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는 게 고민된다며 계속 밀어내는 소개팅녀.
김형의 사연은 어제 다룬 최형의 사연과 거의 비슷해. 김형과 최형의 나이, 행동, 관계를 이끌어가는 순서, 들이대는 모습도 비슷하고, 상대방의 반응도 비슷해. 김형의 썸녀도 최형의 썸녀만큼이나 자신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라며 짜증을 낼 정도니까.
그런데 난 김형의 썸녀가 인간적으로 더 별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어제 다룬 최형의 썸녀는 단호하기라도 했거든. 둘 다 남자를 영업사원쯤으로 생각하는 건 비슷하지만, 최형의 썸녀가 거절의사를 명확히 밝힌 것과 달리 김형의 썸녀는 애매한 얘기만 하지.
같은 얘기 말이야. 이렇게만 적어두면 누군가가 "저건 거절 아닌가요? 직접 말하기 힘들어서 돌려 말하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문제는 그녀가 저런 얘기를 '김형이 고백할 때'에만 한다는 거야. 그렇지 않을 때에는 만나서 데이트 하며 잘 놀거든. 손도 잡고, 포옹도 해가면서 말이야.
어장관리야. 김형은 김형의 고백에 대해 그녀가
라고 얘기하니까, 절대 이게 어장관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녀의 말은 그럴듯해. 그런데 행동은 그렇지 않잖아. 평소에 그녀는 김형이 내미는 호의를 거절 없이 다 받아. 그러다 김형이 '이제 좀 가까워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고백을 하면, 다시 또 저런 얘기를 하지. 김형도 참 대단한 게, 이렇게 지낸지도 벌써 반년이 다 되어 가잖아. 물론 그녀가 계속 '가능성'이라는 떡밥을 주니까 김형이 지치지 않고 힘내는 거겠지만, 난 김형이 그녀의 말과 행동에 차이가 있음을 좀 눈치 챘으면 좋겠어. 김형은 현재 그 차이점마저도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거든.
라면서 말이야.
그녀의 행동은, 정작 본 상품은 구입할 생각이 없으면서 판촉물만 다 받아 챙기는 것과 같은 거야. 내가 마트에서 하는 짓이랑 비슷한 거지. 오리고기 살 생각 없으면서, 코너 앞에 여사님이 구워주시는 고기는 이쑤시개로 잘도 집어 먹거든. 소시지, 돈가스, 불고기, 만두, 다 잘 먹어. 다 먹고 나서는 와인 코너에 가서 시음도 하고 말야.
전에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보니까, 그냥 시식코너 돌면 눈치 보이니까 하나 먹을 때마다 카트에 그 품목을 담는 사람도 있더라. 구입해 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도 받아가며, 눈치 안 보고 마음껏 먹는 거지. 그러고는 물건 다 담은 카트를 출입구 앞에 아무렇게나 놔둔 채 그냥 가 버리더라고.
난 김형의 썸녀가 하는 행동이 저 '카트 몰고 돈 뒤 카트 두고 떠나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그녀도 김형에게 받을 건 다 받거든. 김형의 선물, 헌신, 호의 가리지 않고 일단 다 받아. 그런데 김형 본인이 원하는 걸 그녀에게 말할 때면, 그녀는 "이렇게 만나는 건 아닌 것 같다."라는 애매한 얘기만 해대지.
근데 이게 참 애매한 게, 그녀가 먼저 요구한 적은 없다는 거야. 거의 전부 김형이 먼저 하겠다고 나선거지, 그녀가 요청한 건 아니거든. 그녀가 태우러 와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녀가 귀고리 사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녀가 나 대신 어디 가서 뭐 좀 찾아오라고 하지도 않았어. 김형이 지레짐작해서 "내가 해줄게."라고 한 거고,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래서 그녀는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뭐,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는 거지.
더불어 그녀는 김형과의 관계에 대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그녀는 김형과 데이트 같은 것을 하고 있던 시기에도 다른 남자와 연극을 보러 가고, 또 다른 남자와 술을 마시고 그랬잖아. 그 남자들의 사정도 김형의 사정과 별반 다를 것 없을 거야. 전부 자신이 '가장 높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들 역시
저런 대화를 했을 거야. 김형이 그녀와 나누는 대화와 다를 것 없이 말야. 그녀는 그들이 귀고리를 사주면 받고, 차를 태워준다고 하면 타고, 밥을 사준다고 하면 먹겠지. 김형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손잡기, 어깨동무하기, 포옹하기 등도 할 수 있고 말야.
