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로 연락은 잘 하는데, '언제 보자.'라거나 '나 너 싫다.'라는 딱 부러진 말은 없고, 혹시 이 남자 '어장관리'하는 것이 아닌가 지켜보니, 오히려 그의 어장은 오랫동안 방치된 듯 보인다. 이렇듯 연애에 무덤덤한 남자를 '관심남'으로 둔 많은 대원들이 메일을 보내온다.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 남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분포표를 하나 보자.
오늘 이야기 할 이 '무덤덤한 남자'는 위 표의 '초식남'과 '토이남' 사이, 그리고 '군인'과 '공대남자'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들의 특징으로는,
② 연애가 자신에게 걸림돌이 될 거라 생각하거나, 연애를 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③ 지금은 인생 '번외편'을 살고 있으며, '본편'이 찾아오면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대략 위와 같은 것들이 있다. 자,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으면 이제 그에게 촉촉하게 스며드는 세 가지 방법을 함께 살펴보자.
자신의 시간을 연애 대신 취미나 일 등에 투자한 만큼, 상대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 '준전문가' 수준에 이른 경우가 많다. 집 앞에서 커피 한 잔 하자는 당신의 권유엔 "오늘은 날씨가 너무 춥네요. 다음에 뵈요."라고 이야기 하면서, 이 추운 날 설경을 찍는다며 태백산엔 잘도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상대 일상의 밖에 서서 '연락'만 할 것이 아니라, 그의 동선에 끼어들어 일상의 '일부'가 되자. 친해지기 위해 억지로 상대의 관심사로 발을 들여 놓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관심가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에 당신도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보란 얘기다. 밖에서 호랑이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이 첫 번째다.
뜬금없지만, 오늘 출근길에 지나친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는가? 같은 역에서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시 같은 역에서 같이 내린 사람이라고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은 이상 당신의 기억에 남은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당신이 그의 동선에 끼어들었다고 해도 '무슨 일'을 벌이지 않으면 그냥 같은 동선을 잠시 공유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 장정일,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수 있다면> 중에서
시인 김춘수의 <꽃>을 옮기려다가 너무 진부한 것 같아서, <꽃>을 패러디 한 시인 장정일의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이라는 시를 옮겼다. 물론, 장정일의 시는 후반부를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켜는 / 라디오가 되고 싶다."라고 비틀어, 사랑마저도 편리하고 익명이기를 바라는 현대인의 소외된 인간관계에 대한 의미를 담았지만 아무튼, 문학시간이 아니니 시에 대한 설명은 접어두고,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의 '단추'를 눌러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를 작동시키기 위해 외부에서 눌러야 할 단추는 '부탁'이다. 못 믿겠다면, 지금 당신의 메신저에 로그인 되어 있는 아무 남자사람에게나 "혹시 포맷할 줄 알아?"라고 이야기를 해보길 바란다. 안부를 물을 때에는 그냥저냥 형식적인 이야기를 하던 사람도, 당신의 질문에는 '해결방법'을 찾아주려 눈에 불을 켜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지랖이 넓은 상대라면, 오늘 저녁 당신의 컴퓨터를 가져가 포맷해주겠다며 오지랖을 펴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거고 말이다.
거리를 지나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냄새나>(응?) 같은 뮤지컬 포스터가 눈에 들어오는가? 그리고 그 뮤지컬을 그 사람과 함께 보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가? 그럼 일단 저지르자. 예매하고, 상대에게 표가 생겼는데 같이 보자는 이야기를 건네고, 같이 뮤지컬을 보면 되는 거다. 당신의 마음에 살고 있는 오만 가지 생각이 당신에게 겁을 주겠지만, 겁을 남긴다고 벌금 받는 사람 없으니 겁은 그만 먹자.
영화든 연극이든 구실이 뭐든 좋으니 일단 상대와 만나자. 집 밖에 나오는 것을 극히 꺼리는 상대라면, 당신이 찾아가도 좋다. 출출할 때 먹으라며 간식이라도 하나 사들고 가는 거다. 뜬금없거나, 느닷없는 일들이 기억에 뚜렷하게 남는다는 것을 활용하자.
