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과국토종주-2부] 태풍과 뱀, 그리고 이화령.
장인어른과의 자전거 국토종주 둘째 날이 밝았다. 첫 날의 기분이 '면허를 막 딴 꼬꼬마가 운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면, 둘째 날의 기분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운전하고 와서 이제 좀 쉬고 싶은 마음'이었다. 손은 저렸고, 엉덩이는 얼얼했으며, 허벅지는 찌뿌듯했다.
사실 그것보다도, 전날 사고로 다친 발목과 허벅지가 문제였다. 허벅지는 검푸르게 변해 부어올랐으며, 발목은 딛을 때마다 발목 관절 사이에 이물질이 하나 들어가 있는 듯 느낌이 더러웠다. 아팠다기 보다는 더러운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관절을 꺾어 '뚝'소리 한 번 나고 나면 시원해질 것 같을 때의 느낌이 있지 않은가. 바로 그 느낌이었는데, 발목을 아무리 돌리고 꺾어 봐도 '뚝'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진통제를 먹고, 파스를 뿌렸다.
파스를 뿌리는 나를 보며 장인어른께서 말씀하셨다.
"마취됐어? 마취됐을 때 얼른 가."
그렇게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충주 탄금대로 출발했다.
탄금대까지 가는 길에는 정규코스인 '목행교 건너가는 길'과 우회코스인 '중앙탑공원 지나가는 길'이 있다. 우리 이전에 두 길을 모두 가 본 친절한 선행자가 후자를 추천해준 까닭에, 우리도 후자를 택했다. 중앙탑공원 쪽으로 가는 길에 중원고구려비도 있고, 또 그쪽 풍경이 더 좋다고 해서 그 길을 택한 것이다.
계획은 그랬지만, 우리는 중원고구려비를 보러 가거나 중앙탑공원에 들어가지 않았다. 장인어른과 나의 몸 상태가, 5세기 무렵 고구려와 신라와의 관계를 알려주는 역사적 유물 같은 걸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는 머리 위에서 '너희가 자외선을 아느냐'라고 말하는 듯 내리쬐고 있었고, 전 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자 선크림을 듬뿍 발랐더니 이번엔 그 냄새 때문인지 벌들이 엉덩이를 들이밀며 달려들었다.
아, 장인어른과 나 둘 모두 비염환자인 까닭에 이 날 아침부터도 여전히 훌쩍였다.
장인어른께서는 이날, 과거 미국에 계실 때의 이야기를 내게 주로 해주셨다. 내가 하는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미국 얘기'로 받으셨는데, 대략 묘사하자면 이렇다.
장인어른 - (파스로)마취하니까 좀 괜찮아?
무한 - 다른 곳은 그래도 괜찮아 졌는데, 손바닥이 계속 아프네요.
장인어른 - 손바닥…. 미국 가로질러서 운전 해봤어?
무한 - 아니요.
장인어른 - 내가 **에서부터 *****까지 운전해봤는데,
그렇게 운전하면 나중엔, 핸들을 잡은 손까지 아파져.
어떻게 (자세를)바꿔 앉아도 허리랑 목이 아프고…(생략).
지명과 자세한 설명들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내가 미국을 가 본 적 없기에 기억 저장에는 실패했다. 어디에 가면 뭐가 있고 거기에선 뭘 하거나 뭘 먹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미국의 지명이 생소한 까닭에 그게 미국 어디쯤에 있는 도시인지를 연결하지 못 했다. 다만 장인어른 경험담의 '생생한 느낌'은 나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아, 장인어른과 대화를 할 때에는 끝까지 다 들어봐야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장인어른께서 웬만한 작가 뺨을 칠 만한 '반전'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장인어른께서 해주신, 미국 어느 지역에 있는 '바다와 가까운 다리'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자면 이렇다.
장인어른 - 그때 거기 통행료가 일 불. 일 불 내면, 언제 건너든 자유인 거지.
무한 - 아, 네.
장인어른 - 그 위에는 차가 다니고, 아래에는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어.
아래쪽에 가면 바다랑은 한, 오륙미터? 그 정도 돼.
무한 - 아, 네.
장인어른 - 거기 갈 때는 낚싯대도 필요 없어.
새우 살아있는 거 있지? 대하 같은 거.
무한 - 네.
장인어른 - 그거랑 뜰채만 딱 가지고 가는 거야.
무한 - 새우를 미끼로 쓰는 거네요.
장인어른 - 그렇지. 거기가면 (두 팔을 바깥으로 펴시며) 이만한 놈들.
정말 이만한 놈들이 물속에서 어슬렁어슬렁 거리고 있어.
무한 - 이햐.
장인어른 - 그럼 새우를 줄에 묶어서 딱 내리는 거야.