김형이 착각하는 것도 이해가 가긴 해. 그녀는 남자 대하는 걸 전혀 어려워하지 않거든. 그런 여자들에겐 여유가 있어. 그래서 남자들은 그 여유를 가능성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 여유가 있는 여자는 아래와 같이 받아치는 경우가 많아.
여유가 없거나 분명하게 자기의사를 밝히는 타입의 여자라면 저 상황에서 "제가 왜요?"라든가 "저 만나는 사람 있어요."라고 말했겠지. 그런데 여유가 가득한 송희는, 현재 만나는 썸남이 있는 상황에서도 일단 대사를 저렇게 치는 거야. 그럼 준오는
하며 착각하게 되는 거지. 김형의 썸녀도 수준급의 여유를 가지고 있어.
김형이 헛발질을 해도 그녀는 능숙하게 받아내거든. 선을 넘는 것 같은 얘기를 해도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무리한 농담을 해도 리액션을 잘 해주지.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김형은 '가능성의 노예'가 되고 말아. 그녀의 리액션을 보며 '정색하지도 않았고, 싫다고 거절하지도 않았어. 아마 마음이 내게 열린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과연 그럴까? 그녀가 다른 남자들의 들이댐도 저렇게 다 받아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어? 난 다른 남자가 그녀에게 "그냥 나한테 시집와라. 올 가을에 우리 결혼하자."라고 말하면, 그녀가 "머래ㅋ"라고 대답할 것 같은데? 착각하지 마. 저건 김형만을 향해 열려 있는 가능성이 아니야. 만인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이지.
김형이 말했잖아.
난 김형의 저 '그녀의 마음을 다시 돌리려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그녀와의 관계에선, 김형이 간 자리까지 가는 게 쉬워. 그녀는 보통 사람보다 곁을 많이 주니까. 오늘 소개팅 해도, 주말이면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어. 다른 여자와 그 정도로 친해지기 위해선 그녀가 경계를 허물고, 또 이쪽에서도 그녀를 안심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김형의 썸녀는 거기가 출발점이야.
김형이 그녀의 상황을 설명하며 이런 얘길 했지.
라고. 그녀가 그렇게 말을 하니 김형에겐 그 남자가 그냥 찌질한 스토커처럼 보이겠지만, 차분하게 생각해 봐. 앞으로 그녀가 김형이 보이는 모든 호의와 헌신을 거절한 채 다른 남자의 그것들을 받기로 하면, 김형 역시 저 '스토커'가 될 수 있어.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니까? 김형과 그 스토커의 차이가 뭐야? 내미는 호의와 헌신, 그리고 대화 요청을 그녀가 받아 주냐 아니냐의 차이잖아. 그녀가 안 받아주기만 하면, 지금 김형이 하고 있는 일들도 모두 스토킹으로 분류될 수 있는 거야. 김형 그녀에게 만나자고 연락하지? 또 그녀가 부탁한 적도 없는데 그녀를 위해 헌신하지? 또 그녀가 사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선물 사서 내밀지? 또 그녀의 마음이 '돌아섰다'고 생각하며 다시 김형에게 돌리기 위해 연락하고 편지주고 그러지? 뭐가 달라?
내가 보기엔 전혀 아니야. 그녀에겐 김형을 향한 1g의 애정도 없어. 관심도 없고, 궁금한 것도 없는 것처럼 보여. 그녀가 김형과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 오로지 김형이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고 헌신을 하고 있기 때문이야. 김형이 그것 중 하나라도 소홀하면, 이 관계는 언제라도 부서지고 말 거고.
솔직히 난 후반부에 그녀가 좀 괘씸하더라. 그녀는 사귈 생각도 없으면서
따위의 떡밥을 던지고 있으니까. 주는 건 다 받아 놓고 "발렌타인데이인지도 몰랐네."하며 그냥 넘어가 버리는 것도 그렇고, 김형에게 이렇게 여지를 남겨 놓고는 다른 남자들 만나는 것도 그렇고, 그녀가 인기는 많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성은 참 별로인 여자라고 생각해.
