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남자를 두고 머뭇거리기만 하는 H양에게
오랜만에 곧 연애가 시작될 것 같은 말랑말랑한 사연이 하나 도착했다.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성 사연이나 정신 차릴 수 있게 욕 좀 해달라는 마조히즘적인 사연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사연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사연을 보낸 여성대원의 마음이 너무 여리다. 게다가 상상력이 풍부한 까닭에 쉽게 겁을 먹는다. 친구 만나듯 만나면 하지(6월 21일) 정도엔 커플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가다간 있던 마음까지 모두 잃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은 이 대원에게 보조바퀴를 좀 달아주자.
스스로를 곰인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H양은 여우에 가깝다. 이미 상대의 뒷조사를 해서 그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든가, 애완견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사실들을 상대 앞에서 하나 둘 꺼내며 관심을 유도해 냈고 말이다. 페이스북에서 봤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지나가는 말처럼 자연스레 꺼낸 건 분명 잘 한 일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얘기를 꺼내기만 하고 진행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대는 자전거를 구입하면 조립을 도와주겠다고 하며, 말이 나온 김에 자신의 자전거를 한 번 타보라고 했다. 자신의 자전거 있는 데까지 갔다가, 안장을 높여 놓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음에 태워주기로 했지만 말이다.
오해다. 안장을 조절식으로 해 놓으면 안장만 뽑아가는 사람들이 많기에, 최근엔 안장을 고정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고정해 놓은 안장은 '육각렌치'라는 도구가 있어야만 풀어서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태워주기 싫어서 한 얘기가 아니라, 정말로 안장을 고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안장이 어떻든 그냥 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는데, H양이 그 자전거에 탔으면 페달에 발이 닿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꼬꼬마 시절 아무렇게나 타던 자전거와 달리, 요즘은 자기 다리길이에 딱 맞춰서 세팅을 해 두니 말이다.
자전거 얘기를 하니, 주문하면 조립을 해 준다고 하고, 근처 자전거 코스를 잘 아니 함께 라이딩 가자고 말하는 상대 아닌가. 왜 이런 상황에서 "자전거를 안 태워 주던데, 빈말이었을까요?"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가. 자전거를 즉시 구입하자. 자전거 주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겸 자연스레 연락처를 받고, 조립을 해 주면 고맙다고 밥 한 끼 사고, 같이 라이딩 하다가 멀리까지도 가보고(응?) 그러면서, 유남생?(You know what i'm saying?)
커피숍을 오픈했는데 찾아오는 친구가 하나도 없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H양은 언젠가 상대의 커피숍에 다른 이성들이 찾아와 테이블 치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H양은 '난 저 사람만 이성으로 생각하는데, 저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이 쭈글쭈글해졌다고 했다.
짝사랑을 시작한 솔로부대원들이 가장 많이 넘어지는 부분인데, 많은 수의 대원들이 상대가 '바닥에 떨어진 동전'과 같은 상태일 거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내 눈에는 보이는 그런 상태 말이다. 그 생각을 몰아내야 한다. 사람들도 동전이 그곳에 떨어져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눈치를 보느라 줍지 못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동전의 주인이 그 동전을 찾아갈 거라 생각해 줍지 못하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동전을 주우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동전 근처로도 가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난 H양이 쓸데없이 머뭇거리며 동전을 구경만 하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H양은 상대가 전화번호를 물을 때까지 상대의 커피숍에 출석도장만 찍을 생각이라고 했다.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상대가 웹에 올린 파편만을 손에 쥐고 슬쩍슬쩍 내미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H양은 '이어지는 대화'를 할 줄 모르기에 더 그렇다. 하루는 자전거 얘기, 또 하루는 애완견 얘기, 그리고 또 하루는 컴퓨터 얘기, 상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한 뒤에는 어쩔 생각인가?
그간 H양은 남자들이 먼저 들이대는 연애만을 해왔기에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지'만 남기면 이후로는 남자들이 알아서 척척 진행하는 그런 연애 말이다. 허브 키우는 얘기를 나누면 며칠 후 남자들이 허브 화분을 H양에게 선물했기에 그런 방식에 익숙해진 것이다. 이번엔 태도를 좀 바꿔 H양이 한 발 더 나가길 권한다. 여지만 흘려 놓은 채 '주변에 있는 여자들 중 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만 하지 말고, '나는 누구인가'를 알리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만 놓고 보자면, H양은 '찾아와서 종종 커피를 마시며, 이것저것 얻어먹는 여자'다. 허브 키우는 걸 좋아한다는 남자에게 커피숍 오픈 선물로 화분 하나 준 적 없잖은가. 커피숍에 H양의 애완견을 데려가 상대의 관심만 끌려고 했지, 상대 애완견의 이름도 물은 적 없지 않은가. 상대가 자전거를 언제부터 탔는지 물어 본 적 있는가? 왜 커피숍을 열게 되었는지는?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고 하는데 어떤 주제로 한 것인지 물은 적 있는가? 상대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는? 커피숍에 있는 그림들은 직접 그린 거라고 하던데 미술을 따로 배운 적 있는지는?
