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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후배에게 마음이 흔들린다는 여자친구, 어떡해?

by 무한 2010. 10. 18.

우선, 사연의 주인공이 소개한 본인과 여자친구의 특징을 살펴보자.

저는 일단 간단히 말하자면 좀 퍼주는 스타일입니다.
사랑한다 말도 자주하고, 언제나 여자친구 편에 서서 이야기를 들어주며
선물도 많이 해주고, 함께있는게 너무나 즐겁기에 그냥 마냥 보고만있어도
행복해집니다. 거의 생활의 모든 패턴이 그녀에게 집중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하고요..
성격은 좀 소심한 편이고, 질투심이 제법 있습니다.

여자친구는 저랑 성격이 좀 다릅니다.
성격이 직설적이고, 배가고프거나 졸리면 짜증이 좀 잦아지고
반대면 기분이 좋아지는 타입입니다. 솔직해서 그냥 거리낌없이 말하고,
상대방을 특별히 배려한다거나 하지는 않는...
뭐 좋게 말하면 쿨하고 시크하며 나쁘게 말하면 배려심이 좀 부족한편이긴 합니다.
그래도 마음자체는 여리고 착합니다.


전형적인 여린마음동호회원의 연애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사연에서 아직 '남자후배'가 등장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몇 가지 보인다.

우선, 직설적이며 시크하다는 여자친구가 준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남자친구를 더욱 소심하게 만들 것이다. 서로를 모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친구가 원하는 쪽으로만 고치게 될 수 있단 얘기다. 이러한 변화는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 공포증'을 갖게 만들지만, 여자친구의 긴장감은 느슨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남자친구가 가지고 있다는 '질투심'은 상대에게 '투정'으로 보일 위험이 있으며, 그 '투정'을 여자친구가 이해해주지 않을 때, 남자친구가 할 수 있는 것은 소심하게 질투심을 드러냈다가 화를 내는 여자친구에게 사과하는 일 밖에 없다. 실망했다는 기색을 목소리에 담아 통화하다가 여자친구의 짜증을 돋구거나, 스스로 시무룩해져 "넌 나보다 드라마가 더 재미있지?" 따위의 문자만 보냈다가 본전도 못 찾는단 얘기다.

또한, '여리고 착하다'는 이유로 '직설적이고 시크하다'라는 것을 무작정 이해하려 해선 곤란하다. 은행에 비유하자면 '여리고 착하다'는 것이 예금금리 10%라면, '직설적이고 시크하다'라는 것은 대출금리 52%라는 것과 같은 얘기다. 사랑하기 때문에 평생 주기만 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분명 당신도 받아야 할 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사연에 담긴 이번 일이 벌어졌을 때, 당신이 원한 것은 "내가 미안해. 다시 너와 예전처럼 지내고 싶어." 였지만, 실제로 받은 멘트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내가 연락할 때까지 연락 하지마." 아니었는가.

이렇게 '여린마음동호회원이 벌이기 쉬운 연애의 헛발질' 얘길 하다가는 정작 사연에 관련된 얘기를 못할 것 같으니 이만 줄이고, 사연은 읽으며 안타까웠던 부분들을 함께 살펴보자. 


1. 위험은 대처하기보다 예방하자

 

혹시 아기가 구슬을 가지고 놀다가 삼켰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119를 부르거나,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거나, 아기의 머리를 몸통보다 낮춘 후 손으로 아기의 머리와 목을 지지하고 등을 위로 밀 듯 손바닥으로 쳐주는 방법 등이 있다. 이런 방법들을 알아두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이와 같은 '대처'방법이 아닌, 아기 주변에 구슬을 놔두지 않는 '예방'이 먼저다.

아무리 여자친구가 남자후배와 연락하는 것에 대해 '남자로서의 느낌이 있어서 연락하는 게 아니다'라고 하더라도, 매일 문자를 주고받고, 밤마다 통화한다면 이건 분명 '위험요소'가 있다는 얘기 아닌가. 게다가 그녀가 교통사고가 날 뻔 한 일을 당신보다 그 남자후배에게 먼저 알렸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당신과 있으면서도 계속 그 후배와 문자를 주고 받을 때, 분명 잘못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가?

자존심 때문에 "너, 적당히 해." 정도의 이야기만 했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에선 자존심을 세우고 뭐고 할 게 아니고 '남자후배와 연락하는 것'에 대해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졌어야 한다. 지나가는 말로 흘릴 것이 아니라, 입장을 바꿔서 당신이 다른 여자후배와 매일 문자를 주고받고, 저녁마다 전화통화를 한다면 상대의 기분은 어떨지, '여자로서의 느낌이 있어서 연락하는 게 아니야.'라고 대답한다면 여자친구는 그냥 무신경하게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대화를 나눴어야 한단 얘기다. 

"너랑 있을 땐 자제할게."


