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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 밖에서, 그리고 집 안에서 찍으며 놀기

by 무한 2013. 6. 13.
비눗방울 밖에서, 그리고 집 안에서 찍으며 놀기
비눗방울 사진을 찍으려 얼마 전 버블건을 샀다. 비눗방울이 포도알만 했다. 내가 원하는 비눗방울은 '크고 아름다운' 것이었는데, 버블건이 내뿜는 비눗방울은 커봐야 거봉만 했다.

'이게 아니얏! 적어도 한라봉 정도 크기는 되어야 크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지!'


그래서 다시 마트에 갔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입으로 불어 비눗방울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사기 위함이었다. 비눗방울 용품 파는 곳에 한 아저씨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버블건을 처음 사 보는지, 아저씨는 돌고래 버블건과 오리 버블건 등을 들었다 놨다 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앵그리버드 버블건을 집어 들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이건 크기가 얼만 하려나….(비눗방울 크기를 모르겠다는 소리.)"


그 혼잣말이 내 오지랖 프로세서를 가동시켰다. 나는 친절한 농촌남자답게, 아저씨에게 '버블건이 아쉬운 세 가지 이유'를 설명해 드렸다.

"이거, 포도 알맹이만 한 비눗방울 밖에 안 나와요.
그리고 통에 들어있는 것 가지고는 얼마 못 놀아요.
리필용 비눗방울액 한 통 사셔야 해요. 
집에서 세재랑 물 섞어서 넣어봤는데, 버블건으로 비눗방울 안 불어지더라고요."



아저씨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를 처음 만난 베드로의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아이랑 자주 놀아주시나 봐요."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게 아니라, 비눗방울은 제가 가지고 놉니다."


라고 대답하면 아저씨가 당황할 것 같았다. 이제 나도 아빠로 보일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이 들어 보이는 거야 뭐,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가 내 나이를 듣고 가위를 떨어뜨린 적도 있으니…. 웃으며 대충 "네에…."하고는 수동 비눗방울 도구를 사서 나왔다.

그 주 주말. 공쥬님(여자친구)과 공원을 찾아 비눗방울 놀이를 했다.



▲ 작품명 <비눗방울 계속 불면 어지럽지>


수동 비눗방울 놀이의 가장 큰 단점은 '현기증'이 아닐까 싶다. AF(자동초점)로 비눗방울을 담으려 하면 카메라가 버벅이는 까닭에 MF(수동초점)로 사진을 찍었다. 그날따라 바람이 좀 불었기에, 카메라로 비눗방울을 쫓으며 초점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공쥬님은 열심히 비눗방울을 불고, 나는 비눗방울을 쫓으며 초점을 잡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공쥬님은 어지러워서, 그리고 난 힘들어서 벤치에 앉아 쉬어야 했다.





▲ 작품명 <작품명이랄 것 까지야>


셔터스피드는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1/100 sec 정도면 비눗방울을 정지 상태로 표현할 수 있다. 만약 집에서 세제로 만든 비눗방울이 너무 금방 터진다면, 글리세린을 넣어주면 된다. 글리세린은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100g에 평균 1000원 정도 한다. 비눗방울액 만들기 노하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세제와 물은 1:1로 섞고, 거기에 글리세린을 넣어주면 된다. 물과 세제 혼합액 8, 글리세린 2 정도면 적당하다. 마트에 가면 비눗방울액을 따로 팔고 있으니, 그냥 구입해서 사용하는 게 속 편하긴 하다.




▲ 작품명 <빛의 간섭>


각도를 잘 조절하면 비눗방울이 만들어내는 색까지 담을 수 있다. 비눗방울이 무지갯 빛을 띄는 이유는 표면의 반사광과 이면의 반사광이 간섭하기 때문인데, 난 문과생이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작품명 <빛망울, 비눗방울>


좀 더 예쁜 초록색을 얻기 위해 난 PL필터를 끼우고 사진을 찍었다. 그 때문에 중감도에서 셔터스피드 확보하는 게 더 어려웠다. PL필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닥 힘들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난 '동적인 사진' 보다는 '정적인 사진'에 최적화가 되었다. 그래서 실외가 아닌 실내에서 비눗방울 사진을 찍기로 했다.




