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매뉴얼을 위한 변명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라는 생각 말이에요. 어쩌면 제게 사연을 보낸 분들 중 대다수는, 부끄럽거나 불쾌해질 수 있는 이야기 말고, 그냥 편 들어주는 수다친구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그 분들이 매뉴얼을 통해 듣고 하고 싶어 하는 얘기 역시 "말이 아닌 행동을 보세요."라는 게 아니라, "그럼 이번엔 3일간 연락하지 마시고, 4일 째 되는 날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며 기프티콘 하나 보내 보세요."라는 방법과 관련된 이야기 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저런 방법이 도움이 되는 건 아니죠. 그런데 어디어디서 연애상담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사연을 받아보면, 거기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뭐라도 당장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더라고요. 일종의 부적 같은 거지요. 카톡 프로필에 무슨무슨 문구를 적어둬라, 같은 거요. 그게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꼬꼬마라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허우적거리는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법이잖아요. 그러니 당장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지푸라기를 던져 주는 거죠.
매뉴얼 발행 후 항의메일을 받았을 때 특히 저런 생각을 해요. 물에 빠진 듯 절박한 누군가가 사연을 보내왔을 때, 저는 사연을 살펴본 후 그 물이 깊지 않으면
라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건 당장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 도움이 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라는 항의를 받기도 하죠. 그럴 때면 저도 사람인지라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런 생각을 가장 많이 할 때가,
라는 내용의 사연을 받았을 때에요. 이런 사연 많거든요. 어플에서 만난 남자, 클럽에서 만난 남자, 유부남, 양다리, 그냥 파트너로 지내던 사이….
그간의 경험을 통해 저도 저런 사연이 도착하면 패스해야 한다는 걸 알아요. 저런 경우는 대개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반발만 사게 되거든요. 저런 사연을 보낸 사람에겐 그 연애가 종교인 경우가 많아요. 그 사람은 연애를 향한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그래서 그 믿음을 제가 붕괴시키려 하면, 그 사람은 제가 자신을 붕괴시킨다고 생각하며 송곳니를 드러내죠.
그 남자가 정말 특수한 어떤 외계인이라고 해도, 그를 만날 때 절망하게 되고 그에게서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바람직한 관계가 아니잖아요. 제가 주목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거든요. 그런데 보통 위와 같은 사연을 보내시는 분들은, 이러한 점들마저 그의 '특수성'이라며 그를 위한 변명을 해요. 그럼 저도 할 말이 없는 거죠. 전 화분을 구입해 놓고 물을 주지 않아 말려 죽이는 사람을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는데, 그 분들은 '그건 그가 무언가를 돌볼 줄 몰라서 그런 거지 책임감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니까요.
저는 깜빡 잊고 물을 안 준 것이든 고의로 안 준 것이든, 그런 행동이 반복되어 늘 식물을 말려 죽이면 그가 식물에 그만큼 관심을 안 두고 있어서 벌어진 일로 보거든요. 식물이 죽어도 그에겐 별로 와 닿는 게 없으니 그러는 거라고도 보고요. 또, 전 그가 화분을 구입할 때 "난 원래 이런 거 잘 못 키우는 타입이야."라고 말한다고 해서, 다시 또 식물을 말려 죽이는 게 정당화 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이걸 두고 '그가 이번엔 잘 키워보려는 의지가 있었지만 자신이 잘 못하는 부분이라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라며 그를 위한 변명을 하면, 다시 또 저는 할 말이 없는 거죠.
어쨌든 지금 식물은 말라 죽어 가는데,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니까. 그럼 대체 누구의 잘못인지 저도 궁금해요. 선인장처럼 가뭄을 버텼으면 될 걸, 그러지 못한 식물의 잘못일까요?
연애매뉴얼은, 그 감정들이 다 지나간 이후에 사건을 바라봤을 때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누군가의 멱살을 쥐고 있을 때, 감정이 격해질 수 있어요. 취기도 올랐겠다, 저 자식이 날 열 받게 만드니 병을 거꾸로 쥔 채 덤비라고 할 수도 있고요. 감정이 더 격해지면 병으로 상대의 머리를 내려칠 수도 있죠.
그런데 그렇게 질러 놓고 유치장에서 아침을 맞이하면, 숙취와 함께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밖에 남는 게 없거든요. 상대가 응급실에서 머리를 꿰맸다는 소식을 형사로 부터 듣게 되고, 가족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경찰서에 들어서죠. 어제 저녁 병을 쥐고 있을 때, 누군가가
라고 했던 말이, 그제야 절실하게 다가올 수 있죠.
저는 저 병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혹은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것 아니냐며 참으라고 말하는 사람의 포지션에서 매뉴얼을 쓰고 있어요. 상대가 히죽히죽 웃으며 약올리는 것에 이쪽이 열 받는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확 질러버리면 당장 속이 시원해진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에요. 유치장에서 눈을 뜨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니까 말리는 거지, 편들기 싫어서, 혹은 싸울 줄 몰라서 병들고 뛰어들어 같이 싸우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싸움 구경을 해본 적 있으시면 아시겠지만, 말리는 사람에게 불똥이 튀는 경우가 많거든요. 지금 저 자식이 나 열 받게 하는 거 안 보이냐고, 그걸 보면서도 지금 내 팔을 잡고 날 말리는 거냐고, 하면서 말리는 사람의 얼굴을 후려갈기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일산에 살 때 본 일인데, 저희 집 앞 빌라에 남편에게 한 달에 몇 번씩 맞고 사는 아주머니가 계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둘이 가재도구 던지며 싸우다, 아주머니가 맨발로 집에서 뛰어나왔어요. 그걸 본 한 아저씨가 아주머니 남편을 말렸고요. 남편은 꽤 취한 상태였는데, 말리는 아저씨에게 막말을 하다가 싸움이 붙었죠. 저는 경찰차가 와서 두 사람 모두 데려갈 때까지만 상황을 지켜보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저희 아파트 총무 아주머니게 전해 들었어요. 경찰서에서 아주머니는 남편의 편을 들었고, 그 아저씨는 남편을 먼저 때린 데다가 다친 정도도 남편이 더 심해 합의금을 꽤 많이 물어줬다고 해요.
