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부대원들이 보내는 사연 중에 "저도 연애에 대해서 모를 나이는 아니지만, 이건 정말 모르겠습니다."라거나 "애들도 아니고 연애 때문에 고민한다는 것이 좀 우습기는 합니다."라는 이야기를 볼 때 마다 난 그 대원들을 불러 우리 동네 고등학교 축구부원들과 축구시합을 시키고 싶다.
TV에서 해주는 축구중계를 보며 "야, 저걸 못 넣냐."라든가 "왼쪽을 노려야지 왜 오른쪽으로 가!"따위의 이야기를 하겠지만, 직접 공을 차는 입장이 되면 '어? 내 발에 장애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헛발질 중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는 것과 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단 얘기다.
오늘은 '연애에 대해 알 만큼 아는 나이'라고 말하는 대원들이 보낸 이야기들을 함께 살펴볼까 한다. 나이가 들어도 모르는 연애의 완급조절, 도대체 뭐가 진짜 문제인지 들여다 보자.
연애를 시작한지 한 달 정도의 기간동안 별 다툼이 없고, 갈등이 생겨도 쉽게 풀렸다고 해서 그걸 자신의 '연애스킬' 덕이라고 생각하는 건, 마라톤 경기에 참석해 출발지점부터 전력질주 해 놓고 "어? 이봉주도 내 뒤에 있네? 내가 이봉주보다 빠르다니!"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연애의 그 한 달은, 컵라면을 먹는 것 만큼이나 쉽다.
부킹대학 위스콘신 연구소에서는 연애를 시작한 지 30일에서 90일 까지의 기간을 'Blind season'이라고 이름 붙였다. 쉽게 말해, 콩깍지효과로 인해 여러 마찰들을 무시한 채 별 어려움 없이 굴러갈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를 해도 마냥 사랑스럽게 들리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도 '독특한 개성'으로 받아들여 진다.
그렇다고 이 시기를 '공짜'라고 생각하며 아무렇게나 보내선 곤란하다. 사랑과 행복이 끝도 없이 샘솟을 것 같은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이후 연애의 난이도가 조정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대원들은 컵라면만 먹는 한이 있어도 좋은 선물을 하고 싶어 하고, 커플링, 커플티 등을 마련하며 하루가 멀다며 얼굴이 닳도록 마주하지만, 이런 '전력질주'는 훗날 '페이스 조절 실패'라는 참담한 결과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당신의 전력질주 모습만 본 상대는, 이후 당신의 지친모습을 보며 '변했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다. 뿐만 아니라 먹고, 마시고, 즐기며 보낸 시간은, 뿌리 내리지 못하고 높게만 자란 나무마냥 작은 갈등에도 금방 뽑혀나갈 것처럼 흔들릴 수 있다.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지 않았기에 이후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도대체 뭐가 문제지?'라며 제자리를 맴도는 모습을 보일 수 있고 말이다.
나이가 들면 그간 주워 담거나 얻은 것들로 인해 머리가 커지기 마련이고, 그 커진 머리는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절대방패'로 쳐내듯 배척하고, 자신의 주관에 힘을 보태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 챙기며, 직관을 가장한 편견으로 접하는 모든 것들을 판단한다.
뭐, 인생이야 누구나 파지 줍듯 자신의 리어카에 담아놓은 것들을 돌보는 것이니 이게 대단한 문제라고 호들갑을 떨긴 그렇지만, 누군가와 함께 할 생각이 있다면 상대의 리어카도 당신의 리어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커진 머리로 상대 성격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스타일에 대한 분류를 끝마쳤다면 당신에 대한 분석도 해 보길 권한다.
라는 이야기만 하지 말고, 자신의 특징도 살펴보란 얘기다. 연애는 미션을 해결해 나가는 1인용 게임이 아니며, 자신만 주인공인 1인칭 소설도 아니다. 사연을 읽다보면 "전 그냥 화가 났다는 것을 알리려고 한 것뿐인데, 그 사람은 저에게 진짜 화를 내더군요."라고 말하는, 자기방어에 급급한 부분이 너무 많이 보인다.
