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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올드미스가 되기 쉬운 '연하남 상담녀'의 특징

by 무한 2012. 6. 15.
올드미스가 되기 쉬운 '연하남 상담녀'의 특징
지인이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다이어트 이름이 '치킨 다이어트'다. 난 그게 닭가슴살 같은 걸 먹으면서 하는 다이어트인 줄 알았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진짜 '치킨'을 먹는 다이어트였다. 의아해 하는 나에게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치킨을 먹는 게 아니야.
후라이드나 양념? 그런 걸 먹으면 네 말대로 살이 더 찌지.
그래서 난 오븐에서 구운 치킨만 먹어. 그렇게 구우면 기름이 쫙 빠지거든.
마침 우리 동네에 구운 치킨을 싸게 파는 곳이 하나 있는데,
가격으로 치자면 닭가슴살 사먹는 거랑 비슷비슷해.
그런데 맛은 구운 치킨이 훨씬 낫거든. 맛있게 먹으면서 다이어트 하는 거지."



다이어트를 위해 구운 치킨을 먹는다는 사람이 소스를 먹는 건지 치킨을 먹는 건지 모를 정도로 소스를 듬뿍 찍어 먹고, 치킨을 먹은 뒤 나트륨을 빼내야 한다며 바나나를 먹고, 체지방 분해를 도와야 한다며 또 커피를 마시니, 좀 혼란스러웠다. 지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요즘 다이어트를 했더니 변비가 찾아왔다며 수시로 푸룬 주스를 홀짝홀짝 마셨다.

다이어트란 적게 먹고 활동량을 늘리는 걸텐데,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음식이 있으면 다 찾아 먹곤 줄넘기를 하러 나가는 지인이 안타까웠다. 몸은 몸대로 힘들고, 살은 살대로 안 빠지며, 꿈쩍 하지 않는 체중계 눈금에 스트레스 받아 머리카락만 빠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위와 같은 일을 연애에서 벌이는 대원들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는 친목 모임에서 혼자 무거운 고민을 하고 있는 대원이다. 특히 그런 모임에서 '연하남 상담녀'의 포지션을 잡고 있는 대원들은 계절이 몇 번 바뀌어도 계속 그 포지션을 유지한다. 몇몇 대원들은 두 세 번의 여름만 더 보내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듦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하남 상담녀'의 역할만 하고 있기도 하다. 그 대원들을 위한 '도로 끝, 길 없음'의 표지판을 세우는 기분으로 오늘 매뉴얼을 적는다.


1. 달달한 친목모임


그간 놀 만큼 놀지 않았는가. 건배는 할 만큼 했고, 캠핑장 가서 고기도 구워 먹어 봤고, 어느 날은 위액도 토해 봤고, 필름도 끊겨 봤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술집에서 그 무리만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도 느껴봤고, 여름에는 물놀이도 가 봤고, 펜션으로 놀러 가서 진실게임도 해 봤고….

오랜 친목모임 활동으로 인해 이젠 그 모임의 '원로멤버'로 인정받는 지인이 한 명 있다.(6월 8일자 매뉴얼에서 '한 잔 하자.' 부분에 소개된 지인이다.) 그에게 이젠 술 없이, 모임을 좀 벗어나 사람을 만나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거기 사람들, 다 착한 사람들이야.
물론, 가끔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원로 멤버들이 알아서 걸러내.
그렇게 거르고 걸러서 남은 게 지금 멤버야.
그 사람들, 삶에 힘이 되는 사람들이다. 너도 한 번 와 봐."



라고 말했다.

난 그 모임이 나쁘다거나, 그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악하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모임의 문제는, 그곳의 사람들이 너무 착하다는(속은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보인다는) 것에 있다. 모임의 사람들이 다들 '타인'인 까닭에 그들의 말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친목' 모임인 까닭에 호의가 개입한다.