이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연이지만, 어제 발행한 매뉴얼에서 한
라는 문장을 잠시 가져와 볼게요. 만약 사연의 주인공인 Y양이 위에서 말한 '아주머니'같았으면, 제 매뉴얼에 대해 화를 낼 수 있거든요. Y양이 제게
라고 말하며 그를 변호하고 있으면, 전 할 말이 없어요. 전 상대가 한 말이 아닌 지금까지 이어져 온 상대의 행동을 중점으로 사연을 보거든요. 상대가 돈을 빌린 것 때문에 벌어진 문제라고 하면, 전 그가 자기 신발 살 돈은 있으면서 계속 이 핑계 저 핑계로 돈을 주지 않는 태도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그는 '돈을 갚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이에요. 누명을 씌우는 게 아니에요. 핑계라는 살을 다 제거하고 나니까 저 뼈대가 남은 거지. 그런데 이걸 두고
라고 말하면, 솔직히 저도 "그럼 받지 말고 사세요. 오빠가 돈을 왜 안 갚냐고 사람들에게 묻지도 마시고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불똥이 튀면 뜨거워요. 저도 사람이라, 아파요. 작년쯤 노멀로그에서 사연을 내리는 일로 소란이 있었거든요. 소란이 된 매뉴얼의 주인공이셨던 분이 며칠 전에 메일을 보내셨더라고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 왜 그랬었는지 부끄럽게 느껴지고, 그간 반성도 하셨다고요. 여전히 블로그 잘 보고 있고, 이제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예전의 일들 다 묻어두고 다시 잘 해보겠다는 얘기도 하셨어요. 물론 저도 축하드려요. 그 분이 잘 사셨으면 좋겠고요. 그런데 그 분이 다 털고 이제 후련하게 시작하신다고 해서, 저 역시 없던 일처럼 생각하며 완전히 후련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불똥이 튀었던 자리의 상처는 흉터로 남아 있어요.
엄살을 피우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훗날 아무렇지 않게 저녁 밥 맛있게 먹고 책상에 앉아 웹서핑 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이 되었을 때에도 계속 상대를 변호할 마음이 여전할 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어서 하는 얘기에요.
언젠가 제 친구의 누나가 종교에 빠져서 직장도 그만두고 포교활동을 한 적이 있었어요. 물론 지금은 현실로 돌아와서 좋은 사람 만나 잘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때는, 누가 무슨 얘기를 하며 말리든 그걸 다 '사탄의 방해공작'이라고 여기더라고요. 친구 아버지께서 무력으로 그 누나를 집에 끌고 왔을 때에는, 마치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받는 종교인(순교자)이라고 생각하고요. 그 누나도 진심이었어요. 그런 가족들을 변화시켜야 할 사명이 자신에게 있다며 매일 눈물로 기도했으니까요. 지금은 한 때의 해프닝이지만 그땐 정말 심각했죠. 제 친구가 누나 데리러 간다며 그 종교단체에 쳐들어가려다가, 그곳 주차요원들과 몸싸움을 한 적도 있어요. 그때 턱을 잘못 맞아서 지금도 친구 턱에서는 딱딱 소리가 나요. 전 그냥,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축약을 하면 믿기 힘들 정도로 가벼워져요. 특히 문학적 상상력이 많이 포함된 작품일수록 축약을 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 같아 보이기도 하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만 하더라도, 축약을 하면
라고 할 수 있잖아요. 언젠가 어느 독자 분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고백하자면, 절반 정도는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제 자전거 체인 얘기도 했지만, 늘어난 체인으로 인해 자전거 구동계 전부가 망가져 가고 있으면 얼른 바꿔야 하잖아요. 체인을 잘라서 줄이는 게 가능하면 잘라서 줄여야 하고, 그게 불가능하면 새 체인으로 갈아 끼워야겠죠. 사연을 읽는 저 역시 상대가 했다는 말들에 휘둘리면 무작정 믿어보라는 얘기밖에 할 수 없고,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는 제보자의 말에 이끌려 상대의 책임감과 존중이 보이지 않는 연애를 이어가길 권하면, 듣는 사람이야 긍정적인 얘기니 좋아하겠지만 늘어난 체인이 자전거 구동계 전부를 망가뜨리듯 그렇게 망가질 수 있잖아요.
이걸 여기다가 예시로 써서 지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지난 주 주말에 만난 제 지인이 그랬어요.
제 지인은 사실 B랑 사귈 마음이 없어요. 사귈 마음도 없는데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 하실 수도 있겠는데, 당장 이별하고 나니 빈자리가 허전해 그럴 수 있고, 썰을 풀어 B를 넘어오게 하는 과정이 즐겁기에 그럴 수 있죠. 자신이 사귀자고 하면 바로 사귈 수 있는 여자가 하나 있다는 자부심 같은 걸 느끼고 싶어서 그러는 걸 수도 있고, 추격 욕구나 정복 욕구가 발동해서 그럴 수도 있죠.
