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묻는 사이에서 발전이 없는 이유 외 2편
난 가구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웹마케팅 팀에 속해있었는데, 꽤 많은 중소기업들이 그러하듯 우리 회사도 부서를 나눈 것이 무의미하게 어느 부서의 사람이든 당장 손이 모자라는 곳에 투입되어 일을 했다. 포토샵을 하고 있다가 조립실에 가서 소품 조립을 하고, 전화 응대를 하다가 가구 배달을 가는 식의 일을 한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고생했을 것 같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진 않았다. 제조업 특성상 네 시에 간식시간이 있는 것도 좋았고, 그때가 아니면 내가 나무인형을 조립하거나 남의 집에 가구를 들고 들어가는 일을, 살면서 또 해 볼 일이 있겠냐는 생각으로 '체험 삶의 현장'을 찍듯 즐겁게 일했다.
허허, 이 사람이 누굴 죽이려고…. 여하튼 당시 가구를 배송하러 가면, 웹으로만 확인하고 가구를 주문한 사람들이 놀라는 일이 많았다. 그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라는 것이었다. 가구가 들어갈 위치를 실측한 후 주문한 집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실측 없이 그저 가구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주문한 집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졌다. 장식장을 놓았더니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통로가 막히거나, 침대를 놓았더니 방이 꽉 차버리거나, 책장 세 개를 놓으면 문이 안 닫히고 두 개를 놓으면 허전해지는 일 등이 벌어졌다. 이 이야기를 기억하며 첫 번째 사연을 살펴보자.
상대와 뭘 하고 싶은지, 연애를 시작하면 어쩔 것인지, 심지어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구애를 하는 대원들이 있다. 난 이걸 '실측이 안 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내 상황이, 또 우리 관계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상대와 가까워지고(사귀고) 싶다'는 욕구가 커져 일단 들이대고 보는 것이다.
회사 다른 부서의 여직원에게 호감을 느낀 A씨가 그렇다. A씨는 상대와 '카톡친구'까지는 어렵지 않게 될 수 있었다. 그럼 말 그대로 둘이 '카톡친구'가 된 상황이니,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대화를 나누거나 업무를 핑계 삼아 계기를 만들면 된다. 나라면 카톡으로 "감동적인 동태찌개집 발견했습니다. 어디인지 알고 싶으시면 지금 조용히 왼 손을 들어 주세요." 정도의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졌을 것 같다. '정수기 앞에서 기침 두 번'같은 '우리만 아는 신호 만들기'를 하며 말이다.(이걸 그대로 따라하진 말길 권한다. 내가 상대에게 저런 식으로 접근하는 건, 저런 이야기를 해도 어색할 것이 전혀 없는 관계를 만든 뒤의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A씨는 오로지 '사귀고 싶다'는 욕구로 꽉 차있었기에,
라는 루트를 밟고 말았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느니, 밥은 먹고 야근 하는 거냐느니 하는 질문을 하다가,
라는 이야기를 해 버리고 만 것이다. 아주 보통의 여사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어쩌다 타부서의 남자사원과 면을 트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다짜고짜 말을 놓으라고 한다. 그러면 그 요청에 따라 "그럴까? 오빠는 어디 살아?"라고 말할 여사원이 몇이나 될 것 같은가? A씨는 얼른 한 발짝이라도 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어서 한 요구겠지만,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그게 현재 둘의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요구라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A씨 본인도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비슷한 사연을 보낸 B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타 부서의 여직원에게
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내 연락망을 통해 상대의 이름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통성명도 안 한 상태에서 말이다. 역시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보통의 여자사원이 타부서 사람에게 "뭐 먹고 싶은 거 생기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은 뒤,
라고 말 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녀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었으면 그 창구를 통해 대화를 하면 되는 건데, B씨는 '얼른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친해진 뒤 고백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그녀와 단둘이 만나는 것에만 목숨을 걸었다. 이런 저런 제안을 해도 그녀가 응하지 않으니, 이젠 '에라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최후의 제안'인 "먹고 싶은 거 생기면…."이라는 말을 던져 놨을 뿐이고 말이다.
