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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솔로녀를 울리는 애매한 남자, 어떻게 대처할까?

by 무한 2012. 6. 4.
솔로녀를 울리는 애매한 남자, 어떻게 대처할까?
내게 도착하는 여성대원들의 사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 잘 생긴 남자? 그런 남자에 대한 사연도 종종 도착하긴 한다. 하지만 그런 사연의 대부분은 이미 상대를 '그림의 떡'으로 설정한 상태에서 팬클럽 활동을 하는 대원들의 이야기다. '연애 고민'이라기보다는, 짝사랑으로 인한 불면의 고통과 일상생활의 지장을 호소하는 이야기가 더 많다.

그럼 조건 좋은 남자? 물론 조건과 관련된 사연이 도착하긴 하지만, 그 역시 소수다. 조건 좋은 남자를 사로잡을 방법을 알려달라는 사연 보다는, 그런 남자에게 무시와 멸시를 당한 후, 복수 할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오히려 '조건 나쁜 남자'와 관련된 사연이 두 배쯤 더 많다. 조건만 나쁜 줄 알았는데 성격이나 인간성도 별로라는 걸 깨달은 뒤, 헤어져야 하는지를 묻는 사연 말이다.

사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남자는 '나와 비슷한 수준이며, 현재 나와 가장 친한 남자'다. 그런 남자와 우연히 좋아하는 노래가 같다는 걸 발견했다든지, 동선에서 이탈했는데도 만났다든지 하면 '이게 바로 운명'이라며 예식장 예약할 기세로 사연을 보낸다. 실례가 될 수 있으니, 둘이 비슷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사연을 보낸 여성대원들은 자신이 상대에게 한 수 접어주고 들어가는 듯 이야기 한다는 건 말하지 않겠다. "그 사람은 잘 생긴 것도 아니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니거든요."라는 말에 "너도 그렇잖아요."라고 답하면 상처 받지 않겠는가.

그런데 저 '연애의 가능성이 무럭무럭 자라는 듯 보이는 평범한 남자' 중엔 애매한 남자가 포함되어 있다. 택배기사 같은 남자랄까. 확실히 언제 오겠다는 확답은 피하고, 오늘 온다고 해놓고 내일 오는 경우도 있으며, 종종 전화기를 꺼두기도 하지만 얼굴 보면 다시 반가워지는 남자.(기척 없이 다녀가곤 "소화전 열어 보세요."하는 밀당은 이제 그만.) 이런 남자들 중에서도, '애매함'의 극단을 달리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좀 해 보자.


1. 그레이트 박 이야기


그레이트 박이 생각난다. 이십대 초반에 몇 번 만난 적 있는 그레이트 박은 말 그대로 그레이트 한 남자였다. 잘 생긴 것도, 조건이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여자들의 마음을 간파해 자신을 그레이트하게 만들었다. 핸드백에 비유하자면, MCM 같은 남자라고 할까. 표면상으론 샤넬이나 루이비통을 외치는 여자가 많지만, 실제로는 MCM 정도가 여자에게 가장 부담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20대 초반에겐 시슬리같은 남자, 20대 초중반에겐 코치같은 남자, 20대 중반에겐 MCM같은 남자였다. 그 이후엔 연락이 끊겨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진 모르겠다. 

술자리가 파하면 머뭇머뭇 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그는 '우동 한 그릇'의 기술을 사용했다. 우동 얘기를 하며 무리를 포장마차로 이끄는 그는, 양떼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목자 같았다. 많은 친구들이 그레이트 박의 우동작전을 따라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내용'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우동 먹자고 조르기'로 그 모양을 구질구질하게 만든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레이트 박은 딱 한 번만 물었으며, 누구든 그 제안엔 한 번 만에 승낙했다.

여러 이성들 사이에서 한 이성만 특별하게 만드는 방법에도 그는 능숙했다. 술자리에서 다른 친구들이 분위기를 띄우겠다며 "황비홍 알아? 뚜껑을 이렇게..."라며 열심히 소주병 뚜껑을 꼬고, "밀키스 먹어 봤어?"라며 소주병을 뒤집어 팔꿈치가 부서지도록 치고 있을 때, 그는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속삭였다.

"내가 왼 쪽을 보면 재미없다는 거고, 오른 쪽을 보면 재미있다는 거야."


다른 남자들이 병뚜껑 날리기 하다가 손톱에 멍이 들고, 밀키스를 만들다가 팔꿈치에 부상을 입을 동안 그는 눈동자만 움직인 것이다. 그레이트 박은 눈동자 움직임만으로 상대를 사로잡았다.

