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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금사모] 여린마음으로 연애하기 외 2편

by 무한 2013. 12. 27.
[금사모] 여린마음으로 연애하기 외 2편
이거 책에서 읽었던 내용인지 아니면 내가 떠올려 본 생각인지 확실치가 않은데,

"미사일을 만든 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다."


라는 뉘앙스의 문장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강한 사람이었다면 그런 무기를 만들 것도 없이 일단 적진으로 달려들었겠지만, 약한 사람인 까닭에 상대를 두려워하며 -멀리서 상대를 마주하지 않은 채-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는 의미다.

마음이 여리다는 것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상대에게 내미는 내 구애가 순수하기만 하다면 거기엔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일까? 자꾸 일이 틀어지는 걸 보면 분명 뭔가 잘못된 것 같긴 한데, 거기엔 그대의 잘못이 하나도 없는 걸까? 여린마음동호회 회원 P씨의 사연부터 시작해 보자.


1. 여린마음으로 연애하기.


상대를 피고인으로 만든 채 마음속에서 재판을 열어 유죄판결을 내리는 일. 여린마음동호회 회장인 나에게도 익숙한 행위다. 마음 속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연들이 내가 먹은 떡국 그릇 수보다 많은 것 같다. 피고인 석에 앉은 사람 중엔 내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으며, 내 친구들도 상당수 속해있다.

그렇게 합리화와 정당화를 하며 다 잘라낼 때에는, 서툴게 쓴 노트 앞부분을 찢어내는 것처럼 속이 시원하다. 당시엔 마음속에 상대에 대한 적개심만 가득 들어찬 까닭에 아쉽거나 후회되지도 않는다. 겨울이 되어 입을 일 없어진, 서랍장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반팔 티셔츠를 모두 내다 버린 듯 후련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겨울이 지난 이후부터 문제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전부 다 내다 버린 까닭에 이제 입을 옷이 없어진 것이다. 물론 새 옷을 사면 당장은 해결되겠지만, 그 새 옷 역시 계절이 변할 때마다 '정리대상'이 되어 버려진 까닭에, 오래 입어 몸에 길들여진 편안한 옷은 한 벌도 남아 있지 않다. 그 삶을 돌아보면 이 사람에게 잠시, 또 저 사람에게 잠시 머물며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는 철새의 삶 같아 보인다. 살아지는 대로 살아는 왔지만, 전화를 걸어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인들을, 스스로 모두 내다 버린 뒤라는 걸, 시리도록 외로운 어느 날에야 뒤늦게 깨닫는 것이다.

여린마음동호회 회원인 P씨 연애는, 위에서 말한 이유들로 인해 P씨 혼자 시작하고 P씨 혼자 끝내는 게 대부분이다. P씨는 상대와 연이 닿는 동시에 '상대도 내 마음 같기를' 바라며 맹목적인 호의를 보낸다. 그간 살아온 삶이 다르니 서로에게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한데, P씨는 그 차이가 사라지는 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맹목적인 호의와 헌신을 베풀면 정말 상대가 '세상에서 제게는 P씨가 제일 소중해요.'라는 이야기를 하는 날이 올까?

난 P씨에게, 상대와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네 사정'과 '내 사정' 맞춰가며 만나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P씨의 태도는 상대의 '후원자'가 되려는 모습에 가깝다. 상대가 요구하거나 부탁하지도 않은 후원을 열심히 해 놓고는, 상대의 반응이 P씨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어느 한 부분이 실망스러우면 거침없이 인연의 끈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약간이라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상대가 쌀쌀맞게 굴어도 전혀 기분 상하지 않은 척 웃고, 그러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관계를 내 팽개치는 남자. 그런 남자, 그런 사람을 신뢰하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상대들 역시 의심의 눈초리로 P씨를 바라보는 것인데, P씨는 그걸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날 못 믿는 걸 보니 얘는 유죄.'하며 팽개쳐 버린다. 그렇게 A양, B양, C양, D양…, 그녀들과의 관계를 모두 버렸다. 내가 만약 P씨에게 "B양이 무슨 색을 좋아했었나요?"라고 물으면 P씨는 대답을 못 할 것이 뻔하다. 상대가 좋아하는 색 조차 모르면서 상대에게 유죄판결은 내리는 건 옳은 일일까? 상대를 괴물로 만들어 마음속으로 저주하는 일은 이제 그만 두고, 오늘부터는 '그 사람과의 가능성'이 아닌 '그 사람'을 보고 만나보자.