자신과 상대, 그리고 현재 둘의 관계에 대한 실측을 먼저 하자. 둘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는 것도 아직 어색할 것 같은 관계인데, 그 상황에서 다짜고짜 '안 되더라도 후회 없도록 일단 고백한다'며 들이대면 결과는 뻔한 것 아닌가. 고백의 타이밍을 만들겠다며 어제도 안부, 오늘도 안부만 묻고 있다가 내일 고백하는 것도 우스운 것이고 말이다. 어려운 거 아니다. 시간 있냐고 묻는 대신, 자몽차를 마셔본 적 있는지 물어보면 된다. 없다고 답하든 있다고 답하든, 정말 맛있는 자몽차를 발견했는데 마셔보라고 선물하면 되는 것이고 말이다. 마시러 가자고 하는 게 아니라 마셔보라고 주는 게 포인트다. 내가 늘 얘기하지 않았는가. 슈팅은 골대 앞까지 공을 몰고 가서 날릴수록 성공률이 높아진다고. 중거리 슛 날리지 말고, 일단 드리블을 하자.
혜연아 난 너에게 '그 남자에게서 벗어나야 하는 278가지 이유'를 말해줄 수 있어. 넌 연애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학대를 당하고 있는 거야.
아니, 이 좋은 날에 왜 그 고문실에 들어가서 고문을 당하고 있어? 대체 뭘 얼마나 잘못했기에 남친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벙어리 냉가슴으로 살고 있어?
2015년에 결혼하기로 했던 것 때문에 그래? 그때까지 잘 버티면 남친과 결혼할 수 있으니까, 그때까진 최대한 참기로 한 거야? 설마 진짜 이 남자와 결혼하는 게 가능할 거라고 믿고 있는 거야? 이 남자와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아? 남친 기분 좋을 때는 맛있는 거 먹고 놀러 다니며 문제없으니까, 이것만 좀 극복하면 잘 될 거라 생각하는 거야?
무서워. 이거 무슨 "자, 게임을 시작하지. 넌 내가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전화를 했어. 그러니 네가 받아야 할 처벌을 골라. 처벌을 원치 않으면 결혼도 없다."라는 <연애 쏘우>같은 느낌이라니까?
위축되게 만드는 게 누구야? 남친이잖아.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걔는 금방이라도 차버릴 것처럼 행동해놓곤, 그런 행동에 네가 위축되는 게 싫다며 또 차버리려고 하잖아. 게다가 쟤는 자신이 잘못한 것에는 전부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하면서, 혜연이 네가 잘못한 것에 대한 이유를 대려고 하면 변명이라고만 말하지. 궤변론자야.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이 하도 많아서 여기다가 옮기지도 못하겠다.
없어. 고양이 학대하는 사람이 그 고양이가 어떤 특별한 잘못을 해서 학대하는 거 아니잖아. 남자친구가 너에게 하는 행동도 똑같아. 그냥 지 기분 나쁘니까 아무 이유나 하나 들어서 깽판 치는 거지, 정말 그 이유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러는 게 아니야. 하면 한다고 지*, 안 하면 안 한다고 *랄 하는데, 거기에 무슨 방법이 있겠어. 도망쳐. 사귀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혜연이 너의 멘탈은 점점 망가져 갈 거야. 이러다 진짜 큰일 난다. 이 글을 보는 즉시 도망쳐. 이 관계엔 미래는커녕 내일도 없어.
모든 남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여자는, 안타깝게도 이십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 '상종하지 말아야 할 여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를 만났을 때, 그가 '과거에 내게 최고의 헌신을 했던 남자'보다 더 큰 헌신을 보여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연을 보낸 D양은,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무척이나 이상하게 여겨지는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차로 모시러 가서 식사 대접을 한 뒤 선물을 드리고 다시 집까지 모셔다 드리는데, 조수석에 탄 여자친구라는 사람은
라는 이야기를 한다. 만약 저 이야기를 상남자인 내 친구 K군이 들었다면,
라는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구남친과 왔던 장소에 남자친구를 데리고 가 구남친과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던 것도 이해하기 힘들고, 기십만 원의 돈을 써가며 데이트를 준비한 남친에게
라는 이야기를 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저런 헌신을 하고도 "오빤 로맨스가 없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여자친구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해서 데리고 갔더니, 여자친구는 그곳에 구남친과 함께 왔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그녀 입장에선 구남친이 자신을 따라다닌 것부터 시작해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자랑하려고 한 것인데, 머리에 총 맞은 남자가 아닌 이상 그 얘기들을 듣고 마냥 즐거울 수 있을까?