옆에서는 고기 오면 뜰채로 뜰 준비 하고.
무한 - 완전 노다지네요.
장인어른 - 고기 엄청 건졌을 것 같지?
무한 - 네. 거의 퍼 담다시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장인어른 - 한 마리도 안 잡혀.
무한 - 네?
장인어른 - 얘들이 오다가도
뜰채를 보면 기가 막히게 알고 도망가는 거지.
무한 - 아….
장인어른 - 그림의 떡이지. 그림의 떡.
때문에 난 '설레발 리액션'을 꺼냈다가 몇 번이나 뒤통수를 맞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젠 장인어른의 친구 분이나 가족들에게 '다 아는 이야기'가 된 장인어른의 과거.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눈을 반짝이며 들어주지 않을 그 이야기들을, 내가 다시 열렬한 청자가 되어 듣고 있으니 장인어른께서도 즐거워하시는 것 같았다. 다시 꺼낼 일 없을 것 같아 장인어른 혼자만 간직하고 계시던 그 이야기들은, 내가 귀를 기울이자 생명이 불어 넣어진 듯 춤을 추며 세월의 먼지를 털어냈다.
아 근데 장인어른 과장법 좀 쓰시는 듯. ㅋ
탄금대에 도착해 인증도장을 찍은 뒤 '아점(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장인어른과 식사를 위해 메뉴를 고를 때 난 항상 몇 번이고 다시 여쭤봤다. 장인어른께서는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좀 분명하신 편인데, 내가 여쭤보면
"그거? 그래 좋지."
라며 '무조건 긍정'을 해버리시기 때문이다. 오래 전 장인어른과 단둘이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 난 개인적으로 얼큰하고 꼬릿꼬릿한 것을 좋아하는 까닭에 '내장탕'을 제안했었다. 그때 장인어른께서는
"내장탕? 그래 좋지."
라고 답하셨는데, 막상 식당에 도착해 음식이 나왔을 때 장인어른께서는 밥공기 뚜껑에 내장을 다 덜어내셨다. 난 음식이 뭔가 이상하냐고 여쭈어 봤는데, 그 물음에도 장인어른께서는
"아냐. 좋아. 국물이 얼큰하네."
라고 대답하실 뿐이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공쥬님(여자친구)에게 물어보자, 공쥬님은
"아빠가 내장탕을? 아빠 그런 거 안 드실 텐데…."
라고 말했다. 장인어른께서는 얼큰하고 꼬릿꼬릿한 내장탕 보다는 맑고 깔끔한 갈비탕을 선호하시는 타입인데, 난 그걸 몰랐다. 게다가 장인어른께서도 내가 제안한 메뉴를 당신께서 거절하기가 좀 그러셨는지, 그냥 국물 조금에 깍두기와 밥을 드시면서도 내색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난 이번 국종 중에도 식사를 앞두고는 종종 공쥬님에게 연락해
"아버지 순댓국 드시나? 소머리국밥이나 순댓국 둘 중 뭐가 더 나을 것 같아?"
라고 물으며 '여친 찬스'를 썼다. 장인어른께서는 음식에도 조예가 깊으신 까닭에, 갈비탕을 먹을 때에도 거기 들어간 고기가 어떤 고기이신지를 금방 파악하신다. 반찬이나 고춧가루, 들깨가루, 참기름 등이 국산인지 중국산인지도 금방 파악하시는 까닭에 이번 국종 중 식사 때마다 <반찬학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더불어 "이 음식은 여기 보다는 어디에 있는 어느 식당이 더 낫다."라는 평을 해주셨는데, 그걸 다 메모해 두었으니 조만간 맛집 투어도 할 생각이다.
장인어른과 공쥬님에게는 '발견의 재능'이 있다. 같은 길을 가면서도 내가 발견하지 못 한 걸 금방 발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장인어른과 공쥬님이 주운 휴대폰, 카메라, 시계, 지갑 등을 다 합치면 소형차 한 대 정도는 살 수 있을 정도다. 얼마 전에도 셋이 함께 출판단지까지 라이딩을 하다가, 스마트폰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해 주인을 찾아주었다. 난 뭔가를 줍게 되면 폰이나 지갑을 제외하곤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며 고맙게 사용하곤 하는데, 장인어른과 공쥬님은 주인을 찾아 준다. 공쥬님의 경우는 많은 현금이 든 가방을 정류장에서 주운 적도 있는데, 그 주인을 수소문해서 찾아주었다. 주인은 어느 할머니셨는데, 집 계약금이 든 가방이라고 했다.
