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이든 일병이든 휴가를 앞두고 설레이는 것은 같지만, 양과 질 모두 4박 5일의 위로휴가와 9박 10일의 정기휴가는 차이를 보인다. 아직 군대를 경험하지 못한 가이들을 위해 사회의 비유를 들자면, 주 5일제 근무로 토,일요일 이틀 쉬는 것과 명절 연휴로 수,목,금,토,일요일 이렇게 콤보로 쉬는 것이 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어찌 위로휴가 따위를 정기휴가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입고 나가는 군복의 배터리 개수 (이등병 - 한칸, 일병 - 두칸)부터 틀린데 말이다.
카메라 치우면 죽었다 생각해라 (저작자 - KBS2)
휴가 나가기 전 준비하는 것들은 이미 [군생활 매뉴얼, 이등병 첫 휴가 완전정복]에서 이야기를 나눴으니 그 매뉴얼에 나온 준비물들은 일병 때에도 변함없이 챙겨서 나가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총기키나 부대물품을 행여 실수로라도 가지고 나가지 않길 바란다. 부대로 돌아와야 하는 수가 생길 수 있다.
1. 숨길 수 없는 짬내
첫 휴가(위로휴가, 전 백일휴가)때, 사제 담배를 하나 사려고,
이런 상황을 겪었을 것이다. 일병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여전히 "네?" 라고 묻지는 못하고,
"잘 못들...었어요"
이런 삽질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휴가를 한 번 나와봤기 때문에 기차역이나 전철역에서 방황하거나 버스를 반대편에서 타는 안습의 상황은 생기지 않겠지만, 부모님을 보면 습관적으로 경례부터 하려고 손이 움찔할 수 있단 얘기다. 내 친구중에는 동네 슈퍼 아저씨와 마주치자 경례를 했던 녀석도 있었다.
9박 10일이라는 엄청난 숫자에 군대를 전역한 사람처럼 약속을 잡겠지만, 숨길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짧은 머리와 10시만 되면 수면제를 먹은 듯 눈이 감기는 '10시의 저주'다. '애들하고 PC방에서 밤 새야지!' 이런 다부진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이미 그대는 컴퓨터 앞에 엎어져 자고 있을 것이고, 그곳이 어디든 10시를 조금 넘기자마자 마취주사를 맞은 사람처럼 잠이 들 것이다. 호프집에 갔는데,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짧은 머리를 한 채 혼자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사람을 본다면, 백프로다. 주의할 점이라면, 친구들이 깨울 때 제발 관등성명(일병 누구누구)을 대고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여름을 한 번 보내고 나온 일병이라면, 목욕탕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어깨부터 팔까지 새카맣고 런닝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면 군인이다. 이상하게도 그 런닝자국은 겨울이 되어도 잘 없어지지 않는다. 또 하나, 어느 순간 셋 이상의 친구가 모이면 앞에 둘이 가고 한명은 뒤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발 맞춰 걷고 있다면, 역시 백프로 군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2. 자동차 증후군
휴가를 나온 다음 날 아침, 물론 여섯시면 눈이 잠깐 떠질 수도 있다. 그리곤 그곳이 부대가 아닌 집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다시 잠자리에 눕게 되었을 것이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직도 9일이나 남아있다는 사실에 벅찬 기분이 들 것이다. 언제든 틀면 나오는 뜨거운 물에 행복을 느끼며, 샤워를 한 뒤에는 짬밥이 아닌, 그토록 그리던 사제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밥을 먹고 시간이 남아도는 것어 행복해 하며 TV를 볼 수도 있다. 그동안 항상 일부분만 보던 예능 프로그램도 케이블에서 쉬지 않고 방송해 준다는 것에 감탄을 할 것이다. 물론, 리모컨에 함부로 손을 못 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상할 것 없다. 나는 일병 때 얼마 차이 안나는 고참과 같이 외박을 나갔고 둘이 숙소를 잡은 뒤 TV를 보는데, 바둑프로그램이 하고 있었다.
무한 - "근데, 우리 다른데 보면 안됩니까?"
고참 - "으..응? 그..그래."
짬이 안되는 두 일병이 나와서 서로 리모컨을 못 만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것도 바둑프로그램을 30분 넘게 시청하다가 나눈 대화였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군기가 확실히 들어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막 외출준비를 하고 밖에 나가며 가이들은 분명 소스라치게 놀라게 될 것이다.
'해..행보관 차가!!'
당시 우리 행보관(행정보급관)님은 녹색 엑센트를 타고 다니셨는데, 거의 모든 부대의 행보관들이 그렇듯 악역을 도맡아서 하시던 분이라 병사들은 그 녹색 엑센트만 봐도 복장점검을 하는 등 악명이 높았다. 그런데, 그 녹색 엑센트가 집 앞에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지져스.
