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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2)

재미없는 남자들이 가진 진짜 문제들 1부

by 무한 2011. 1. 18.
왜, 학창시절에도 꼭 학교에 이런 선생님들 한 분 계시지 않는가. 조용히 교실에 들어오셔서, 조용히 수업을 진행하시고, 종이 울리면 인사 받으시곤 조용히 나가시는 선생님.

난 얼마 전에 마음에 바람이 불어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한 번 들춰 봤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 듯한 선생님 한 분이 졸업앨범에 보여서 깜짝 놀랐다. 물론, 고등학교 1학년 때 일반사회를 배운 뒤 그 후 수업을 들을 일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 가치의 희소성 때문에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증대된다는 교과 내용은 기억이 나는데, 그 선생님의 수업에 대해선 전혀 기억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왜 벌어졌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그 수업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기 때문에'라는 결론을 얻었다. 내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 얘기할 대원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뭐, 간디(애완견)와 공원을 열 바퀴만 돌고 들어오려 했는데 중간에 몇 바퀴째인지 기억이 나질 않아 종종 당황하기도 하니, 아주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의 기억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J군 - 양호 선생님 아니야? 양호 선생님 맞을걸.
H군 - 누구? 몰라.



혹시 이 글을 읽는 남자대원들 중에도 저 '일반사회 선생님'의 경우처럼, 이성과 함께 밥 먹고, 영화 보고, 문자를 주고받고, 전화통화를 하는 등 별 특이사항 없이 만남을 가졌지만, 또 그렇게 별 특이사항 없이 관계가 종료되는 '흐지부지'를 경험하는 대원이 있지 않은가? 아니면, 어렵게 마련된 소개팅에 나가 상대를 한 번이라도 웃기려 노력했지만, 결국 크고 아름다운 헛발질 하는 모습만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돌아온 경험이 있진 않은가? 그런 대원들을 위해 준비했다. 똥꼬에 힘 꽉 주고 출발해 보자.


1. 이성과의 대화, 빈익빈 부익부 현상


소개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재밌는 얘기'를 묻는 남성대원들이 꽤 많은데, 그거 몇 개 달달 외워서 나가봐야 평소 '이성과의 대화'에 담쌓고 있었다면, 반팔 티 입고 남극에 온 듯한 느낌 찾아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어색한 침묵이 찾아오면, 그대는 또 '역시 난 재미없는 남자야.'라는 생각을 하며 실시간으로 침몰하는 모습을 상대에게 중계하게 된다.

"제가 화술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동성 친구들과 있을 땐, 빵빵 터트릴 정도는 아니더라도 가끔 재치 있는 얘기 던지면서 대화 잘 하거든요."


그건 당신이 이성보다 동성에 매력이 있다는 얘기니 동성 쪽으로 눈을 돌려 보라는 건 훼이크고, 동성과의 대화와 이성과의 대화는 분명 다르다. 우선 둘이 가게 되는 장소부터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대가 동성친구들과 자주 가게 되는 곳은 어딘가? 가끔 '비디오방'이라고 대답하는 대원들이 있어 깜짝깜짝 놀라긴 하지만, 대략 PC방, 당구장, 노래방 정도를 자주 갈 것이다. 이 장소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는가? 바로, 말이 별로 필요 없다는 것이다. 기껏 해봐야.

"(PC방에서)야, 위에! 위에 스나!"
"(당구장에서)두 개 빼고 하나 박았으니까 하나지. 왜 두 개 빼."
"(노래방에서)너 우선예약했지?"



이런 것들 아닌가. 하지만 이성과 가게 되는 곳들엔 식당이나 커피숍 등 '긴 대화'가 필요한 곳이 꼭 포함된다. 쉽게 말해, 동성과의 대화가 '보디랭귀지'라면, 이성과의 대화는 '회의' 수준이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자 하는 그 '재미있는 얘기'는 여행자를 위한 회화 책의 짤막한 문장일 뿐이다. 그 문장을 외워 '회의'를 시작해 봐야, 결국 외운 문장이 동나면 말 한마디 못하고 앉아 있어야 한단 얘기다.

소개팅 자리나, 마음이 드는 사람이 생겼을 때에만 이성의 대화에 관심을 갖지 말고, 평소에 적극적인 태도로 주변 이성들과 대화를 하길 권한다. 내 국민은행 통장을 걸고 얘기하는데, 화술은 말을 해야만 는다. 주변에 대화 할 여자사람이 없다고 툴툴 거리지 말고, 오늘 당장 어머니와 대화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권해주고 싶다.