왜 이와 같은 여자친구의 말에 '그럼 내 앞이 아니라면 계속 연락하겠다는 건가?'라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가. 이건 마치 같이 사는 룸메이트에게 "불이 날 수 있으니까, 쓰레기통에 종이 넣고 태우는 거, 방에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이야기에, "내가 설마 여기 다 태워먹으려고 불 피우는 거겠어? 너 있을 때는 불 안 피울게."라는 대답을 듣는 것과 같은 것 아닌가. 

"바람피운 것도 아닌데, 왜 연락을 못하게 해?"라거나 "참나, 그럼 이성이랑은 친구하지 말라는 소린가?"라고 생각하는 대원도 분명 있겠지만,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매뉴얼에서 이야기 했듯, 개인적으로 이성 간에는 '불씨'가 있기에 여건이 맞으면 활활 타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 읽은 이태준의 "이성간 우정"이라는 글이 있는데, 그 중 일부를 아래에 옮기는 것으로 이성과 친구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 접어놓을까 한다.

(전략)
아무튼 이성간에 평범한 지면 정도라면 몰라도 우정이라고까지 특히 지목할 만한 관계라면, 그것은 일종 연정의 기형아로밖에는 볼 수 없을 듯하다. 기형아이기 때문에 이성간의 우정은 늘 감상이 붙는다. 늘 일보 전에 비밀지대를 바라보는 듯한, 남은 한 페이지를 읽다 그치고 덮어놓는 듯한, 의부진한 데가 남는다. 우정 건축에 부적한 원료들이기 때문이다. 그 일보 전의 비밀지대, 못다 읽고 덮는 듯한 최후의 페이지, 그것은 피차의 인격보다도 오히려 환경의 지배를 더 받을 것이다. 한부모를 가진 남매간이 아닌 이상, 제삼자의 시력이 닿지 않는 환경에 단둘이 오래 있어 보라. 그 우정은 부부 이상의 것에라도, 있기만 한다면 돌진하고 남을 것이다. 
(후략)

- 이태준, <무서록> 80p



 

2. 골키퍼의 포지션은 골대 앞이다

 

이상한 의미를 붙여서 해석하는 대원들도 종종 있는데, 단순히 '포지션'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해보자. 남자친구가 골키퍼라면, 그녀보다 한 발짝 앞에서 그녀를 지키는 것이 남자친구의 포지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어땠는가? 

"마치 두 사람의 사랑에 제가 장애물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골대 앞에서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이 당신의 임무인데, 스스로 '장애물'이라 생각한다면 포지션을 완벽히 벗어난 것 아닌가. 당신은 '남자친구'지 '아는남자'가 아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이지만, 스스로 머릿속에 슬픈 소설 쓰거나 무슨 연애 영화 시나리오 쓰듯 자신의 이야기를 어둡게 써내려가지 말자. 어둡고 칙칙한 연애사연들을 보면 대부분 스스로 '비련의 주인공'역할을 자처하며 자신의 연애를 '구경'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멀찌감치 떨어지지 말고, 온 몸으로 뛰어들란 얘기다. 

안타깝게도 적중률 높은 당신의 '슬픈 예감'이 맞았기에, 여자친구는 그 남자후배에게 흔들린다는 얘기를 털어놓았고, 자기도 자신을 모르겠다는 철갑을 둘렀다. 그리곤 여자친구가 이 상황의 여파를 몰아, 

"내가 너랑 사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후배랑 좀 만나볼게. 그렇게 만나다 보면 이 마음이 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확실히 알게 되면, 완전히 정리하고 돌아올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건 뭐, <아내가 결혼했다>의 실사판도 아니고, "난 양다리 같은 거 할 수 없으니까, 우리 연애는 잠시 일시정지 하고 저쪽 갔다가 돌아올게."라는 얘기도 아니고, 말 그대로 "뭥미?"의 상황이다. 둘 사이의 긴장감, 제로다. 눈물 날 정도로 만만하다. 여기까지만 해도 정말 크고 아름다운 슬픔인데, 한 술 더 떠 당신은 이마저 이해한다. 그녀가 돌아와 "내가 정말 잘못했어, 미안해."라고 말해주길 바라며 말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당신에게 '최악의 상황'을 가져다주었다. 

어떤 결정을 했냐고 재촉하는 당신에게 그녀는 어이없게도, "다그치지 마, 나 못 믿어?"라고 이야기를 하고, 당신은 계속 기다림을 이어간다. 그러는 와중에 그녀가 "너한테 정말 미안해. 그냥 날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 상처만 주는 못된 여자친구보다 더 좋은 사람 있을 거야."라는 얘기와, "날 떠나지 못하는 너도, 너와 나를 갈라놓을 생각 없다는 후배도, 결정을 못 내리는 나도, 우리 모두 바보야."라는 얘기를 한다. 난, 당신과 남자후배를 불러 둘이 가위바위보라도 시키고 싶은 심정이다. 