미안하지만 그 분, 참 웃기는 여자야.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한다면 본인도 노력해야 할 거 아냐. 김형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기 위해 질문도 하고, 만나는 약속을 잡는 것에도 어느 정도는 능동적으로 임해야지. 근데 그녀는 그냥 김형이 다 알아서 준비하면 방문하듯이 잠깐 다녀갈 뿐이거든.
김형, 김형은 그녀가 뭔가 부탁하면 회사 조퇴를 해서라도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각오를 하고 있지? 그런데 그녀는 어때? 난 만약 김형이 그녀에게 "미안한데 혹시 회사 끝나고 그 앞 서점에 <뭐뭐뭐>라는 책 있나 알아봐 줄 수 있어?"라고 하면, 그녀가
라고 할 것 같은데, 아니야? 속으로는 '완전 웃기네. 어디 감히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려고 그래?'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김형도 이걸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야?
김형과 내가 이 관계에 대해 서로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이제 좀 알겠지? 그래서 내가, 김형이 말한 "이제부터라도 밀당을 해야 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 줄 수가 없는 거야. 내가 보기에 김형은 이 관계에서, 낭떠러지 끝에 있는 줄 하나에 겨우 매달려 있는 사람 같거든. 이런 상황에서 무슨 밀당이야. 줄 놓치면 그냥 아래로 떨어지는 건데.
뭐라고 얘기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김형은 이제 고지가 바로 저기라고 생각하는 중인데, 나는 아직 출발도 안 한 거라고 생각하니까. 김형이 내 동생이었으면 "거기서 네가 1등 해봐야, 고작 어장 속 1등 참치가 되는 거야."라는 이야기를 해주겠지만, 김형은 내 동생이 아니니까….
내가 김형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맹목적인 헌신과 호의를 접고 길게 만나 보라는 얘기밖에 없는 것 같아. 그녀의 생일에는 케이크 하나 정도만 선물해 주고, 화이트데이 같은 건 챙기지 마. 김형이 동성친구를 대할 때보다 약간 더 호의를 베푸는 수준으로만 상대를 대해. 지금처럼 액세서리 사주고, 심부름 해주고, 기사노릇 하지 말고. 그렇게 해도 이 관계가 유지되는지를 먼저 한 번 봐봐. 지금은 김형이 열심히 조공을 바쳐야 상대의 "응, 아니, 응."이라는 대답을 겨우 들을 수 있는 관계니까.
사귄다고 지금에서 크게 변할 건 없어. 김형이 해야 하는 의무만 더 늘어날 뿐이야. 사귄다고 갑자기 그녀가 돌변해서 김형에게 애정표현을 하고 어장 속 다른 남자들을 돌 보듯 할 것 같아? 만약 둘이 사귀게 된다 해도, 그녀가 동창일 뿐인 이성친구와 단 둘이 술 마시는 게 뭐 어떠냐며 화를 내면, 김형은 찍소리 못할 게 뻔하잖아. 하루 종일 연락 없는 그녀에게 상심한 김형이 뭐라고 했더니, 그녀는 남자친구가 되었다고 자신을 구속할 거면 헤어지자고 해. 그럼 김형은 뭐라고 할 거야? 할 말 없지? 이제 뭐가 더 중요한 건지 알 것 같지 않아? 연인이라는 간판 거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이 관계를 김형이 경영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자고. 그녀가 정말 믿고 동업을 해도 괜찮은 사람인지도 파악해 보고 말이야.
▲ "이렇게 받기만 하는 건 너에게 너무 미안하다."라면서도 계속 받는 여자. 천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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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의 사연은 어제 다룬 최형의 사연과 거의 비슷해. 김형과 최형의 나이, 행동, 관계를 이끌어가는 순서, 들이대는 모습도 비슷하고, 상대방의 반응도 비슷해. 김형의 썸녀도 최형의 썸녀만큼이나 자신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지금, 내가 졸린데도 통화해 주고 있는 거다."
라며 짜증을 낼 정도니까.