어머니와 단 30분이라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 있는가? 쑥스럽고 머쓱할 수 있겠지만, 어머니와 30분이 넘게 대화를 하다 보면 '어머니'인 어머니 말고, 한 '사람'인 어머니와 한 '여자'인 어머니 등 어머니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버지와의 연애담이나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도 물어보자. 그럼 당신이 알지 못했던 신비한 이야기들이 쏟아질 것이다.

어머니, 혹은 다른 이성들과 대화하시는 시간이 많아지면, 당신의 '이성과의 대화'에 대한 화술은 점점 늘게 되어 있다. 이것은 훗날 '연애'를 시작하거나 '결혼'을 한 후에도 그 어떤 기술들보다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대화법을 익히지 않아 말 하면 싸울 일이 많아지는 까닭에, 아예 대화를 잘 하지 않고 지내는 커플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는가? 오늘부터라도 이성과 대화하는 것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보자.


2. 웃지 않는데, 어떻게 재미있는가?


시인 '이상'의 <거울>이란 시 첫 3연을 잠시 함께 보자.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외손잡이오

- 이상, <거울> 중에서


갑자기 시가 나오니 또 언어영역 시험지를 받은 듯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는 대원들이 보이는 것 같은데 너무 긴장하진 말고, 위에 인용한 구절에서 당신의 문제점을 함께 찾아보자. 찾았는가?

그러니까, 딱한 귀가 두 개 있으며, 소리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고,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왼손잡이는 거울 속에 살고 있지만, 결국 거울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당신이 웃으며 거울 속의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했다면, 거울 속의 '나'도 웃으며 당신에게 하이파이브로 응하겠지만, 당신이 심드렁한 얼굴로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면, 거울 속의 '나'도 심드렁한 얼굴로 당신을 바라본단 얘기다.

그대가 먼저 웃지 않으면서, 어찌 거울 속의 '나'보고 먼저 웃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두컴컴한 마음을 해서는 왜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면 난 변할 거야. 그런 상대를 만나고 싶다."라는 얘기만 하고 있는가? 종종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들이밀며 "지금은 괜찮은 남자가 아니라도 연애를 시작한 뒤에 상대로 인해 변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여자들이 괜찮은 남자만 찾을 것이 아니라, 진흙 속에 있는 진주를 가려낼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주장을 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바보온달'의 정확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삼국사기>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보 온달'은 이렇다.

"겉모습은 구부정하고 우스꽝스러웠지만 마음속은 환하게 밝았다."
"집에 매우 가난하여 늘 음식을 구걸 해다가 어머니를 봉양했다."
"찢어진 적삼과 해진 신발로 저자를 왕래하니 그때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바보 온달이라 했다."

- <삼국사기 열전 권제45 - 온달편> 중에서


바로 저 '마음속은 환하게 밝았다.'라는 부분에 주목하자. 만약 온달이 어두컴컴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저 요행만 바랐다면 어땠을까? 평강공주가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나한테 뭘 바라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좀 인정해 주면 안 돼?"라거나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진흙 속의 진주'를 부르짖는 일부 대원들에게 묻고 싶은 부분이다.

당신의 마음속을 환하게 만드는 것이 먼저다.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가 날 싫어할 거라 생각하거나 재미없어 할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당신의 그 생각이 '상대'라는 거울에 비춰 드러난다. 그럼 그 모습에 당신의 마음을 끝없이 침전하게 되고, 얘기를 나누긴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고 형식적인 푸석푸석한 대화만 오가며, 안타깝게도 그 만남은 '시간낭비'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저 둘의 만남을 구경하고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아닌, 진심으로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즐겁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속으로 딴 생각 하고 있으면서, 왜 상대에게만 마음을 열고 다가오길 요구 하냔 얘기다. 당신 마음에 붙여 놓은 보호필름 떼고, 먼저 웃자.


남성대원들을 위한 이 매뉴얼은 연작으로 발행할 예정이다. '재미없음' 때문에 자괴감을 맛 본 대원들이 있다면 그 맛에 대해(응?) normalog@naver.com 으로 사연을 주시기 바란다. 그 중 훌륭한 맛(응?)에 대한 사연을 뽑아 쥐도 새도 모르게 각색한 후 다음 매뉴얼에서 함께 살펴보자.

날이 춥다. 어젠 저녁에 집 밖엘 잠깐 나가는데 현관문을 연 건지, 냉동실 문을 연 건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추웠다. 다들 감기 조심하시길 바라며, 러시아 아이들의 놀이이름을 외치는 것으로 매뉴얼을 마친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 거야!




▲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 거야!'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얼음, 땡'이라고 한다. 추천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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