2. 해외 장거리 연애, 돌아와도 문제?


L양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 같고 남친 역시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럼 헤어지는 거 말고는 답이 없는 것 같다. 치킨은 죽어도 안 먹겠다는 사람과 치킨이 아니면 먹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각자 따로 알아서 먹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 남친이 원하는 아내는

'남편에게 내조를 잘 하며, 집에서 아이를 키울 여자'


인 것 같다. 결혼하면 그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고, 그가 해외출장을 나가있으면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외로움을 이겨내는 여자. 개인적으론 이게 1980년대 리비아 파견 스타일에서 별반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결혼관을 갖든 그건 자기 마음이니 여기선 넘어가자.

반면 L양은 전문직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 길을 꽤 많이 걸어왔기에 이제 몇년만 더 하면 꿈꿔오던 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결혼을 해도 일을 할 생각이며, 그로 인한 육아와 가사의 문제를 남편과 분담하고자 한다. 거주 역시 남편이 있는 지방이 아닌, 현재 L양이 있는 서울에서 살고 싶어 한다.

두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불가능한 까닭에 나 역시 해결책을 내지 못하겠다. L양이 미래에 대해 그와 계획을 세우고자 말을 꺼내긴 하는데, 그럼 그는 복숭아 농사를 짓자느니 하면서 슬그머니 딴 소리를 해 버린다. 계속 그런 식의 대화만 이어진다. L양이 좀 정색하고 말하면, 그는 일 때문에도 피곤한데 왜 너까지 이러냐는 식으로 맞불을 놓는다. 그럼 L양이 또 거기에 넘어가 "힘든데 나까지 힘들게 해서 미안."하며 대화가 흐지부지 된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으니, 난 여기다 둘이 헤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 두 가지를 적어둘까 한다.

ⓐ육아, 가사에 대한 남친의 무감각.
ⓑ이미 선을 넘어버린 여친의 징징거림.



L양의 남친은 육아와 가사에 협력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남편은 나가서 돈을 벌어오고, 아내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을 한다'라는 개념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자꾸 '연봉'얘기를 하는데, 자신이 더 돈을 더 버는 것으로 아내의 희생이 상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현재 L양에게 '좋은 남친'일지는 모르겠으나, '좋은 남편'이 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L양이 감정적으로 남친에게 징징거린 것 역시 이별의 원인이 될 것 같다. 특히 "너 때문에 외로워서 그런 거니까,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도 뭐라고 하지 마."등의 이야기는, 농담이라곤 해도 남자친구로 하여금 애정에 금이 가게 만들었을 것 같다. 그 말들로 인해 L양의 기다림은 가치가 바래버렸다. 또 L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외로워. 외로워. 외로워."노래를 불렀는데, 난 그것 때문에 현재 남친이 연락을 줄였다고 생각한다. 연락을 해봐야 죄인 취급 당하며 좋지 않은 소리 듣는데, 그 누가 연락하고 싶겠는가.

만약 둘이 극적으로 합의점을 찾아 '거리'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해도, 난 위의 두 가지가 해결되지 않으면 험난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생각지도 않고 있던 문제만 L양에게 더해준 것 같아서 미안한데, 여하튼 남친의 '말 돌리기'에 넘어가 서로 드립만 치다 대화 마무리 하지 말고, 이번 주말엔 끝장까지 가서 결론을 내 보는 후련한 대화를 해보길 권한다.


3. 간단해 성희야.


이야기의 뼈대만 딱 봐봐.

ⓐ성희는 클럽에서 남자를 만났다.
ⓑ그가 정말 잘 통한다며 성희에게 진지하게 만나고 싶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둘은 썸을 타는 와중에 스킨십 진도를 다 나갔다.
ⓓ썸남의 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간병 핑계로 점점 남자가 소홀해졌고, 성희는 남자에게 따졌다.
ⓕ그가 다른 여자와 클럽에 있는 걸 목격했다.
ⓖ그에게 따지자 그는 그녀가 '정말 그냥 친구'이며,
   병원에만 있다 보니 몸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 잠시 바람 쐬러 왔다고 했다.
   또, 현재 아버지께서 아프신 관계로 연애 할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성희는 그가 '연애 할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가 SNS에서 다른 여자와 놀러 다닌 사진을 올린 걸 보고 성희는 혼란스러워졌다.



