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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썸인 줄 알았는데 소개팅 한다는 상대 외 1편

by 무한 2014. 7. 2.

썸인 줄 알았는데 소개팅 한다는 상대 외 1편

배찬씨, 병원에 가서 내 증상을 설명하면 의사가 그러잖아.

 

"뭐뭐(병명)인 것 같습니다. 무슨 일 하세요?

작업환경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연고 바르시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당분간 손에 물 많이 닿게 하지 마시고, 연고는 아침저녁 발라주세요."

 

그런데 의사가 저렇지 않고, 대신

 

"아…, 그런데 혹시 진단만 원하시는 거 아니시죠? 처방도 받으실 거죠?

이거 연고 바르면 나을 것 같긴 한데, 처방전 써 드릴까요?

제가 사실 피부과 전문의가 아니라 가정의학과 전문의이긴 한데…."

 

라는 얘기 하고 있으면 못 미덥고 뭔가 이상하지 않을까? 위의 의사와 아래 의사의 전공 및 경력 등이 모두 같다고 해봐. 그렇다 쳐도 분명 위의 의사에게 더욱 신뢰가 가지 않겠어?

 

 

1. 썸인 줄 알았는데 소개팅 한다는 상대.

 

썸녀가 좋으면 좋다고 표현을 해. 눈치 보며 그냥 배찬씨에게 상황이 좋게만 흘러가길 바라지만 말고 말이야. 우리, 복근이 없으면 박력이라도 있어야 할 거 아냐.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상대를 확 잡아끄는 과감함인데, 배찬씨는 상대의 뒤만 졸졸 쫓아가고 있잖아.

 

할 거야, 말 거야? 그것부터 딱 정해. 배찬씨 사연을 보면

 

ⓐ자주 얘기를 나누게 되면서 썸녀에게 호감이 생겼습니다.

ⓑ여친과 헤어지고 외로움에 느끼는 호감인지 정말 끌리는 건지 고민을….

ⓒ외로움 때문에 제가 그런 것 같아서 호감을 갖진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연락하다 보니 저는 분명 썸녀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호감이 생겼고, 저에 대한 썸녀의 호감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제 썸녀가 소개팅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 가슴이 덜컥….

 

갈팡질팡 하고 있거든. 배찬씨가 썸녀에게 간접적으로라도 호감을 표현한 적 있어? 없어. 이 모든 건 배찬씨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결론지어진 것일 뿐, 현실에선 그냥 연락 오면 연락 받고, 안 오면 연락하고 그 정도의 관계였지.

 

게다가 내가 배찬씨의 사연을 읽으며 더 황당했던 건,

 

"썸녀가 소개팅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 가슴이 덜컥…."

 

이라는 얘기를 하는 배찬씨 자신이, 썸녀가 해주는 소개팅을 받은 적도 있다는 거야. 배찬씨가 하는 소개팅은 착한 소개팅이고, 썸녀가 하는 소개팅은 배신, 배반, 쿠데타 뭐 그런 거야? 이걸 두고 배찬씨는

 

"그때는 썸녀랑 이런 썸이 없을 때고, 지금은 썸을 타는 것 같은 때니까…."

 

라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썸녀 입장에서도 생각해 봐봐. 썸녀에게 배찬씨는 소개팅 해주면 받는 오빠, 나에 대한 호감은 없어 보이는 오빠 같은 존재야. 그러니 자신이 소개팅을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거지. 배찬씨는 지금 썸을 타는 것 같으니까 즐겁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배찬씨가 아무 표현 하지 않으며 그냥 계속 수다나 떨고 있으면, 그때 썸녀 인생은 누가 책임져? 쇼핑에 비유하자면 배찬씨는 상대가 마음에 드니 그 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둔 것일 수 있는데, 상대에겐 그게 나중에 구매할지의 여부도 알 수 없이 배찬씨의 장바구니에 담겨져 있는 상황이라고.

 

그런데 배찬씨는 상대를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상황에서도 이상한 얘기를 하지.

 

"이 관계가 연애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썸녀는 제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썸녀가 그저 당장 외로워서 저랑 가까이 지내는 것일 뿐일까요?"

 

배찬씨, 내가 요즘 전기회로 공부하며 조만간 납땜도 해 볼 거거든. 인두랑 납, 기판 등은 아마 오늘 택배로 도착할 거야. 은사님께서 연습해 보라며 지원해 주셨어. 그런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땜질 제대로 못 하면 회로가 고장 날 수도 있다는데, 내가 고장 내진 않을까? 그리고 부품이 작은 것들이라 신속하게 땜질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처음 땜질을 해보는 내가 신속하게 할 수 있을까? 이런 내 질문들에 배찬씨는 뭐라고 대답할래? 일단 해 보고 얘기하라고 하겠지? 내가 땜질을 해보고 안 되면 안 되는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해야지, 점 보듯이 "잘 될까요?"라는 얘기만 하고 있으면 역시 막연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잖아.