주머니에 개인용 면죄부를 가득 담고 있는 사람과는 상종도 하기 싫은 법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내가 그런 건 그럴 수도 있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왜 상대에겐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이야기 하는가. 모르고 그랬든 알고 그랬든,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큰 머리를 가지고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문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상대가 화를 내면 소극적인 모습으로 사과를 하거나, 혹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진 않을지 안절부절 하게 되고, 자신이 생각한 틀에 맞추기 위해 변명을 재료로 둘의 관계를 채워간다. 눈치 보고, 조바심 내고, 잘 부릴 줄도 모르는 애교를 집어 들곤 울상을 지으며 노력한다. 그래도 안 되면 상대를 추궁하기 시작하고 말이다.
키우던 허스키를 하늘나라로 보낼 뻔 했다는 H씨(32세, 자영업)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날 부터인가 허스키가 사료를 잘 먹지 않았고, H씨는 허스키의 입맛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H씨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애견 편식버릇 고치기'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3일간 사료를 제 시간에 줬다가 먹지 않으면 그릇을 치우는 방식으로 허스키의 버릇을 고치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료를 몇 개 집어 먹다가 뱉어 버리는 것을 보고는 큰일 나겠다 생각해 사료 대신 간식을 주기 시작했다.
허스키는 통조림 간식을 몇 번 핥더니 먹지 않았다. 다음엔 육포 간식을 줬는데, 역시 입에 넣고 몇 번 씹기만 할 뿐 삼키지 않았다. H씨는 인터넷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기호성이 높은 간식들을 사서 모두 먹여 보았지만 허스키는 먹지 않았다. 허스키가 누워서 잘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을 때쯤, H씨는 허스키를 데리고 동물병원을 찾았다. 허스키의 병명은 거대식도증. 식도에 이상이 생겨 음식물을 위로 보내기가 힘들었으며, 먹었던 음식들을 모두 토해냈던 것이다.
말을 못하는 강아지야 동물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야 원인과 해결책을 알 수 있지만, 말이나 글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대라면 '대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그 원인과 해결책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부분을 생략한 채 자신의 큰 머리로만 생각한 해결책으로 선물을 들이 밀거나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의 행위만 한다면, 상대는 계속 아플 거란 얘기다.
위에서 나온 큰 머리(응?) 이야기와 이어지는 부분인데, 그간 자신이나 타인이 경험한 여러 가지 연애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슬픈 예감'을 쉽게 느끼거나 '좋지 않은 결말'을 미리 상상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겁이 많아지는 것이다.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연락을 하게 되고, 그 연락 때문에 자리에 집중할 수 없었던 상대가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하자 "왜?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재미있어?" 따위의 문자를 보낸다. "그래서 그런 게 아니잖아."라는 상대의 대답엔 또 토라진다. 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는 '내 자존심이 어쩌다 이렇게 바닥을 쳤나.'하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한다. 자리를 마친 상대에게 연락이 왔지만 자느라 받지 못한다.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했지만 상대의 목소리에서는 찬바람이 분다. 덜컥, 겁이 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 것인가. 위태위태한 줄타기가 시작된다.
소심한 듯 보이는 이 부분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와 함께 자라난 이해심을 보여주겠다며, "다른 남자 만나보고 싶으면 만나봐. 난 자신 있으니까."따위의 이야기를 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굳이 만나려고 노력하거나 연락하려 애쓰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는 거잖아."라는 이야기를 하며 상대를 방목하기도 한다. 오늘 사온 허브 화분이 생생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물을 주지 않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사랑도 돌보지 않으면 말라 바스러질 수 있다.
겁이 많아지니 상대에게 확인 받으며 안심하고 싶어 하고, 자신이 리드할 생각은 못한 채 투정에 투정을 거듭한다. 자신의 실수는 핑계로 둘러대며, 둘 사이에 벌어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상대를 자극할 만한 소심한 복수를 계획한다.