지인을 비판하려고 이 얘기를 꺼낸 건 아니에요. 저런 경우도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자 꺼낸 일화니, 여기선 그것만 봐 주셨으면 해요. B는 지인의 말을 전부 진지하게 믿고 있을 거예요. 이번 주말에 포천에서 일산까지 오라고 해도 올 거고요.
B가 제게 사연을 보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럼 전 지인의 말이 아닌 행동을 토대로 이야기를 할 거거든요. B가 지인에게 무슨 달콤한 얘기를 들었든 그건 다 잘라 버리고, '원래부터 좋아했다'라는 말과 행동이 다른 점, 그리고 그랬다는 말만 했지 지금은 어떻다고 말하지 않은 점, 꾸준한 연락이 아닌 외롭고 심심할 때에만 연락을 하는 점 등을 이야기하겠죠. 지인은 B에게 솔직하게 다 털어 놓는 거라면서 "아직 A에게 연락이 온다."라고 말하기도 했거든요. 그럼 저는 거기에 대해서도 "그는 정리되지 않은 걸 그냥 다 털어 놓은 것일 뿐이지, 그게 그가 진실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도 이야기 할 거예요.
만약 그렇게 제가 매뉴얼을 발행한다면, B는 제게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있겠죠.
축약과 각색을 통해 매뉴얼을 발행하는 입장에선 저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좀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제가 사연을 가지고 소설을 쓰는 게 아니잖아요. 소설이라고 하면, 거의 모든 행동들이 다 이해될 수 있을 거예요. 핑계 없는 무덤 없는 법이잖아요. A도 사랑하고 B도 사랑하는, 그 두 마음 모두 거짓이 아닌 누군가의 양다리도 그의 '내적 고민'으로 여길 수 있겠죠. 상대의 그런 행위들까지도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하시면, 저는 할 말이 없어요. 그런 행위들까지도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하는 것이기에 어느 것 하나 가벼울 것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의미부여한 만큼의 책임도 본인이 지셔야 하는 거잖아요.
뒤로 걷는 게 건강에 좋을 거라고 굳게 믿으며 뒤로 걷는 생활을 하시면, 자꾸 어딘가에 부딪히는 것도 감수하셔야 해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뒤로 걷지 말고 앞으로 걸으시라고 말씀드리는 것까지예요. 뒤로 걷는데도 남들처럼 멀쩡하게 다닐 수 있는 법 같은 건 저도 몰라요. 그걸 기대하고 제게 사연을 보내셨다가 실망하실 수도 있겠지만, 지인이 똑같은 질문을 본인에게 하면 본인은 뭐라고 답하실 지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대답에 지인이 "넌 왜 우리 오빠를 나쁘게 말해? 네가 뭘 알아?"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드실 지도요.
끝으로 제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제외하고, 그 사람 자체로만도 한 번 보세요."라고 이야기 하는 건, 누군가에게 "당신은 그 사람의 조건만 보고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는 얘기를 적어두고 싶어요. 상대와의 문제, 혹은 갈등 때문에 구구절절 사연을 적어 보내주시는 분들이, 오로지 결혼을 등용문이라 생각해서 그럴 리 없다고 저도 생각해요. 저는, 휘둘리지 말자는 거예요. 우리는 모두 사람인지라, 내가 없는 것까지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위축될 수 있잖아요.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건강을 위해 마그네슘을 먹어줘야 한다고 한 얘기와, 의사인 친구가 한 같은 얘기는 분명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잖아요.
조건은 학력이나 돈 뿐만이 아니에요. 그것 말고도 그 관계에서 더 좋아하는 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더 아쉬운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으며, 나이나 비전, 대인관계에서의 원활함, 천성, 외모 등 다양한 것들이 이유가 될 수 있어요. 친구 사이에서도 평소에 제안하는 쪽과 받아들이는 쪽이 어느 정도 정해지기 마련이잖아요. 전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관계가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을 발견하면, 그 중 이쪽에서 가장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밖에 없어요. 예전에 소개한 사연 중에, 결혼이 아쉬운 여자가 남자에게 휘둘리는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사연 속 남자는 여자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뾰로통해 있자 짜증난다며 가라고 했어요. 바로 그런 상황에서, 결혼이 아쉽지 않아도 그 수모를 다 겪으며 상대와 만날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거예요.
제 지인이 음악을 해요. 한 달 수입은 거의 없죠. 그 지인이 만든 노래를 들어보면, 거의 모든 노래가 "남들이 나에게 대책 없는 인생을 산다고 하고, 난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울 만큼 어렵지만, 그래도 음악을 사랑해서 노래를 한다."라는 거거든요. 전 그 지인에게 하고 싶은 노래가 있는 게 맞는지, 배고픈 생활이 너무 짜증나면 일을 먼저 구하는 게 낫지 않은지를 물어본 적 있어요. 제가 보기엔 인생을 바쳐 음악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지인이 만든 노래도 별로 없었고, 생활의 대부분은 음악 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수다를 떠는 것이었거든요. 말만 들어보면 가수 누구 알고, 작곡가 누구랑 친하고, 음악계의 원로급인양 말은 잘 해요. 본인과 음악은 하나인 것처럼 얘기도 잘 하고요. 전 그 지인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말했어요. 애정이 없으면 자기 인생 자기가 꼬든 말든 신경도 안 썼겠죠. 치맥 하자고 가끔 전화나 하지.