그런데 난 김형의 썸녀가 인간적으로 더 별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어제 다룬 최형의 썸녀는 단호하기라도 했거든. 둘 다 남자를 영업사원쯤으로 생각하는 건 비슷하지만, 최형의 썸녀가 거절의사를 명확히 밝힌 것과 달리 김형의 썸녀는 애매한 얘기만 하지.
"이제 나도 나이가 있고 하니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나야 한다.
그래서 네 고백에 답해주기가 어렵다.
이렇게 고민하게 되는 걸 보니 우린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마음이 드는데 계속 만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나에게 연락 하지 말고 생각할 시간을 좀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네 고백에 답해주기가 어렵다.
이렇게 고민하게 되는 걸 보니 우린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마음이 드는데 계속 만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나에게 연락 하지 말고 생각할 시간을 좀 줬으면 좋겠다."
같은 얘기 말이야. 이렇게만 적어두면 누군가가 "저건 거절 아닌가요? 직접 말하기 힘들어서 돌려 말하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문제는 그녀가 저런 얘기를 '김형이 고백할 때'에만 한다는 거야. 그렇지 않을 때에는 만나서 데이트 하며 잘 놀거든. 손도 잡고, 포옹도 해가면서 말이야.
1. 간단하잖아.
어장관리야. 김형은 김형의 고백에 대해 그녀가
"난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이렇게 만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을 좀 달라는 말을 하려고 했었다.
이렇게 만나는 게 꼭 내가 어장관리 하는 것 같고,
또 너무 나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말하는 거다."
그래서 시간을 좀 달라는 말을 하려고 했었다.
이렇게 만나는 게 꼭 내가 어장관리 하는 것 같고,
또 너무 나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말하는 거다."
라고 얘기하니까, 절대 이게 어장관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녀의 말은 그럴듯해. 그런데 행동은 그렇지 않잖아. 평소에 그녀는 김형이 내미는 호의를 거절 없이 다 받아. 그러다 김형이 '이제 좀 가까워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고백을 하면, 다시 또 저런 얘기를 하지. 김형도 참 대단한 게, 이렇게 지낸지도 벌써 반년이 다 되어 가잖아. 물론 그녀가 계속 '가능성'이라는 떡밥을 주니까 김형이 지치지 않고 힘내는 거겠지만, 난 김형이 그녀의 말과 행동에 차이가 있음을 좀 눈치 챘으면 좋겠어. 김형은 현재 그 차이점마저도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거든.
'말은 저렇게 했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은 걸 보니 나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라면서 말이야.
그녀의 행동은, 정작 본 상품은 구입할 생각이 없으면서 판촉물만 다 받아 챙기는 것과 같은 거야. 내가 마트에서 하는 짓이랑 비슷한 거지. 오리고기 살 생각 없으면서, 코너 앞에 여사님이 구워주시는 고기는 이쑤시개로 잘도 집어 먹거든. 소시지, 돈가스, 불고기, 만두, 다 잘 먹어. 다 먹고 나서는 와인 코너에 가서 시음도 하고 말야.
전에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보니까, 그냥 시식코너 돌면 눈치 보이니까 하나 먹을 때마다 카트에 그 품목을 담는 사람도 있더라. 구입해 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도 받아가며, 눈치 안 보고 마음껏 먹는 거지. 그러고는 물건 다 담은 카트를 출입구 앞에 아무렇게나 놔둔 채 그냥 가 버리더라고.
난 김형의 썸녀가 하는 행동이 저 '카트 몰고 돈 뒤 카트 두고 떠나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그녀도 김형에게 받을 건 다 받거든. 김형의 선물, 헌신, 호의 가리지 않고 일단 다 받아. 그런데 김형 본인이 원하는 걸 그녀에게 말할 때면, 그녀는 "이렇게 만나는 건 아닌 것 같다."라는 애매한 얘기만 해대지.
근데 이게 참 애매한 게, 그녀가 먼저 요구한 적은 없다는 거야. 거의 전부 김형이 먼저 하겠다고 나선거지, 그녀가 요청한 건 아니거든. 그녀가 태우러 와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녀가 귀고리 사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녀가 나 대신 어디 가서 뭐 좀 찾아오라고 하지도 않았어. 김형이 지레짐작해서 "내가 해줄게."라고 한 거고,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래서 그녀는
'내가 부탁한 거 아니고 걔가 해주는 걸 받았을 뿐이니, 어장관리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뭐,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는 거지.
