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사모] 내년에 제대하는 오빠 외 2편
불꽃놀이를 보며 2013년과 작별하려고 했는데, 당연히 할 줄 알았던 불꽃놀이가 제야행사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지금 몹시 상심하고 있는 중이다. 불꽃놀이 사진 찍으려고 CCD청소까지 받고 왔는데….
일정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까닭에 얼른 매뉴얼을 올려두고 차선책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최대한 요점만 간단히 살펴보자.
썸남이 군대에 있다는 꼬꼬마 여성대원 J양의 사연인데, 난 J양에게
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썸남이 제대하고 난 이후에 계기를 만드는 건 너무 늦다. J양의 경쟁자들은 편지도 쓰고, 전화통화도 하고, 면회도 가고, 상대가 휴가 나오면 만나기도 하는데, J양은 현재
하며 감 떨어질 때만 기다리고 있다. 상대가 휴가 나와서 연락 안 했다며 혼자 침전하는 기분 느끼지 말고, J양이란 여자가 그에게 '혜지 친구'가 아닌 'J양'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지금 길을 터보자.
그리고 혜지의 도움은 더 이상 받지 말자. 늘 얘기하지만 연애에는 아무도 끼어들게 해선 안 된다. 지금은 혜지가 썸남의 소식도 전해주고, 또 J양 대신 그에게 J양에 대해 인식시켜 주고 있으니 고마울지 모르겠지만, 한 다리 걸러서 가는 소식에는 늘 에누리가 붙기 마련이다.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혜지가 그저 J양 듣기 좋으라고 살을 붙여 얘기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J양이 원하는 연애가 아닌 혜지가 원하는 연애로 둘을 엮으려고 하다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셋이 만나다 보면 서로에 대한 집중력도 흐트러질 수 있고 말이다. 그러니 썸남과 J양 단 둘의 창구를 개설하길 권한다. 앞서 말했듯 그 창구는 현재로선 '편지'가 가장 적절하다.
썸남에 대해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혜지랑 같이 썸남을 만났을 때 썸남이 전공에 대해 한 이야기를 가지고, J양은
라고 내게 말했다. 여기서 보기엔 썸남의 그 말은 별 의미 없이 약간의 푸념조로 한 말일 뿐이다. J양이 짝사랑 중인 까닭에 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다 큰 의미로 여겨지는 건 이해하지만, 그건 내가 장담하는데 8할이 J양의 환상일 뿐이다. '지나가는 말'과 '립서비스'에 까지 거대한 의미를 부여하다간 앞으로 실망하거나 마음아파 할 일이 많다는 걸 잊지 말자. J양이 썸남에 대해 설명해 놓은 걸 보면 그를 무슨 '맑고 순수하기만 한 1급수 남자'로만 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썸남 역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이건 그냥 접자. 내가 지금 불꽃놀이 알아봐야 하는 게 급해서 막 하는 얘기가 아니라, 썸남이 '좋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접기를 권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 리액션만 받아 챙기는 모습.
썸남은 K양이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다. 매일 말을 걸고 자신에 대해 묻는 여자가 있는데, 그런 행동을 보면서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눈치 못 채는 남자는 없다.(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남자는 대개 자신의 얘기에 웃어주기만 해도 절반은 넘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썸남을 그걸 이용해 K양을 '심심풀이'로 이용하는 듯 보인다. 그는 심심하면 먼저 말을 걸어 뭐라고 운을 띄워 놓고, K양이 거기에 반응하는 것을 즐긴다. K양은 짝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면 팬클럽 회원이 되는 타입이라, 그가 운만 띄워도 인터뷰 하듯 이것저것 물어가며 긍정적인 리액션을 해주기 때문이다.
둘의 카톡대화를 보면, 두 달이 넘는 시간동안 썸남은 K양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뭐 하냐, 밥 먹냐 등은 물었지만, K양이 그에게 물은 것 같은 '심도 있는 질문'들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는 K양이 물어본 것에 대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거나, 자기 자랑을 했을 뿐이다.
ⓑ 옛 여자들 이야기.
