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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4)

누나동생 2년, 그에게 여자가 되고 싶은 외 2편

by 무한 2014. 2. 12.
누나동생 2년, 그에게 여자가 되고 싶은 외 2편
유치원에 다닐 때, 난 진달래반 선생님과 친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선생님, 우리 집에 가서 커피 마실래요?"라는 이야기를 한 까닭에 선생님이 날 참 예뻐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원차 운전기사님과 친했다. 학원에서 수련회를 간 적이 있었는데, 아저씨가 식사도 하지 못하고 계속 고기만 굽고 계시기에 내가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가 친해졌다. 물론 꼬꼬마인 나에게 아저씨가 고기 굽는 일을 넘기시진 않으셨지만, 고기를 상추에 싸서 입에 넣어드리니 기뻐하셨다. 이후 아저씨는 날 볼 때마다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해 주셨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선생님들과 친했다. 특히 양호선생님과 가장 친했는데, "선생님, 다친 데는 없는데 마음이 아프면 어떻게 하죠?"라는 희대의 개드립을 치며 친해지게 되었다. 이후 선생님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무슨 일인지 묻기도 했고, 선생님이 인터넷 기록을 삭제하지 못해 애먹고 있을 때 삭제해드리기도 했다. 그렇게 친해지다가, 선생님과 나는 서로의 생일에 선물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관계를 선생님이 오해하셨는지 결혼하시면서 '출장간다'고 거짓말을 하시기도 했는데…, 여하튼 그 뒤로도 '선생님들용'으로 양호실에 준비 된 드링크제 등을 얻어 마시며 가깝게 지냈다.

그제 발행한 매뉴얼에서 한 '설거지'나 '과일깎이' 등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왜 남친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서 그래야 하냐든가, 그럼 남자도 여자 집에 왔을 때 똑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신 분들도 있는데, 난 꼭 그래야 한다는 '의무의 영역'을 말한 게 아니다. 누군가와 쉽게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관심을 가지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센스의 영역'이다. 반대로 그대의 식구들과 남자친구가 고깃집으로 식사를 하러 갔는데, 부모님들께서 열심히 고기를 구우시는 동안 남자친구가 멀뚱히 앉아 있으면 어떨지 생각해 보길 권한다. 좀 도와드리라고 쿡 찔렀더니, "난 손님으로 온 건데 내가 왜 고기를 구워야 해?"라고 한다면, 그대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물론 덮어두고 모든 순간에 다 나서란 얘기는 아니다. 호의를 보이는 게 의무처럼 되어갈 땐 "제가 할게요." 대신 "감사합니다."를 사용하며 긴장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건 문장의 의미에 따라 수동태를 쓰는 것과 능동태를 쓰는 것이 달라지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구별해야 하는 부분이니, 관련된 사연이 오면 살펴보기로 하고, 밀사모(밀린 사연 모음) 출발해 보자.


1. 누나동생 2년, 그에게 여자가 되고 싶은….


모 리포터가 인터뷰를 잘 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가 인터뷰한 영상을 모두 찾아서 본 적 있다. 영상을 보기 전 내가 큰 기대를 한 까닭에 그의 인터뷰엔 감탄하지 못했지만, 작가와 프로듀서 인터뷰를 참 잘 가공했다는 생각은 했다. 그들은 인터뷰이에게 김치를 아냐고 묻거나 한국 전통 인형을 주는 대신, 가족에 대해서 묻거나 상대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선물하도록 틀을 짰다. 또, 기존의 인터뷰들이 '서론-본론-결론'을 모두 인터뷰이에게 떠맡기던 것과 달리, '서론-본론'은 영상처리를 하거나 리포터가 이야기하게 만들고, '결론과 에피소드'를 인터뷰이가 이야기하도록 만들었다.

[기존의 인터뷰]
리포터 - 이번 영화는 어떤 영화죠? 소개 좀 해주세요.
배우 - 가족을 잃은 한 남자가 악당들에게 복수하는….


[모 리포터의 인터뷰]
리포터 - 영화를 위해 머리를 밀었는데,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배우 - 제 딸이 제 머리가 북 같다면서 계속 두드려대요.



뜬금없이 왜 리포터 얘기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그건 위의 이야기에 P양의 문제와 답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썸남과 누나동생으로 2년을 지내고 이젠 그에게 여자가 되고 싶다는 P양은, 2년 동안 '기존의 인터뷰'같은 대화만 하며 지내왔다. 묻는 사람도 지겹고, 대답하는 사람도 지겨운 그런 대화 말이다.