그러니까, "하영누나는 뭘 믿고 혼자 그렇게 도도해? 내가 보기엔 믿을 게 없어 보이는데…."라는 말이 친목모임에선 "하영누나는 차가워 보여서 남자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아."로 바뀌어 전달될 가능성이 높단 얘기다. 칭찬과 립서비스, 마음에도 없는 말들 덕분에 모임의 분위기가 달달하긴 하다. 그 분위기에 취해 곧 가슴 뛰는 사랑이 찾아오길 기원하며 건배도 셀 수 없이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잔을 부딪혀봐도 찾아오는 거라곤 위염이나 간염, 식도염 뿐 아닌가.

"A양이 C군과 사귀다가 깨지고 B군과 다시 사귀면서 D양이 어쩌고…."


저런 얘기는 꼬꼬마들이 하고 놀게 두자. 이거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반백년을 살아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내 주변에도 애들이 모임에 잘 끼워주지 않으니 밥이나 술을 사가며 어떻게든 그 모임에 어울리려는 이모님이 한 분 계시다. 전에 얼핏 보니까 호프집에 앉아서 꼬꼬마들 모아 놓고, '친구 죽었을 때 다 팽개치고 장례식장 찾아가서 울다 탈수증으로 쓰러진 얘기' 하고 계시던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진짜 제발 좀.


2. 미스 인큐베이터


이젠 앓고 있지 않은 남자를 좀 만나보는 게 어떨까. '연하남 상담녀'의 사연을 보낸 상담녀들은 대부분 앓고 있는 연하남들을 돌본다.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거나, 예전 여자친구를 못 잊고 있다거나, 돈이 없다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있다거나 하는 남자들 말이다.

대부분의 낚시꾼들이 '내가 놓친 대어'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듯, 남자들도 자신이 놓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두길 권한다. 사연을 보내는 '상담녀'들은 상대에 대해,

"그 아이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어요. 순수한 건지, 바보인 건지..
그러면서도 누가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아요.
자기는 여자를 많이 만나 볼 거라는 얘기도 하고...
언젠가는 사는 게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상처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러다가도 편의점 알바에게 꽂혔다면서
연락처 알아내겠다는 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아이에요.."



등의 이야기를 한다. 미안하지만 저건, 삶의 닻을 내리지 않고 바람 부는 대로 좀 더 항해하기로 한 남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레퍼토리다. 안정감을 찾고 싶은 욕구와 더 멀리까지 가보고 싶은 욕구, 달라붙고 싶은 욕구와 떨어지고 싶은 욕구가 섞여있다. 닻을 내리고 안 내리고의 우열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우열은 가릴 수 없다. 닻을 내린 사람은 안정감이 있지만 그 중에는 멍충이도 있을 수 있고, 항해하는 사람은 불안하지만 그 중에는 몽상가가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요는, 멍충이든 몽상가든 그들을 품지 말라는 거다. 그 사람은 그냥 그 사람의 자리에 두고, 그만큼의 거리를 인정한 채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런데 '상담녀'들은 '미스 인큐베이터'가 된다. 연애부터 시작해서 인생, 금융(응?) 등 여러 가지 분야에 대해 상대를 모성애로 품으려 한다. 그러니 상대는 갑갑해 하고, 이쪽은 마음 졸일 수밖에.

그리고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내가 닻을 내리고 있어야 상대에게도 닻을 내리라고 권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 자신도 나침반 없이 항해하고 있으면서 상대에게 닻을 내리라고 하면, 그가 그렇게 하겠는가? 다 주어도 아까울 것 같지 않은 사람을 만난 거라면, 쫓아다니면서 인큐베이터로 들어오라고 요청하지 말고, 즐겁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럼 지금처럼 애원하지 않아도, 상대가 궁금함에 이끌려 그대를 들여다보려 할 테니 말이다.  


3. 누나, 무섭거든요.


위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게 "나에게 마음이 있다면 이 번호로 연락 주고, 그게 아니라면 이 쪽지는 찢어서 버려줘." 등의 이야기를 해도 문제가 없을 꼬꼬마 시절의 일이라면 웃으면서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상담녀'는 조카가 그런 꼬꼬마들의 나이쯤 된 대원들이다. 심각한 문제다.

