다 와야 해.
K씨 - 응 알았어.
상대 - 완전 처량하지 않냐? 크리스마스에 결혼식엘 가야해 ㅠ.ㅠ
K씨 - 그래도 간만에 친척들 보는 거니까, 좋게 생각해.
그런데 또 저런 증거들과 달리 상대가 카톡으로 K씨를 장난스레 "여보"라고 부른 적도 있고, "보고 싶다." 등의 애정표현도 하기에, K씨는 헷갈리는 거다. 다정하고 연약한 그 모습이 진짜고, 위에서 보이는 저런 모습들은 아직 상대가 '말괄량이'인 까닭에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 버린다. '넌 참 좋은 사람이야'가 진짜고, '너랑 놀고 싶진 않아'가 가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대화 : 보고 싶어 -> 내일 볼까 -> 응, 내일 일 끝나고 웨돔에서 만나.
K씨의 대화 : 보고 싶어 -> 내일 볼까 -> 내일 나 바빠.
K씨의 대화 : 보고 싶어 -> 내일 볼까 -> 내일 나 바빠.
카톡연애다. 주로 어장관리 하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건데, 상대 역시 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일상의 불만이나 하소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으면 죄다 늘어놓고, 마음이 들뜨는 날에는 스스럼없이 애정표현도 한다. 종종 "역시 너 밖에 없어."등의 이야기를 던지며 먹이를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정작 이쪽에서 뭘 좀 진행하려고 하면, "됐습니다. 괜찮습니다. 사양합니다. 아닙니다."라며 두 발짝 뒤로 물러난다.
당하는 사람들은 전부 '얘는 그래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런 애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K씨도 마찬가지 일 거라는 것에 며칠 전 선물 받은 내 멀티 퍼팩션 수퍼 크림을 걸 수 있다. 주름개선과 미백효과가 있는 기능성 화장품이다.
3. '돌봄'과 '헌신'은 다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상대가 K씨에게 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이야기들이다. 어디에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다거나, 누군가와 다투었다거나, 자기가 늙어가는 것 같아서 짜증난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 그러면 K씨는 그 말을 하는 상대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때로는 나서서 일을 해결해 주려 노력한다.
상대 - 지원이 남친한테 곰인형 선물 받음 ㅋ 같이 나갔다가 나 뻘쭘했잖아.
K씨 - 곰인형? 걱정 마. 네 곰인형은 내가 사준다.
상대 - 됐거든요. 근데 곰인형 진짜 크더라. 큰 곰인형 처음 봄.
(며칠 후)
상대 - 헐. 집에 왔는데 곰인형 있어서 완전 깜놀. 뭐야!
K씨 - 내가 곰인형 사준다고 했잖아. ㅋ
상대 - 동생이 이거 누가 보낸 거냐고 계속 묻고 있음 ㅋㅋ
K씨 - 형부가 보낸 거라고 말해줘 ㅋ
상대 - 촉감 완전 부드러워. 고마워 ㅠ.ㅠ 이거 비쌀 텐데...
K씨 - 곰인형? 걱정 마. 네 곰인형은 내가 사준다.
상대 - 됐거든요. 근데 곰인형 진짜 크더라. 큰 곰인형 처음 봄.
(며칠 후)
상대 - 헐. 집에 왔는데 곰인형 있어서 완전 깜놀. 뭐야!
K씨 - 내가 곰인형 사준다고 했잖아. ㅋ
상대 - 동생이 이거 누가 보낸 거냐고 계속 묻고 있음 ㅋㅋ
K씨 - 형부가 보낸 거라고 말해줘 ㅋ
상대 - 촉감 완전 부드러워. 고마워 ㅠ.ㅠ 이거 비쌀 텐데...
그 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상대 - 아빠한테 생일 선물로 가방 사달라니까 아빠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K씨 - 뭐라고 하셨는데?
상대 - 가방으로 맞고 싶녜ㅋ
K씨 - ㅋㅋㅋ. 내가 가방 사줄게.
상대 - 진짜? 오예~
K씨 - 기분 좋아?
상대 - 웅웅.
K씨 - 뭐라고 하셨는데?
상대 - 가방으로 맞고 싶녜ㅋ
K씨 - ㅋㅋㅋ. 내가 가방 사줄게.
상대 - 진짜? 오예~
K씨 - 기분 좋아?