K양의 썸남은 무슨 얘기만 나왔다 하면 죄다 '옛 여자'로 이어진다. 여행 가봤냐고 물으면 여행 얘기를 하다가 "거긴 여자랑 갔었던…."하는 이야기를 하고, 뭐 먹어 봤냐고 물으면 "그건 여자랑 먹었었던…."하며 또 여자 얘기를 한다. '왕년'의 이야기를 하는 걸 즐겨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얘기를 할 때 K양의 반응을 보는 게 재미있어서인지는 확실히 분간하기 어렵지만 여하튼 이상할 정도로 '옛 여자'의 이야기로 흘러들어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건 위에서 말 했어야 하는 내용인데, K양이 그의 태도에 지쳐 마음을 접으려고 할 때마다 그가 뜬금없이 "남자친구 생긴 거 축하해~"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자친구 없는 거 뻔히 알면서 저런 식으로 떠보곤 또 지 자랑만 하는 행동 말이다. 난 초반의 카톡대화를 읽으며 '그냥 수다스러운 남자와 친구가 된 건가?'하는 생각을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점점 저런 식으로 K양을 골리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 대놓고 휘두르는 태도.
이게 꼭, 아이스크림 한 입만 달라는 아이를 앞에 두고 내밀었다 뺐다 하면서 놀리는 것 같다. 썸남은 평소와 달리 사뭇 진지한 태도로 K양의 마음을 확인하곤, 그 대답에 맞춰 또 K양을 놀린다. "넌 날 어떻게 생각해?"하는 물음에 K양이 넘어가 진심을 말하면, "그래? 난 현재 너에 대한 감정이 있는데 넌 과거형으로 말하네."라는 이야기를 하거나, "내가 좋아? 나 좋아할 만한 남자 아닌데."하는 식이다. 애초에 저 과정에서의 즐거움만 취하려고 꺼낸 이야기인 까닭에, 긴 대화를 나눠도 결론은 나지 않는다. 거래에 비유하자면, 물건을 살 것도 아니면서 그냥 재미로 흥정만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모임에서 좋은 리더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든, 그런 걸 다 떠나서 그와 K양과의 관계만 보자. 둘의 관계만 봤을 때 그는 비겁하며 교활하기까지 한 남자다. 사귀자는 말만 하면 곧 사귈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가도, 당황스럽게 그는 소개팅까지 한다. 그러면서 누굴 잊지 못했다는 얘기도 늘어놓고, 여하튼 말과 행동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남자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그의 잘난 척 들어주는 거 그만하고, 새해에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과 만나보길 권한다.
찬규야. 형 친구 중에 '아이컨택'에 관해선 따라갈 사람이 없는 친구가 하나 있거든. 꼬꼬마 시절에 어울리던 친군데, 걔 별명이 CCTV야. 내가 붙인 건 아니고 학창시절 같은 반 여자애들이 붙여 준 별명이야. 아래에선 'C군'이라고 하자.
C군은 한 번 자신이 찍은 여자가 생기면 CCTV처럼 그녀만 쳐다봐. C군이 같은 반 여학생을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들이 다 알 정도였지. 칠판은 안 보고 그 여학생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까. 그땐 어릴 때라서 누가 누굴 쳐다보고 그러면 여자애들끼리 쑥덕거리잖아. 막
하면서 말야. 근데 그러면 그럴수록 C군은 더 힘이 나는지, 여자애들끼리 쑥덕거리면서 C군을 쳐다봐도 C군은 눈을 피하지 않고 또 쳐다봐. 자신이 쳐다보는 걸 가지고 여자애들이 쑥덕거리는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야.
C군이 위험한 친구는 아니냐고? 절대 위험하지 않아. 그냥 쳐다만 보거든. 도둑이 들어도 CCTV는 도둑을 쳐다만 보잖아. 그것처럼 C군 역시 그냥 쳐다만 봐. 말을 거는 것도 아니고 그 흔한 쪽지를 주는 것도 아니야. 그냥 계속 쳐다봐.
시험공부 하러 마두도서관에 같이 간 적도 있는데, 거기서도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곤 C군이 계속 쳐다보더라고. 그게 나름 '아이컨택'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쳐다보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C군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솔로부대에 복무했어. 그 이후엔 소식이 끊겨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 학원에 다닐 때에도 거기서 CCTV로 소문이 났었는데, C군 얘기 더 하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까 일단 여기서 끊자.