물론, 번호판이 다른 차였다. 하지만 그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과 온 몸의 비타민C가 다 파괴되는 느낌은 잊지 못한다. 마치, 독서실 간다고 말해놓고 친구들과 PC방에 갔다가 나오는데 앞에 아빠차가 기다리고 있는, 그 정도의 느낌? 그것보다 두 배 정도 더 강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떤 고참은 중대장 차였던 스펙트라를 보고 급히 숨은 적도 있다고 하고, 강원도에 살던 후임은 멀리서 녹색 엑센트를 보고는 바로 뒤돌아 오던 길로 다시 가기도 했다고 한다. 가이들도 분명 그 느낌을 겪게 될 확률이 높다. 같은 차종만 보고도 심장이 덜컥 내려 앉으며 온 몸의 털이 다 서는 것 같은 느낌. 조건반사가 되는 것이다.
3. 싸이 파도타기
친구들의 방학시즌에 잘 맞춰서 나오면 문제가 없겠지만, 중간/기말 고사 시즌에 걸려버린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휴..휴가 나왔는데.. 마..만날 사람이 어..없어..'
인맥이 여러분야에 다양하게 뻗쳐 있다면 백수인 선배나, 휴학중인 후배를 만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거이다. 뭐, 만화에 취미가 있거나 게임을 즐긴다면 만화방이나 PC방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미니홈피'를 찾게 될 것이고, 전혀 상관없는 일촌 친구의 친구 미니홈피까지도 돌아다니며 파도를 타게 될 것이다. 그리곤 괜히 한 번 떡밥을 던져 보든가 친구에게 그 친구의 친구를 소개시켜 달라는 이야기를 방명록에 남기던가 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그 친구의 반응이 없거나, 방명록에 달아놓은 말이 무참히 무시당해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말길 바란다. 거울을 바라봐라. 뭐가 보이는가. 일병. 그래, 일병은 일 하는 병사다. 연애는 상병을 달고 꿈꿔도 늦지 않다.
프로필란에는 '이병 무한' 이렇게 적혀있던 것을 '일병 무한' 이렇게 바꾸겠지만, 사회에서 보기엔 똑같다. 심지어 일부 여자분 중에는 '일병'이 '이병'보다 낮은 걸로 아는 사람도 많다. 그냥 어차피 군인이란 얘기다. 많은 친구들에게 '편지써~' 라고 남길테지만, 효과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밖에서는 차일 피일 미루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전역해 있을테니 말이다.
4. 긴 휴가, 긴 공포
'아직도 휴가가 반이나 남았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점점 초조해지고, 시간이 빛의 속도로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한경우, '이번 주에 복귀네..'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때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은 날을 생각해라. 그리고 보낸 날에 대한 후회는 나중에 복귀 한 뒤 해도 충분하니, 접어두길 바란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으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PC방에서 밤새지 말고, 차근차근 날들을 정리해야 한다.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잊지 말고, 되도록 하루쯤은 온전히 가족들과 보낼 수 있기를 권한다.
메모를 해 놓거나, 꼭 먹겠다고 생각한 음식들에 대한 생각은 싹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되도록 챙겨서 먹기를 바란다. 포상 등을 제외하고 정상적인 다음휴가까지는 적어도 반년이 걸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을에 나왔다면 전어를 먹어보고, 봄에 나왔다면 벚꽃놀이를 가 보는 등, 계절을 활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등병때 나왔던 위로휴가와 마찬가지로, 뭘 해도 후회하게 될 것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은 것이니, 나중에라도 하겠다고 메모해 두면 된다. 앞으로도 기회는 있다.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부대로 연락을 빼먹지 말고 하라는 얘기다. 군생활 끝난게 아니다. 휴가 때 연락 안해서 군장을 돌거나 심한경우 영창보낸다는 말이 나오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연락 안하며 밖에서 놀고 있는 사이, 가이들의 분대장은 욕먹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후회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것이니 주의하자.
복귀날이 가까워지거든 긴장해라. 그 날은 긴장해야 한다. 괜히 들어가는 날 헌병에게 잡힌다면 부대에 복귀하자마자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무링은 올리고, 군번줄을 확인하자. 그리고 팬티는 혹시 사제것을 입고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닌지 잘 확인해야 한다. (집에서 입던 사회의 팬티를 그대로 입고 들어오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개념은 확실히 빠지지 않았나 챙기고, 휴가증도 잘 챙겨야 한다. 모자도 눌러쓰고, 요대도 삼선일치를 시키기 바란다. 내 친구중 한명은 군번줄을 놔두고 왔다는 이유로 헌병에게 걸렸는데, 그 후 꽤 고생한걸로 알고있다.