상대 - 웅웅.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상대 - 주름 때문에 진짜 짜증나. ㅠ.ㅠ
K씨 - 너 예쁜데 왜 그래. 주름 신경 쓰지 마.
상대 - 어케 신경을 안 쓰냐. 흑흑 아줌마 되어가는 듯. ㅠ.ㅠ
K씨 - 보톡스 맞으면 되잖아.
상대 - 보톡스 비싸.
K씨 - 내가 평생 보톡스 무료이용권 줄게. 남편 될 사람이 그것도 못 해주겠어? ㅋ
상대 - 정말? 성형도 포함이야?
K씨 - 응. 성형외과 전용카드 준다.
K씨 - 너 예쁜데 왜 그래. 주름 신경 쓰지 마.
상대 - 어케 신경을 안 쓰냐. 흑흑 아줌마 되어가는 듯. ㅠ.ㅠ
K씨 - 보톡스 맞으면 되잖아.
상대 - 보톡스 비싸.
K씨 - 내가 평생 보톡스 무료이용권 줄게. 남편 될 사람이 그것도 못 해주겠어? ㅋ
상대 - 정말? 성형도 포함이야?
K씨 - 응. 성형외과 전용카드 준다.
물론, 장난처럼 할 수 있는 얘기지만 K씨는 저걸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는 상대를 기쁘게 할 생각으로 저런 일들을 실제로 저지르려 한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아마 그는 조만간 백을 사서 보낼 것이다. 상대는 곰인형 선물 하나 받고도 며칠 동안 그 기쁨을 표현할 줄 아는 여자기에, K씨가 그녀를 더욱 기쁘게 하기 위해 무모한 일들을 벌일 가능성은 높다.
내 친구 중 하나도 그런 일들을 저지르다 한강다리를 찾은 적이 있다. 상대가 살찐 것 같다며 투정을 부리면 다이어트 약을 선물하고, 화장품에 대해 불평을 하면 화장품을 선물하고, 폰에 대한 불평을 하면 폰을 선물하고, 그러다 보니 차 사려고 모아놨던 돈을 그녀에게 다 쏟아 붓고, 나중엔 카드를 긁어가면서까지 그녀를 기쁘게 하려 노력했다. 그녀는 내 친구의 선물을 모두 고맙게 받았고 큰 선물에 대해서는 황송해 하며 눈물까지 흘렸지만, 지금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 내 친구는 그런 그녀를 두고,
"걘 진짜 여리고 순수한 앤데…."
라며 지금까지도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연애가 깨질 때마다 내 친구는 위로하겠다며 이것저것 사다 바치지만, 친구의 차례는 아직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스스로의 생활이 굳게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막연한 약속에도 기대고 싶어지는 법이다. 만나는 친구들이 있고, 꾸준히 마음을 쏟고 있는 취미가 있으며, 한 해의 계획을 세워 차곡차곡 살아갈 때에는 저런 이야기들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럴 땐
"내가 다섯 번만 찐하게 연애하고, 그 다음엔 너한테 시집갈게."
따위의 얘기에,
"그건 그때 가 봐야 아는 얘기지. 약속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우리 이렇게 연락 닿을 때 웃으면서 얘기하자."
그냥 우리 이렇게 연락 닿을 때 웃으면서 얘기하자."
라며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K씨는 직장에서 돌아오면 상대의 불만이나 하소연을 들어주다 저녁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이면 또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까닭에, 상대의 약속에 기댈 수밖에 없다. 주말에 상대가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쁘면 미드나 보면서 기다리다가, 상대가 집에 돌아가는 시간에 통화하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듣고 있다. 그러다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다 싶으면 나서서 해결해 주는 식으로 말이다.
어떻게 해야 몇 년 후에 상대와 결혼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이런 답변을 해서 K씨가 살짝 충격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K씨 입장에선 저게 '장기전'이라 생각하며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일 테니 말이다. 상대를 향한 마음을 지키려고 다른 이성과는 얘기도 안 하는 그런 이상한 태도는 내려두고, '내일 일은 내일이 되어 봐야 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살기 바란다. 오늘을 유보한 채 미래의 어느 날만 기다리며 사는 사람에게는, 실망이 귀신같이 눈치 채고 다가오는 법이니 말이다. K씨 스스로의 삶을 먼저 돌보길 권한다. 자신을 돌볼 줄 모르면서 어찌 남을 돌보겠는가. 헌신을 돌봄이라 착각해 상대에게 무릎 꿇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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