'줍는 것'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우리 어머니시다. 요즘 우리 어머니의 '줍기 운'은 인생 최고조에 다다랐는데, 이젠 사물을 줍는 것에서 벗어나 생명체를 주워 오신다. 박새를 주워오신지 얼마 되지 않아 사슴벌레를 주워 오시더니, 얼마 전에는 딱따구리도 주워오셨다. (설명을 들어보니)황조롱이로 보이는 새도 주워 오시려고 했는데, 그건 좀 무섭게 생겨서 안 주워오셨다고 한다. 이건 나중에 <어머니가 주워 오신 것들>이라는 포스팅을 하려고 차곡차곡 사진을 모으는 중이다. 아, 장인어른과 공쥬님은 물건의 주인을 찾아주지만 우리 어머니의 경우는 나와 똑같이 '하늘이 준 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머니는 뭔가를 주우시면 그걸 소중하게 가져오셔서는 내게
"이거 좋은 거야? 쓸 수 있는 거야?"
라고 물어보시곤 한다. 그럴 땐 내가 전당포 사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산책하다 새를 주워 오신 날에는, 내게 얼른 새 사진을 찍으라고 재촉하시는 까닭에 살짝 피곤하기도 하다.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장인어른께서 각종 사물이나 생명체 들을 발견하셨기 때문이다.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자전거 부품이라든가 여행용품을 발견하셨고, 도마뱀이나 뱀, 개구리, 고라니, 특이하게 생긴 새 등도 발견하셨다. 국종 코스는 강 옆이라 위의 사진과 같은 곳을 지날 때가 많은데, 저럴 때에도 난 '경치 좋네'라고 생각하는 동안 장인어른께서는
"저기, 뱀. 뱀이 헤엄쳐서 물 건너네."
라며 뱀을 발견하곤 알려주셨다. 발견에 최적화 된 어떤 유전자 같은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사진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아니, 저기서 좀 더 가면 수안보 온천인데, 거기서 무료 족욕탕에 발을 담글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새재자전거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소조령'과 '이화령'고개를 앞두고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우리는 마음이 급해져 대화를 생략한 채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이 날 장인어른과 날 곤란하게 만든 일등공신은 내 '오지랖'이었다. 난 종주 중 어려움에 처해 길가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도와줬는데, 그러는 동안 지체된 시간이 우리 계획의 발목을 잡았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빠진 라이더를 만났을 때 난 내 펌프로 바람을 넣어줬는데, 주입구 타입이 달라 펌프 헤드를 교체하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자전거 체인이 끊어진 라이더를 만났을 때에도, 내가 가져간 체인툴로 수리를 해주다 삼십 분 가량을 버리고 말았다.
일상에서 그 정도 시간이라면 별것 아니었겠지만, 날이 어두워지는 시점에 가야할 길이 멀고, 또 숙소도 잡지 못한 상황에서의 삼십 분은 엄청난 문제를 불러왔다. 난 그들이 자전거 수리점도 없는 곳에서 자전거가 고장 나 얼마나 난처한 심정일지를 생각하며 도와준 것인데, 그러느라 정작 내 갈 길을 못 간 것이다. 내가 남의 자전거 수리를 하는 동안 멍하니 서서 시간을 버리셔야 했던 장인어른께서도 좀 짜증이 나신 눈치였다. '자전거 주인이, 내가 자신의 자전거를 고치는 동안 라이트도 비춰주지 않고 수다만 떨고 있었던 것'에 대해 장인어른은 분노하셨다고 나중에 몇 번이나 내게 이야기 하셨다.
여하튼 소조령은 그럭저럭 무사히 넘었다. 장인어른께서는 자전거를 탄 채 얼른 넘어버리고 싶어 하시는 눈치였지만, 내 몸 상태가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갔다. 끌고 올라가는데도 다친 발목의 '더러운 느낌'이 계속 나서 솔직히 힘들었다. 장인어른께서는 등산을 취미로 하시고, 또 걸음이 빠르신 까닭에 함께 끌고 올라갈 때에도 금방 가셨는데, 그럴 때마다 난 파스를 뿌린다, 소변이 마렵다는 핑계들로 멈춰 서서는 잠깐씩 쉬었다.
소조령을 넘고 나자 이화령이 나타났다.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힘겨울 정도의 경사는 아니었지만, 그 길이가 5km나 되다 보니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난 1km쯤 타고 오르다, 이러다간 종주고 뭐고 집에 가야 할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서 그냥 다시 내려서 끌었다. 이미 날은 완전히 어두워진 상태였고, 2km 정도 갔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서 말하던 16호 태풍 '풍웡'이 예상보다 빨리 온 것이다. 예보 상으로는 비가 24시부터 내린다고 해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비는 다섯 시간 정도 일찍부터 내렸다.