상대가 왜 이런 말까지 했는지 이제 알겠는가? "금연하기로 해 놓고 계속해서 약속을 어겨 신뢰가 깨어진 것 같습니다. 이젠 정말 담배 끊었는데, 그녀가 돌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거나 "참 많이 생각했고, 이제는 집착하지 않으며 그녀의 생활을 다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번에 바뀌진 않겠지만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런 마음을 적어 메일로 보냈는데 아직 답이 없습니다. 혹시 메일 읽었냐고 문자를 보낼 생각인데, 보내지 말고 더 기다릴까요?"라는 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당신이 털어놔야 할 것은 '금연의지'나 '집착치유'따위가 아니라 당신도 모르게 찾아왔던 '겁'에 대한 이야기와, 상대를 아프게 했던 '소심한 복수'에 대한 고백이다. 이런 진솔한 고백 없이 그저 "나도 정말 이렇게 지내야 하는 상황이 싫다."라는 하소연만 하거나 "다시 한 번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라는 부탁만 하는 것은 아침에 울리는 알람소리처럼 듣기 싫을 뿐이다.
얼마 전 발행한 매뉴얼에 한 고령의 대원이 "젊은 사람들이 연애에 관심을 갖는 걸 보니 우습네요. 나이가 들면 다 알게 되는 것을 뭘 그리 고민하나요."라는 뉘앙스의 댓글을 달았다. 대학생 시절, 학교 앞 술집에서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었을 때 우락부락하게 생긴 복학생이 우리과 선배에게 "야, 너 몇 학번이야? 몇 학번이냐고?"라고 물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대원에게 묻고 싶다. 나이가 들면 연애하며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을 눈 감고 풀 수 있게 되는 것인가? 혹시 본인이 답으로 적어낸 것이 '포기'아니던가? 어려운 문제가 찾아올 때 마다 하나 둘 포기하고, 이젠 상대에게 바라거나 원하는 것도 없이 '그러려니'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냥 연애를 '하는'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연애가 급하다면 당장 밖으로 나가 지나가는 이성들을 붙잡고 연락처만 물어도 일주일 안에 연애를 시작할 수 있다. 연재되는 이 매뉴얼은 연애를 '잘 하는'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초·중·고등학교 12년간 영어를 배웠지만 가위가 영어로 뭐냐고 물으면 식은땀만 흘릴 수 있는 것처럼, 나이가 들어도 모르는 것은 계속 모를 수 있단 얘기다.
배우자. 그리고 열심히 배워서 남 주자. 그게 이 매뉴얼의 요점이다. 머릿속에 넣어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당장 누군가에게 줄 수 있길 바라며, 이번 매뉴얼은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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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해주는 축구중계를 보며 "야, 저걸 못 넣냐."라든가 "왼쪽을 노려야지 왜 오른쪽으로 가!"따위의 이야기를 하겠지만, 직접 공을 차는 입장이 되면 '어? 내 발에 장애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헛발질 중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는 것과 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단 얘기다.
오늘은 '연애에 대해 알 만큼 아는 나이'라고 말하는 대원들이 보낸 이야기들을 함께 살펴볼까 한다. 나이가 들어도 모르는 연애의 완급조절, 도대체 뭐가 진짜 문제인지 들여다 보자.
1. 한 달은 누구나 쉽다
연애를 시작한지 한 달 정도의 기간동안 별 다툼이 없고, 갈등이 생겨도 쉽게 풀렸다고 해서 그걸 자신의 '연애스킬' 덕이라고 생각하는 건, 마라톤 경기에 참석해 출발지점부터 전력질주 해 놓고 "어? 이봉주도 내 뒤에 있네? 내가 이봉주보다 빠르다니!"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연애의 그 한 달은, 컵라면을 먹는 것 만큼이나 쉽다.
부킹대학 위스콘신 연구소에서는 연애를 시작한 지 30일에서 90일 까지의 기간을 'Blind season'이라고 이름 붙였다. 쉽게 말해, 콩깍지효과로 인해 여러 마찰들을 무시한 채 별 어려움 없이 굴러갈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를 해도 마냥 사랑스럽게 들리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도 '독특한 개성'으로 받아들여 진다.
그렇다고 이 시기를 '공짜'라고 생각하며 아무렇게나 보내선 곤란하다. 사랑과 행복이 끝도 없이 샘솟을 것 같은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이후 연애의 난이도가 조정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대원들은 컵라면만 먹는 한이 있어도 좋은 선물을 하고 싶어 하고, 커플링, 커플티 등을 마련하며 하루가 멀다며 얼굴이 닳도록 마주하지만, 이런 '전력질주'는 훗날 '페이스 조절 실패'라는 참담한 결과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당신의 전력질주 모습만 본 상대는, 이후 당신의 지친모습을 보며 '변했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다. 뿐만 아니라 먹고, 마시고, 즐기며 보낸 시간은, 뿌리 내리지 못하고 높게만 자란 나무마냥 작은 갈등에도 금방 뽑혀나갈 것처럼 흔들릴 수 있다.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지 않았기에 이후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도대체 뭐가 문제지?'라며 제자리를 맴도는 모습을 보일 수 있고 말이다.