가끔, 그간 이야기 했던 <가랑비 작전>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해가 쨍쨍 내려쬐면 어떻게 상대에게 스며들 수 있겠는가. 상대에게 다가가되, 당신의 마음의 템포에 맞춰서가 아니라, 상대 마음의 템포에 맞추잔 얘기다. 그냥 넋 놓고 있어선 곤란하다. 움직이자.
연애가 아닌 다른 곳에 열정을 불태우느라 당신에게 무덤덤한 경우 외에, 스스로 연애할 상황이 아니라며 자신을 타이르거나 연애보다 먼저인 것들이 많다며 자신을 묶어두는 경우가 있다. 좀 미안한 얘기지만, 이런 상황이라고 해도 영혼을 흔드는 상대가 나타나면 자연히 마음이 움직인다. 그에게 당신은 '절실한' 존재가 아니라는 얘기를 꺼내는 것이 다시 생각해도 미안하지만, 당신이 상대보다 더 커지기 위해, 이 부분을 겸허히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렇다고 자괴감을 느끼며 침몰할 필요는 없다. 이건 그냥 당신이 그에게 '충동적이지 않다'라는 이야기 일 수 있으니 말이다. 충동적인 것은 금방 질리거나 실망할 위험이 크니, 그 부분에선 다행이라 생각하자.
요는 이게 아니고, 위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자신을 묶어 두거나 자신을 타이르고 있는 상대에겐 '두려움'이란 그림자가 있다는 것이다. 간판에는 '야망'이라고 적어 두었거나, '관심 없음'이라고 적어 두었더라도 그 내부엔 반드시 '두려움'이 있단 얘기다. 당신은 상대의 이 두려움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마음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두려움과 싸우느라 지치고 피곤하며 심한경우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라고 묻는 대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다. 물론, "꼭 사귄다고 말하고, 기념일 챙기고 그렇게 해야만 연애 인건가? 그런 거 없이 지금 서로의 감정만으로 사귄다고 말하지 않아도 연애할 수 있는 거잖아. 난 사귄다고 정해 놓으면 연애할 마음이 싹 사라지더라고. 그냥 우리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자."라는 궤변으로 '엔조이'를 성립하려 하는 꼬꼬마라면 칼같이 자를 필요가 있겠지만, 상대가 '두려움' 때문에 갈팡질팡 하는 상황이라면 칼같이 자르기 보단 상대를 담을 수 있는 칼집이 되는 편이 현명하단 얘기다. 연애는 손익계산하며 하는 배팅이 아니지 않은가.
상대가 무덤덤할수록 당신은 애타게 되고, 애타는 마음이 될 수록 당신은 점점 작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나무에 오르면 얻을 수 있는 사과'를 막대기로 후려치고 돌맹이를 던져 따려 하는 모습이 되고 만다.
위에서 템포 조절이 먼저라고 한 말을 기억하는가? 당신의 마음도 일단 무덤덤하게 만들자. 주선자에게 전화해서 잘 되고 싶으니 지원사격을 해 달라는 요청 따위는 하지 말고, 친구가 하나 생겼다는 정도로만 생각하자. 그리곤 '친구끼리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의 일상에 '일부'가 되었다면, 그에 대해 공부하자. 공부는 최소한 읽고, 듣고, 봐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만남을갖고, 대화를 하고, 그를 이해해 보자. 그렇게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당신이 알고 싶어 하는 그의 '속마음'이다. 그 집에 들어가 보지 않고 어떻게 그 집 내부를 알 수 있겠는가. 집 밖에 서서 타인에게 "저 집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요?"라고 묻지 말고 일단 들어가자.
그 집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나를 알게 되었다면 먼지가 앉은 곳은 털고, 얼룩이 진 곳은 닦고, 쇼파의 위치를 조정해 당신이 앉기 편하도록 만들자. 그 집을 잘 안다는 사람에게 집에 대해 물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은 단편적인 이미지뿐이다. 사진 몇 장 보고 자신이 평생 살 집을 계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계약부터 하려고 급한 마음 갖지 말고, 일단 집 보러 가자. 딱 그 정도의 마음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다. 그렇게 스며들다 보면, 상대 일상의 '일부'였던 당신은 어느새 '전부'가 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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