난 보통의 사람이 사랑하는 방식과 D양의 생각하는 방식이 너무 달라서 걱정된다. 저런 태도를 보이는 여자와는 연애고 뭐고, 빨리 그냥 집에다 던져 버리고 다신 보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남친도 D양을 집에 던져 버리고 서둘러 돌아가 연락을 끊고 말았다. 이후 남친이 왜 연락을 끊었는지 영문을 모르는 D양은 그에게 사과도 하고, 부탁도 했다. 그래서 겨우 다시 연락이 닿게 되었다.
그런데 카톡으로는 그에게 절박하게 사과를 하던 D양의 모습과 달리, 막상 연락이 닿자 D양은 다른 볼 일이 있다며 전화를 끊었다. 여기다 그 이유를 적을 수 없는 게 참 안타까운데, 그건 보통의 사람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다.(남친에게 사과를 하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달라고 하던 중, 남친이 대화로 풀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아, 근데 나 지금 기황후 봐야 하니까, 이따가 다시 통화 하자."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적어두겠다.)
남친은 D양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인해 네 번쯤 죽었고, 이 관계는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난 지금 이 문제로 인해 힘들어 할 D양보다, 연애에서 혼자 여왕놀이 하려는 D양의 태도가 더 걱정된다. D양은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 '나에게 잘하기만 하는 남자 말고, 확실한 비전이 있는 남자'를 찾고 있는데, 그런 남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D양이 그를 몸종 부리듯 부리면 그가 D양을 버릴 게 뻔하잖은가. 받는 것에 익숙해진 까닭에 계속 받기만 하는 여자는, 결국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두길 바란다.
자, 이제 하룻밤만 더 자면 불금이 돌아온다. 이번 한 주도 다들 모두 고생 많으셨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불금을 생각해서라도 조금만 더 힘내시기 바라며, 내일은 금사모(금요사연모음)로 찾아뵙도록 하겠다. 트리플 악셀이 하고 싶어지는 목요일, 다들 즐겁게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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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구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웹마케팅 팀에 속해있었는데, 꽤 많은 중소기업들이 그러하듯 우리 회사도 부서를 나눈 것이 무의미하게 어느 부서의 사람이든 당장 손이 모자라는 곳에 투입되어 일을 했다. 포토샵을 하고 있다가 조립실에 가서 소품 조립을 하고, 전화 응대를 하다가 가구 배달을 가는 식의 일을 한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고생했을 것 같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진 않았다. 제조업 특성상 네 시에 간식시간이 있는 것도 좋았고, 그때가 아니면 내가 나무인형을 조립하거나 남의 집에 가구를 들고 들어가는 일을, 살면서 또 해 볼 일이 있겠냐는 생각으로 '체험 삶의 현장'을 찍듯 즐겁게 일했다.
"그렇게 즐거우셨으면 계속 일하지 그러셨어요?"
허허, 이 사람이 누굴 죽이려고…. 여하튼 당시 가구를 배송하러 가면, 웹으로만 확인하고 가구를 주문한 사람들이 놀라는 일이 많았다. 그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이거 왜 이렇게 커요? 인터넷에서 봤을 땐 이렇게 안 컸는데…."
라는 것이었다. 가구가 들어갈 위치를 실측한 후 주문한 집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실측 없이 그저 가구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주문한 집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졌다. 장식장을 놓았더니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통로가 막히거나, 침대를 놓았더니 방이 꽉 차버리거나, 책장 세 개를 놓으면 문이 안 닫히고 두 개를 놓으면 허전해지는 일 등이 벌어졌다. 이 이야기를 기억하며 첫 번째 사연을 살펴보자.
1. 안부 묻는 사이에서 발전이 없는 이유.
상대와 뭘 하고 싶은지, 연애를 시작하면 어쩔 것인지, 심지어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구애를 하는 대원들이 있다. 난 이걸 '실측이 안 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내 상황이, 또 우리 관계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상대와 가까워지고(사귀고) 싶다'는 욕구가 커져 일단 들이대고 보는 것이다.