"무한님이 상대에 대해서 알아가는 대화를 하라고 하셨죠?
저 얘에 대해서 알 거 다 알아요. 평소에 뭐 하고 지내는지,
그리고 고등학교 때 무슨 동아리를 했고, 취미가 뭔지,
또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고 있어요. 그런데도 벽이 있는 느낌이네요."



그렇게 따지면 난 P양의 정보가 담긴 사연신청서를 본 까닭에 P양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게 된다. 난 P양의 연애사를 알고 있고, 가족관계를 알고 있으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무엇을 전공했는지, 평일엔 주로 뭐 하는지, 교우관계가 어떤지, 경제력이 어떤지도 알고 있다. 이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 난 P양을 꿰뚫고 있는 것이고, P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P양이 상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설문조사'를 해서 알아낸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것들을 P양은 "너 고등학교 때 동아리 뭐 했어? 넌 취미가 뭐야? 너 주말에 뭐해?"라고 물어서 알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만약 P양에게 "그는 왜 고교시절 그 동아리를 했던 건가요? 그 동아리활동을 했으면 축제 때 발표도 했을 것 같은데, 발표도 했나요?"라고 묻는다면, P양은 또 쪼르르 그에게 달려가선 "너 왜 그 동아리 했던 거야? 축제 때 발표도 했어?"라고 물은 뒤 답을 얻어 돌아올 것 같다.

아니 이게 무슨 주간미션도 아닌데 왜 저번 주에 "뭐해? 그거 재미있어?"라고 묻고, 또 이번 주에 "근데 너 생일 언제야?"하고 있는가. 어렸을 때 어디 살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으면 자연스레 상대도 공감할만한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서 알아보는 방법도 있고, 또 함께 공포영화를 봤으면 친구가 귀신 본 얘기 같은 것도 좀 해가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P양은 영화관람 직후 "오늘 영화 잘 봤어. 다음엔 내가 보여줄게."라고 말하고, 다음 주 주말이 되면 "그때 내가 영화 보여주기로 한 거 있잖아. 내일 시간 괜찮아?"라는 식으로만 관계를 이끌어가고 만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그러다 상대가 먼저 연락을 해 뭔가를 같이 하자고 제안해도 P양이 거절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계속 바라고 또 바라다가 막상 바라던 일이 벌어질 것 같으면 P양은 갑자기 등을 돌려버린다. 이게 참 치명적이다. P양은 상대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있을 때에만 그가 자신을 봐주길 바라고, 정작 그가 P양을 바라보면 도망가 버린다.

P양이 위의 두 가지만 하지 않아도 둘은 올 봄에 벚꽃놀이를 가게 될 거라 나는 생각한다. "전 당연히 얘랑 만나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내는 거죠. 그런데 얘가 저에게 만나자고 하면 심심해서 그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싫어져죠."같은 자아분열은 이제 그만하고, 둘 중 딱 하나만 정해서 밀고 나가도록 하자. 그냥 주말에 에버랜드 가자고 하면 자연스레 가게 될 일을 가지고, 자존심 접었다 폈다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말이다.


2. 결혼 안 하면 안 된다는 남자친구.


글쎄 이건,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결혼할만한 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 뭐라고 얘기를 꺼내야 좋을지 모르겠다.

먼저, 올해 아니면 결혼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남자친구가 이상하다. 거기에 무슨 대단한 이유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 사람들에게 올해 겨울에 결혼한다고 말해놔서 겨울에 결혼해야 한다는 게, 대체 그는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 다음으로는 둘의 연애가 이상하다. 이건 연애라기보다는 남자친구가 S양을 데리고 놀아주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데이트는 대부분 S양의 입맛대로 맞춰지며, 비용은 거의 모두 남자친구가 지불한다. 이걸 두고 사랑 받고 예쁨 받는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남자친구는 기분 좋을 때만 이렇게 헌신하지, 예민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면 S양을 짐짝 취급하지 않는가.

"전 오빠가 좋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해요.
혹 결혼해서 살다가도 의견차이가 생기면 제 말을 전혀 안 들어줄 것 같아서요."



나도 S양의 말에 120%동의한다. 그에게 S양은 의견 같은 걸 가지면 안 되는 여자다. 그냥 해 주면 고맙게 받고, 기분 풀라고 하면 풀어야 하는 그런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이젠 자신이 맹목적으로 호의와 헌신을 베풀던 것에 그 역시 지겨움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럼 너는? 너는 왜 안 하는데?"


라는 말이 등장한 걸로 봐서, '내 뜻에 안 따르는' S양을 슬슬 정리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둘의 관계는 주유비, 숙박비, 식비까지 상대가 다 부담하는 여행을 가는 것과 같기 때문에, S양이 의견을 낸다는 것 자체가 상대에겐 스트레스 받는 일이 된다.