이 이후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생각하려 해도 멘탈이 붕괴된 상태였던 까닭에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자전거 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오르던 것, 거친 숨소리, 젖은 신발, 강풍, 산 속 나무들이 비를 튕겨내는 소리, 장인어른께서 "뱀! 뱀! 뱀!"이라고 외치시던 소리가 기억난다. 발견의 달인이신 장인어른께서 내 바로 앞에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을 발견하시곤 외치신 건데, 난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어억…, 허억…, 허어억…, 뱀, 이요? 허억…."
하며 그대로 뱀을 자전거로 밟곤 지나가 버렸다. 공사 중인 곳에서 물을 끌어다 쓰느라 도로에 놓아둔 호스, 그걸 자전거로 밟고 지나갈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이화령을 오르며 '내가 오지랖을 펴지만 않았어도 우린 벌써 이 고개들을 다 넘고 문경에 도착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기억난다.
사진이 없으니 둘째 날 이동한 거리가 나와 있는 속도계 사진을 먼저 올려둔다. 드디어 이화령 정상에 올랐을 때, 난 발목이나 허벅지의 통증보다 추위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꼼꼼한 성격의 장인어른께서는 터널 안으로 비를 피한 뒤 짐을 다 꺼내 비닐포장을 하자고 하셨는데, 내겐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특히 그 터널 안으로는 미친듯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까닭에 잠깐 들어갔다가도 다시 나와 버렸다. 차라리 터널 밖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게 오히려 더 따뜻했다. 때문에 장인어른께서 내 짐까지 비닐포장을 해주셨다. 장인어른 죄송합니다. 이 저질체력의 사위 때문에….
난 비가 몰아치는 와중에 산을 내려가 문경까지 또 달려가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그냥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눈을 뜨는 순간 여기가 내 방이었으면….'하는 생각을 했다. 춥고, 배고프고, 피곤하고, 졸리고, 어둡고, 비에 젖어 찝찝하고, 라이트를 켜도 안개 때문에 앞은 잘 보이지 않고….
그래도 어쨌든 이화령에서 내려와야 숙소를 잡든 밥을 먹든 할 수 있는 까닭에 내려왔다. 스마트폰 어플 중 자전거 속도 관련 어플로 '이화령 구간을 가장 빨리 넘은 사람' 순위를 매기는 것 같던데, 아마 '이화령을 가장 천천히 넘은 사람'을 뽑는다면 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비와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거기다 젖은 낙엽들이 도로에 수두룩한 까닭에, 온 신경을 브레이크 잡는 것에 집중하며 내려왔다. 난 그때 생에 처음으로
'이렇게 브레이크를 한참동안 꽉 잡고 있다간,
손이 마비되어 더는 브레이크를 잡지 못 하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당시 내가 느꼈던 손의 통증을 경험해 보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지금 손을 들어 '쥐었다 폈다'를 500번 쯤 해보시길 권한다. 쥐었다 폈다를 처음과 같은 속도로 못 할 경우 브레이크가 안 잡힌다고 상상해보면, 당시 내가 느꼈을 공포를 체험하실 수 있을 것이다. 아, 브레이크를 잡고 내려가는 중에도 바퀴에서 튀는 물이 입과 코, 눈으로도 들어온다. 철인이신 장인어른께서도 이 날 이화령 내리막에 대해선
"중간쯤 내려오다 보니 검지와 중지가 마비되어,
괴상하지만 약지와 새끼손가락으로 브레이크를 잡았다."
"손이 너무 아파 손을 털어서 풀고 싶은데,
브레이크에서 손을 놓으면 죽을 수도 있는 까닭에 그럴 수 없었다."
"입과 코로 물이 들어와 '어푸어푸'하면서 내려왔다."
라고 고백을 하셨다. 이화령 내리막이 7km라고 한다. 장인어른과 나는 둘 다 손이 마비된 채 거의 울다시피 하며 그 7km를 내려왔다.
문경에 도착했을 때 장인어른과 나는 그로기 상태였다. 가드를 올릴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권투선수와 비슷했다고 할까. 처음 우리 계획은 일찍 문경에 도착해 삽겹살도 좀 구워먹으며 쉬는 것이었는데, 우리가 문경에 도착했을 땐 문경 모든 식당과 술집이 문을 닫은 뒤였다. 지방에선 저녁 10시를 전후해 거의 모든 식당이 닫는다고 했다.
다행히 문을 연 편의점이 하나 있어 편의점 음식을 잔뜩 사왔다. 너무 배가 고픈 까닭에 눈에 보이는 건 거의 다 사왔는데, 장인어른과 난 피곤한 까닭에 반도 먹지 못하고 냉장고에 넣어둔 채 잠이 들었다. 차라리 다음 날 비든 태풍이든 심하게 몰아쳐 문경에서 하루 더 쉴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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