회사 다른 부서의 여직원에게 호감을 느낀 A씨가 그렇다. A씨는 상대와 '카톡친구'까지는 어렵지 않게 될 수 있었다. 그럼 말 그대로 둘이 '카톡친구'가 된 상황이니,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대화를 나누거나 업무를 핑계 삼아 계기를 만들면 된다. 나라면 카톡으로 "감동적인 동태찌개집 발견했습니다. 어디인지 알고 싶으시면 지금 조용히 왼 손을 들어 주세요." 정도의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졌을 것 같다. '정수기 앞에서 기침 두 번'같은 '우리만 아는 신호 만들기'를 하며 말이다.(이걸 그대로 따라하진 말길 권한다. 내가 상대에게 저런 식으로 접근하는 건, 저런 이야기를 해도 어색할 것이 전혀 없는 관계를 만든 뒤의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A씨는 오로지 '사귀고 싶다'는 욕구로 꽉 차있었기에,
'안부 묻기 -> 안부 묻기 -> 안부 묻기 -> 성급한 요구'
라는 루트를 밟고 말았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느니, 밥은 먹고 야근 하는 거냐느니 하는 질문을 하다가,
"그런데 우리 말 놓을까요? 그냥 편하게 말하세요. 지금부터 말 놓기~"
라는 이야기를 해 버리고 만 것이다. 아주 보통의 여사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어쩌다 타부서의 남자사원과 면을 트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다짜고짜 말을 놓으라고 한다. 그러면 그 요청에 따라 "그럴까? 오빠는 어디 살아?"라고 말할 여사원이 몇이나 될 것 같은가? A씨는 얼른 한 발짝이라도 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어서 한 요구겠지만,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그게 현재 둘의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요구라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A씨 본인도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제가 말을 놓으라고 하긴 했는데, 저도 말을 못 놓겠어요…."
비슷한 사연을 보낸 B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타 부서의 여직원에게
"주말에 뭐하세요?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배 안 고프세요? 퇴근하고 저녁 같이 드실래요?"
"뭐 먹고 싶은 거 생기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배 안 고프세요? 퇴근하고 저녁 같이 드실래요?"
"뭐 먹고 싶은 거 생기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내 연락망을 통해 상대의 이름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통성명도 안 한 상태에서 말이다. 역시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보통의 여자사원이 타부서 사람에게 "뭐 먹고 싶은 거 생기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은 뒤,
"전에 먹고 싶은 거 생기면 말하라고 하셨죠? 저 낙지볶음 먹고 싶어요."
라고 말 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녀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었으면 그 창구를 통해 대화를 하면 되는 건데, B씨는 '얼른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친해진 뒤 고백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그녀와 단둘이 만나는 것에만 목숨을 걸었다. 이런 저런 제안을 해도 그녀가 응하지 않으니, 이젠 '에라 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최후의 제안'인 "먹고 싶은 거 생기면…."이라는 말을 던져 놨을 뿐이고 말이다.
자신과 상대, 그리고 현재 둘의 관계에 대한 실측을 먼저 하자. 둘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는 것도 아직 어색할 것 같은 관계인데, 그 상황에서 다짜고짜 '안 되더라도 후회 없도록 일단 고백한다'며 들이대면 결과는 뻔한 것 아닌가. 고백의 타이밍을 만들겠다며 어제도 안부, 오늘도 안부만 묻고 있다가 내일 고백하는 것도 우스운 것이고 말이다. 어려운 거 아니다. 시간 있냐고 묻는 대신, 자몽차를 마셔본 적 있는지 물어보면 된다. 없다고 답하든 있다고 답하든, 정말 맛있는 자몽차를 발견했는데 마셔보라고 선물하면 되는 것이고 말이다. 마시러 가자고 하는 게 아니라 마셔보라고 주는 게 포인트다. 내가 늘 얘기하지 않았는가. 슈팅은 골대 앞까지 공을 몰고 가서 날릴수록 성공률이 높아진다고. 중거리 슛 날리지 말고, 일단 드리블을 하자.
2. 혜연이에게.
혜연아 난 너에게 '그 남자에게서 벗어나야 하는 278가지 이유'를 말해줄 수 있어. 넌 연애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학대를 당하고 있는 거야.
남친 - 또 이러네.
혜연 - 왜? 내가 사진 늦게 보내서 화났어?
남친 - 뭐 때문일지 네가 생각해 봐.
혜연 - 모르겠어. 그냥 뭔지 말해줘.
남친 - 됐다. 그만하자.
혜연 - 그런 말 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노력하기로 약속해놓고, 또 화났다고 헤어지자고 하는 게 어딨어.
남친 - 내가 헤어진다고 했나?
혜연 - 그만하자고 했잖아.
남친 - 대화를 그만 하자는 건데?
혜연 - 뭔지 말해줘야 나도 고칠 수 있잖아. 왜 화났는지 말해줘.
남친 - 네가 잘 생각해 봐. 그리고 우리 시간 좀 갖자. 다음 주까지 연락하지 마.
(며칠 후)
혜연 - 답답해서 연락해. 다음 주까지 기다릴 수 있어.
너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난 기다릴 수 있어.
