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 구직 할머니와 귀농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전에 한 독자 분께서 이런 댓글을 남겨주신 적이 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다. 고백하자면 사실, 나도 그런 남자 중 하나다. 엄마나 공쥬님(여자친구)과 함께 병원에 갔을 때 느껴지는 그 안정감. 나 혼자 갔더라면 의사와 서먹서먹하고, 낯설고, 불편한 시간만 갖다가 돌아올 가능성이 높지만, 엄마나 공쥬님(여자친구)과 함께 병원에 가면 그렇지 않다.
엄마의 경우 가족력을 모두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TV나 잡지, 각종 입소문을 통해 알게 된 병명들을 나열하며 나에 대한 '엄마 소견서'를 제출한다. 공쥬님의 경우 내 아픔을 증폭시켜 의사에게 전달해 준다. 훗날 아이를 낳으면 '엄마 소견서'를 써야 할 입장이어서 그런지, 내 아픔과 관련해 의심되는 다양한 질병들에 대해 의사에게 자문을 구하며 의학적 지식을 축적하기도 한다.
이렇게 써 놓으니까 내가 무슨 기생충이 된 듯 보이는데, '기생'은 아니고 '공생'이다. 엄마나 공쥬님이 아플 경우엔 내가 보호자가 된다. "아프면 병원 가 봐."라는 딱딱한 말만 오가지 않는다는 게, 때로는 참 감사한 일이다.(물론 매번 빠짐없이 병원에 함께 가는 건 아니다. 서로 시간이 맞지 않거나, 증세가 가벼운 질환일 경우엔 각자 병원을 찾는다.)
며칠 전부터 손에 좁쌀만 한 붉은 뾰루지들이 보이더니, 시간이 지나며 녀석들이 옆으로 점점 옮기는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의사에게 손을 보여주며 옆으로 옮기는 것 같다고 했더니, 잠깐 보기만 해도 알 정도로 흔한 증상인지, 별 설명 없이 연고를 처방해 준다고 했다. 48초 정도 대화를 나눈 것 같다.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국을 향해 걸어가며 생각했다. 엄마나 공쥬님과 함께 왔으면 적어도 4분은 대화했을 거라고.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이 증상의 이름은 무엇인지, 혹시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건 아닌지, 수건을 같이 써도 되는지, 일반적으로 며칠 정도 연고를 바르면 증상이 사라지는지 등을 빠짐없이 물었을 것이다.
약국엔 약을 지으러 오신 할머니들이 많이 계셨다. 난 처방전을 내곤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내 옆의 할머니께서 신문을 열심히 읽고 계시길래, 무슨 신문인가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구인구직과 생활용품 매매 정보 등이 있는 생활정보지였다. 70이 훌쩍 넘으신 듯한 할머니께서 생활정보지를 보고 계신 게 좀 의외였다. 그것도 굉장히 몰입해서 읽고 계셨다. 난 할머니의 심각한 표정을 곁눈질로 힐끔 쳐다봤는데, 그러다가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몰래 쳐다보려던 것이 민망해 난 폰을 꺼내 뭔갈 하는 척 했다. 할머니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난 지금 할머니께서 보고 계신 면이, '중고 자동차' 면이라는 걸 알려드릴까 하다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 할머니 친구이신 듯한 다른 할머니께서 약을 타 오시며, 앉아 계신 할머니께 가자고 말했다.
'조사'가 아니라 '검사'라고 말씀드릴까 하다가, 그냥 또 가만히 있었다. 사실 난 당시 할머니께서 "왜 이렇게 취직하기가 힘들어?"라고 하실 때부터 웃음을 참고 있었는데, '피 조사'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실례가 될까봐 기침하는 척 하며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만 웃음을 참고 있던 건 아니었는지, 할머니 두 분이 약국을 나가자, 내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약사 아주머니도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내가 약국에 오기 전 할머니 두 분께서 아이폰 얘기를 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셨다. 열혈 취업 할머니께서 조만간 좋은 회사에 취직하시길 바라본다.
올 3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난 거실 쪽 발코니에 나가 카메라를 들고 ts렌즈 효과를 내기 위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파트 단지 울타리 부근에서 열심히 땅을 일구고 계신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할머니는 호미질을 하고 계셨는데, 큰 돌을 골라내 (울타리 내)배수로 바깥으로 던지셨다. 그러니까 배수로와 울타리 사이에 있는 일 미터 남짓한 땅을 길게 일구고 계셨던 것이다.
난 흥미를 느껴 매일 그 시간에 그곳을 내다 봤다. 며칠 후엔 거실 쪽 발코니에서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내 방 쪽 발코니에 나가 고개를 내밀어야 보일 정도까지 할머니가 땅을 일구셨다. 며칠이 더 지났을 땐 할머니를 볼 수 없었다. 할머니가 일구신 그 땅 앞쪽에는 빨간색 글씨로 쓴 '농작물 경작금지'라는 현수막만 걸려 있었다.
