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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과국토종주-3부] 식당을 못 가.

by 무한 2014. 11. 25.

[장인어른과국토종주-3부] 식당을 못 가.

태풍 때문에 장인어른과 난 문경에서 2박을 해야 했다. '프로포즈'라는 이름의 모텔에서 장인어른과 두 밤을 보냈는데, 모텔 이름 때문인지 기분이 묘했다.(응?)

 

문경에 도착한 날, 장인어른과 난 이왕 문경에서 하루를 더 보내게 되었으니 남는 하루 동안 문경 관광을 하기로 계획했지만, 다음 날 계속 비도 왔거니와 우리 몸 상태가 관광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까닭에 계속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던 중 편의점에 가 보니 생전 처음 보는 술들이 있어 난 종류별로 술을 사왔는데, 장인어른께서는

 

"수면제를 뭐 그렇게 많이 사왔어?"

 

라시며 좋아하셨다. 대표적인 두 세 종류의 술로 통일된 수도권 지역과 달리, 그곳엔 '무슨무슨 상'을 받았다는 술들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인상 깊었던 일들이 두어 가지 더 있는데, 글만 많아지면 여행기가 지루하니 일단 출발을 알리는 사진 한 장 띄워두고 시작해 보자.

 

 

 

 

그곳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이 외국인이라는 게 놀라웠다. 쌍꺼풀이 진하고 속눈썹이 길며 피부색이 진한 남자 종업원이

 

"소주? 뭐 줘? 참?"

 

이라고 묻는 게 낯설었다. 나중에 보니까 주방에 있는 아주머니와 한국말로 대화 잘 하던데, 주문 받을 때만 한국말 못 하는 척 하며 반말을 하는 건 아닌지….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만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국 남자 세 명이, 비슷한 외모를 가진데다 말투도 똑같다는 것에 놀랐다. 편의점에서 일하시는 분과 사과를 파시는 분, 그리고 내게 길을 알려주신 분이 정말 똑같이 생겨 난 혼란스러웠다. 헤어스타일이나 생김새는 말할 것도 없고, 목소리와 말을 더듬는 지점, 그리고 두피에 심한 지루성피부염이 있다는 것까지 똑같았다. 꼬꼬마 시절 내 친구 중 하나도 대한민국에 자기 성씨는 자기네 가족과 친척이 유일하다며 "그래서 우리 성을 가진 사람들은 전부 내성발톱에 고혈압이 있다."라고 하던데, 그분들도 혹 형제나 친척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자, 이제 종주로는 3일차지만 전체 여정으로는 4일차인 날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사실 종주를 다녀오고 나서 사람들이 "몇 박 며칠로 다녀왔어?"라는 질문을 자주 하는데, 그럴 때마다 "4박 5일이지만 문경에서 하루를 더 쉬어서 5박 6일."이라고 말하기가 귀찮았다. 때문에 그냥 '4박 5일'이라고 말했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4박 5일이라면서 왜 토요일 부산 도착한 거야?"라고 물어댔다. 그럼 또 난 거기에 대답해 주는 게 귀찮아 져서 다음부터는 '5박 6일'이라고 대답하는데, 그 대답에 사람들은 "여유 있게 천천히 갔다 왔나 보네. 대개 4박 5일로들 많이 가던데."라고 말한다. 그럼 난 또 사실관계를 바로잡아 주고자 문경에서 하루 더 보냈다는 얘기를 하고…, 아무래도 난 좀 피곤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문경의 좋은 자전거 길과 그 길 옆으로 흐르는 맑은 물에 장인어른과 나는 반했다. 장인어른께서는 맑은 물을 보시며 몇 번이나

 

"저런 곳에 사는 고기는, 그냥 잡아서 바로 먹어도 고소하지."

 

라고 하셨는데, 난 장인어른의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기생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걸 참느라 혼났다. 전에 어느 TV프로그램을 보니까 자기네는 계곡물로 바로 배추를 씻어 김장을 한다며 자랑하던데, 난 그 물에 동동 떠다니고 있을 기생충이 먼저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 기생충에 예민하게 된 것은 EBS에서 방영한 적 있는 <기생>이라는 다큐를 본 이후인데, 혹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있으면 그 다큐를 한 번 보시길 권한다.

 

 

 

 

여행 중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를 쉽게 트게 해 준 것은 장인어른의 '유머'였다. 장인어른께서는 문경의 폐역에서도 그곳 관리자로 보이는 아주머니께

 

"여기 기차 몇 시에 들어옵니까?"

 

라며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보여주셨다. 그러면 그 농담에 상대는 빵 터지고, 그 후 어디서 오셨냐, 어디로 가시냐, 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장인어른은 트럭을 몰고 그곳에 와 있던 아저씨와도 금방 친해지셨는데, 덕분에 우리는 그분이 방금 떠왔다는 약수물도 얻고, 다음 자전거길에 대한 친절한 안내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근데 난 솔직히 그 트럭기사 아저씨가 조금 무서웠다.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갑자기 우리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은 뒤 사진을 찍은 것도 그렇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물을 준 것, 그리고 트럭을 타고 계속 우리를 쫓아온 것이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지나고 보니 그게 인심이고 친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당시엔 이상할 정도로 자꾸 챙겨주고 저 멀리까지 먼저 가서는 기다리고 있다가 길을 다시 알려주는 게 수상했다.

