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시작하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는데, 연애를 시작하고 나면 쉽게 질려버린다는 대원들이 있다. 그 형태는 크게 "내가 좋아할 때는 괜찮았는데, 상대가 날 더 좋아하게 되자 마음이 식어버렸다."라고 말하는 '청개구리형'과 "상대보다 더 최선인 사람이 있을 것 같다."라는 '시크릿가든형(응?)', 그리고 "하나 둘 알게 되는 상대의 본모습에선 미래가 보이질 않는다."는 '예언자형'으로 나눌 수 있다.
어제 매뉴얼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연애란 처음 만나 갖게 된 서로의 호감이 점점 소멸되어 가는 과정이다. 카메라를 처음 샀을 때와 한 이 년 쯤 지났을 때 마음이 다르듯, 연애 초기의 설렘과 떨림은 풍화작용을 겪어 점점 무감각하게 변해가기 마련이다.
라고 말하는 대원은 풍화작용을 겪어 설렘과 떨림이 떨어져나간 부분을 다른 것들로 채웠으리라 생각한다. 둘만의 왕국에서 통용될 수 있는 언어들로 인한 친밀감이라든지, 내가 말하는 '돼구리'가 뭘 의미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도록 축척해둔 추억이라든지 하는 그 '정'으로 말이다. 거기에 '발견'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상대의 광맥을 계속 찾아 들어가는 즐거움도 더해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이렇게 점점 닳아지는 호감과 비례해 늘어가는 실망과 회의감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핫도그가 맛이 없다며 버리려는 그대에게 맛난 소스를 뿌려주는 기분으로,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매뉴얼, 출발해 보자.
상대의 한계를 긋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자도 필요 없다. 어 그래 넌 딱 거기까지, 라고 한 번 그어놓은 선은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상대를 언제나 그 선 안에 있는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잠깐, 근데 당신 뭘로 그 선을 그은거지?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의 이름은 '오해'다. 오해는 상대에 대한 몰이해나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간 상대와 해 온 것이라고는 고기를 썰거나, 영화를 보거나, 서로를 더듬거린 일 밖에 없으니 상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라고 말하는 대원들의 그 '진지한 얘기'라는 것이,
라는 것에 난 또 깜짝 놀란다. 너무 진지해서 진지함에 익사해 버릴 것 같다. 혹시 전화통화에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한 얘기가 있나 해서 살펴봤더니, 무슨 나중에 빌딩을 지어서 거기에 같이 살자는 따위의 얘기들이 한 가득이다. 그건 그냥 같이 추상화를 그린 것 아닌가.
이별을 고민하며 내게 보내는 사연들, 난 그 사연 속에 적혀 있는 이야기들을 사연에 등장하는 상대에게 직접 전해주면 사연에서 말한 '문제'라고 한 것들의 8할은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그 이야기들이야 말로 자신의 트라우마나 속사정이 가득 담겨 있는데, 그런 중요한 문제들을 다 빼 놓고는 왜 '연애'라는 연극만 하고 있는가?
정말 터놓고 얘기해야 할 상대에겐 가벼운 제스처만 취한 채, 알맹이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말자. 엄마에겐 "이번에 담근 김치 너무 짜."라고 어렵지 않게 말하면서, 왜 상대에겐 "밥이랑 같이 먹으면 맛있겠네." 정도로만 얘기하는가. 그렇게 말해두곤 또 친구와 "걔 너무 짜게 먹는 것 같아. 계속 그렇게 짜게 담그면 내가 계속 먹을 수 있을까?"라고 얘길 하니 답답한 거다.
혹시 상대에게 자신이 느끼는 부분들을 다 얘기했다간 기분 나빠하거나, 지금 둘 사이에 흐르고 있는 연애전선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그냥 접어 두었는가? 모두 말하자.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사람이라고 그간 매뉴얼들에서 한 스물 세 번 쯤 얘기했다. 감정이 조금 상하더라도 털어 놓는 것이, 훗날 서로의 한계를 긋고 손도 써 보지 않은 채 남남이 되는 것 보다 낫다.
내 인생 외에 다른 사람의 인생은 살아본 적이 없기에, 우리는 결국 남을 어느정도 부러워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뭐, 그 부러움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선택'이라는 케이크를 사기 위해서는 '후회'라는 값을 지불해야 한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연애를 하며 예상치 않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우리는 늘 '후회'를 할부로 갚고 있지 않은가.