지금도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무슨무슨 지망생 분들을 비하하는 게 아니에요. 제 지인은 8년을 저렇게 보냈거든요. 금방 뜰 것처럼 말은 하는데, 만들어 놓은 노래가 스무 곡이 안 돼요.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고요. 그래서 "우리, 꿈의 노예가 되진 말자. 나도 그 생활을 해왔는데, 내 경우는 글쓰기를 사랑해서 그랬던 게 아니라 도피처로 삼았던 것 같아. 내가 글을 썼던 시간은, 글을 쓴다고 말했던 시간의 백 분의 일도 안 되는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뜬금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랑의 노예'가 되지 말길 권해드리고 싶기 때문이에요. 저 위에서 말한 종교의 이야기처럼, 사랑의 노예가 되면 연애나 짝사랑으로 인해 자신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까지도 모두 순교처럼 생각할 수 있거든요. 전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역시 앞서 말한 '뒤로 걷기'처럼 느껴질 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런 이야기들도, 누군가에겐 여전히 '사탄의 방해공작'처럼 여겨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전에 이야기 한 적 있듯,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제가 밤새 적은 저 이야기들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어요. 저 역시 제가 못된 마음을 먹는다면, 어떤 말이든지 막 휘둘러 지금까지 발행된 노멀로그에 있는 매뉴얼들을 하나하나 모두 반박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제가 옳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생각 없고, 제 말을 믿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이건 제목 그대로 '연애매뉴얼을 위한 변명'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얘기를 매뉴얼마다 적을 수도 없는 거고,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메일을 받을 때마다 답장으로 보내드릴 수도 없거든요. 그러다보니 제가 악당처럼 보이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골리앗처럼 보이는지, 다윗에 빙의하신 분들이 돌팔매질을 하실 때가 있어요.
라면서요. 저 골리앗 아니에요. 돌멩이 맞으면 저도 아파요. 그러니 분한 마음에 돌멩이를 던지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 싶으시더라도, 좀 살살 던져 주세요. 그리고 화해할 수 있는 여지도 어느 정도 좀 남겨주세요. 그래야 제가 다시 손 내밀 수 있는 거잖아요. 돌멩이 던지고 물 뿌려 둔 채 눈앞에서 문까지 쾅 닫아 버리시면, 제가 노트에 빨간색 펜으로 그쪽 이름 적을 지도 몰라요. 무섭죠?
자 그럼,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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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아, 그냥 이상한 남자를 만났다는 사연이 올라오면
그 남자 이상하다고 같이 화내주고,
가끔 <심남이에게 전화 오게 하는 방법>같은 걸 발행하면서
"예쁘게 찍은 사진을 프사로 올려놓고 그에게 말을 거세요."
따위의 이야기나 해야 하는 건가.'
그 남자 이상하다고 같이 화내주고,
가끔 <심남이에게 전화 오게 하는 방법>같은 걸 발행하면서
"예쁘게 찍은 사진을 프사로 올려놓고 그에게 말을 거세요."
따위의 이야기나 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 말이에요. 어쩌면 제게 사연을 보낸 분들 중 대다수는, 부끄럽거나 불쾌해질 수 있는 이야기 말고, 그냥 편 들어주는 수다친구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그 분들이 매뉴얼을 통해 듣고 하고 싶어 하는 얘기 역시 "말이 아닌 행동을 보세요."라는 게 아니라, "그럼 이번엔 3일간 연락하지 마시고, 4일 째 되는 날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며 기프티콘 하나 보내 보세요."라는 방법과 관련된 이야기 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저런 방법이 도움이 되는 건 아니죠. 그런데 어디어디서 연애상담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사연을 받아보면, 거기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뭐라도 당장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더라고요. 일종의 부적 같은 거지요. 카톡 프로필에 무슨무슨 문구를 적어둬라, 같은 거요. 그게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꼬꼬마라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허우적거리는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법이잖아요. 그러니 당장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지푸라기를 던져 주는 거죠.
1. 항의메일.
매뉴얼 발행 후 항의메일을 받았을 때 특히 저런 생각을 해요. 물에 빠진 듯 절박한 누군가가 사연을 보내왔을 때, 저는 사연을 살펴본 후 그 물이 깊지 않으면
"그 물이 그렇게 깊지 않아요. 당황하지 말고 일어서면 가슴까지 밖에 안 와요.
발버둥을 치시기 보다는 일단 일어서 보세요. 그럼 편하게 숨 쉴 수 있어요.
죽을 것 같다고 하시는 지금도, 숨은 충분히 쉬고 계시고요."
발버둥을 치시기 보다는 일단 일어서 보세요. 그럼 편하게 숨 쉴 수 있어요.
죽을 것 같다고 하시는 지금도, 숨은 충분히 쉬고 계시고요."
라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건 당장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 도움이 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깊은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아냐. 난 정말 지금 죽을 것 같은데,
넌 왜 이런 걸로 죽지 않을 거라면서 내 위기를 하찮게 여기냐.
내가 숨 못 쉬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빠져 죽을까봐 이러는 거지."
넌 왜 이런 걸로 죽지 않을 거라면서 내 위기를 하찮게 여기냐.
내가 숨 못 쉬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빠져 죽을까봐 이러는 거지."
라는 항의를 받기도 하죠. 그럴 때면 저도 사람인지라
'이 사람은 저기서 빠져 나오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누가 뭘 던져주기만 바라는 것 같은데?'
그냥 누가 뭘 던져주기만 바라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런 생각을 가장 많이 할 때가,
"제가 하고 있는 건 로맨스가 확실합니다. 이걸 폄하하진 말아 주세요.
남이 하면 뭐처럼 보이고 내가 하면 뭐처럼 보이는 거 몰라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제가 확실히 알아요. 이건 로맨스가 분명합니다.
자, 그러니 이제 이 로맨스가 삐걱거리는 것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세요."
남이 하면 뭐처럼 보이고 내가 하면 뭐처럼 보이는 거 몰라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제가 확실히 알아요. 이건 로맨스가 분명합니다.