 

배찬씨 노멀로그 애독자라며. 내가 그간 '고백은 상대와 30분 이상 부담 없이 통화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을 때 하자.' 등의 많은 힌트들을 남겼잖아. 애독자라면서 그런 거 하나도 사용 안 하고 돌다리만 두드리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배찬씨가 먼저 정해. 할 거야, 말 거야? 할 거면 지금처럼 손님 대접할 만한 음식점 뭐가 있나만 물어보고 끝내지 말고, 물어 본 뒤에 괜찮은지 둘이 사전답사 가 보자고 말해. 그러면서 밥 한 끼 또 같이 먹을 수 있잖아. 그렇게 이끌어 내. 카톡수다를 줄이고 전화와 만남을 늘려가. 그게 안 되면 계속 전화기 붙잡고 눈치 보며 '얜 나한테 마음이 있나, 없나….'하는 고민만 하게 될 수 있어. 그럴 경우 여자 쪽에서 대놓고 들이대면 연애로 이어지겠지만, 그게 아니면 그냥 우물쭈물 하다가 흐지부지 되고 말겠지.

 

"그런데 썸녀와 전 같은 직장이라…. 사내연애가 부담스러워 썸녀가 거절하지 않을까요?"

 

배찬씨, 떨어질 수도 있는 두려움이 있었을 텐데, 그 회사는 어떻게 지원한 거야? 여하튼 배찬씨는 지원을 했고 합격을 해서 회사원이 된 거잖아. 떨어질 게 무서워서 지원을 안 했으면, 여전히 취업 준비를 하고 있겠지. 나중 걱정은 나중에 일이 벌어지면 그때 하고, 일단은 지금을 용기 갖고 살아보자고. 알았지?

 

 

2. 연애 시작인 줄 알았는데 밀어내는 남자.

 

윤정씨, 이건 비밀인데 윤정씨가 나랑 이름이 비슷하니까 말해줄게. 나도 공쥬님(여자친구)의 살아온 환경이 나와 달라서 살짝 난감했던 적이 있었어. 난 한 끼에 한 사람이 만 원 이상의 돈을 들여 먹는 건 사치라고 생각하는 편이거든. 요즘은 물가가 많이 올라서 '두 사람에 삼만 원' 정도까지는 타협을 봤는데, 여하튼 무슨 날이라서 거한 걸 먹더라도 2인 5만원 전후에서 먹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그런데 공쥬님은 1인 기십만 원 하는 횟집에서 회도 먹고 그렇게 살아왔거든. 고기냄새에도 민감해서, 고기뷔페 이런 데는 가본 적도 없고 말이야. 과일도 나는 수박 참외 이런 것만 아는데, 공쥬님은 애플망고, 또 뭐였더라, 여하튼 난 처음 들어보는 과일들도 먹어봤고, 비행기도 난 신발 벗고 타는 건줄 아는 수준인데 공쥬님은 도장 많이 찍힌 여권이 있어.

 

반대로 컴퓨터나 카메라, 또는 취미용품 등의 분야에서는 공쥬님이 날 이해 못 하기도 해. 난 과일 같은 건 안 먹어도 카메라 렌즈 필터는 사는 쪽이거든. 먹거나 입는 건 그걸로 끝이지만, 사용할 수 있는 건 그걸로 또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 그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그래서 만약 공돈 200만원이 생기면, 그걸로 여행을 가기 보다는 카메라를 살 것 같아.

 

아무튼 이런 차이가 있어서 살짝 난감했어. 특히 가장 난감했을 때가 선물을 할 때였는데, 처음으로 여성 액세서리 쇼핑몰 들어갔을 때 나 심장마비 걸릴 뻔 했잖아. 먹지도 못 하는 핸드백이 기십만 원 인 거야. 백 단위의 제품도 있었고 말이야. 난

 

'이 돈이면, 책장까지 사은품으로 주는 세계문학전집 세트 살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 글쎄, 나도 좀 병적인 것 같아. 뭐 먹을 때도

 

'이 돈이면, 뼈해장국이 다섯 그릇인데…. 와플은 스무 개….'

 

하는 생각이 먼저 들거든. 어쨌든 난 공쥬님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은데,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제품보다 공쥬님이 먼저 사용하던 제품이 훨씬 좋고 비싼 거였어. 옷과 구두, 액세서리의 영역에서 공쥬님은 좋은 거 하나 사서 오래 쓰는 타입이고 나는 싼 거 여러 개 사서 쓰다가 버리는 타입이었거든. 그런데 선물을 다운그레이드 해서 할 순 없는 거잖아. 차라고 치면, 소나타 타던 사람에게 마티즈 선물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좀 난감했었지.

 

처음엔 그랬는데, 지금은 서로 타협을 해가며 배려하는 생활을 하고 있어. 공쥬님이 여전히 고기냄새에 민감하긴 하지만, 지금은 순댓국이나 해장국도 먹게 되었지. 내장탕은 여전히 힘들어 하지만 이것도 점점 적응할 것 같아. 나도 여행을 가는 것이나 기념일에 분위기 있는 곳에서 밥을 먹는 것에는, 기계나 해장국 가격과 비교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고 말이야. 아, 완전히 가치관이 같은 부분도 있기는 해. 바로 치킨을 시킬 때야. 치킨은 언제나 옳으니까.