이런 질문들은 하나도 하지 않은 채 상대가 내 전화번호를 묻길 바라며, 상대 주변에 있는 다른 여성들을 심통 난 고양이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당연한 일이다. 주중이고 주말이고 혼자 커피숍에 찾아오며, 어느 날은 팥빙수 하나 시켜 힘들어 하면서도 다 먹고 가고, 자전거를 살 예정인데 조립해 줄 사람도 없다고 하면 그냥 딱 봐도 솔로부대원 아닌가. "수그리. 아까 맨치로."라고 말하는 사람을 두고 "경상도 분이세요?"라며 재차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H양의 사연에서 신발에 들어간 돌맹이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상대를 알게 해 준 '언니'가 한 이야기다. H양보다 앞서 상대를 알았고, 또 현재 상대와 더 친한 그 '언니'. 그녀가 '더 괜찮은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한 것에는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H양이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 더 묻지 않은 까닭에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표면적으로 흘린 이야기 외에도 뭔가가 있을 것같다.
고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그 '언니'를 통해 알아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본 상대에게선 아무런 결점이 보이지 않는데, 대체 어떤 결점이 있는지 슬쩍 흘려보는 거다. "나 그사람 마음에 드는데, 언니 생각은 어때?"라며 돌직구를 던지란 얘기는 아니다. "카페에 놀러 갔다가 자전거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자전거 사면 조립해 주겠대. 완전 착하던데? 자전거 코스도 알려주기로 했어."라며 적당히 변화구를 던지면 된다. 그 정도만 흘려도 언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보여 줄 것이다.
고민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우선 가까워지고 난 뒤에 생각하길 권한다. 위에서 말한 대로 자전거도 함께 타고, 밥도 함께 먹으며 친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남의 얘기를 통하지 않더라도 상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H양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것 보다는 안 물어보면 놓칠 수 있다는 것에 더욱 마음을 쓰길 바란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상대에게 영화티켓 두 장을 선물하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솔로인지 커플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커피숍을 하는 상대라면, 마감시간 즈음 찾아가 마감을 도우면서도 알 수 있고 말이다.(커플이라면 마감 때 여자친구가 찾아오거나, 분명 통화를 한다. 주중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가보는 것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가장 권장하는 방법은 '못 물어볼 것 없는 사이'가 되는 거다.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거나 불쾌하게 만들 질문이 아니라면 뭐든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대화의 장'을 만들어 두면, 훗날 연애를 하게 된 뒤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H양은 상대의 커피숍에 어느 정도의 빈도로 들러야 하는지, 상대가 전화번호를 묻게 하도록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데, 그건 정말 쓸데없는 질문이다. 지금처럼 커피숍에 가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올 거라면 횟수가 무슨 상관있겠는가. 커피숍에 매일 간다고 해도 그냥 단골손님이 될 뿐이다. 전화번호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전화번호 물으면, H양은 또 상대가 먼저 연락하길 바랄 것이고, 그 후에는 상대가 고백하길 바랄 것 아닌가. 상대가 무언가를 하도록 만들기보다 내가 무언가를 먼저 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줄 줄 모르고 받기만 하는 여자는 매력 없다는 것도.
혼자 커피숍에 가는 게 뻘쭘하다며 이젠 친구를 데려갈 생각이라는 얘기도 했는데, 난 무조건 반대다. 친구를 데려가면 당장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그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많아진다. 둘이 얘기를 하느라 전처럼 상대가 끼어들지 못한 채 겉돌게 될 수 있고, 친구가 상대에게 반해 삼각관계를 만들 수 있으며, 분위기에 들뜬 친구가 이상한 소리를 해 버릴 수도 있다. 친구를 데려가기 보다는, 책을 좋아한다는 상대에게 책을 추천 받은 뒤 그 책을 읽고, 감상과 함께 커피숍을 찾아가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한다. 산이 너무 높다며 편하게 오를 방법만 묻지 말고, 한 걸음씩 올라 보길 바란다. 정상이 더욱 반가울 것이다.
▲ 커피숍에 다녀온 날 그 남자 생각에 잠을 못 이루는 게 아닙니다. 카페인 때문입니다.(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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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곧 연애가 시작될 것 같은 말랑말랑한 사연이 하나 도착했다.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성 사연이나 정신 차릴 수 있게 욕 좀 해달라는 마조히즘적인 사연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사연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사연을 보낸 여성대원의 마음이 너무 여리다. 게다가 상상력이 풍부한 까닭에 쉽게 겁을 먹는다. 친구 만나듯 만나면 하지(6월 21일) 정도엔 커플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가다간 있던 마음까지 모두 잃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은 이 대원에게 보조바퀴를 좀 달아주자.