"나 냉정한 남자야."
"나 요즘 스트레스 진짜 많이 받는데 너까지 그러지 마라."



S양이 차를 얻어 타듯 연애를 하고 있었으니, 상대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내리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그는, 올 겨울에 결혼할 거 아니면 내리라는 이야기를 S양에게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방법이 없다. 현 상황에서 S양이 조율을 시도하면, 그는 바로 '내가 잘 해주면 무조건 내 뜻에 따를 다른 여자'를 찾아갈 테니 말이다. 이미 S양은 한 번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한 뒤 '내 의견'을 전달했는데, 그 상황에서 위기를 느낀 그가 당장 한 발은 물러섰지만, 뜻대로 따르지 않는 S양에게 이미 김이 샌 듯 보인다. 이후 그는 싸울 구실도 안 되는 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까지 한 상황이다. 글쎄, 난 내 여동생이 현재 S양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면 "야, 축하한다. 너 정말 하늘이 도운 거야. 지금 큰일 날 뻔 한 상황에서 빠져나온 거라고. 축하의 의미로 오늘 치맥 한 잔 하자."라고 했을 것 같은데….


3. 위의 사연과 비슷하지만 다른 사연.


혜숙아 딱 봐봐. 내가 그 남자 입장에서 혜숙이가 어떻게 보일지 얘기해 줄게. 직업은 밝히지 말라고 했으니까, 각색해서 '피부과 페이닥터'라고 하자. 

우린 어른들의 소개로 만났어. 나는 다른 원장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고. 그런데 너랑 만나서 결혼 얘기가 오가는 중에 개원을 해야 할 상황이 벌어져. 물론 너랑은 이것에 대해 별로 얘기를 하지 않았지. 분명 우리는 연인인데, 우리는 가만히 있고 부모님들끼리 공방전을 벌이셔. '병원 개업하는데 돈을 보태라는 거냐, 이런 경우가 어딨냐? VS 결혼은 기정사실 아니냐, 페이닥터로 더 근무할 수 없어서 차리는 건데 뭐가 문제냐?'라는 걸로 말이야.

여기만 봐도 웃기지 않아? 아니, 둘이 애들도 아닌데 결정은 부모님들이 해. 둘은 무슨 장기판의 말인가? 더 웃긴 건, 두 집안의 갈등이 심화되자 혜숙이 넌 시간을 갖자며 그동안 받았던 걸 내게 돌려줬지. 여하튼 이 일로 인해 달포쯤 떨어져 있다가 우리는 다시 화해를 해. 우리 집에서만 지원을 받는 것으로 결정한 개원을 준비하면서 말이야.

미안한데 이거 가정해서 쓰는 거 못 하겠다. 쓰는 내내 갑갑하네. 장기판의 말을 연기하려니까 내가 더 힘든 것 같아. 그냥, 그의 입장에서 봤을 때 혜숙이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쓰도록 할게. 단, 둘의 만남에는 속물적인 부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여과 없이 바로 쓰도록 할게.

[긍정적인 면]
- 나랑 사귀고 있는 사람이며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여자다. 

[부정적인 면]
- 병원 차리는 데 아무 보탬이 안 된다.
- 집안 식구들이 와서 할인가로 시술 받고 간다.
- 만나면 식비, 주유비, 숙식비 다 내가 낸다.
- 가뭄에 콩 나듯 자기가 더치페이하는 걸 선심 쓰듯 말한다.
- 자신의 안부를 늘어놓으며 내게 리액션을 하라고 한다.
- 아침저녁 전화하기 등 지켜야 할 것들을 내게 지키라고 한다.



물론 이게 혜숙이가 전부 잘못한 건 아냐. 남자 역시 진행이 이렇게 되도록 만들어. 보통의 연인이라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일, 또는 같이 계획할 일도 그는 다 돈으로 해결하려 해.

"알아보고 말해줘요. 내가 결제할게."
"고르고 나서 계좌번호 불러줘요. 돈 부칠게."
"내가 그거 못 해줘서 미안하니까 이거 내가 살게."



이런 식으로 말야. 혜숙이 넌 저게 너에게 잘 해주는 것 같아? 저건 지각비 내고 마음껏 지각하겠다는 거거든. 지각에 대한 대가로 돈을 냈으니까 해결된 것 같지? 절대 아냐. 지각으로 인해 채워지지 못한 부분은 훗날 반드시 티가 나거든. 학원 수료라고 생각해 봐. 거의 대부분의 수업에 지각하며 지각비만 30만원 내고 형식적인 수료를 했어. 수료증만 있으면 끝이야? 배우지 않은 만큼 아는 것도 적을 거 아냐.