자, 그러니 이제 이 로맨스가 삐걱거리는 것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세요."
라는 내용의 사연을 받았을 때에요. 이런 사연 많거든요. 어플에서 만난 남자, 클럽에서 만난 남자, 유부남, 양다리, 그냥 파트너로 지내던 사이….
그간의 경험을 통해 저도 저런 사연이 도착하면 패스해야 한다는 걸 알아요. 저런 경우는 대개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반발만 사게 되거든요. 저런 사연을 보낸 사람에겐 그 연애가 종교인 경우가 많아요. 그 사람은 연애를 향한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그래서 그 믿음을 제가 붕괴시키려 하면, 그 사람은 제가 자신을 붕괴시킨다고 생각하며 송곳니를 드러내죠.
"그는 일반적인 남자가 아닙니다. 이러이러한 특수성이 있어요.
그에게 이런 특수성이 있다는 걸 모르고 본다면 대체 이 연애를 왜 하나 싶겠지만,
저는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이런 특수성이 있다는 걸 모르고 본다면 대체 이 연애를 왜 하나 싶겠지만,
저는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남자가 정말 특수한 어떤 외계인이라고 해도, 그를 만날 때 절망하게 되고 그에게서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바람직한 관계가 아니잖아요. 제가 주목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거든요. 그런데 보통 위와 같은 사연을 보내시는 분들은, 이러한 점들마저 그의 '특수성'이라며 그를 위한 변명을 해요. 그럼 저도 할 말이 없는 거죠. 전 화분을 구입해 놓고 물을 주지 않아 말려 죽이는 사람을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는데, 그 분들은 '그건 그가 무언가를 돌볼 줄 몰라서 그런 거지 책임감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니까요.
저는 깜빡 잊고 물을 안 준 것이든 고의로 안 준 것이든, 그런 행동이 반복되어 늘 식물을 말려 죽이면 그가 식물에 그만큼 관심을 안 두고 있어서 벌어진 일로 보거든요. 식물이 죽어도 그에겐 별로 와 닿는 게 없으니 그러는 거라고도 보고요. 또, 전 그가 화분을 구입할 때 "난 원래 이런 거 잘 못 키우는 타입이야."라고 말한다고 해서, 다시 또 식물을 말려 죽이는 게 정당화 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이걸 두고 '그가 이번엔 잘 키워보려는 의지가 있었지만 자신이 잘 못하는 부분이라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라며 그를 위한 변명을 하면, 다시 또 저는 할 말이 없는 거죠.
어쨌든 지금 식물은 말라 죽어 가는데,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니까. 그럼 대체 누구의 잘못인지 저도 궁금해요. 선인장처럼 가뭄을 버텼으면 될 걸, 그러지 못한 식물의 잘못일까요?
2. 불똥.
연애매뉴얼은, 그 감정들이 다 지나간 이후에 사건을 바라봤을 때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누군가의 멱살을 쥐고 있을 때, 감정이 격해질 수 있어요. 취기도 올랐겠다, 저 자식이 날 열 받게 만드니 병을 거꾸로 쥔 채 덤비라고 할 수도 있고요. 감정이 더 격해지면 병으로 상대의 머리를 내려칠 수도 있죠.
그런데 그렇게 질러 놓고 유치장에서 아침을 맞이하면, 숙취와 함께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밖에 남는 게 없거든요. 상대가 응급실에서 머리를 꿰맸다는 소식을 형사로 부터 듣게 되고, 가족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경찰서에 들어서죠. 어제 저녁 병을 쥐고 있을 때, 누군가가
"병은 내려 놔. 싸워도 그냥 주먹으로 싸워. 병들고 싸우면 감당 안 돼."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그냥 상대하지 말고 가자."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그냥 상대하지 말고 가자."
라고 했던 말이, 그제야 절실하게 다가올 수 있죠.
저는 저 병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혹은 똥이 더러워서 피하는 것 아니냐며 참으라고 말하는 사람의 포지션에서 매뉴얼을 쓰고 있어요. 상대가 히죽히죽 웃으며 약올리는 것에 이쪽이 열 받는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확 질러버리면 당장 속이 시원해진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에요. 유치장에서 눈을 뜨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니까 말리는 거지, 편들기 싫어서, 혹은 싸울 줄 몰라서 병들고 뛰어들어 같이 싸우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싸움 구경을 해본 적 있으시면 아시겠지만, 말리는 사람에게 불똥이 튀는 경우가 많거든요. 지금 저 자식이 나 열 받게 하는 거 안 보이냐고, 그걸 보면서도 지금 내 팔을 잡고 날 말리는 거냐고, 하면서 말리는 사람의 얼굴을 후려갈기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일산에 살 때 본 일인데, 저희 집 앞 빌라에 남편에게 한 달에 몇 번씩 맞고 사는 아주머니가 계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둘이 가재도구 던지며 싸우다, 아주머니가 맨발로 집에서 뛰어나왔어요. 그걸 본 한 아저씨가 아주머니 남편을 말렸고요. 남편은 꽤 취한 상태였는데, 말리는 아저씨에게 막말을 하다가 싸움이 붙었죠. 저는 경찰차가 와서 두 사람 모두 데려갈 때까지만 상황을 지켜보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저희 아파트 총무 아주머니게 전해 들었어요. 경찰서에서 아주머니는 남편의 편을 들었고, 그 아저씨는 남편을 먼저 때린 데다가 다친 정도도 남편이 더 심해 합의금을 꽤 많이 물어줬다고 해요.