▲ 작품명 <Bubble Planets>


'비눗방울 행성' 사진을 찍을 땐 넓은 면적의 조명이 필요하다. 넓은 면적의 소프트 박스가 있으면 좋지만, 일반 가정에 소프트 박스가 있을 리 없다. 위의 사진은 24W 스탠드에 확산판을 달아 촬영했다. 팁을 적자면, 스탠드의 불빛이 비눗방울에 최대한 근접해야 한다.




▲ 작품명 <Baby planet>


비눗방울이 처음 만들어 졌을 땐 투명하거나, 아주 단조로운 색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속으로 양을 스무 마리 정도 세면 색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게 딱 위의 사진과 같은 색이다. 따라서 찍어 본 사람 중엔 "그런데 제 비눗방울은 저렇게 소용돌이치지 않고, 층층이 색이 나타나 있을 뿐인데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사람에겐 "그럼 입으로 바람을 부세요. 참 쉽죠?"라고 대답해 주겠다.




▲ 작품명 <Gogh planet>


고흐의 <해바라기>와 <꽃 피는 아몬드 나무>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 이름을 <고흐 행성>으로 지었다. 세제로 비눗방울을 만든 뒤 "왜 제 비눗방울에선 저런 색깔이 나타나질 않죠?"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그에겐 "다른 재료로도 비눗방울을 만들어 보세요."라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난 3일간 거품이 나는 건 뭐든 가져다가 비눗방울을 만들며 열심히 색을 찾았다. "해답은 화장실에 있었습니다."라고만 적어두겠다.




▲ 작품명 <lollipop planet>


작품명을 그냥 막 갖다 붙이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텐데, 맞다. 딱 봐서 느낌이 오면 그 단어를 갖다 붙인다. 스탠드의 광량으로 사진을 찍기가 어려워 소프트박스를 만들었다. 호박즙 박스 한쪽 면을 잘라낸 뒤 A4용지를 붙이고, 뒤에 스트로보가 들어갈 구멍을 냈다. 안쪽에 쿠킹호일을 붙였으면 훌륭했겠지만, 집에 호일이 떨어진 관계로 그냥 사용했다. 나쁘지 않았다.




▲ 작품명 <Global warming>


지구온난화라는 제목은 너무 진부한 것 같아서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극지방의 느낌이 잘 나타난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붙여봤다. 위에서 비밀이라고 한 '재료'도 그냥 공개할까 한다. '바디워시'를 사용하면 색깔이 명확한 비눗방울을 얻을 수 있다. 바디워시 4, 물 4, 글리세린 2의 비율로 만들었다.


난 사진을 찍고 고르는 과정에서 A4용지에 사진 번호를 적는다.

"8914, 8957, 8991, 9015, 9034…."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랬더니 어느 날 내 방에 들어오신 어머니께서,

"너 요즘 뭐하니? 무슨 일 있니?"


라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으신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A4용지 가득 네 자리 숫자를 적어 두신 걸로 생각하신 것이다. 난 장난기가 발동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소리가 들려. 누가 자꾸 숫자를 불러주는데…."


어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웃으며 '사진 번호'임을 알려 드린 뒤에야 오해가 풀렸다. 어머니께선, 컴퓨터를 보며 숫자를 받아 적고 있는 내가 이상해 보였다고 한다.

'비눗방울 행성'사진은 나중에 조명기기를 사면 제대로 찍어서 올리기로 하고, 이번 포스팅은 여기서 마치겠다. 블로그 본문 가로 폭 때문에 사진을 580px로 올리고 있는데, 더 큰 사진은 노멀로그 갤러리(http://normalog.blog.me/)에 올려두록 하겠다. 80일 프로젝트 2주차, 난 두 번째 포스팅까지 성공했다. 그대는?



"비눗방울 행성, 또 다른 노하우는요?" 엄마나 와이프가 집에 없을 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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