찬규야. 너 역시, 심녀를(관심 가는 여자) 봄부터 지금까지 쳐다만 보고 있었잖아. 그거 너무 많이 쳐다만 보고 있었던 거야. 농담이라도 하나 던졌어야지. 걔가 사서라며. 형이 너였으면, 도서관에서 장기 대출 중인 책 가지고 구실을 만들었을 거야. 갈 때마다 그 책 들어왔는지 묻는 거지. 한 책을 계속해서 찾고 있는 남자 컨셉, 괜찮잖아.
친구 보고 하나 빌리라고 하면 되잖아. 이럴 때 친구찬스 쓰는 거지, 뒀다가 언제 쓰려고 그래. 친구보고 <생긴대로 병이 온다>같은 책 하나 빌리라고 해. 그 다음에 네가 가서
이러면 열 명 중 여덟 명은 빵 터지거든. 무슨 얘긴지 알겠어? 지극히 공적인 대화라고 해도, 일단 말을 트는 게 먼저라고. 왜 숨어서 쳐다만 봐. 그냥 가서 말을 하면 되는 거야. 그러다 걔가 찾아주면, 찾아줘서 고맙다고 새콤달콤 같은 거 하나 사다주면 되잖아. 넌 이걸 다 생략하고 매의 눈으로 일 년 동안 관찰만 하다가,
하고 말았잖아. 뭐 이건 엎질러진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고, 걔가 남자친구 있다는 대답을 했다고 했지? 그럼 그때는 "네, 감사합니다."하며 뜬금포를 던져볼 수도 있고, "왜죠?"하면서 허를 찌를 수도 있어. "그럼 남자친구번호까지 두 개 주세요."할 수도 있고.
도망만 안 가면 돼.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헛발질 한 것 같아서 숨고 싶겠지만, 그게 사실 별 일 아니거든. 걔 입장에선 오히려 기분 좋은 일일 수 있고 말야. 그러니까 지금처럼 도서관에서 발 끊고 또 학교에서 마주칠까봐 숨어서 학교 다니지 말고, 당당하게 다녀. 오히려 너라는 남자를 인식시켰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니까. 걔도 이제 네가 누군지 알기 때문에 약간의 호기심은 가질 수 있거든. 야 형도 예전에, 아 이 얘긴 하면 안 되겠다. 아무튼 힘 내! 창피해서 학교 못 다니겠다며 휴학하지 말고. 나중에 떠올리면 이불에 하이킥 몇 번 할 수는 있겠지만 이거 진짜 별 일 아냐. 그러니까 쫄지 마. 알았지?
2013년도 이렇게 안녕이다. 2013년에 만난 사람들, 그리고 2013년에 새로 알게 된 것들, 또 2013년에 떠나보낸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지금 불꽃놀이 안 한다고 해서 그럴 시간이 없다.
공쥬님(여자친구)이 불꽃놀이 좋아하니까. 누구도 사랑 때문에 가슴 아플 일 없이,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예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새해에도 또 온 힘을 다해 매뉴얼을 발행하도록 하겠다. 2013년 한 해 노멀로그를 아껴주신 모든 독자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새해에는 더 재미있는 글들로 보답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럼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 내일은 언제나 그래왔듯 노멀로그 한 해 결산 글이 발행됩니다. 내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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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를 보며 2013년과 작별하려고 했는데, 당연히 할 줄 알았던 불꽃놀이가 제야행사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지금 몹시 상심하고 있는 중이다. 불꽃놀이 사진 찍으려고 CCD청소까지 받고 왔는데….
무한 - 이번에 제야의 종 치고 나서 불꽃놀이 하나요?
관계자 - 아뇨.
무한 - 왜죠?
관계자 - 거기가 철새 보호구역이라, 불꽃 터트리면 철새들이 놀랍니다.
무한 - 지금, 불꽃 안 터트린다고 해서 제가 철새보다 더 놀랐는데요. 이건 어쩌실 거죠?
관계자 - 네?
관계자 - 아뇨.
무한 - 왜죠?