 

전에는 전라도 광주에 내려갔다가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들렀더니, 서울에서 왔냐며 밥 안 먹었으면 먹고 가라고 해서 긴장했던 적 있다. 그때도 혹시 들어가서 밥을 먹으면 주유소 문을 잠그고 우리를 납치하는 건 아닐지 걱정했었는데, 여하튼 트럭 아저씨의 친절에 난 홀로 이상한 상상을 하며 한참동안 그 물을 마시지 않았다. 장인어른과 나 두 사람 모두 물을 마시고 기절이라도 하게 되면, 지켜보고 있던 그 아저씨가 트럭을 몰고 와 자전거와 함께 우리를 실어갈 것 같다는 생각에…. 아무래도 이건, 풍부한 상상력의 부작용인 것 같다.

 

 

 

 

상주에 진입할 때의 사진이다. 문경과 상주에는 사과나무가 참 많았다. 그 사과나무들을 보며 장인어른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장인어른 - 저것 좀 봐라. 사과가 정말 빨갛게 잘 익었다.

무한 - 아버지 저거…, 사과를 빨간 종이로 싸 놓은 것 같은데요?

장인어른 - 종이?

무한 - 네.

장인어른 - 그렇지? 어쩐지 너무 빨갛다 했어. 허허허.

무한 - 하하….

 

이후로 장인어른께서는 사과가 나올 때마다 "저기도 싸놨네."하는 말씀을 하셨다.

 

 

 

 

아, 아직 우리가 아침을 안 먹었다고 내가 얘기 했었나? 장인어른과 난 문경불정역이 기차역인 줄 알았고, 당연히 역전엔 식당이 많을 테니 거기서 아침을 먹기로 했었다. 그런데 가보니 그곳은 폐역이었고, 근처엔 식당이 없었다. 그래서 지도에 '점촌시내'라고 쓰여 있는 곳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더 갔는데, 그곳에선 자전거 도로가 시내 외곽을 통과한다는 걸 모르고 계속 달린 까닭에 밥을 먹지 못 했다.

 

자전거 가방에 초콜릿 바가 있긴 했지만, 전날과 전전날에도 계속 초코바를 먹은 까닭에 우린 질려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기에 먹긴 했는데, 빈속에 초코바를 먹으니 단 맛이 역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국토종주를 마치고 돌아온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저때 완전히 질렸는지 지금도 집에 초코바가 그대로 남아 있다.

 

 

 

 

얼른 밥을 먹어야 하는데, 가도가도 위의 사진과 같은 길만 계속 나왔다. 평소 같으면 장인어른께서도

 

"햐아, 저기 물 좀 봐라. 저런 데 고기가 많은데…."

"저 쪽에 고기들 뛴다. 여기 낚시하기 딱 좋겠는데."

"여기 나무 조심! 저기 뱀! 앞에 자전거 온다~"

 

라는 이야기들을 하셨을 텐데, 많이 시장하신지 말씀이 없으셨다. 내가 장인어른께

 

"아버지, 근데 저희가 점촌시내를 그냥 지나온 것 같은데…."

 

라고 말씀드렸을 때, 장인어른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는 걸 나는 보았다.

 

 

 

 

상주 자전거 박물관 바로 앞 다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는 그곳 이름이 '자전거 박물관'이니 당연히 주변에 편의시설 및 식당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음식을 파는 곳이 없었다. 거기까지만 가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덩그러니 박물관 하나만 있는 걸 보곤 맥이 탁 풀리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폰으로 식당을 검색해도 대개 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좌절하던 중, 우리는 근처에 '가든'이라고 쓰인 곳을 발견하곤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본래 단체손님들에게 닭이나 오리를 잡아 파는 곳인 것 같았는데, 다행히 메뉴에 백반도 있길래 백반을 시켰다.

 

백반이 나오기 전까지 장인어른과 나는 '무슨 찌개가 나올까?', '닭이나 오리 고기도 좀 나올까?', '원래 이런 곳이 맛집인 경우가 많다'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아주머니께서 내오신 음식을 보고 우린 충격과 공포에 빠져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메뉴가

 

- 콩나물국, 조개젓, 고추장아찌, 이름 모를 나물 무침,

  어묵볶음, 무장아찌, 콩자반, 김치, 오징어 채

 

였기 때문이다. 난 사실 '백반'이라는 걸 처음 먹어보는 까닭에 음식이 나오기 전에 장인어른께

 

"백반은 주로 반찬이 어떻게 나오나요? 제가 백반은 처음이라…."

 

라는 질문을 했는데, 장인어른께서는

 

"제육볶음이나 불고기, 아니면 뭐 생선구이나 반계탕 같은 게 나올 때도 있고.

아니면 된장(된장찌개)이나 김치찌개 나오거나…, 아무튼 먹을만 해."