어쨋든, 자세히 밝힐 수 없는 몇 가지 사건 이후, 그녀는 당신에게 돌아왔다. 그 남자후배와는 친구로 지내기로 하고 말이다. 그럼 이 일은 모두 해프닝으로 끝나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3.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그녀가 돌아왔지만, 예전의 그녀는 아니다. 당신의 바다 같은 이해심-나쁘게 말하면 철저히 수동적인 기다림-으로 재회한 이 연애를 하고 싶다면 당신은 변해야 한다. 작은 화분에서 기르던 토마토도 크게 자라기 시작하면 대를 세워주고 과한 잎을 따줘야 하는 것처럼, 그녀와 당신 사이에 굳건한 대를 세우고 불필요한 부분들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예전처럼"만 부르짖고 있지 않은가?

일산 신도시에 극장이 하나밖에 없었을 때, 사람들이 모두 그 극장으로 몰린 까닭에 극장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러다 다른 극장들이 생기자, 사람들은 더 넓고 편의시설을 갖춘 새 극장으로 옮겨갔고, 예전에 있던 극장은 출입문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아 당시 학생이었던 우리들 사이에선 "출구로 들어가면 영화 공짜로 볼 수 있다. 절대 안 걸린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렇게 '공짜영화'를 보는 것에 대해 대부분 처음엔 '정말 그래도 될까?'라며 두려워했으나, 한두 번 아무 무리 없이 '공짜영화'를 본 녀석들은 그 이후 당연하다는 듯 출구로 들어가 영화를 보고 나왔다. 재회마저도 상대의 '통보'로 하게 된 당신은 이 '공짜영화'가 될 위험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후 벌어진 일들로 미루어 이미 '공짜영화'가 된 듯 보인다. 

남자후배와 친구로 지내기로 한 그녀가 당신과 재회를 한 후에도 그 후배와 연락을 하자, 당신에겐 의심과 불안함이 찾아왔다. 혹시 둘이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녀의 회사에 찾아간 것, 그녀의 집으로 불쑥 찾아가 잠깐 보자고 한 것, 결국 '집착'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영문은 잘 모르겠지만,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회사에서 야근한다고 했을 때, 마침 당신의 사정을 잘 아는 친구가 문자를 보낸다. 그녀가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는 걸 본 것 같다고. 그 문자를 받은 당신은 그녀가 정말 야근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가고, 그녀는, 응?, 회사에서 야근중이다. 아무튼 이 미스터리한 사건 때문에 그녀는 "넌 날 못 믿는구나?"라며 등을 돌린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당신이 보낸 문자가 100통, 전화는 수십 통, 물론 다 회신은 없었다. 정서적으로 바짝 마른 상태로 그녀의 집 앞에서 기다려 보기도 했지만, 그녀는 당신을 발견하곤 서둘러 집에 들어가 버렸다. 그녀의 회사 동료에게도 부탁해 봤지만, 그녀가 당신의 집착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말만 듣게 된다. 그렇게 방황하던 일주일이 지나고, 그녀에게서

"내가 연락할 때 까지 절대 연락하지 마. 정리가 되면 말해줄게."


라는 문자가 온다. 여기까지가 현재 상황이다. 그리고 당신은 나에게 묻는다. 

"그녀가 긍정적인 대답을 줄까요? 기다리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렇게 정리가 되고.. 마지막이 되는 건가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당신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번에도 역시, 기다림 입니까?
당신은 기다림의 왕입니까? 주머니를 뒤져보세요.
혹시 예전에 쓰던 '리더십'이나 '자존감'같은 게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 사연을 '사람'의 문제로 놓고 보자면, 금방 부정적인 답이 나온다.

"밑 빠진 독은 열심히 부어도 또 샙니다. 버리세요."
"남자분이 너무 소심하시네요. 잘 맞는 다른 여자 분을 찾아보세요."


그러나 '상황'의 문제로 놓고 보면, 긍정적인 답을 구할 수 있다. 늘 수동적으로 상대의 통보를 기다리던 모습에서 벗어나 그간 마음에 찾아왔던 감정들을 상대에게 털어놓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 상대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내가 잘 할게."따위의 사과를 늘어놓지 말고, "모두 다 이해하려 노력했고, 이해하기 어렵고 힘든 부분들도 이해하려고 애썼어. 난 그게 우리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다 이해하려 하고 받아들이려 했던 것이 실수였던 것 같아. 애초에 그 후배와 연락하는 것 때문에 내가 참 속상했다고 말했으면 되었을 걸,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널 배려하는 거라 생각한 게 실수였던 것 같아. 내가 가지지 못한 모습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 모습을 보며 네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지만, 난 봄 여름 가을의 흔들림이 지나고, 춥고 시린 겨울이 와도 널 사랑할거야."라고 털어놓는 거다.


자, 그녀의 통보를 기다릴 것인가, 혹은 그녀에 대해 단정 짓고 이 연애를 끝낼 것인가, 아니면 상황을 바꾸기 위해 당신의 포지션을 찾아갈 것인가, 당신이 선택하고 당신이 움직이고 당신이 책임질 차례다.




▲ 1930년대,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아저씨의 글을 원하신다면 이태준의 <무서록>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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