 

내가 이 얘기를 길게 한 이유는, 윤정씨가 썸남과 만나며 한 이야기들이, 썸남에겐 충격과 공포였을 수 있었을 것 같기 때문이야. 우선, 윤정씨는 유학생 출신에 상대보다 직업과 관련한 스펙도 높잖아. 그런데다가 미래나 결혼에 대한 환상도 있는 까닭에 "난 나중에 이러이러하게 살겠다."라는 이야기를 한 게, 상대에게는 현실적으로 벅찬 이야기처럼 들렸을 수 있어. 윤정씨는 그냥 농담처럼 희망사항을 이야기 한 것일 수 있는데, 그게 상대에게는 농담으로 안 들리거든. 그리고 윤정씨는 자신에 대해

 

'이른 나이에 안정적으로 취직을 해서 경제력에는 문제가 없음.

다만 소비가 가끔씩 조절 안 될 때가 있음.'

 

이라고 적었는데, 카톡에서는 특별히 그런 부분을 못 봤지만 썸남과 둘이 만났을 때 돈 많이 드는 일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 하거나 행동했다면, 썸남이 살짝 선입견을 가졌을 수도 있어. 썸남이 한 대사 중에 "유학이 참 무섭긴 하네 ㅎ"라는 멘트 있잖아. 그건 썸남이 가진 가치관과 윤정씨의 가치관이 달라서 한 얘기고 말이야.

 

사실 난 저런 부분들보다 윤정씨와 썸남 사이에 문제가 된 건, 윤정씨의 육식녀 본능 때문이라고 생각해. 윤정씨는 윤정씨가 판을 다 짜놓고 남자보고 어서 들어오라고 잡아 이끄는 타입이거든.

 

"이런 애매한 사이 지속되면 어차피 나중에 지치게 되어 있어요. ㅎㅎ"

"제가 그만큼 붙잡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걸 눈치 빨리 챘어야 됐던 것 같아요."

"일주일 정도 생각해 보세요. 그 정도면 생각이 정리 되지 않을까요?

생각 다 정리하고 그때 보기로 해요. 알겠죠?"

 

남자의 추격본능을 잠재워버리는 무서운 멘트들이야. 저런 적극적인 윤정씨의 대시로 인해, 상대에게 윤정씨는 '갖고 싶은 여자'가 아니라 '떠맡아야 하는 여자'가 되어 버렸거든. 저건, 낚시에 빠져 갯바위 가겠다는 사람에게

 

"거기까지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뭐하러 가냐.

그냥 내가 수산시장에서 회 실컷 사줄 테니까, 가지 말고 나랑 놀자."

 

하는 거랑 비슷한 거야. 윤정씨가 상대를 따라 함께 낚시를 가든지, 아니면 상대가 혼자 낚시를 갈 경우 윤정씨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게 해줘야 하는 건데, 윤정씨는 "가지 말고 그냥 나랑 놀아."라며 상대를 잡아 끈 거야. 그리고 혼자 자폭하며 "제가 그만큼 붙잡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걸…."이라는 얘기를 하니까, 상대는 정말 점점 윤정씨를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일 수 있고 말이야. 어떤 다른 남자가 윤정씨에게 매달리며 저런 얘기를 했다고 생각해 봐봐. 그럼 그가 더 별로인 것 같고, 나아가 그에게 심술이나 부리고 싶다는 나쁜 마음까지 들게 될 것 같지 않아? 그리고

 

"오빠에게 나에 대한 마음이 없는 거면, 나도 마음 정리하겠다."

 

라는 얘기를 했으면 진짜 그럴 것처럼 행동해야해. 안 그러면 그냥 공갈협박이 되고 말거든. 저런 얘기 해놓고 며칠 후 다시 돌아서서 상대에게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대화를 해보자…."하면 상황이 우스워질 수 있어. 윤정씨는 자신이 그의 행동을 오해하는 거냐고 물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남자가 겁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 그런 와중에 윤정씨가 육식녀의 모습을 보이니 그가 더 겁먹은 것 같고 말이야.

 

난 윤정씨가 말한 대로 그를 기다리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고, 연애 할 생각 접어두고 그와 썸을 탈 때처럼 좀 더 지내는 걸 권해주고 싶어. 내가 보기에 윤정씨는 그가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허영심에 부풀어 있거나,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꽉 차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래서 만나다 보면 그런 오해는 자연히 해결될 것 같아. 그리고 상대 역시 지금은 사내연애에 대한 부담과 윤정씨에 대한 약간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 역시 친해지면 자연히 해결될 거야. 그는 현재 자신에게 없는 부분들을 윤정씨가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겁먹은 거거든. 만나다 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 다 접고 도망치기 보다는, 당장 연애를 시작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만 버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 화이팅!

 

 

오늘은 데이트가 있으니 배웅글은 생략하자. 다들 즐거운 수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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