"너한테 물어본 내가 바보지. 됐다."
"웃기셔. 누나답지 못했던 내 잘못이다."
"일부러 피하지마. 그냥 예전처럼 행동해."



혹시 웹에서 [집착 쩌는 아줌마(링크)]라는 게시물을 본 적 있는가? 본 적 없다면 한 번 읽어 보길 권한다. 너무 길어서 여기에 다 옮길 수는 없고 대략 내용을 설명하자면, 한 어학학원에서 연하남에게 반한 연상녀가 연하남에게 집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연하남은 수강생들이 가질만한 친근함인 줄 알고 예의를 갖춰 대했는데, 연상녀는 "너랑 나랑 스캔들이 났으니 해명해라."라는 이야기를 했다가, "스캔들은 내가 널 좋아해서 냈다."라고 했다가 "사진 좀 보내줘라." 라고 하는 등 무섭게 들이댄다. 위의 이야기에 나온 연상녀의 대화 중, 몇몇 대원들이 내게 보낸 사연과 비슷한 문장은 아래와 같다.

"나한테 화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날 피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 이유가 뭔지 알고 싶다."
"난 너에게 대시한 적이 없으므로 차인 적도 없다. 이 부분 인정하지?"
"우리 사이좋지 않았어? 너 왜 이렇게 갑자기 찬바람 부니?"
"난 너에게 모든 진실을 요구한다."



이게, 한 끗 차이다. 지금처럼 멀리서 남의 이야기로 읽으면 혀를 차고 말 수 있다. 하지만 그대나 나나 저 상황에 처해 깊게 파 내려가다 보면, 저렇게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든 소리들을 할 수도 있단 얘기다. 그 경계에서 위험한 외줄을 타고 있는 대원들에게 어서 내려오길 권하고 싶다. 오해나 회포나 그런 거 안 푼다고 체포 되는 거 아니니까, 혼자 심층수사 하지 말고 상대는 무혐의 처리 하도록 하자.


지금처럼 계속 꼬꼬마들 모아 놓고 골목대장 놀이만 하다간 '올드미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모두가 나에게 호의적인 태도만 보이며, 서로 상처가 될 말 따위는 하지 않는 모임에 너무 안주하지 말길 권한다. 그 온실 속에서 무난하게 세월을 보내다 보면 온실 밖에서의 삶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지고 만다. 여기가 네버랜드라면 동화처럼 살 수 있겠지만, 그대는 팅커벨이 아니고, 상대도 피터팬이 아니지 않은가.

'야한 얘기도 잘 받아주는 상담자 누나'


라는 건 스스로 만든 이미지다. 꼬꼬마들 앞에서 어른인 척 하려고 쿨한 모습인 양 야한 얘기 하고, 꼬꼬마 사람 만든다며 자기 인큐베이터로 들어오라고 요청하고, 그 꼬꼬마와 잘 되게 이어 달라며 다른 꼬꼬마들에게 부탁하던 모습들이 그 이미지를 만들었다. 사연을 보낸 대원은 "절 가볍게 본 건지…" 라고 말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가볍게 본 것'이 아니라 '가볍게 보인 것'이다. 여기다 옮겨 적기도 민망한 그 일들은, 상대가 가벼워 보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본인의 닻을 먼저 내리길 권한다. "제가 술 마시러 오라고 하면, 애들은 바로 왔어요."가 절대 멋진 게 아니다. 놀라고 멍석 깔아 주는데 안 올 꼬꼬마가 어디 있겠는가. 연하남과 단 둘이 진지하게 만난 것도 아니고, 늘 모임을 구실로 불러낸 것 아닌가. "누나 원나잇 몇 번 해 봤어요?"라는 꼬꼬마의 질문 덕분에 답은 쉽게 구할 수 있다. 자, 마주 앉아서 열심히 대답해 줄 것인가, 꼬꼬마들과 바이바이 하고 온실을 벗어날 것인가? 선택은 그대의 몫!



▲ 2번 문제에서 막혔으면, 그건 두고 3번 문제를 풀어야죠. 잘못하면 문제 다 놓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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