그런데 날 그냥 이렇게 내버려두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남친 - 또 마음대로네.
혜연 - 뭐가?
남친 - 내가 일주일 동안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
혜연 - 응. 그래서 참고 있었어.
남친 - 지금 일주일이 지났나?
혜연 - 아니.
남친 - 네가 내 말대로 일주일을 기다렸다면,
난 네가 기다리느라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잘 하려고 하겠지.
그런데 넌 나에게 그런 생각이 들기도 전에 연락을 한 거야.
혜연 - 미안해.
남친 - 넌 내가 분명히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연락했어.
혜연 - 왜? 내가 사진 늦게 보내서 화났어?
남친 - 뭐 때문일지 네가 생각해 봐.
혜연 - 모르겠어. 그냥 뭔지 말해줘.
남친 - 됐다. 그만하자.
혜연 - 그런 말 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노력하기로 약속해놓고, 또 화났다고 헤어지자고 하는 게 어딨어.
남친 - 내가 헤어진다고 했나?
혜연 - 그만하자고 했잖아.
남친 - 대화를 그만 하자는 건데?
혜연 - 뭔지 말해줘야 나도 고칠 수 있잖아. 왜 화났는지 말해줘.
남친 - 네가 잘 생각해 봐. 그리고 우리 시간 좀 갖자. 다음 주까지 연락하지 마.
(며칠 후)
혜연 - 답답해서 연락해. 다음 주까지 기다릴 수 있어.
너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난 기다릴 수 있어.
그런데 날 그냥 이렇게 내버려두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남친 - 또 마음대로네.
혜연 - 뭐가?
남친 - 내가 일주일 동안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
혜연 - 응. 그래서 참고 있었어.
남친 - 지금 일주일이 지났나?
혜연 - 아니.
남친 - 네가 내 말대로 일주일을 기다렸다면,
난 네가 기다리느라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잘 하려고 하겠지.
그런데 넌 나에게 그런 생각이 들기도 전에 연락을 한 거야.
혜연 - 미안해.
남친 - 넌 내가 분명히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연락했어.
아니, 이 좋은 날에 왜 그 고문실에 들어가서 고문을 당하고 있어? 대체 뭘 얼마나 잘못했기에 남친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벙어리 냉가슴으로 살고 있어?
2015년에 결혼하기로 했던 것 때문에 그래? 그때까지 잘 버티면 남친과 결혼할 수 있으니까, 그때까진 최대한 참기로 한 거야? 설마 진짜 이 남자와 결혼하는 게 가능할 거라고 믿고 있는 거야? 이 남자와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아? 남친 기분 좋을 때는 맛있는 거 먹고 놀러 다니며 문제없으니까, 이것만 좀 극복하면 잘 될 거라 생각하는 거야?
무서워. 이거 무슨 "자, 게임을 시작하지. 넌 내가 전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전화를 했어. 그러니 네가 받아야 할 처벌을 골라. 처벌을 원치 않으면 결혼도 없다."라는 <연애 쏘우>같은 느낌이라니까?
"남친은 제 위축되는 모습이 싫다고 합니다."
위축되게 만드는 게 누구야? 남친이잖아.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걔는 금방이라도 차버릴 것처럼 행동해놓곤, 그런 행동에 네가 위축되는 게 싫다며 또 차버리려고 하잖아. 게다가 쟤는 자신이 잘못한 것에는 전부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하면서, 혜연이 네가 잘못한 것에 대한 이유를 대려고 하면 변명이라고만 말하지. 궤변론자야.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이 하도 많아서 여기다가 옮기지도 못하겠다.
"남자친구가 화를 내기 전,
저에게 어떤 경고라도 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요?"
저에게 어떤 경고라도 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요?"
없어. 고양이 학대하는 사람이 그 고양이가 어떤 특별한 잘못을 해서 학대하는 거 아니잖아. 남자친구가 너에게 하는 행동도 똑같아. 그냥 지 기분 나쁘니까 아무 이유나 하나 들어서 깽판 치는 거지, 정말 그 이유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러는 게 아니야. 하면 한다고 지*, 안 하면 안 한다고 *랄 하는데, 거기에 무슨 방법이 있겠어. 도망쳐. 사귀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혜연이 너의 멘탈은 점점 망가져 갈 거야. 이러다 진짜 큰일 난다. 이 글을 보는 즉시 도망쳐. 이 관계엔 미래는커녕 내일도 없어.
3. 인기녀 앞에 펼쳐진 내리막.