2. 머리가 커지면 해답의 모자를 쓰기가 어렵다
나이가 들면 그간 주워 담거나 얻은 것들로 인해 머리가 커지기 마련이고, 그 커진 머리는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절대방패'로 쳐내듯 배척하고, 자신의 주관에 힘을 보태기 위해 필요한 것들만 챙기며, 직관을 가장한 편견으로 접하는 모든 것들을 판단한다.
뭐, 인생이야 누구나 파지 줍듯 자신의 리어카에 담아놓은 것들을 돌보는 것이니 이게 대단한 문제라고 호들갑을 떨긴 그렇지만, 누군가와 함께 할 생각이 있다면 상대의 리어카도 당신의 리어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커진 머리로 상대 성격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스타일에 대한 분류를 끝마쳤다면 당신에 대한 분석도 해 보길 권한다.
"그녀는 외로움 잘 타고, 자존심 세고, 표현 잘 못하고, 맺고 끊는 것은 분명한 편입니다."
라는 이야기만 하지 말고, 자신의 특징도 살펴보란 얘기다. 연애는 미션을 해결해 나가는 1인용 게임이 아니며, 자신만 주인공인 1인칭 소설도 아니다. 사연을 읽다보면 "전 그냥 화가 났다는 것을 알리려고 한 것뿐인데, 그 사람은 저에게 진짜 화를 내더군요."라고 말하는, 자기방어에 급급한 부분이 너무 많이 보인다.
주머니에 개인용 면죄부를 가득 담고 있는 사람과는 상종도 하기 싫은 법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내가 그런 건 그럴 수도 있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왜 상대에겐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이야기 하는가. 모르고 그랬든 알고 그랬든,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큰 머리를 가지고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문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상대가 화를 내면 소극적인 모습으로 사과를 하거나, 혹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진 않을지 안절부절 하게 되고, 자신이 생각한 틀에 맞추기 위해 변명을 재료로 둘의 관계를 채워간다. 눈치 보고, 조바심 내고, 잘 부릴 줄도 모르는 애교를 집어 들곤 울상을 지으며 노력한다. 그래도 안 되면 상대를 추궁하기 시작하고 말이다.
키우던 허스키를 하늘나라로 보낼 뻔 했다는 H씨(32세, 자영업)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날 부터인가 허스키가 사료를 잘 먹지 않았고, H씨는 허스키의 입맛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H씨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애견 편식버릇 고치기'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3일간 사료를 제 시간에 줬다가 먹지 않으면 그릇을 치우는 방식으로 허스키의 버릇을 고치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료를 몇 개 집어 먹다가 뱉어 버리는 것을 보고는 큰일 나겠다 생각해 사료 대신 간식을 주기 시작했다.
허스키는 통조림 간식을 몇 번 핥더니 먹지 않았다. 다음엔 육포 간식을 줬는데, 역시 입에 넣고 몇 번 씹기만 할 뿐 삼키지 않았다. H씨는 인터넷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기호성이 높은 간식들을 사서 모두 먹여 보았지만 허스키는 먹지 않았다. 허스키가 누워서 잘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을 때쯤, H씨는 허스키를 데리고 동물병원을 찾았다. 허스키의 병명은 거대식도증. 식도에 이상이 생겨 음식물을 위로 보내기가 힘들었으며, 먹었던 음식들을 모두 토해냈던 것이다.
말을 못하는 강아지야 동물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야 원인과 해결책을 알 수 있지만, 말이나 글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대라면 '대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그 원인과 해결책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부분을 생략한 채 자신의 큰 머리로만 생각한 해결책으로 선물을 들이 밀거나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의 행위만 한다면, 상대는 계속 아플 거란 얘기다.