그 '후회'라는 할부를 갚아 나가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남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게 허리 휘게 갚아나가는 '후회'없이 편안히 케이크를 먹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거 또 세상에 나만 속은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이놈의 팔자에 낀 살은 빠져 나갈 생각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해결하지 못한 '후회'는 다음 번 후회에 가산금이 붙듯 합쳐지게 되고, 결국 이 무게에 짓눌린 그대는 '파산신청'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남들의 얘기란 '원주율' 같은 거다. 누군가 "내 인생은 요즘 3.14 정도 돼."라고 하는 이야기 속에는 "3.14159265358979......"라는 속사정이 있단 얘기다. 자신만의 원주율을 구하는 것이 인생인데, 원주율은 끝이 없기에 그걸 남에게 얘기할 때는 반올림을 하거나 버림을 해서 얘기하는 것 아닌가.
또한, '최선'은 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그대에게 주어진 것이 검은색 연필뿐이라면 선과 명암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최선 아닌가. 하지만 그대에게 다양한 색의 연필이 주어진다면 이런 저런 색들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최선이 될 것이다.
저 위에서 이야기 했듯, 어느 선택이든 '후회'라는 할부는 계속 치러야 한다. 그 '후회'에 못 이겨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도, 여전히 '후회'는 잊지 않고 날아오는 고지서처럼 당신 앞에 나타날 거란 얘기다. 난 그대가 남들의 에누리 붙은 말에 휘둘려 방황하다 늙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연애란 상대가 가진 마음의 집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평생 살게 될 '내 집'을 갖는 과정이란 얘기다. 그렇기에 늘 매뉴얼을 통해 '선택'에 심혈을 기울이란 얘기를 하고 있다. "산 속에 있는 열다섯 평짜리 집과, 도시에 있는 서른 평짜리 집, 그리고 바닷가에 있는 스물 네 평짜리 집 중 당신은 어느 집에 살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먼저 해 본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후회'를 평생 할부로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 후회가 싫어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이 있고, 그 유목민들은 '바람둥이'라고 불린다. 달콤한 케이크만 먹고 값을 지불하지 않은 채 다음 케이크를 먹으러 가는 그들이 자유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이야 말로 '후회'를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다. 끊임없이 자신이 있는 곳과 타인이 있는 곳을 '비교'하고, 언젠가 후회가 자신을 쫓지 않는 집을 갖게 될 거라는 희망으로 걷고, 또 걷는다.
가끔 이런 유목민의 생활을 낭만이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걸 아직 실버타운에 입주신청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히 결론짓진 말자. 지금이야 아직 스포츠카를 타도 이상할 나이가 아니고 얼굴에 검버섯도 없으니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잠깐씩 살아볼 수 있겠지만, 주름살과 냄새를 잔뜩 갖게 된 나이가 되었을 땐 저 피트니스 센터에 "물 흐린다, 60세 이상 노인 출입금지."라고 쓰인 것처럼 문전박대를 당할 일이 많아질 테니 말이다. 그때가서, 몸 누일 수 있는 보금자리 하나 없이 떠돌아다닌 삶이 낭만이었나 생각해 보잔 얘기다. 그대나 나나, 60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니 초조하게 기다릴 필요도 없다.
스스로 바람기가 있는 것 같다며, 상대에게 쉽게 실망하고 질리게 된다는 얘기를 하는 대원들에게는 상대라는 광맥을 캐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해 주고 싶다. '후회'라는 고지서를 두려워 할 필요 없다. 당신이 생활을 하고 있다면, 한 달에 한 번은 어떤 고지서든 늘 받지 않는가. 전기요금이나 핸드폰 요금 때문에 비명을 지르며 노숙자가 되려 하진 않으면서, 왜 연애에서는 후회나 실망을 그렇게 두려워하는가. 당신이 날아오는 고지서를 당신이 수고해 번 돈으로 내는 것처럼, 당신에게 찾아오는 후회나 실망의 고지서 또한 '발견'이란 도구로 상대라는 광맥을 캐 지불하면 된다.
당신은 상대와 자전거 여행을 해 봤는가? 함께 도자기를 만들어 봤는가? 함께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해 봤는가? 수영장에 등록해 함께 수영을 해 봤는가? 같은 악기를 배워 봤는가? 같은 책을 읽고 느낌을 공유해 봤는가? 매일 매일 둘이 한 장씩 채워가는 노트를 써 봤는가? 등산을 해 봤는가? 볼링을 쳐 봤는가? 사격을 해 봤는가? 산책을 해 봤는가? 물구나무를 서 봤는가? 하루 정도 말없이 바디랭귀지로만 대화해 봤는가? 영어로 대화를 나눠 봤는가? 출사를 가 봤는가? 누가 더 잠수를 오래 하나 대결해 봤는가?
함께 해 본 거라고는 몇 가지 되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다 안다는 양 한계를 긋지 말잔 얘기다. 물론, 상대 마음의 집에 들어갔더니 물도 나오질 않고, 난방도 되질 않으며, 현관문도 없어 도저히 살 수 없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마음만 앞선 상대가 아직 공사 중인 자신의 집에 당신을 초대했다면 당신은 가구나 집기를 배치할 것이 아니라 공사부터 도와야 할 것이다. 당신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더 집을 완성할 생각이 없는 상대라면 신속히 그 집에서 나와야 할 것이고 말이다.