이렇게 적어 놓으니까 그레이트 박 혼자만 멋있고, 다른 친구들은 별로인 듯 생각되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외모로 치자면 그레이트 박은 그냥 무난한 수준이었고, 분위기를 앞서서 주도한 것도 아니었다. 그레이트 박과 함께 자리를 했던 친구들은 "며칠이 지난 후 여자와 연락하고 있는 건 늘 그레이트 박이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건가?"라는 토론을 할 정도로, 남자들이 생각하는 '남자의 매력'을 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난 그가 '남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그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박력이 없었지만 그게 오히려 '객기 없음'이란 장점이 되었고, 리더십이 없었지만 그게 오히려 '부담 없음'이란 장점이 되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그는 남자들 사이에선 '만만한 남자'였는데, 그게 이성에게는 '편안한 남자'로 보였던 것이다. 혼자만 남자고 나머지는 모두 여자인 자리, 다른 남자들은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며 개그콤보를 구사하다 스스로 무너지거나, 부담 때문에 평소완 달리 얌전한 청취자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레이트 박은 그런 자리에서도 변함없이 대화에 녹아들었다.


2. 여자친구도 있으면서 왜 그래?


관심남이 모임에 나오면 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기분이었다는 S양. 그레이트 박이 구사한 작전이 바로 그거였다. 상대를 귀엽다는 듯 쳐다보고, 상대가 얘기를 할 때면 웃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미소를 띠고 있는 작전. 아, 무슨 목적을 가지고 그런 건 아니니 작전이란 말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이성을 대하는 태도'라고 해두자.

여하튼 그 태도는, '관심이 있기에 하는 행동'과 똑 닮았다. 때문에 S양을 향한 상대의 태도를 본 사람들이 "둘이 곧 사귀겠군."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언제 연락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이, 그냥 얼굴만 봐도 즐거운 관계, 술자리에서 둘 중 하나가 없으면 어색한 두 사람. 상대가 연애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은 숫기가 없어서 그러는 것처럼 보이고, 친구의 선을 넘는 스킨십을 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조심스러워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상대에게 여자친구가 생긴다. S양은 그 '기-승-전-병'에 당황한다. 그간 혼자 마음만 부풀렸던 자신을 탓하다가, 또 금방 사귈 것처럼 다가왔던 상대에 분노하다가, 사실 상대와 사귀면 내가 더 아깝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그렇게 어느 감정에 정착해 밀고 나가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 표류한다. 그런데 또 그러던 어느 날,

분명 여자친구도 있는 상대가, 혼자일 때 하던 행동들을 그대로 하고 있는 걸 발견한다. 생각해 보니, 상대는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얘기를 한 이후로 여자친구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장난도 치고, 먼저 연락을 하기도 한다. '저 자식, 저거 그냥 친해지면 습관적으로 그러는 녀석이었군.'이라고 생각하며 괘씸해 하다가 또 어느 날,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뭔가 숨은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라며 방황한다. 그 '숨은 의미'를 발굴하겠다며 깊이 파 내려갔다가, 숨은 의미와 함께 묻힌 대원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왜 사람 헷갈리게 저런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지에 대해 딱 부러지게 말하긴 어렵다. '보험' 들듯 그러는 경우나 다다익선을 신봉하는 까닭에 그러는 경우, 또는 여자친구도 좋고 친구도 좋고 그냥 다 좋아서 그러는 경우 등이 있으니 말이다.

여하튼 그와 같은 상황에선 '지금 쟤가 저러는 것이 정상적인 일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길 권한다. 그 은밀함과 다정함에 취해 '쟤 여자친구는 그냥 들러리 일 뿐이고, 진짜는 나야.'라고 착각해선 곤란하다. 연애 중인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헬스를 같이 다니자고 하는 건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여행을 가자고 하는 건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바람에 휘날리지 말고, "네 여자친구에게 집중해."라고 확실히 말해주자.