2. 남자를 어려워하지 않는 여자.
더불어 그녀는 김형과의 관계에 대해
'이런 건(손잡기, 어깨동무하기, 포옹하기) 친구들이랑도 할 수 있는 거고,
저 정도의 호의나 헌신, 선물 등은 친구관계에서도 해줄 수 있는 거다.'
저 정도의 호의나 헌신, 선물 등은 친구관계에서도 해줄 수 있는 거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그녀는 김형과 데이트 같은 것을 하고 있던 시기에도 다른 남자와 연극을 보러 가고, 또 다른 남자와 술을 마시고 그랬잖아. 그 남자들의 사정도 김형의 사정과 별반 다를 것 없을 거야. 전부 자신이 '가장 높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들 역시
ⓐ
그녀 - 요즘 재미있는 연극 하나? 연극 본 지 오래됐네.
남자A - 연극? 내가 예매할게. 뭐 보고 싶은 거 있어?
그녀 - 아냐. 나중에 친구랑 보지 뭐. 요즘 뭐 하는지도 몰라.
남자A - 얼마 전에 <뭐뭐뭐>라는 포스터 본 적 있는데, 그거 볼래?
지금 찾아보니까 토요일에 하네. 토요일 5시 괜찮아?
그녀 - 응. 괜찮아. 재밌겠다!
ⓑ
그녀 - 언제 술 한 잔 해야지 우리도~
남자B - 그래. 내일 마실까? 간만에 삼겹살 어때?
그녀 - 삼겹살 맛있겠다!
남자B - 내일 라페에서 먹자. 회사 끝나고 내가 데리러 갈게.
그녀 - 요즘 재미있는 연극 하나? 연극 본 지 오래됐네.
남자A - 연극? 내가 예매할게. 뭐 보고 싶은 거 있어?
그녀 - 아냐. 나중에 친구랑 보지 뭐. 요즘 뭐 하는지도 몰라.
남자A - 얼마 전에 <뭐뭐뭐>라는 포스터 본 적 있는데, 그거 볼래?
지금 찾아보니까 토요일에 하네. 토요일 5시 괜찮아?
그녀 - 응. 괜찮아. 재밌겠다!
ⓑ
그녀 - 언제 술 한 잔 해야지 우리도~
남자B - 그래. 내일 마실까? 간만에 삼겹살 어때?
그녀 - 삼겹살 맛있겠다!
남자B - 내일 라페에서 먹자. 회사 끝나고 내가 데리러 갈게.
저런 대화를 했을 거야. 김형이 그녀와 나누는 대화와 다를 것 없이 말야. 그녀는 그들이 귀고리를 사주면 받고, 차를 태워준다고 하면 타고, 밥을 사준다고 하면 먹겠지. 김형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손잡기, 어깨동무하기, 포옹하기 등도 할 수 있고 말야.
김형이 착각하는 것도 이해가 가긴 해. 그녀는 남자 대하는 걸 전혀 어려워하지 않거든. 그런 여자들에겐 여유가 있어. 그래서 남자들은 그 여유를 가능성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 여유가 있는 여자는 아래와 같이 받아치는 경우가 많아.
(회사에서 직원들이 모여 농담을 하는 상황)
직원A - 송희씨랑 준오씨 사귀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둘이 잘 해봐.
준오 - ….
송희 - 준오씨 요즘 운동에 빠져서 연애 할 시간이나 있겠어요?
직원A - 송희씨랑 준오씨 사귀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둘이 잘 해봐.
준오 - ….
송희 - 준오씨 요즘 운동에 빠져서 연애 할 시간이나 있겠어요?
여유가 없거나 분명하게 자기의사를 밝히는 타입의 여자라면 저 상황에서 "제가 왜요?"라든가 "저 만나는 사람 있어요."라고 말했겠지. 그런데 여유가 가득한 송희는, 현재 만나는 썸남이 있는 상황에서도 일단 대사를 저렇게 치는 거야. 그럼 준오는
'뭐지? 거절을 안 했어. 사귈 생각 없다고 말한 게 아니라,
내가 운동에 빠져서 연애 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어.
그러면 내가 그녀에게 대시하면 받아 줄 생각이 있다는 건가?'