 

라고 답해주셨다. 그런데 장인어른의 대답에 나왔던 음식들은 찾아볼 수 없었고, 국마저 콩나물국이라는 것에 장인어른 역시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난 혹시 '메인반찬'이 안 나온 건가 싶어 아주머니께 반찬이 다 나온 거냐고 여쭤봤는데, 내 물음에 아주머니께서는 대답 대신 계란말이를 내어 주셨다. 그래도 우리는 저 중에서 너무 짜거나 푹 익어서 먹을 수 없는 반찬을 제외하곤,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낙단보'를 지날 때 찍은 사진이다. 난 국토종주를 출발하기 전, 다른 사람들이 종주를 다녀와 찍은 사진들을 보며

 

'저기선 파노라마로 찍었으면 예뻤을 텐데….'

'노출 브라케팅 해서 HDR로 합치면 건물이 더 잘 살 텐데….'

'저건 삼각대 놓고 ND필터 낀 뒤에 장노출로 갔으면 더 나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가보니 DSLR로 찍기는커녕 꺼내지도 않게 되었고, 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힘들고 귀찮아 그냥 넘길 때가 많았다. 집에 편하게 앉아 바라보는 것과 실제로 현장에 뛰어들어 뭔가를 하는 것엔 정말 큰 차이가 있었다. 종주 출발 전에는 매번 쉴 때마다 주변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또 파노라마랑 동영상촬영도 할 마음이었는데, 실제로 가서는 쉬며 물 마시기 바빴다.

 

낙단보는 야경이 유명한 까닭에 나도 그 야경을 배경으로 장인어른을 좀 찍어드리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맞질 않았다. 그럼 대낮의 낙단보를 배경으로라도 찍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나도 그럴 생각이었지만 대낮의 낙단보는 밤새도록 그곳으로 몰려든 날벌레와 그 벌레들을 잡기 위해 쳐 놓은 거미줄로 뒤덮여 있었다. '야경이 아름다운 곳엔 저런 애로사항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미에 진입했을 때의 모습이다. 꼬꼬마 시절 대학교 동기가 구미출신이라 구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그때 동기는 구미가 시골이라고 했었다. 교수님 중 한 분도 구미출신이었는데, 그 교수님이 동기보고 '촌사람'이라고 장난스레 불렀던 까닭에 난 정말 구미가 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산업단지 쪽에 들어서니 파주 월롱 단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건물들이 많았고, 평일 저녁 한강변만큼이나 낙동강변을 자전거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

 

장인어른과 난 숙소를 구미에 잡을 것인지, 아니면 좀 더 가서 왜관에 잡을 것인지를 고민했다. 이미 100km를 넘게 탄 시점이라 상당히 피곤했지만, 다음 날 일정을 생각하면 왜관까지 가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장인어른과 나이 라이딩 최장거리 기록도 세울 겸 왜관으로 출발했다.

 

 

 

 

 

왜관으로 가는 길에 있는 '칠곡보' 인증부스에서 찍은 사진이다. 마침 이날 <생태공원낙동강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엄청난 사람들이 자전거길을 점령한 채 공연을 보거나 먹거리를 사먹고 있었다. 여유가 좀 있었다면 우리도 거기서 공연을 보고 먹거리를 사먹었겠지만, 숙소도 잡지 못한 상황에서 땀에 찌든 채로 축제를 즐길 순 없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장인어른과 난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이동해야 했다.

 

이전 편에서 이야기했듯 우린 안전한 야간라이딩을 위해 좀 요란하다 싶을 정도의 조명을 자전거에 설치했다. 자전거 휠에서는 LED가 빛나고, 후방에서는 레이저가 쏘아져 도로에 선을 표시한다. 이걸 본 동네 아이들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우와. 저 자전거 봐봐."하는 이야기를 했다. 몇몇 할아버지께서는 이걸 어떻게 구입하는지, 배터리가 오래 가는지 등을 물어 오시기도 했다. 그 중 한 할아버지께서 당신의 집이 왜관이라며 우릴 왜관까지 안내해주셨다.

 

 

 

 

 

중간에 속도계가 접촉불량으로 몇 번 먹통이 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 날 우리는 130km 이상 라이딩을 한 것이다. 장인어른과 난 130km를 타도 아직 기운이 많이 남아 있는 것에 기뻐하며

 

무한 - 내일 그냥 부산까지 바로 가버릴까요? ㅎㅎ

장인어른 - 뭐 내일까지 미뤄. 밥 먹고 지금 갈까? ㅎㅎ

 

하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숙소를 잡고 개운하게 씻은 뒤, 왜관에서 유명하다는 국밥집에 들러 기분 좋게 저녁을 먹은 것도 참 좋았다. 우린 승리에 흠뻑 취한 전사들처럼 들떠선 몸이 이제 라이딩에 완전히 최적화 된 것 같다는 얘기, 다리 자체가 탄탄해져 힘이 별로 안 드는 거 같다는 얘기, 길만 좋으면 정말 내일 부산까지 갈 수 있다는 얘기 등을 했다.

 

나 역시 들뜬 기분에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이화령아, 욕해서 미안해."

 

라고 말하는 그 지옥의 코스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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