때문에 호르몬이 돕는 동안 둘은 열심히 하트 날리며 연애를 했지만,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미래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강렬한 마음도 없어. '결혼 전제 만남'이라는 간판만 걸려있을 뿐이지, 실제로는 고교 동창보다도 먼 사이야. 혜숙이 너 그 사람 신발사이즈가 몇인지 알아? 왜 그 전공을 택했는지 알아? 그 사람 이름 뜻이 뭔지 알아? 그 사람의 가장 친한 친구 이름이 뭔지 알아? 반대로 그 사람은 너의 저런 부분들을 알아? 모르지? 그래도 '결혼 전제 만남'이니까 결혼만 하면 괜찮은 거야? "좋은 아침♥", "잘자요♥" 같은 멘트만 주고받으면 우리사랑 이상무야?

내가 위에서 한 얘기 읽고 난 뒤에 네가 그에게 보냈던 문자 봐봐. 완전 끔찍하게 보이지 않아?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할 걸 후회한다느니, 여기 이 자리에 기다리고 있을 거라느니 하는 말들 말야. <체험 삶의 현장>찍고 있는 사람에게 <들장미 소녀 캔디>가 보낸 메시지 같잖아.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면 나는 찬성해. 둘 다 너무 모르고 겁이 많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둘 중 누군가가 아주 엉망이라 벌어진 일은 아니니까. 대신 내가 위에서 이야기한 부분들을 상대와 툭 터놓고 대화해야 할거야. 그 무엇보다 둘의 결정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기십만 원짜리 공연 안 봐도 되니 어디서 뭐 할지 같이 정하자는 것, 둘 중 누구라도 혼자서 전부 부담하거나 책임지진 않는다는 것,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자는 것 등을 이야기해봐. 그리고 유자차,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이렇게만 적어두면 2번과 3번 사연을 살짝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두 분 모두 남자와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는 얘기를 적어둘까 한다. 돈이 없어 상대에게 기대다가 벌어진 일이라기보다는, 상대가 헌신하는 걸 '애정'이라 착각했기 때문에 무작정 받기만 하다가 벌어진 일에 가깝다.

이런 사연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대체 왜 이렇게 받기만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나 가만히 살펴보니, 위에서 말한 혜숙이 커플 같은 연인이 있을 경우, 혜숙이의 친구는 그걸 보며

'아, 저렇게까지 하는 남자도 있구나.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연애하는구나.'


하며 혜숙이 커플을 롤모델로 삼아 연애를 한다. 분명 혜숙이 커플은 곧 넘어지게 되는데, 친구는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부러운 부분만을 또 따라하는 것이다. 그 친구를 보고 또 다른 친구가 따라하고, 어느 친구는 그 친구의 예를 들어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그 정도로 사랑 받는 사람도 있어." 따위의 얘기를 하고…. 마치 집단환각에 걸린 사람들처럼 그 끝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따라한다.

친구나 친한 언니, 아니면 부러운 누군가의 연애를 따라하거나 그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길 바란다. 전에도 말했지만 난 자전거를 처음 샀을 때, 샵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MTB에 누가 킥스탠드(자전거 측면에 달아 세워둘 때 펴는 것)를 달아요? 다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난 자전거 타고 산에도 가지 않고 주로 마실용으로 사용하니 다는 게 맞다. 내가 자전거를 탈 때 필요하니까 다는 거다. 혹자는 어떤 아주머니가 비싼 자전거에 바구니를 달았다며 "좋은 자전거를 무슨 시장용 자전거로 만들었다."라고 하던데, 그 아주머니 역시 필요하니까 바구니를 다는 거다. 바구니 다는 거 아니라는 말에 휘둘려 달지 않은 채 시장 다녀올 때마다 위태롭게 봉지를 들고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는, 바구니 다는 게 훨씬 낫다.

난 매뉴얼을 통해 무엇보다 상대에게 '책임감과 존중'이 있는지를 확인하라고 꾸준히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건 그대에게도 상대를 향한, 또 둘의 관계를 향한 '책임감과 존중'이 있을 때에 해당되는 얘기다. 자신은 둥지에 앉아 입 벌리고 있으면서 상대에게 어서 책임감과 존중을 보이라고 하면, 상대가 그 둥지와 그대를 버리고 떠나는 건 시간문제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버려질 둥지에서 상대가 물어다 주는 먹이만 먹고 있는 누군가를, 아무 생각 없이 따라하진 말길 바란다.



"내일 발렌타인데이인데 심남이에게 초콜릿 줘도 될까요?" 여행 가서 사온 열쇠고리 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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