이등병때 보다 짬이 좀 된다고 물건을 많이 사들고 가지도 말길 바란다. 고참들이 부탁한 로또부터 사제담배, 잡지, 군용품 등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단속이 심한 부대의 경우 발칵 뒤집힐 수가 있다. 그냥 맨손으로 들어가 택시에 놓고 내렸다고 이야기하는 좋은 방법도 있다. 하나 더, 핸드폰! 어차피 가지고 들어가도 일병이 몰래 쓰기는 한계가 있으며, 전투준비태세를 하다가 발각이라도 되면 골치아파질 수가 있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공중전화를 사용하길 권한다.
한가지 팁을 주자면, 갈구는 고참에게 줄 선물은 몰래 하나쯤 사가지고 들어가길 권한다. 미운놈 떡 하나 더 주는 것이다. 선물 주는데 싫다고 할 사람 없다. 이 방법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 그 고참과 대화를 하다가 말보로 맨솔을 좋아한거나 하는 말을 들으면 사다주는 것도 좋다. 사회에 나오면 집에 쫓아가고 싶을 정도로 밉더라도, 걔 역시 스물 몇살의 꼬꼬마일 뿐이다. 단, 다른 고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주는 것을 권한다. 그 고참에게도 비밀로 해 줄 것을 요구하고 말이다.
이것으로 군생활매뉴얼 일병편은 마무리가 되었다. 상병편을 하기 전에, 이전에 어느분이 부탁하셨던 '전,의경 특집'을 준비하려 했는데, 그 부분은 카툰으로도 그려진 것으로 알고 있고 개인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 가지고 있는 소스가 없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신 전,의경 예비역 분들이 계시다면 normalog@naver.com 으로 메일을 보내주시거나 비밀댓글 등으로 의견을 남겨주시면, 전,의경 특집을 마련해 볼 생각이다. (전,의경 후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하우나 군생활의 묘미를 알려주실 분이 계시다면 메일과 비밀댓글을 부탁드립니다.)
<덧>
오늘부터 16일까지 예비군훈련을 갑니다.
출퇴근 훈련이긴 합니다만,
재입대 하는 듯한 이 기분...OTL
▲ 추천을 눌러주시면, 예비군 훈련가서 포상휴가를 받아오겠습니다..(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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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숨길 수 없는 짬내
첫 휴가(위로휴가, 전 백일휴가)때, 사제 담배를 하나 사려고,
휴가나온 이등병 - "말로보 레드 하나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군대 용어가 입에 익어 뒤를 '까'로 끝내고 있다.)
점원 - (당황한듯) "말보로 레드요? 저희는 !@#!%!"
휴가나온 이등병 - "잘 못들었습니다?"
('네?' 라고 되물어보질 못하고 있다...OTL)
점원 - (더 당황한듯) "저희는 국산 담배만 판다구요"
휴가나온 이등병 - "......"
(군대 용어가 입에 익어 뒤를 '까'로 끝내고 있다.)
점원 - (당황한듯) "말보로 레드요? 저희는 !@#!%!"
휴가나온 이등병 - "잘 못들었습니다?"
('네?' 라고 되물어보질 못하고 있다...OTL)
점원 - (더 당황한듯) "저희는 국산 담배만 판다구요"
휴가나온 이등병 - "......"
이런 상황을 겪었을 것이다. 일병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여전히 "네?" 라고 묻지는 못하고,
"잘 못들...었어요"
이런 삽질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휴가를 한 번 나와봤기 때문에 기차역이나 전철역에서 방황하거나 버스를 반대편에서 타는 안습의 상황은 생기지 않겠지만, 부모님을 보면 습관적으로 경례부터 하려고 손이 움찔할 수 있단 얘기다. 내 친구중에는 동네 슈퍼 아저씨와 마주치자 경례를 했던 녀석도 있었다.