훗날 농작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지만, 할머니께서 열심히 땅을 일구신 노력이 좀 안타깝긴 했다. 여하튼 할머니에 대해선 잊어가고 있던 어느 날, 새벽 두 시쯤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들렸다. 밖을 내다 봤더니 그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는 주위를 살피며 화단과 계단 사이에 뭔가를 심고 계셨다. 서둘러 일을 마치신 할머니는 금방 자리를 뜨셨다. 난 눈으로 할머니를 쫓았다. 할머니께선 다른 동 부근으로 가 또 서걱서걱, 뭔가를 하나 심으시더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할머니는 며칠간 경비아저씨들의 동선을 파악하셨을 것이다. 발코니에서 내다보거나, 혹은 어딘가에 숨어 '마지막 순찰은 이 시간이군.', '다시 출근할 때 까진 4시간이 비어.', '카메라는 놀이터에 하나, 단지 입구에 하나닷!', '최대한 티가 나지 않도록, 우연히 자라난 것처럼 보이게 심는 거야.' 등의 생각을 하신 뒤, 행동에 옮기신 것이다. 그 즈음 나도 '아파트 화단 부근에 몰래 허브씨를 뿌리면 어떨까. 그럼 알아서 자랄 거고, 다 자라면 나는 잎만 좀 따면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웠다.
그 이후 아직까지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막 키를 키우고 있는 작물들이기에, 화단의 다른 식물들과 어울려 눈에 띄지 않게 자라고 있다. 할머니의 '뻐꾸기 작전'은 성공했다.(뻐꾸기는 지빠귀나 때까치의 둥지에 알을 낳는데, 지빠귀나 때까치는 그 알이 자기 알인 줄 알고 키운다.) 오늘 보니, 날이 가문 까닭에 조경업체에서 나와 화단에 물을 주고 있던데 인부 아저씨들도 눈치를 못 챘는지 차별 없이 할머니의 작물에도 물을 주고 있다.
고비는 다음 달쯤 찾아올 것 같다. 고만고만한 화단의 식물들과 달리 할머니의 작물은 시간이 지나며 눈에 띄게 된다. 울타리에 호박이 매달려 있다거나, 조팝나무 군락 옆에 고구마 줄기가 보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가끔 찾아오는 '잡초제거반'도 문제다. 한 무리의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화단에 들어가, 본래 있어야 할 식물들을 제외하곤 모조리 뽑아 버리니 말이다. 할머니께서 무사히 작물을 수확하시길 바라본다.
이대로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 뭔가 정이 없는 느낌이니, 보너스로 요즘 키우고 있는 허브와 미나리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위로부터 세 번째까지는 '페퍼민트', 네 번째는 '카모마일', 다섯 번째는 '애플민트', 여섯 번째는 '레몬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는 '돌미나리' 사진이다(돌미나리는 보름만에 저렇게 자랐다.). 각각의 용도는 아래와 같다.
지금 파종하면 가을 쯤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끌리시는 분은 허브 화분 하나 들여 놓으시길 권한다.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가 하루 남은 오늘, 무사히 잘 버티시길 바라며.
▲ 미나리는 보름간 저렇게나 자랐는데, 난 보름간 얼마나 자랐나. 나도 물 좀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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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한 독자 분께서 이런 댓글을 남겨주신 적이 있다.
"전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데요,
서른이 넘어서도 엄마랑 같이 병원에 오는 남자들 정말 어이없더군요.
멀뚱멀뚱 따라와서 대기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이름을 부르면 대답도 안 해요. 옆에 있는 엄마가 대신 대답하고,
진료실에 같이 들어가고, 처방전 타고 계산 하는 것도 다 엄마가 하더군요.
소개팅에 이런 남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네요.
이 부분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하는 글도 한 번 써 주세요."
서른이 넘어서도 엄마랑 같이 병원에 오는 남자들 정말 어이없더군요.
멀뚱멀뚱 따라와서 대기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이름을 부르면 대답도 안 해요. 옆에 있는 엄마가 대신 대답하고,
진료실에 같이 들어가고, 처방전 타고 계산 하는 것도 다 엄마가 하더군요.
소개팅에 이런 남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네요.
이 부분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하는 글도 한 번 써 주세요."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다. 고백하자면 사실, 나도 그런 남자 중 하나다. 엄마나 공쥬님(여자친구)과 함께 병원에 갔을 때 느껴지는 그 안정감. 나 혼자 갔더라면 의사와 서먹서먹하고, 낯설고, 불편한 시간만 갖다가 돌아올 가능성이 높지만, 엄마나 공쥬님(여자친구)과 함께 병원에 가면 그렇지 않다.