1. 자전거를 즉시 구입하자.
스스로를 곰인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H양은 여우에 가깝다. 이미 상대의 뒷조사를 해서 그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든가, 애완견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사실들을 상대 앞에서 하나 둘 꺼내며 관심을 유도해 냈고 말이다. 페이스북에서 봤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지나가는 말처럼 자연스레 꺼낸 건 분명 잘 한 일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얘기를 꺼내기만 하고 진행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대는 자전거를 구입하면 조립을 도와주겠다고 하며, 말이 나온 김에 자신의 자전거를 한 번 타보라고 했다. 자신의 자전거 있는 데까지 갔다가, 안장을 높여 놓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음에 태워주기로 했지만 말이다.
"자전거 앞에까지 가서는 안장 핑계대면서 다음에 태워주겠다고 하더군요.
전 속으로 여태까지 한 말 다 빈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속으로 여태까지 한 말 다 빈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해다. 안장을 조절식으로 해 놓으면 안장만 뽑아가는 사람들이 많기에, 최근엔 안장을 고정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고정해 놓은 안장은 '육각렌치'라는 도구가 있어야만 풀어서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태워주기 싫어서 한 얘기가 아니라, 정말로 안장을 고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안장이 어떻든 그냥 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는데, H양이 그 자전거에 탔으면 페달에 발이 닿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꼬꼬마 시절 아무렇게나 타던 자전거와 달리, 요즘은 자기 다리길이에 딱 맞춰서 세팅을 해 두니 말이다.
자전거 얘기를 하니, 주문하면 조립을 해 준다고 하고, 근처 자전거 코스를 잘 아니 함께 라이딩 가자고 말하는 상대 아닌가. 왜 이런 상황에서 "자전거를 안 태워 주던데, 빈말이었을까요?"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가. 자전거를 즉시 구입하자. 자전거 주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겸 자연스레 연락처를 받고, 조립을 해 주면 고맙다고 밥 한 끼 사고, 같이 라이딩 하다가 멀리까지도 가보고(응?) 그러면서, 유남생?(You know what i'm saying?)
2. 다른 여자와 관련된 부분
커피숍을 오픈했는데 찾아오는 친구가 하나도 없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H양은 언젠가 상대의 커피숍에 다른 이성들이 찾아와 테이블 치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H양은 '난 저 사람만 이성으로 생각하는데, 저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이 쭈글쭈글해졌다고 했다.
짝사랑을 시작한 솔로부대원들이 가장 많이 넘어지는 부분인데, 많은 수의 대원들이 상대가 '바닥에 떨어진 동전'과 같은 상태일 거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내 눈에는 보이는 그런 상태 말이다. 그 생각을 몰아내야 한다. 사람들도 동전이 그곳에 떨어져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눈치를 보느라 줍지 못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동전의 주인이 그 동전을 찾아갈 거라 생각해 줍지 못하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동전을 주우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동전 근처로도 가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난 H양이 쓸데없이 머뭇거리며 동전을 구경만 하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H양은 상대가 전화번호를 물을 때까지 상대의 커피숍에 출석도장만 찍을 생각이라고 했다.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상대가 웹에 올린 파편만을 손에 쥐고 슬쩍슬쩍 내미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H양은 '이어지는 대화'를 할 줄 모르기에 더 그렇다. 하루는 자전거 얘기, 또 하루는 애완견 얘기, 그리고 또 하루는 컴퓨터 얘기, 상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한 뒤에는 어쩔 생각인가?
그간 H양은 남자들이 먼저 들이대는 연애만을 해왔기에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지'만 남기면 이후로는 남자들이 알아서 척척 진행하는 그런 연애 말이다. 허브 키우는 얘기를 나누면 며칠 후 남자들이 허브 화분을 H양에게 선물했기에 그런 방식에 익숙해진 것이다. 이번엔 태도를 좀 바꿔 H양이 한 발 더 나가길 권한다. 여지만 흘려 놓은 채 '주변에 있는 여자들 중 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만 하지 말고, '나는 누구인가'를 알리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만 놓고 보자면, H양은 '찾아와서 종종 커피를 마시며, 이것저것 얻어먹는 여자'다. 허브 키우는 걸 좋아한다는 남자에게 커피숍 오픈 선물로 화분 하나 준 적 없잖은가. 커피숍에 H양의 애완견을 데려가 상대의 관심만 끌려고 했지, 상대 애완견의 이름도 물은 적 없지 않은가. 상대가 자전거를 언제부터 탔는지 물어 본 적 있는가? 왜 커피숍을 열게 되었는지는?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고 하는데 어떤 주제로 한 것인지 물은 적 있는가? 상대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는? 커피숍에 있는 그림들은 직접 그린 거라고 하던데 미술을 따로 배운 적 있는지는?