이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연이지만, 어제 발행한 매뉴얼에서 한
"내 요구를 들어두지 않으면 떠나갈 거라며 액션을 취하는 남자는,
떠나가게 두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떠나가게 두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라는 문장을 잠시 가져와 볼게요. 만약 사연의 주인공인 Y양이 위에서 말한 '아주머니'같았으면, 제 매뉴얼에 대해 화를 낼 수 있거든요. Y양이 제게
"오빠가 한 요구들은 정당한 것이었다. 오빠의 소신표현인 거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액션을 취한 게 아니라 오빠도 나 때문에 힘들어서 연애를 놓으려 했던 거다."
"오빠는 내가 좋아서 동거를 하자고 했던 거지, 그저 날 쉽게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다."
"액션을 취한 게 아니라 오빠도 나 때문에 힘들어서 연애를 놓으려 했던 거다."
"오빠는 내가 좋아서 동거를 하자고 했던 거지, 그저 날 쉽게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다."
라고 말하며 그를 변호하고 있으면, 전 할 말이 없어요. 전 상대가 한 말이 아닌 지금까지 이어져 온 상대의 행동을 중점으로 사연을 보거든요. 상대가 돈을 빌린 것 때문에 벌어진 문제라고 하면, 전 그가 자기 신발 살 돈은 있으면서 계속 이 핑계 저 핑계로 돈을 주지 않는 태도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그는 '돈을 갚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이에요. 누명을 씌우는 게 아니에요. 핑계라는 살을 다 제거하고 나니까 저 뼈대가 남은 거지. 그런데 이걸 두고
"오빠가 돈을 안 갚을 사람은 아니다. 그도 분명 어려웠다."
"신발은 진짜 오빠 신을 신발이 없어서 산 것일 뿐이다."
"오빠도 돈을 갚지 못해 괴롭고 미안하다고 내게 말했는데, 왜 오빠를 나쁘게 말하냐."
"신발은 진짜 오빠 신을 신발이 없어서 산 것일 뿐이다."
"오빠도 돈을 갚지 못해 괴롭고 미안하다고 내게 말했는데, 왜 오빠를 나쁘게 말하냐."
라고 말하면, 솔직히 저도 "그럼 받지 말고 사세요. 오빠가 돈을 왜 안 갚냐고 사람들에게 묻지도 마시고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불똥이 튀면 뜨거워요. 저도 사람이라, 아파요. 작년쯤 노멀로그에서 사연을 내리는 일로 소란이 있었거든요. 소란이 된 매뉴얼의 주인공이셨던 분이 며칠 전에 메일을 보내셨더라고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 왜 그랬었는지 부끄럽게 느껴지고, 그간 반성도 하셨다고요. 여전히 블로그 잘 보고 있고, 이제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예전의 일들 다 묻어두고 다시 잘 해보겠다는 얘기도 하셨어요. 물론 저도 축하드려요. 그 분이 잘 사셨으면 좋겠고요. 그런데 그 분이 다 털고 이제 후련하게 시작하신다고 해서, 저 역시 없던 일처럼 생각하며 완전히 후련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불똥이 튀었던 자리의 상처는 흉터로 남아 있어요.
엄살을 피우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훗날 아무렇지 않게 저녁 밥 맛있게 먹고 책상에 앉아 웹서핑 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이 되었을 때에도 계속 상대를 변호할 마음이 여전할 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어서 하는 얘기에요.
언젠가 제 친구의 누나가 종교에 빠져서 직장도 그만두고 포교활동을 한 적이 있었어요. 물론 지금은 현실로 돌아와서 좋은 사람 만나 잘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때는, 누가 무슨 얘기를 하며 말리든 그걸 다 '사탄의 방해공작'이라고 여기더라고요. 친구 아버지께서 무력으로 그 누나를 집에 끌고 왔을 때에는, 마치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받는 종교인(순교자)이라고 생각하고요. 그 누나도 진심이었어요. 그런 가족들을 변화시켜야 할 사명이 자신에게 있다며 매일 눈물로 기도했으니까요. 지금은 한 때의 해프닝이지만 그땐 정말 심각했죠. 제 친구가 누나 데리러 간다며 그 종교단체에 쳐들어가려다가, 그곳 주차요원들과 몸싸움을 한 적도 있어요. 그때 턱을 잘못 맞아서 지금도 친구 턱에서는 딱딱 소리가 나요. 전 그냥,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3. 축약과 각색.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축약을 하면 믿기 힘들 정도로 가벼워져요. 특히 문학적 상상력이 많이 포함된 작품일수록 축약을 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 같아 보이기도 하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만 하더라도, 축약을 하면
"총각인 주인공이 유부녀를 짝사랑하다가 권총 자살한 이야기."
라고 할 수 있잖아요. 언젠가 어느 독자 분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무한님에게는 이런 제 사연이, 그저 부품이 고장 난 기계처럼 보이시나요?"
고백하자면, 절반 정도는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제 자전거 체인 얘기도 했지만, 늘어난 체인으로 인해 자전거 구동계 전부가 망가져 가고 있으면 얼른 바꿔야 하잖아요. 체인을 잘라서 줄이는 게 가능하면 잘라서 줄여야 하고, 그게 불가능하면 새 체인으로 갈아 끼워야겠죠. 사연을 읽는 저 역시 상대가 했다는 말들에 휘둘리면 무작정 믿어보라는 얘기밖에 할 수 없고,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는 제보자의 말에 이끌려 상대의 책임감과 존중이 보이지 않는 연애를 이어가길 권하면, 듣는 사람이야 긍정적인 얘기니 좋아하겠지만 늘어난 체인이 자전거 구동계 전부를 망가뜨리듯 그렇게 망가질 수 있잖아요.
이걸 여기다가 예시로 써서 지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지난 주 주말에 만난 제 지인이 그랬어요.