9박 10일이라는 엄청난 숫자에 군대를 전역한 사람처럼 약속을 잡겠지만, 숨길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짧은 머리와 10시만 되면 수면제를 먹은 듯 눈이 감기는 '10시의 저주'다. '애들하고 PC방에서 밤 새야지!' 이런 다부진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이미 그대는 컴퓨터 앞에 엎어져 자고 있을 것이고, 그곳이 어디든 10시를 조금 넘기자마자 마취주사를 맞은 사람처럼 잠이 들 것이다. 호프집에 갔는데,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짧은 머리를 한 채 혼자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사람을 본다면, 백프로다. 주의할 점이라면, 친구들이 깨울 때 제발 관등성명(일병 누구누구)을 대고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여름을 한 번 보내고 나온 일병이라면, 목욕탕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어깨부터 팔까지 새카맣고 런닝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면 군인이다. 이상하게도 그 런닝자국은 겨울이 되어도 잘 없어지지 않는다. 또 하나, 어느 순간 셋 이상의 친구가 모이면 앞에 둘이 가고 한명은 뒤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발 맞춰 걷고 있다면, 역시 백프로 군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2. 자동차 증후군
휴가를 나온 다음 날 아침, 물론 여섯시면 눈이 잠깐 떠질 수도 있다. 그리곤 그곳이 부대가 아닌 집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다시 잠자리에 눕게 되었을 것이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직도 9일이나 남아있다는 사실에 벅찬 기분이 들 것이다. 언제든 틀면 나오는 뜨거운 물에 행복을 느끼며, 샤워를 한 뒤에는 짬밥이 아닌, 그토록 그리던 사제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밥을 먹고 시간이 남아도는 것어 행복해 하며 TV를 볼 수도 있다. 그동안 항상 일부분만 보던 예능 프로그램도 케이블에서 쉬지 않고 방송해 준다는 것에 감탄을 할 것이다. 물론, 리모컨에 함부로 손을 못 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상할 것 없다. 나는 일병 때 얼마 차이 안나는 고참과 같이 외박을 나갔고 둘이 숙소를 잡은 뒤 TV를 보는데, 바둑프로그램이 하고 있었다.
무한 - "근데, 우리 다른데 보면 안됩니까?"
고참 - "으..응? 그..그래."
짬이 안되는 두 일병이 나와서 서로 리모컨을 못 만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것도 바둑프로그램을 30분 넘게 시청하다가 나눈 대화였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군기가 확실히 들어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막 외출준비를 하고 밖에 나가며 가이들은 분명 소스라치게 놀라게 될 것이다.
'해..행보관 차가!!'
당시 우리 행보관(행정보급관)님은 녹색 엑센트를 타고 다니셨는데, 거의 모든 부대의 행보관들이 그렇듯 악역을 도맡아서 하시던 분이라 병사들은 그 녹색 엑센트만 봐도 복장점검을 하는 등 악명이 높았다. 그런데, 그 녹색 엑센트가 집 앞에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지져스.
물론, 번호판이 다른 차였다. 하지만 그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과 온 몸의 비타민C가 다 파괴되는 느낌은 잊지 못한다. 마치, 독서실 간다고 말해놓고 친구들과 PC방에 갔다가 나오는데 앞에 아빠차가 기다리고 있는, 그 정도의 느낌? 그것보다 두 배 정도 더 강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떤 고참은 중대장 차였던 스펙트라를 보고 급히 숨은 적도 있다고 하고, 강원도에 살던 후임은 멀리서 녹색 엑센트를 보고는 바로 뒤돌아 오던 길로 다시 가기도 했다고 한다. 가이들도 분명 그 느낌을 겪게 될 확률이 높다. 같은 차종만 보고도 심장이 덜컥 내려 앉으며 온 몸의 털이 다 서는 것 같은 느낌. 조건반사가 되는 것이다.
3. 싸이 파도타기
친구들의 방학시즌에 잘 맞춰서 나오면 문제가 없겠지만, 중간/기말 고사 시즌에 걸려버린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휴..휴가 나왔는데.. 마..만날 사람이 어..없어..'
인맥이 여러분야에 다양하게 뻗쳐 있다면 백수인 선배나, 휴학중인 후배를 만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거이다. 뭐, 만화에 취미가 있거나 게임을 즐긴다면 만화방이나 PC방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미니홈피'를 찾게 될 것이고, 전혀 상관없는 일촌 친구의 친구 미니홈피까지도 돌아다니며 파도를 타게 될 것이다. 그리곤 괜히 한 번 떡밥을 던져 보든가 친구에게 그 친구의 친구를 소개시켜 달라는 이야기를 방명록에 남기던가 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그 친구의 반응이 없거나, 방명록에 달아놓은 말이 무참히 무시당해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 말길 바란다. 거울을 바라봐라. 뭐가 보이는가. 일병. 그래, 일병은 일 하는 병사다. 연애는 상병을 달고 꿈꿔도 늦지 않다.