이런 질문들은 하나도 하지 않은 채 상대가 내 전화번호를 묻길 바라며, 상대 주변에 있는 다른 여성들을 심통 난 고양이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저한테 남친 있냐고 물어보지도 않더라고요."
당연한 일이다. 주중이고 주말이고 혼자 커피숍에 찾아오며, 어느 날은 팥빙수 하나 시켜 힘들어 하면서도 다 먹고 가고, 자전거를 살 예정인데 조립해 줄 사람도 없다고 하면 그냥 딱 봐도 솔로부대원 아닌가. "수그리. 아까 맨치로."라고 말하는 사람을 두고 "경상도 분이세요?"라며 재차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3. 염려되는 부분
H양의 사연에서 신발에 들어간 돌맹이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상대를 알게 해 준 '언니'가 한 이야기다. H양보다 앞서 상대를 알았고, 또 현재 상대와 더 친한 그 '언니'. 그녀가 '더 괜찮은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한 것에는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H양이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 더 묻지 않은 까닭에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표면적으로 흘린 이야기 외에도 뭔가가 있을 것같다.
고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그 '언니'를 통해 알아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본 상대에게선 아무런 결점이 보이지 않는데, 대체 어떤 결점이 있는지 슬쩍 흘려보는 거다. "나 그사람 마음에 드는데, 언니 생각은 어때?"라며 돌직구를 던지란 얘기는 아니다. "카페에 놀러 갔다가 자전거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자전거 사면 조립해 주겠대. 완전 착하던데? 자전거 코스도 알려주기로 했어."라며 적당히 변화구를 던지면 된다. 그 정도만 흘려도 언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보여 줄 것이다.
고민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우선 가까워지고 난 뒤에 생각하길 권한다. 위에서 말한 대로 자전거도 함께 타고, 밥도 함께 먹으며 친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남의 얘기를 통하지 않더라도 상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H양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것 보다는 안 물어보면 놓칠 수 있다는 것에 더욱 마음을 쓰길 바란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상대에게 영화티켓 두 장을 선물하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솔로인지 커플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커피숍을 하는 상대라면, 마감시간 즈음 찾아가 마감을 도우면서도 알 수 있고 말이다.(커플이라면 마감 때 여자친구가 찾아오거나, 분명 통화를 한다. 주중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가보는 것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가장 권장하는 방법은 '못 물어볼 것 없는 사이'가 되는 거다.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거나 불쾌하게 만들 질문이 아니라면 뭐든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대화의 장'을 만들어 두면, 훗날 연애를 하게 된 뒤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H양은 상대의 커피숍에 어느 정도의 빈도로 들러야 하는지, 상대가 전화번호를 묻게 하도록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데, 그건 정말 쓸데없는 질문이다. 지금처럼 커피숍에 가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올 거라면 횟수가 무슨 상관있겠는가. 커피숍에 매일 간다고 해도 그냥 단골손님이 될 뿐이다. 전화번호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전화번호 물으면, H양은 또 상대가 먼저 연락하길 바랄 것이고, 그 후에는 상대가 고백하길 바랄 것 아닌가. 상대가 무언가를 하도록 만들기보다 내가 무언가를 먼저 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줄 줄 모르고 받기만 하는 여자는 매력 없다는 것도.
혼자 커피숍에 가는 게 뻘쭘하다며 이젠 친구를 데려갈 생각이라는 얘기도 했는데, 난 무조건 반대다. 친구를 데려가면 당장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그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많아진다. 둘이 얘기를 하느라 전처럼 상대가 끼어들지 못한 채 겉돌게 될 수 있고, 친구가 상대에게 반해 삼각관계를 만들 수 있으며, 분위기에 들뜬 친구가 이상한 소리를 해 버릴 수도 있다. 친구를 데려가기 보다는, 책을 좋아한다는 상대에게 책을 추천 받은 뒤 그 책을 읽고, 감상과 함께 커피숍을 찾아가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한다. 산이 너무 높다며 편하게 오를 방법만 묻지 말고, 한 걸음씩 올라 보길 바란다. 정상이 더욱 반가울 것이다.
▲ 커피숍에 다녀온 날 그 남자 생각에 잠을 못 이루는 게 아닙니다. 카페인 때문입니다.(응?)
<연관글>
이별을 예감한 여자가 해야 할 것들
늘 짧은 연애만 반복하게 되는 세 가지 이유
나이가 들수록 연애하기 어려운 이유는?
인기 없는 여자들이 겪게 되는 안타까운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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