내가 운동에 빠져서 연애 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어.
그러면 내가 그녀에게 대시하면 받아 줄 생각이 있다는 건가?'
하며 착각하게 되는 거지. 김형의 썸녀도 수준급의 여유를 가지고 있어.
ⓐ
김형 - 역시 우린 천생연분 ㅋ
썸녀 - 머래ㅋ
ⓑ
김형 - 자꾸 그러면 뽀뽀해 버린다.
썸녀 - 갈수록 능글맞어ㅋ
김형 - 역시 우린 천생연분 ㅋ
썸녀 - 머래ㅋ
ⓑ
김형 - 자꾸 그러면 뽀뽀해 버린다.
썸녀 - 갈수록 능글맞어ㅋ
김형이 헛발질을 해도 그녀는 능숙하게 받아내거든. 선을 넘는 것 같은 얘기를 해도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무리한 농담을 해도 리액션을 잘 해주지.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김형은 '가능성의 노예'가 되고 말아. 그녀의 리액션을 보며 '정색하지도 않았고, 싫다고 거절하지도 않았어. 아마 마음이 내게 열린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과연 그럴까? 그녀가 다른 남자들의 들이댐도 저렇게 다 받아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어? 난 다른 남자가 그녀에게 "그냥 나한테 시집와라. 올 가을에 우리 결혼하자."라고 말하면, 그녀가 "머래ㅋ"라고 대답할 것 같은데? 착각하지 마. 저건 김형만을 향해 열려 있는 가능성이 아니야. 만인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이지.
3. 그녀의 희망고문.
김형이 말했잖아.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확신을 주고,
또 마음을 제게 다시 돌려 애인사이가 될 수 있을까요?"
또 마음을 제게 다시 돌려 애인사이가 될 수 있을까요?"
난 김형의 저 '그녀의 마음을 다시 돌리려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그녀와의 관계에선, 김형이 간 자리까지 가는 게 쉬워. 그녀는 보통 사람보다 곁을 많이 주니까. 오늘 소개팅 해도, 주말이면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어. 다른 여자와 그 정도로 친해지기 위해선 그녀가 경계를 허물고, 또 이쪽에서도 그녀를 안심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김형의 썸녀는 거기가 출발점이야.
김형이 그녀의 상황을 설명하며 이런 얘길 했지.
"그녀가 거절했더니, 스토커처럼 연락 하는 남자 때문에
그녀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라고. 그녀가 그렇게 말을 하니 김형에겐 그 남자가 그냥 찌질한 스토커처럼 보이겠지만, 차분하게 생각해 봐. 앞으로 그녀가 김형이 보이는 모든 호의와 헌신을 거절한 채 다른 남자의 그것들을 받기로 하면, 김형 역시 저 '스토커'가 될 수 있어.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니까? 김형과 그 스토커의 차이가 뭐야? 내미는 호의와 헌신, 그리고 대화 요청을 그녀가 받아 주냐 아니냐의 차이잖아. 그녀가 안 받아주기만 하면, 지금 김형이 하고 있는 일들도 모두 스토킹으로 분류될 수 있는 거야. 김형 그녀에게 만나자고 연락하지? 또 그녀가 부탁한 적도 없는데 그녀를 위해 헌신하지? 또 그녀가 사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선물 사서 내밀지? 또 그녀의 마음이 '돌아섰다'고 생각하며 다시 김형에게 돌리기 위해 연락하고 편지주고 그러지? 뭐가 달라?
"제가 보기엔 그녀가 긴가민가하고 있는 상황인데…."
내가 보기엔 전혀 아니야. 그녀에겐 김형을 향한 1g의 애정도 없어. 관심도 없고, 궁금한 것도 없는 것처럼 보여. 그녀가 김형과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 오로지 김형이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고 헌신을 하고 있기 때문이야. 김형이 그것 중 하나라도 소홀하면, 이 관계는 언제라도 부서지고 말 거고.
솔직히 난 후반부에 그녀가 좀 괘씸하더라. 그녀는 사귈 생각도 없으면서
"너랑 사귀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따위의 떡밥을 던지고 있으니까. 주는 건 다 받아 놓고 "발렌타인데이인지도 몰랐네."하며 그냥 넘어가 버리는 것도 그렇고, 김형에게 이렇게 여지를 남겨 놓고는 다른 남자들 만나는 것도 그렇고, 그녀가 인기는 많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성은 참 별로인 여자라고 생각해.