모든 남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여자는, 안타깝게도 이십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 '상종하지 말아야 할 여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를 만났을 때, 그가 '과거에 내게 최고의 헌신을 했던 남자'보다 더 큰 헌신을 보여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연을 보낸 D양은,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무척이나 이상하게 여겨지는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남친이 차에서 듣는 음악이,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얘기를 한 것.
ⓑ구남친과 왔었던 곳을 데이트 코스로 삼은 것.
ⓒ나아가 그 장소에 얽힌 구남친과의 에피소드를 남친에게 들려준 것.
ⓓ남친이 기십만 원을 들여 데이트를 준비했지만,
D양이 하자고 한 것을 안 하려고 하자 입을 닫아 버린 것.
ⓔ중요한 통화를 하다가 D양에게 할 일이 생기자 전화를 끊어버린 것.
ⓑ구남친과 왔었던 곳을 데이트 코스로 삼은 것.
ⓒ나아가 그 장소에 얽힌 구남친과의 에피소드를 남친에게 들려준 것.
ⓓ남친이 기십만 원을 들여 데이트를 준비했지만,
D양이 하자고 한 것을 안 하려고 하자 입을 닫아 버린 것.
ⓔ중요한 통화를 하다가 D양에게 할 일이 생기자 전화를 끊어버린 것.
차로 모시러 가서 식사 대접을 한 뒤 선물을 드리고 다시 집까지 모셔다 드리는데, 조수석에 탄 여자친구라는 사람은
"오빠가 듣는 음악들 별로야. 난 이거 말고 다른 음악이 좋아."
라는 이야기를 한다. 만약 저 이야기를 상남자인 내 친구 K군이 들었다면,
"그럼 다음부터는 네 차에서 네가 좋아하는 음악 틀고 만나자. 아, 너 차 없지."
라는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구남친과 왔던 장소에 남자친구를 데리고 가 구남친과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던 것도 이해하기 힘들고, 기십만 원의 돈을 써가며 데이트를 준비한 남친에게
"오빤 로맨스가 없어."
라는 이야기를 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저런 헌신을 하고도 "오빤 로맨스가 없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여자친구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해서 데리고 갔더니, 여자친구는 그곳에 구남친과 함께 왔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그녀 입장에선 구남친이 자신을 따라다닌 것부터 시작해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자랑하려고 한 것인데, 머리에 총 맞은 남자가 아닌 이상 그 얘기들을 듣고 마냥 즐거울 수 있을까?
난 보통의 사람이 사랑하는 방식과 D양의 생각하는 방식이 너무 달라서 걱정된다. 저런 태도를 보이는 여자와는 연애고 뭐고, 빨리 그냥 집에다 던져 버리고 다신 보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남친도 D양을 집에 던져 버리고 서둘러 돌아가 연락을 끊고 말았다. 이후 남친이 왜 연락을 끊었는지 영문을 모르는 D양은 그에게 사과도 하고, 부탁도 했다. 그래서 겨우 다시 연락이 닿게 되었다.
그런데 카톡으로는 그에게 절박하게 사과를 하던 D양의 모습과 달리, 막상 연락이 닿자 D양은 다른 볼 일이 있다며 전화를 끊었다. 여기다 그 이유를 적을 수 없는 게 참 안타까운데, 그건 보통의 사람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다.(남친에게 사과를 하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달라고 하던 중, 남친이 대화로 풀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아, 근데 나 지금 기황후 봐야 하니까, 이따가 다시 통화 하자."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적어두겠다.)
남친은 D양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인해 네 번쯤 죽었고, 이 관계는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난 지금 이 문제로 인해 힘들어 할 D양보다, 연애에서 혼자 여왕놀이 하려는 D양의 태도가 더 걱정된다. D양은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 '나에게 잘하기만 하는 남자 말고, 확실한 비전이 있는 남자'를 찾고 있는데, 그런 남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D양이 그를 몸종 부리듯 부리면 그가 D양을 버릴 게 뻔하잖은가. 받는 것에 익숙해진 까닭에 계속 받기만 하는 여자는, 결국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두길 바란다.
자, 이제 하룻밤만 더 자면 불금이 돌아온다. 이번 한 주도 다들 모두 고생 많으셨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불금을 생각해서라도 조금만 더 힘내시기 바라며, 내일은 금사모(금요사연모음)로 찾아뵙도록 하겠다. 트리플 악셀이 하고 싶어지는 목요일, 다들 즐겁게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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