3. 나이가 들수록 많아지는 겁과 소심한 복수
위에서 나온 큰 머리(응?) 이야기와 이어지는 부분인데, 그간 자신이나 타인이 경험한 여러 가지 연애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슬픈 예감'을 쉽게 느끼거나 '좋지 않은 결말'을 미리 상상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겁이 많아지는 것이다.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연락을 하게 되고, 그 연락 때문에 자리에 집중할 수 없었던 상대가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하자 "왜?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재미있어?" 따위의 문자를 보낸다. "그래서 그런 게 아니잖아."라는 상대의 대답엔 또 토라진다. 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는 '내 자존심이 어쩌다 이렇게 바닥을 쳤나.'하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한다. 자리를 마친 상대에게 연락이 왔지만 자느라 받지 못한다.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했지만 상대의 목소리에서는 찬바람이 분다. 덜컥, 겁이 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 것인가. 위태위태한 줄타기가 시작된다.
소심한 듯 보이는 이 부분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와 함께 자라난 이해심을 보여주겠다며, "다른 남자 만나보고 싶으면 만나봐. 난 자신 있으니까."따위의 이야기를 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굳이 만나려고 노력하거나 연락하려 애쓰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는 거잖아."라는 이야기를 하며 상대를 방목하기도 한다. 오늘 사온 허브 화분이 생생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물을 주지 않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사랑도 돌보지 않으면 말라 바스러질 수 있다.
겁이 많아지니 상대에게 확인 받으며 안심하고 싶어 하고, 자신이 리드할 생각은 못한 채 투정에 투정을 거듭한다. 자신의 실수는 핑계로 둘러대며, 둘 사이에 벌어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상대를 자극할 만한 소심한 복수를 계획한다.
"그만 좀 해. 제발 연락하지 말고."
상대가 왜 이런 말까지 했는지 이제 알겠는가? "금연하기로 해 놓고 계속해서 약속을 어겨 신뢰가 깨어진 것 같습니다. 이젠 정말 담배 끊었는데, 그녀가 돌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거나 "참 많이 생각했고, 이제는 집착하지 않으며 그녀의 생활을 다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번에 바뀌진 않겠지만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런 마음을 적어 메일로 보냈는데 아직 답이 없습니다. 혹시 메일 읽었냐고 문자를 보낼 생각인데, 보내지 말고 더 기다릴까요?"라는 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당신이 털어놔야 할 것은 '금연의지'나 '집착치유'따위가 아니라 당신도 모르게 찾아왔던 '겁'에 대한 이야기와, 상대를 아프게 했던 '소심한 복수'에 대한 고백이다. 이런 진솔한 고백 없이 그저 "나도 정말 이렇게 지내야 하는 상황이 싫다."라는 하소연만 하거나 "다시 한 번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라는 부탁만 하는 것은 아침에 울리는 알람소리처럼 듣기 싫을 뿐이다.
얼마 전 발행한 매뉴얼에 한 고령의 대원이 "젊은 사람들이 연애에 관심을 갖는 걸 보니 우습네요. 나이가 들면 다 알게 되는 것을 뭘 그리 고민하나요."라는 뉘앙스의 댓글을 달았다. 대학생 시절, 학교 앞 술집에서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었을 때 우락부락하게 생긴 복학생이 우리과 선배에게 "야, 너 몇 학번이야? 몇 학번이냐고?"라고 물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대원에게 묻고 싶다. 나이가 들면 연애하며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을 눈 감고 풀 수 있게 되는 것인가? 혹시 본인이 답으로 적어낸 것이 '포기'아니던가? 어려운 문제가 찾아올 때 마다 하나 둘 포기하고, 이젠 상대에게 바라거나 원하는 것도 없이 '그러려니'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냥 연애를 '하는'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연애가 급하다면 당장 밖으로 나가 지나가는 이성들을 붙잡고 연락처만 물어도 일주일 안에 연애를 시작할 수 있다. 연재되는 이 매뉴얼은 연애를 '잘 하는'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초·중·고등학교 12년간 영어를 배웠지만 가위가 영어로 뭐냐고 물으면 식은땀만 흘릴 수 있는 것처럼, 나이가 들어도 모르는 것은 계속 모를 수 있단 얘기다.
배우자. 그리고 열심히 배워서 남 주자. 그게 이 매뉴얼의 요점이다. 머릿속에 넣어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당장 누군가에게 줄 수 있길 바라며, 이번 매뉴얼은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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