성희야 너 노멀로그 애독자라며. 저런 가장 초급의 휘둘림에 휘둘리고 있으면 애독자 자격이 없지. 노멀로그에서 가재이야기만 읽은 거 아냐 혹시?

"그는 정말 굉장히 솔직한 편이거든요."


솔직함도 얼마든지 무기로 사용할 수 있거든. 봐봐. 내가 요즘 중고거래를 몇 번 했더니 자꾸 중고거래를 예로 들게 되는데, 성희가 나에게 가방을 사기로 했어. 우리는 직거래 약속까지 잡았지. 그런데 추가금을 얹어서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어. 내가 의리가 없다면 추가금을 준다는 사람에게 가방을 팔겠지. 그러면서 성희에게

"가방에 추가금을 주신다는 분이 나타나셨거든요.
근데 진짜 제가 돈이 급한 상황이라 그 거래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이거 예의가 아닌 거 알지만 제 상황을 좀 이해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직거래 약속까지 잡고 이렇게 취소하는 거 정말 죄송합니다.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진짜 돈이 너무 급해서 그래요."



라고 말해. 그럼 다 해결 된 걸까? 솔직하게 말했으니까 된 거야? 솔직이든 뭐든 저 상황에서 약속을 취소하고 있는 건 나잖아. 그저 내 이익을 위해서. 그렇지?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내가 보기에 성희의 썸남은 '솔직함'을 무기로 사용할 줄 아는 남자거든. 밑도 끝도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거라며 다 말해놓고는 성희의 이해를 구해. 그럴 땐 사실 성희 너도 "넌 솔직히 그래? 난 솔직히 이래."라고 네 마음을 꺼내 놓아야 하는 거거든. 상대가 이해해 달라고 요구하더라도 그게 이쪽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런데 성희 너는 상대가 저런 식으로 나오면 늘 이해하는 입장에 서서 '쟤가 솔직하게 말했으니까.'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더라고. 그런 태도로 얌체들을 대하면, "솔직히 제가 코를 좀 베어가려고 하거든요. 정말 미안한데 코 좀 베어갈게요."하는 얌체들에게 계속 코 베이는 거야. 그게 착한 게 아녀. 어익후 갑자기 사투리가 튀어나왔네.

이거 뭐 회복, 조율, 뭐 그런 거 더 하지 말고 그냥 땡, 여기서 끝, 디 엔드, 사요나라 하자. 이걸 '아프도록 아버지를 위하는 썸남과 멀리서 바라보며 기다리는 여자'같은 순정만화로 보면 곤란해. 간병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썸남이 클럽에서 다른 여자랑 놀고 있는 걸 봤을 때 이미 눈치를 챘어야지. 걔가 하는 변명을 믿지 말고 그 상황을 본 네 두 눈을 믿어.

"그는 연애에 대해 어마어마한 부담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성희야 제발 정신 차려. 왜 먹지를 못하니. 오빠가 이렇게 열심히 글을 썼는데 왜 먹지를 못해.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다뤄야 할 사연이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오늘은 오후에 약속이 있는 관계로 여기서 줄여야겠다. 아, 그리고 전에 꼬리말을 통해 이야기 한 적 있는데, 사연을 보내실 때에는 작성하신 신청서를 첨부하셨는지 꼭 확인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제가 글재주가 없어 읽기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꼭 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며 메일을 보내주신 독자 분의 사연엔 첨부파일이 없다. 이거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사연 뭐 그런 건가? 내가 착한 사람이 아니라서 사연이 안 보이는 것 같으니, 아주 보통의 '파일첨부'가 된 사연으로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 한 분 한 분 알려드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메일교환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 일부러 답장은 안 드린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너무 추워서 다 얼어버릴 것 같은 얼금이다. 이런 날엔 저녁으로 따뜻한 국물 있는 음식을 먹으면 속까지 따뜻해져서 기분이 좋으니, 보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해 닭칼국수라도 같이 한 그릇 하길 권한다. 연락하기 전까진 어색하고 이상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막상 연락해서 함께 먹으면 별 것 아닌 일이고 또 기대 이상으로 즐겁다. 그럼 즐거운 얼금 보내시기 바라며!



▲ 도봉산역이라는 곳에 가게 될 것 같은데, 거기서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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