관계자 - 거기가 철새 보호구역이라, 불꽃 터트리면 철새들이 놀랍니다.
무한 - 지금, 불꽃 안 터트린다고 해서 제가 철새보다 더 놀랐는데요. 이건 어쩌실 거죠?
관계자 - 네?
일정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까닭에 얼른 매뉴얼을 올려두고 차선책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최대한 요점만 간단히 살펴보자.
1. 내년에 제대하는 오빠.
썸남이 군대에 있다는 꼬꼬마 여성대원 J양의 사연인데, 난 J양에게
"엄마랑 친구들이 예쁘게 생긴 편이라고 말한다는 얘기 그만하고, 편지 씁시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썸남이 제대하고 난 이후에 계기를 만드는 건 너무 늦다. J양의 경쟁자들은 편지도 쓰고, 전화통화도 하고, 면회도 가고, 상대가 휴가 나오면 만나기도 하는데, J양은 현재
"내년에 오빠가 제대하고 나면 같이 벚꽃놀이 함께 가고 싶어요."
하며 감 떨어질 때만 기다리고 있다. 상대가 휴가 나와서 연락 안 했다며 혼자 침전하는 기분 느끼지 말고, J양이란 여자가 그에게 '혜지 친구'가 아닌 'J양'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지금 길을 터보자.
그리고 혜지의 도움은 더 이상 받지 말자. 늘 얘기하지만 연애에는 아무도 끼어들게 해선 안 된다. 지금은 혜지가 썸남의 소식도 전해주고, 또 J양 대신 그에게 J양에 대해 인식시켜 주고 있으니 고마울지 모르겠지만, 한 다리 걸러서 가는 소식에는 늘 에누리가 붙기 마련이다.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혜지가 그저 J양 듣기 좋으라고 살을 붙여 얘기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J양이 원하는 연애가 아닌 혜지가 원하는 연애로 둘을 엮으려고 하다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셋이 만나다 보면 서로에 대한 집중력도 흐트러질 수 있고 말이다. 그러니 썸남과 J양 단 둘의 창구를 개설하길 권한다. 앞서 말했듯 그 창구는 현재로선 '편지'가 가장 적절하다.
썸남에 대해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혜지랑 같이 썸남을 만났을 때 썸남이 전공에 대해 한 이야기를 가지고, J양은
"오빠가 자기 전공에 대해 고민을 좀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라고 내게 말했다. 여기서 보기엔 썸남의 그 말은 별 의미 없이 약간의 푸념조로 한 말일 뿐이다. J양이 짝사랑 중인 까닭에 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다 큰 의미로 여겨지는 건 이해하지만, 그건 내가 장담하는데 8할이 J양의 환상일 뿐이다. '지나가는 말'과 '립서비스'에 까지 거대한 의미를 부여하다간 앞으로 실망하거나 마음아파 할 일이 많다는 걸 잊지 말자. J양이 썸남에 대해 설명해 놓은 걸 보면 그를 무슨 '맑고 순수하기만 한 1급수 남자'로만 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썸남 역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2. 가까워 졌지만 손에 닿지 않는 그 남자.
이건 그냥 접자. 내가 지금 불꽃놀이 알아봐야 하는 게 급해서 막 하는 얘기가 아니라, 썸남이 '좋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접기를 권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 리액션만 받아 챙기는 모습.
썸남은 K양이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다. 매일 말을 걸고 자신에 대해 묻는 여자가 있는데, 그런 행동을 보면서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눈치 못 채는 남자는 없다.(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남자는 대개 자신의 얘기에 웃어주기만 해도 절반은 넘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썸남을 그걸 이용해 K양을 '심심풀이'로 이용하는 듯 보인다. 그는 심심하면 먼저 말을 걸어 뭐라고 운을 띄워 놓고, K양이 거기에 반응하는 것을 즐긴다. K양은 짝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면 팬클럽 회원이 되는 타입이라, 그가 운만 띄워도 인터뷰 하듯 이것저것 물어가며 긍정적인 리액션을 해주기 때문이다.