"A랑 헤어지고 요즘 B랑 연락한다. B도 내가 A랑 사귀었던 거 아는데,
내가 원래부터 좋아했던 건 B였다고 말했어. 긍정적인 반응이야."
내가 원래부터 좋아했던 건 B였다고 말했어. 긍정적인 반응이야."
제 지인은 사실 B랑 사귈 마음이 없어요. 사귈 마음도 없는데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 하실 수도 있겠는데, 당장 이별하고 나니 빈자리가 허전해 그럴 수 있고, 썰을 풀어 B를 넘어오게 하는 과정이 즐겁기에 그럴 수 있죠. 자신이 사귀자고 하면 바로 사귈 수 있는 여자가 하나 있다는 자부심 같은 걸 느끼고 싶어서 그러는 걸 수도 있고, 추격 욕구나 정복 욕구가 발동해서 그럴 수도 있죠.
지인을 비판하려고 이 얘기를 꺼낸 건 아니에요. 저런 경우도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자 꺼낸 일화니, 여기선 그것만 봐 주셨으면 해요. B는 지인의 말을 전부 진지하게 믿고 있을 거예요. 이번 주말에 포천에서 일산까지 오라고 해도 올 거고요.
B가 제게 사연을 보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럼 전 지인의 말이 아닌 행동을 토대로 이야기를 할 거거든요. B가 지인에게 무슨 달콤한 얘기를 들었든 그건 다 잘라 버리고, '원래부터 좋아했다'라는 말과 행동이 다른 점, 그리고 그랬다는 말만 했지 지금은 어떻다고 말하지 않은 점, 꾸준한 연락이 아닌 외롭고 심심할 때에만 연락을 하는 점 등을 이야기하겠죠. 지인은 B에게 솔직하게 다 털어 놓는 거라면서 "아직 A에게 연락이 온다."라고 말하기도 했거든요. 그럼 저는 거기에 대해서도 "그는 정리되지 않은 걸 그냥 다 털어 놓은 것일 뿐이지, 그게 그가 진실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도 이야기 할 거예요.
만약 그렇게 제가 매뉴얼을 발행한다면, B는 제게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있겠죠.
"그가 제게 했던 애정표현의 말 같은 건 저기 하나도 쓰여 있질 않네요?
무한님은 그를 무슨 사기꾼인 것처럼 이야기하시는데, 무한님이 뭘 얼마나 아시죠?
제가 봤을 때에는 무한님이 그를 나쁜 사람으로 정해두고
그냥 거기에 맞춰서 다 나쁘다는 식으로만 적어두신 것 같네요.
그가 제게 아무 마음도 없는데 한 시간씩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전 그가 A와 사귄 과거가 있어서 제게 다가오는 게 조심스럽다고 보는데요.
그리고 그가 외롭고 심심할 때에만 연락했다고 하셨는데,
제가 보낸 카톡사연 전부 읽어보신 거 맞나요?
거기에 그가 평소에는 바빠서 연락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부분도 나오는데요.
무한님은 그냥 그를 나쁜 사람으로,
저를 거기에 넘어가는 쉬운 여자로 설정하고 쓰신 거 아닌가요?
사연을 보낸 제가 잘못이네요. 제가 보낸 사연과 카톡대화 전부 지워주세요."
무한님은 그를 무슨 사기꾼인 것처럼 이야기하시는데, 무한님이 뭘 얼마나 아시죠?
제가 봤을 때에는 무한님이 그를 나쁜 사람으로 정해두고
그냥 거기에 맞춰서 다 나쁘다는 식으로만 적어두신 것 같네요.
그가 제게 아무 마음도 없는데 한 시간씩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전 그가 A와 사귄 과거가 있어서 제게 다가오는 게 조심스럽다고 보는데요.
그리고 그가 외롭고 심심할 때에만 연락했다고 하셨는데,
제가 보낸 카톡사연 전부 읽어보신 거 맞나요?
거기에 그가 평소에는 바빠서 연락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부분도 나오는데요.
무한님은 그냥 그를 나쁜 사람으로,
저를 거기에 넘어가는 쉬운 여자로 설정하고 쓰신 거 아닌가요?
사연을 보낸 제가 잘못이네요. 제가 보낸 사연과 카톡대화 전부 지워주세요."
축약과 각색을 통해 매뉴얼을 발행하는 입장에선 저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좀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제가 사연을 가지고 소설을 쓰는 게 아니잖아요. 소설이라고 하면, 거의 모든 행동들이 다 이해될 수 있을 거예요. 핑계 없는 무덤 없는 법이잖아요. A도 사랑하고 B도 사랑하는, 그 두 마음 모두 거짓이 아닌 누군가의 양다리도 그의 '내적 고민'으로 여길 수 있겠죠. 상대의 그런 행위들까지도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하시면, 저는 할 말이 없어요. 그런 행위들까지도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하는 것이기에 어느 것 하나 가벼울 것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의미부여한 만큼의 책임도 본인이 지셔야 하는 거잖아요.
뒤로 걷는 게 건강에 좋을 거라고 굳게 믿으며 뒤로 걷는 생활을 하시면, 자꾸 어딘가에 부딪히는 것도 감수하셔야 해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뒤로 걷지 말고 앞으로 걸으시라고 말씀드리는 것까지예요. 뒤로 걷는데도 남들처럼 멀쩡하게 다닐 수 있는 법 같은 건 저도 몰라요. 그걸 기대하고 제게 사연을 보내셨다가 실망하실 수도 있겠지만, 지인이 똑같은 질문을 본인에게 하면 본인은 뭐라고 답하실 지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대답에 지인이 "넌 왜 우리 오빠를 나쁘게 말해? 네가 뭘 알아?"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드실 지도요.