엄마의 경우 가족력을 모두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TV나 잡지, 각종 입소문을 통해 알게 된 병명들을 나열하며 나에 대한 '엄마 소견서'를 제출한다. 공쥬님의 경우 내 아픔을 증폭시켜 의사에게 전달해 준다. 훗날 아이를 낳으면 '엄마 소견서'를 써야 할 입장이어서 그런지, 내 아픔과 관련해 의심되는 다양한 질병들에 대해 의사에게 자문을 구하며 의학적 지식을 축적하기도 한다.
이렇게 써 놓으니까 내가 무슨 기생충이 된 듯 보이는데, '기생'은 아니고 '공생'이다. 엄마나 공쥬님이 아플 경우엔 내가 보호자가 된다. "아프면 병원 가 봐."라는 딱딱한 말만 오가지 않는다는 게, 때로는 참 감사한 일이다.(물론 매번 빠짐없이 병원에 함께 가는 건 아니다. 서로 시간이 맞지 않거나, 증세가 가벼운 질환일 경우엔 각자 병원을 찾는다.)
며칠 전부터 손에 좁쌀만 한 붉은 뾰루지들이 보이더니, 시간이 지나며 녀석들이 옆으로 점점 옮기는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의사에게 손을 보여주며 옆으로 옮기는 것 같다고 했더니, 잠깐 보기만 해도 알 정도로 흔한 증상인지, 별 설명 없이 연고를 처방해 준다고 했다. 48초 정도 대화를 나눈 것 같다.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국을 향해 걸어가며 생각했다. 엄마나 공쥬님과 함께 왔으면 적어도 4분은 대화했을 거라고.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이 증상의 이름은 무엇인지, 혹시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건 아닌지, 수건을 같이 써도 되는지, 일반적으로 며칠 정도 연고를 바르면 증상이 사라지는지 등을 빠짐없이 물었을 것이다.
1. 열혈 구직 할머니
약국엔 약을 지으러 오신 할머니들이 많이 계셨다. 난 처방전을 내곤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내 옆의 할머니께서 신문을 열심히 읽고 계시길래, 무슨 신문인가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구인구직과 생활용품 매매 정보 등이 있는 생활정보지였다. 70이 훌쩍 넘으신 듯한 할머니께서 생활정보지를 보고 계신 게 좀 의외였다. 그것도 굉장히 몰입해서 읽고 계셨다. 난 할머니의 심각한 표정을 곁눈질로 힐끔 쳐다봤는데, 그러다가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할머니 - 왜?
나 - 아, 아뇨.
나 - 아, 아뇨.
몰래 쳐다보려던 것이 민망해 난 폰을 꺼내 뭔갈 하는 척 했다. 할머니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할머니 - 나 취직할라고.
나 - 예? 아, 네.
할머니 - 왜? 난 취직하면 안 되나?
나 - 아뇨. 하셔도 되죠.
할머니 - 왜 이렇게 취직하기가 힘들어?
나 - ......
나 - 예? 아, 네.
할머니 - 왜? 난 취직하면 안 되나?
나 - 아뇨. 하셔도 되죠.
할머니 - 왜 이렇게 취직하기가 힘들어?
나 - ......
난 지금 할머니께서 보고 계신 면이, '중고 자동차' 면이라는 걸 알려드릴까 하다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 할머니 친구이신 듯한 다른 할머니께서 약을 타 오시며, 앉아 계신 할머니께 가자고 말했다.
약탄 할머니 - 얼른 가. 갔다가 우리 수요일 날 또 와야 돼.
취업 할머니 - 수요일? 수요일 날 왜?
약탄 할머니 - 그때 피 조사 한 거 나온다잖어.
취업 할머니 - 조사가 한참 걸리네.
취업 할머니 - 수요일? 수요일 날 왜?
약탄 할머니 - 그때 피 조사 한 거 나온다잖어.
취업 할머니 - 조사가 한참 걸리네.
'조사'가 아니라 '검사'라고 말씀드릴까 하다가, 그냥 또 가만히 있었다. 사실 난 당시 할머니께서 "왜 이렇게 취직하기가 힘들어?"라고 하실 때부터 웃음을 참고 있었는데, '피 조사'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실례가 될까봐 기침하는 척 하며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만 웃음을 참고 있던 건 아니었는지, 할머니 두 분이 약국을 나가자, 내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약사 아주머니도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내가 약국에 오기 전 할머니 두 분께서 아이폰 얘기를 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셨다. 열혈 취업 할머니께서 조만간 좋은 회사에 취직하시길 바라본다.