둘의 카톡대화를 보면, 두 달이 넘는 시간동안 썸남은 K양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뭐 하냐, 밥 먹냐 등은 물었지만, K양이 그에게 물은 것 같은 '심도 있는 질문'들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는 K양이 물어본 것에 대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거나, 자기 자랑을 했을 뿐이다.
ⓑ 옛 여자들 이야기.
K양의 썸남은 무슨 얘기만 나왔다 하면 죄다 '옛 여자'로 이어진다. 여행 가봤냐고 물으면 여행 얘기를 하다가 "거긴 여자랑 갔었던…."하는 이야기를 하고, 뭐 먹어 봤냐고 물으면 "그건 여자랑 먹었었던…."하며 또 여자 얘기를 한다. '왕년'의 이야기를 하는 걸 즐겨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얘기를 할 때 K양의 반응을 보는 게 재미있어서인지는 확실히 분간하기 어렵지만 여하튼 이상할 정도로 '옛 여자'의 이야기로 흘러들어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건 위에서 말 했어야 하는 내용인데, K양이 그의 태도에 지쳐 마음을 접으려고 할 때마다 그가 뜬금없이 "남자친구 생긴 거 축하해~"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자친구 없는 거 뻔히 알면서 저런 식으로 떠보곤 또 지 자랑만 하는 행동 말이다. 난 초반의 카톡대화를 읽으며 '그냥 수다스러운 남자와 친구가 된 건가?'하는 생각을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점점 저런 식으로 K양을 골리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 대놓고 휘두르는 태도.
이게 꼭, 아이스크림 한 입만 달라는 아이를 앞에 두고 내밀었다 뺐다 하면서 놀리는 것 같다. 썸남은 평소와 달리 사뭇 진지한 태도로 K양의 마음을 확인하곤, 그 대답에 맞춰 또 K양을 놀린다. "넌 날 어떻게 생각해?"하는 물음에 K양이 넘어가 진심을 말하면, "그래? 난 현재 너에 대한 감정이 있는데 넌 과거형으로 말하네."라는 이야기를 하거나, "내가 좋아? 나 좋아할 만한 남자 아닌데."하는 식이다. 애초에 저 과정에서의 즐거움만 취하려고 꺼낸 이야기인 까닭에, 긴 대화를 나눠도 결론은 나지 않는다. 거래에 비유하자면, 물건을 살 것도 아니면서 그냥 재미로 흥정만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모임에서 좋은 리더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든, 그런 걸 다 떠나서 그와 K양과의 관계만 보자. 둘의 관계만 봤을 때 그는 비겁하며 교활하기까지 한 남자다. 사귀자는 말만 하면 곧 사귈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가도, 당황스럽게 그는 소개팅까지 한다. 그러면서 누굴 잊지 못했다는 얘기도 늘어놓고, 여하튼 말과 행동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남자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그의 잘난 척 들어주는 거 그만하고, 새해에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과 만나보길 권한다.
3. 쑥스러움 잘 타는 헌팅남, 찬규에게
찬규야. 형 친구 중에 '아이컨택'에 관해선 따라갈 사람이 없는 친구가 하나 있거든. 꼬꼬마 시절에 어울리던 친군데, 걔 별명이 CCTV야. 내가 붙인 건 아니고 학창시절 같은 반 여자애들이 붙여 준 별명이야. 아래에선 'C군'이라고 하자.
C군은 한 번 자신이 찍은 여자가 생기면 CCTV처럼 그녀만 쳐다봐. C군이 같은 반 여학생을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들이 다 알 정도였지. 칠판은 안 보고 그 여학생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까. 그땐 어릴 때라서 누가 누굴 쳐다보고 그러면 여자애들끼리 쑥덕거리잖아. 막
"쟤가 나 또 쳐다봐."
하면서 말야. 근데 그러면 그럴수록 C군은 더 힘이 나는지, 여자애들끼리 쑥덕거리면서 C군을 쳐다봐도 C군은 눈을 피하지 않고 또 쳐다봐. 자신이 쳐다보는 걸 가지고 여자애들이 쑥덕거리는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야.