끝으로 제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제외하고, 그 사람 자체로만도 한 번 보세요."라고 이야기 하는 건, 누군가에게 "당신은 그 사람의 조건만 보고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는 얘기를 적어두고 싶어요. 상대와의 문제, 혹은 갈등 때문에 구구절절 사연을 적어 보내주시는 분들이, 오로지 결혼을 등용문이라 생각해서 그럴 리 없다고 저도 생각해요. 저는, 휘둘리지 말자는 거예요. 우리는 모두 사람인지라, 내가 없는 것까지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위축될 수 있잖아요.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건강을 위해 마그네슘을 먹어줘야 한다고 한 얘기와, 의사인 친구가 한 같은 얘기는 분명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잖아요.
조건은 학력이나 돈 뿐만이 아니에요. 그것 말고도 그 관계에서 더 좋아하는 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더 아쉬운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으며, 나이나 비전, 대인관계에서의 원활함, 천성, 외모 등 다양한 것들이 이유가 될 수 있어요. 친구 사이에서도 평소에 제안하는 쪽과 받아들이는 쪽이 어느 정도 정해지기 마련이잖아요. 전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관계가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을 발견하면, 그 중 이쪽에서 가장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밖에 없어요. 예전에 소개한 사연 중에, 결혼이 아쉬운 여자가 남자에게 휘둘리는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사연 속 남자는 여자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뾰로통해 있자 짜증난다며 가라고 했어요. 바로 그런 상황에서, 결혼이 아쉽지 않아도 그 수모를 다 겪으며 상대와 만날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거예요.
제 지인이 음악을 해요. 한 달 수입은 거의 없죠. 그 지인이 만든 노래를 들어보면, 거의 모든 노래가 "남들이 나에게 대책 없는 인생을 산다고 하고, 난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울 만큼 어렵지만, 그래도 음악을 사랑해서 노래를 한다."라는 거거든요. 전 그 지인에게 하고 싶은 노래가 있는 게 맞는지, 배고픈 생활이 너무 짜증나면 일을 먼저 구하는 게 낫지 않은지를 물어본 적 있어요. 제가 보기엔 인생을 바쳐 음악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지인이 만든 노래도 별로 없었고, 생활의 대부분은 음악 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수다를 떠는 것이었거든요. 말만 들어보면 가수 누구 알고, 작곡가 누구랑 친하고, 음악계의 원로급인양 말은 잘 해요. 본인과 음악은 하나인 것처럼 얘기도 잘 하고요. 전 그 지인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말했어요. 애정이 없으면 자기 인생 자기가 꼬든 말든 신경도 안 썼겠죠. 치맥 하자고 가끔 전화나 하지.
지금도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무슨무슨 지망생 분들을 비하하는 게 아니에요. 제 지인은 8년을 저렇게 보냈거든요. 금방 뜰 것처럼 말은 하는데, 만들어 놓은 노래가 스무 곡이 안 돼요.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고요. 그래서 "우리, 꿈의 노예가 되진 말자. 나도 그 생활을 해왔는데, 내 경우는 글쓰기를 사랑해서 그랬던 게 아니라 도피처로 삼았던 것 같아. 내가 글을 썼던 시간은, 글을 쓴다고 말했던 시간의 백 분의 일도 안 되는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뜬금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랑의 노예'가 되지 말길 권해드리고 싶기 때문이에요. 저 위에서 말한 종교의 이야기처럼, 사랑의 노예가 되면 연애나 짝사랑으로 인해 자신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까지도 모두 순교처럼 생각할 수 있거든요. 전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역시 앞서 말한 '뒤로 걷기'처럼 느껴질 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런 이야기들도, 누군가에겐 여전히 '사탄의 방해공작'처럼 여겨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전에 이야기 한 적 있듯,
"누구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무한? 넌 나보다 그 사람을 더 믿어?
네가 이러니까 내가 헤어지려고 하는 거야. 넌 나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도 없어."
네가 이러니까 내가 헤어지려고 하는 거야. 넌 나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도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제가 밤새 적은 저 이야기들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어요. 저 역시 제가 못된 마음을 먹는다면, 어떤 말이든지 막 휘둘러 지금까지 발행된 노멀로그에 있는 매뉴얼들을 하나하나 모두 반박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제가 옳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생각 없고, 제 말을 믿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이건 제목 그대로 '연애매뉴얼을 위한 변명'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얘기를 매뉴얼마다 적을 수도 없는 거고,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메일을 받을 때마다 답장으로 보내드릴 수도 없거든요. 그러다보니 제가 악당처럼 보이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골리앗처럼 보이는지, 다윗에 빙의하신 분들이 돌팔매질을 하실 때가 있어요.
"이 거인아, 넌 이거 맞아도 안 아프겠지만 내 혼신의 힘을 다한 돌팔매를 맞아봐라."
라면서요. 저 골리앗 아니에요. 돌멩이 맞으면 저도 아파요. 그러니 분한 마음에 돌멩이를 던지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 싶으시더라도, 좀 살살 던져 주세요. 그리고 화해할 수 있는 여지도 어느 정도 좀 남겨주세요. 그래야 제가 다시 손 내밀 수 있는 거잖아요. 돌멩이 던지고 물 뿌려 둔 채 눈앞에서 문까지 쾅 닫아 버리시면, 제가 노트에 빨간색 펜으로 그쪽 이름 적을 지도 몰라요. 무섭죠?
자 그럼, 불금 보내시길!
▲ 내가 만약 힘겨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바로 여러분. 나는 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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