2. 귀농 할머니
올 3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난 거실 쪽 발코니에 나가 카메라를 들고 ts렌즈 효과를 내기 위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파트 단지 울타리 부근에서 열심히 땅을 일구고 계신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할머니는 호미질을 하고 계셨는데, 큰 돌을 골라내 (울타리 내)배수로 바깥으로 던지셨다. 그러니까 배수로와 울타리 사이에 있는 일 미터 남짓한 땅을 길게 일구고 계셨던 것이다.
난 흥미를 느껴 매일 그 시간에 그곳을 내다 봤다. 며칠 후엔 거실 쪽 발코니에서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내 방 쪽 발코니에 나가 고개를 내밀어야 보일 정도까지 할머니가 땅을 일구셨다. 며칠이 더 지났을 땐 할머니를 볼 수 없었다. 할머니가 일구신 그 땅 앞쪽에는 빨간색 글씨로 쓴 '농작물 경작금지'라는 현수막만 걸려 있었다.
훗날 농작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지만, 할머니께서 열심히 땅을 일구신 노력이 좀 안타깝긴 했다. 여하튼 할머니에 대해선 잊어가고 있던 어느 날, 새벽 두 시쯤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들렸다. 밖을 내다 봤더니 그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는 주위를 살피며 화단과 계단 사이에 뭔가를 심고 계셨다. 서둘러 일을 마치신 할머니는 금방 자리를 뜨셨다. 난 눈으로 할머니를 쫓았다. 할머니께선 다른 동 부근으로 가 또 서걱서걱, 뭔가를 하나 심으시더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저, 저건, 경비아저씨들이 모두 퇴근한 시간을 노린 거야...'
할머니는 며칠간 경비아저씨들의 동선을 파악하셨을 것이다. 발코니에서 내다보거나, 혹은 어딘가에 숨어 '마지막 순찰은 이 시간이군.', '다시 출근할 때 까진 4시간이 비어.', '카메라는 놀이터에 하나, 단지 입구에 하나닷!', '최대한 티가 나지 않도록, 우연히 자라난 것처럼 보이게 심는 거야.' 등의 생각을 하신 뒤, 행동에 옮기신 것이다. 그 즈음 나도 '아파트 화단 부근에 몰래 허브씨를 뿌리면 어떨까. 그럼 알아서 자랄 거고, 다 자라면 나는 잎만 좀 따면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웠다.
그 이후 아직까지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막 키를 키우고 있는 작물들이기에, 화단의 다른 식물들과 어울려 눈에 띄지 않게 자라고 있다. 할머니의 '뻐꾸기 작전'은 성공했다.(뻐꾸기는 지빠귀나 때까치의 둥지에 알을 낳는데, 지빠귀나 때까치는 그 알이 자기 알인 줄 알고 키운다.) 오늘 보니, 날이 가문 까닭에 조경업체에서 나와 화단에 물을 주고 있던데 인부 아저씨들도 눈치를 못 챘는지 차별 없이 할머니의 작물에도 물을 주고 있다.
고비는 다음 달쯤 찾아올 것 같다. 고만고만한 화단의 식물들과 달리 할머니의 작물은 시간이 지나며 눈에 띄게 된다. 울타리에 호박이 매달려 있다거나, 조팝나무 군락 옆에 고구마 줄기가 보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가끔 찾아오는 '잡초제거반'도 문제다. 한 무리의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화단에 들어가, 본래 있어야 할 식물들을 제외하곤 모조리 뽑아 버리니 말이다. 할머니께서 무사히 작물을 수확하시길 바라본다.
이대로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 뭔가 정이 없는 느낌이니, 보너스로 요즘 키우고 있는 허브와 미나리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 요즘 키우고 있는 허브와 미나리.
위로부터 세 번째까지는 '페퍼민트', 네 번째는 '카모마일', 다섯 번째는 '애플민트', 여섯 번째는 '레몬밤',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는 '돌미나리' 사진이다(돌미나리는 보름만에 저렇게 자랐다.). 각각의 용도는 아래와 같다.
페퍼민트 - 식용(차, 칵테일)
카모마일 - 꽃잎으로 베개 만들기. 실패하면 식용(차)
애플민트 - 식용(차, 칵테일)
레몬밤 - 식용(차)
돌미나리 - 식용(녹즙)
카모마일 - 꽃잎으로 베개 만들기. 실패하면 식용(차)
애플민트 - 식용(차, 칵테일)
레몬밤 - 식용(차)
돌미나리 - 식용(녹즙)
지금 파종하면 가을 쯤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끌리시는 분은 허브 화분 하나 들여 놓으시길 권한다.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가 하루 남은 오늘, 무사히 잘 버티시길 바라며.
▲ 미나리는 보름간 저렇게나 자랐는데, 난 보름간 얼마나 자랐나. 나도 물 좀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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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밥을 먹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같이 지내실분, 이라는 구인광고에 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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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팩트 디카를 산 사람들이 DSLR로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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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관한 여자의 심한 착각들 Best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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