C군이 위험한 친구는 아니냐고? 절대 위험하지 않아. 그냥 쳐다만 보거든. 도둑이 들어도 CCTV는 도둑을 쳐다만 보잖아. 그것처럼 C군 역시 그냥 쳐다만 봐. 말을 거는 것도 아니고 그 흔한 쪽지를 주는 것도 아니야. 그냥 계속 쳐다봐.
시험공부 하러 마두도서관에 같이 간 적도 있는데, 거기서도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곤 C군이 계속 쳐다보더라고. 그게 나름 '아이컨택'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쳐다보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껴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C군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솔로부대에 복무했어. 그 이후엔 소식이 끊겨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 학원에 다닐 때에도 거기서 CCTV로 소문이 났었는데, C군 얘기 더 하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까 일단 여기서 끊자.
찬규야. 너 역시, 심녀를(관심 가는 여자) 봄부터 지금까지 쳐다만 보고 있었잖아. 그거 너무 많이 쳐다만 보고 있었던 거야. 농담이라도 하나 던졌어야지. 걔가 사서라며. 형이 너였으면, 도서관에서 장기 대출 중인 책 가지고 구실을 만들었을 거야. 갈 때마다 그 책 들어왔는지 묻는 거지. 한 책을 계속해서 찾고 있는 남자 컨셉, 괜찮잖아.
"장기 대출 중인 책이 뭔지는 어떻게 알죠?"
친구 보고 하나 빌리라고 하면 되잖아. 이럴 때 친구찬스 쓰는 거지, 뒀다가 언제 쓰려고 그래. 친구보고 <생긴대로 병이 온다>같은 책 하나 빌리라고 해. 그 다음에 네가 가서
"<생긴대로 병이 온다> 아직 대출중인가요?"
이러면 열 명 중 여덟 명은 빵 터지거든. 무슨 얘긴지 알겠어? 지극히 공적인 대화라고 해도, 일단 말을 트는 게 먼저라고. 왜 숨어서 쳐다만 봐. 그냥 가서 말을 하면 되는 거야. 그러다 걔가 찾아주면, 찾아줘서 고맙다고 새콤달콤 같은 거 하나 사다주면 되잖아. 넌 이걸 다 생략하고 매의 눈으로 일 년 동안 관찰만 하다가,
"저기…, 번호 좀…."
하고 말았잖아. 뭐 이건 엎질러진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고, 걔가 남자친구 있다는 대답을 했다고 했지? 그럼 그때는 "네, 감사합니다."하며 뜬금포를 던져볼 수도 있고, "왜죠?"하면서 허를 찌를 수도 있어. "그럼 남자친구번호까지 두 개 주세요."할 수도 있고.
도망만 안 가면 돼.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헛발질 한 것 같아서 숨고 싶겠지만, 그게 사실 별 일 아니거든. 걔 입장에선 오히려 기분 좋은 일일 수 있고 말야. 그러니까 지금처럼 도서관에서 발 끊고 또 학교에서 마주칠까봐 숨어서 학교 다니지 말고, 당당하게 다녀. 오히려 너라는 남자를 인식시켰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니까. 걔도 이제 네가 누군지 알기 때문에 약간의 호기심은 가질 수 있거든. 야 형도 예전에, 아 이 얘긴 하면 안 되겠다. 아무튼 힘 내! 창피해서 학교 못 다니겠다며 휴학하지 말고. 나중에 떠올리면 이불에 하이킥 몇 번 할 수는 있겠지만 이거 진짜 별 일 아냐. 그러니까 쫄지 마. 알았지?
2013년도 이렇게 안녕이다. 2013년에 만난 사람들, 그리고 2013년에 새로 알게 된 것들, 또 2013년에 떠나보낸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지금 불꽃놀이 안 한다고 해서 그럴 시간이 없다.
"무한님 왜 그렇게 불꽃놀이에 집착하시는 거죠?"
공쥬님(여자친구)이 불꽃놀이 좋아하니까. 누구도 사랑 때문에 가슴 아플 일 없이,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예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새해에도 또 온 힘을 다해 매뉴얼을 발행하도록 하겠다. 2013년 한 해 노멀로그를 아껴주신 모든 독자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새해에는 더 재미있는 글들로 보답해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럼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 내일은 언제나 그래왔듯 노멀로그 한 해 결산 글이 발행됩니다. 내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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