프로필란에는 '이병 무한' 이렇게 적혀있던 것을 '일병 무한' 이렇게 바꾸겠지만, 사회에서 보기엔 똑같다. 심지어 일부 여자분 중에는 '일병'이 '이병'보다 낮은 걸로 아는 사람도 많다. 그냥 어차피 군인이란 얘기다. 많은 친구들에게 '편지써~' 라고 남길테지만, 효과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밖에서는 차일 피일 미루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전역해 있을테니 말이다.
4. 긴 휴가, 긴 공포
'아직도 휴가가 반이나 남았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점점 초조해지고, 시간이 빛의 속도로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한경우, '이번 주에 복귀네..'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때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남은 날을 생각해라. 그리고 보낸 날에 대한 후회는 나중에 복귀 한 뒤 해도 충분하니, 접어두길 바란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으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PC방에서 밤새지 말고, 차근차근 날들을 정리해야 한다.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잊지 말고, 되도록 하루쯤은 온전히 가족들과 보낼 수 있기를 권한다.
메모를 해 놓거나, 꼭 먹겠다고 생각한 음식들에 대한 생각은 싹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되도록 챙겨서 먹기를 바란다. 포상 등을 제외하고 정상적인 다음휴가까지는 적어도 반년이 걸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을에 나왔다면 전어를 먹어보고, 봄에 나왔다면 벚꽃놀이를 가 보는 등, 계절을 활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등병때 나왔던 위로휴가와 마찬가지로, 뭘 해도 후회하게 될 것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은 것이니, 나중에라도 하겠다고 메모해 두면 된다. 앞으로도 기회는 있다.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부대로 연락을 빼먹지 말고 하라는 얘기다. 군생활 끝난게 아니다. 휴가 때 연락 안해서 군장을 돌거나 심한경우 영창보낸다는 말이 나오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연락 안하며 밖에서 놀고 있는 사이, 가이들의 분대장은 욕먹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후회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것이니 주의하자.
복귀날이 가까워지거든 긴장해라. 그 날은 긴장해야 한다. 괜히 들어가는 날 헌병에게 잡힌다면 부대에 복귀하자마자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무링은 올리고, 군번줄을 확인하자. 그리고 팬티는 혹시 사제것을 입고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닌지 잘 확인해야 한다. (집에서 입던 사회의 팬티를 그대로 입고 들어오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개념은 확실히 빠지지 않았나 챙기고, 휴가증도 잘 챙겨야 한다. 모자도 눌러쓰고, 요대도 삼선일치를 시키기 바란다. 내 친구중 한명은 군번줄을 놔두고 왔다는 이유로 헌병에게 걸렸는데, 그 후 꽤 고생한걸로 알고있다.
이등병때 보다 짬이 좀 된다고 물건을 많이 사들고 가지도 말길 바란다. 고참들이 부탁한 로또부터 사제담배, 잡지, 군용품 등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단속이 심한 부대의 경우 발칵 뒤집힐 수가 있다. 그냥 맨손으로 들어가 택시에 놓고 내렸다고 이야기하는 좋은 방법도 있다. 하나 더, 핸드폰! 어차피 가지고 들어가도 일병이 몰래 쓰기는 한계가 있으며, 전투준비태세를 하다가 발각이라도 되면 골치아파질 수가 있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공중전화를 사용하길 권한다.
한가지 팁을 주자면, 갈구는 고참에게 줄 선물은 몰래 하나쯤 사가지고 들어가길 권한다. 미운놈 떡 하나 더 주는 것이다. 선물 주는데 싫다고 할 사람 없다. 이 방법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 그 고참과 대화를 하다가 말보로 맨솔을 좋아한거나 하는 말을 들으면 사다주는 것도 좋다. 사회에 나오면 집에 쫓아가고 싶을 정도로 밉더라도, 걔 역시 스물 몇살의 꼬꼬마일 뿐이다. 단, 다른 고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주는 것을 권한다. 그 고참에게도 비밀로 해 줄 것을 요구하고 말이다.
이것으로 군생활매뉴얼 일병편은 마무리가 되었다. 상병편을 하기 전에, 이전에 어느분이 부탁하셨던 '전,의경 특집'을 준비하려 했는데, 그 부분은 카툰으로도 그려진 것으로 알고 있고 개인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 가지고 있는 소스가 없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신 전,의경 예비역 분들이 계시다면 normalog@naver.com 으로 메일을 보내주시거나 비밀댓글 등으로 의견을 남겨주시면, 전,의경 특집을 마련해 볼 생각이다. (전,의경 후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하우나 군생활의 묘미를 알려주실 분이 계시다면 메일과 비밀댓글을 부탁드립니다.)
<덧>
오늘부터 16일까지 예비군훈련을 갑니다.
출퇴근 훈련이긴 합니다만,
재입대 하는 듯한 이 기분...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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