3. 울지 않으려면 버려야 할 몇 가지 것들


우선, 숫자를 버리자. 상대와 몇 년 알았고, 몇 살 때부터 친구였고 그런 것에 큰 무게를 두지 말자. 숫자가 높으면 최고인 줄 알고 숫자부터 들이대는 대원들이 꽤 있는데, 그런 건 이십대가 꺾일 때 함께 꺾어서 버려야 할 것들 중 하나다. 특히 솔로부대원들 중 "전 3년 간 짝사랑했어요." 등의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 숫자로 따지면 십 년 이상 짝사랑 했다고 주장하는 간부급 대원들도 있는데, 그건 그냥 '10년 무사고 자동차 운전'와 비슷한 거다. 무사고 10년 이든, 20년 이든 한 번의 사고로 요단강을 건널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가능하다면, 소녀 감성도 반쯤은 버리자. 지인 중에 스마트 폰은 정이 가지 않는다며 언제까지나 구식 휴대폰을 사용하겠다는 지인이 있었다. 지인은 스마트 폰엔 학창시절 번호를 꾹꾹 눌러 통화하던 감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카톡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유로 슬쩍 아이폰으로 갈아타더니, 현재 아이패드와 맥북을 구입해 사용하며 애플 예찬론자로 활동하고 있다. 신념을 가지고 고집하는 중이라면 그 고집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하는 게 멋지고 아름다워 보일 것 같아서 그러는 거라면, 얼른 접고 현실에 발맞추자. "그런 사람 또 없어요."라며 감성만 챙기고 있다간 청춘이 그냥 가 버린다. 그 사람만 세상에 하나 뿐인 게 아니라, 그대도 세상에 단 하나 뿐이다. 반쯤 비운 감성의 자리에 자신을 채우길 권한다.

'혹시'도 버리자. '혹시'는 '설마'와 일촌인데, 둘 다 사람을 잡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혹시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건 아닐까, 기다리면 혹시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까, 혹시 이제 막 나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아닐까, 혹시 날 두고 다른 사람과 연애하는 걸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닐까, 등의 고민.

"무한님이 보시기엔 그 사람과 제가 맺어질 가능성이 1%라도 있어 보이시나요?"


모든 증거가 "아니요."라고 말하고 있는데, 왜 확실한 그 증거들은 놔두고 자꾸 심증만 만지작거리는가. 거기서 더 나아가 "그런데 혹시,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가 저에게 사귀자고 해도, 여자친구 있는 상태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남자는 별로인 거겠죠?"라는 질문을 하는 대원들도 있기에 가슴이 아프다. 가정을 하고 싶은 거라면 소심하게 가능성만 묻지 말고 과감하게 하길 바란다. "우리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저를 닮을까요, 그 사람을 닮을까요?" 정도로 과감하게 말이다.


억울하고 분하고 짜증나고 속상한 거 안다. 당연한 일이다. 나도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분명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했을 때는 '대출 가능'이라고 표시된 책이었는데, 도서관에 가 보니 그 책이 없었다. 혹시 내가 도서관에 간 사이 다른 사람이 빌려간 건가 해서 도서관 컴퓨터로 검색해 보았다. '대출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칸에 잘못 꽂혀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열심히 책을 찾았다. 책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책을 찾는 사이 누군가 빌려간 거 아닌가 싶어 다시 검색해 봤다. 역시 '대출 가능'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자료실 내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 들 중 한 사람이 읽고 있나 싶어 슬그머니 주변을 돌며 사람들이 읽고 있는 책을 살폈다. 내가 찾는 책은 없었다. 사서에게 가서 책이 있나 물어봤다. 사서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고객용과 달리 더 정확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서는 책이 있다고 말했다. 난 다시 책을 찾으러 돌아가며 '찾아 봤는데 없었다고 말할 걸.'이라는 후회를 했다. 대충 찾는 시늉을 하고 컴퓨터 검색을 다시 한 번 한 후 사서에게 갔다. 난 사서에게 책을 찾아 봤는데 없다고 말했다. 사서는 '이거 또 책도 못 찾는 벌레가 한 마리 들어왔고만.'이라는 표정으로 대답 없이 일어나 책이 있어야 할 책장으로 향했다. 책은 없었다.

"책이 없네요. 반납 처리는 되었던데, 누가 읽고 계신 것 같아요."


라고 사서가 말했다. 난 다 살펴보았지만 읽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사서는 '아니, 사람들이 무슨 책을 읽나 다 훔쳐보고 다닌 거야?'라는 표정을 잠깐 짓곤, "분실된 것 같네요."라고 짧게 답했다. 이때 얻은 교훈이 '모르는 건 빨리 묻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진 말자.'라는 것이었다.

난 그대가 눈치 살피며 방황하는 것을 그만 두고, 어서 말랑말랑한 사연들을 좀 보내줬으면 좋겠다.



▲ '대출 가능' 떠 있으면 설레는 건 당연합니다. 자책하지 마세요! 툭툭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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