"너에게 호감이 있긴 한데, 내가 안달 날 정도는 아니다.
좀 더 만나며 생각해 봐야겠다.
네 말대로 만나다 보면 좋아질 수도 있는 거니까."
좀 더 만나며 생각해 봐야겠다.
네 말대로 만나다 보면 좋아질 수도 있는 거니까."
미안하지만 그 분, 참 웃기는 여자야.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한다면 본인도 노력해야 할 거 아냐. 김형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기 위해 질문도 하고, 만나는 약속을 잡는 것에도 어느 정도는 능동적으로 임해야지. 근데 그녀는 그냥 김형이 다 알아서 준비하면 방문하듯이 잠깐 다녀갈 뿐이거든.
김형, 김형은 그녀가 뭔가 부탁하면 회사 조퇴를 해서라도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각오를 하고 있지? 그런데 그녀는 어때? 난 만약 김형이 그녀에게 "미안한데 혹시 회사 끝나고 그 앞 서점에 <뭐뭐뭐>라는 책 있나 알아봐 줄 수 있어?"라고 하면, 그녀가
"네가 전화해서 물어봐."
라고 할 것 같은데, 아니야? 속으로는 '완전 웃기네. 어디 감히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려고 그래?'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김형도 이걸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야?
김형과 내가 이 관계에 대해 서로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이제 좀 알겠지? 그래서 내가, 김형이 말한 "이제부터라도 밀당을 해야 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 줄 수가 없는 거야. 내가 보기에 김형은 이 관계에서, 낭떠러지 끝에 있는 줄 하나에 겨우 매달려 있는 사람 같거든. 이런 상황에서 무슨 밀당이야. 줄 놓치면 그냥 아래로 떨어지는 건데.
뭐라고 얘기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김형은 이제 고지가 바로 저기라고 생각하는 중인데, 나는 아직 출발도 안 한 거라고 생각하니까. 김형이 내 동생이었으면 "거기서 네가 1등 해봐야, 고작 어장 속 1등 참치가 되는 거야."라는 이야기를 해주겠지만, 김형은 내 동생이 아니니까….
내가 김형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맹목적인 헌신과 호의를 접고 길게 만나 보라는 얘기밖에 없는 것 같아. 그녀의 생일에는 케이크 하나 정도만 선물해 주고, 화이트데이 같은 건 챙기지 마. 김형이 동성친구를 대할 때보다 약간 더 호의를 베푸는 수준으로만 상대를 대해. 지금처럼 액세서리 사주고, 심부름 해주고, 기사노릇 하지 말고. 그렇게 해도 이 관계가 유지되는지를 먼저 한 번 봐봐. 지금은 김형이 열심히 조공을 바쳐야 상대의 "응, 아니, 응."이라는 대답을 겨우 들을 수 있는 관계니까.
"저는 그녀와 사귀는 사이가 되고 싶습니다."
사귄다고 지금에서 크게 변할 건 없어. 김형이 해야 하는 의무만 더 늘어날 뿐이야. 사귄다고 갑자기 그녀가 돌변해서 김형에게 애정표현을 하고 어장 속 다른 남자들을 돌 보듯 할 것 같아? 만약 둘이 사귀게 된다 해도, 그녀가 동창일 뿐인 이성친구와 단 둘이 술 마시는 게 뭐 어떠냐며 화를 내면, 김형은 찍소리 못할 게 뻔하잖아. 하루 종일 연락 없는 그녀에게 상심한 김형이 뭐라고 했더니, 그녀는 남자친구가 되었다고 자신을 구속할 거면 헤어지자고 해. 그럼 김형은 뭐라고 할 거야? 할 말 없지? 이제 뭐가 더 중요한 건지 알 것 같지 않아? 연인이라는 간판 거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이 관계를 김형이 경영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자고. 그녀가 정말 믿고 동업을 해도 괜찮은 사람인지도 파악해 보고 말이야.
▲ "이렇게 받기만 하는 건 너에게 너무 미안하다."라면서도 계속 받는 여자. 천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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