어젠 작곡을 공부하는 친구가 찾아와 공원에서 이야길 나눴다. 날씨가 추워진 줄 모르고 얇게 입고 나갔다가 부들부들 떨면서 "작곡을 공부하다보니 '퓔(feel, 시캐고 발음)'보다 차곡차곡 기본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한다."라는 내용의 대화를 나눴다. 그간 드라마, 영화, 소설, 만화, 기타 미디어 등을 통해 가진 '작곡'의 이미지는, 부던한 노력보다는 어떤 특수한 재능에 의해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는데, 실제론 그게 아니라 일단 기반이 잘 만들어져 있어야 퓔이든 휠이든 내 뿜을 수 있단 거였다.
연애나 사랑 역시 드라마, 영화, 소설, 만화, 기타 미디어에선 왕자 탄 백마님(응?)이 찾아오거나, 어떠한 계기로 만난 두 사람이 불같이 타오르거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오랜시간 마음에 두고 있다가 나중엔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얘기들로 다룬다. 감정 몰입이 잘 되는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난 "그레이트한 뻥이군."이란 생각을 한다. 그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희열감만을 다룰 뿐이다. 그 정상까지 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오르는 수고를 해야 하며, 중간에 등산이고 뭐고 그만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수도 없이 드는 것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이 매뉴얼은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다. 그대가 가지고 있었던 '달콤하기만 한 연애'라든가 '연애가 지금 내 상황을 바꿔줄 거야.'란 환상을 깨서 미안하지만, 그런 환상은 지금 깨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면, '선택'에 '후회'라는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충격이 더 클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연애가 힘들고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당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있는가? 당신도 잘 모르는 당신을 더 이해하고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늙고 지쳐 당신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갈 때, 당신 옆에서 당신과 함께 있을 사람이 있는가? 지금 당신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가는 길, 그 길의 이름이 연애다. 그리고 당신이 그 길을 외롭거나 슬프지 않게 걸을 수 있도록 난 곳곳에 표지판을 세우고 있는 중이고 말이다. 자, 그럼 발걸음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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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매뉴얼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연애란 처음 만나 갖게 된 서로의 호감이 점점 소멸되어 가는 과정이다. 카메라를 처음 샀을 때와 한 이 년 쯤 지났을 때 마음이 다르듯, 연애 초기의 설렘과 떨림은 풍화작용을 겪어 점점 무감각하게 변해가기 마련이다.
"전 사귄지 오래 됐지만, 아직도 그 사람을 보면 좋은데요?"
라고 말하는 대원은 풍화작용을 겪어 설렘과 떨림이 떨어져나간 부분을 다른 것들로 채웠으리라 생각한다. 둘만의 왕국에서 통용될 수 있는 언어들로 인한 친밀감이라든지, 내가 말하는 '돼구리'가 뭘 의미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도록 축척해둔 추억이라든지 하는 그 '정'으로 말이다. 거기에 '발견'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상대의 광맥을 계속 찾아 들어가는 즐거움도 더해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이렇게 점점 닳아지는 호감과 비례해 늘어가는 실망과 회의감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핫도그가 맛이 없다며 버리려는 그대에게 맛난 소스를 뿌려주는 기분으로, 블링블링한 후라이데이 매뉴얼, 출발해 보자.
1. 긋기 쉬운 상대의 한계
상대의 한계를 긋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자도 필요 없다. 어 그래 넌 딱 거기까지, 라고 한 번 그어놓은 선은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상대를 언제나 그 선 안에 있는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잠깐, 근데 당신 뭘로 그 선을 그은거지?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의 이름은 '오해'다. 오해는 상대에 대한 몰이해나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간 상대와 해 온 것이라고는 고기를 썰거나, 영화를 보거나, 서로를 더듬거린 일 밖에 없으니 상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저흰 그렇지 않았어요. 진지한 얘기들을 메일로 나누고, 전화통화도 오래 했다구요."
라고 말하는 대원들의 그 '진지한 얘기'라는 것이,
"난 오빠가 그 날 와 줄 거라고 생각했어. 아무리 피곤해도 내가 아프다는 데, 그냥 집으로 가 버릴지 몰랐어. 오빠 정말 날 사랑하긴 하는 거야?"
라는 것에 난 또 깜짝 놀란다. 너무 진지해서 진지함에 익사해 버릴 것 같다. 혹시 전화통화에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한 얘기가 있나 해서 살펴봤더니, 무슨 나중에 빌딩을 지어서 거기에 같이 살자는 따위의 얘기들이 한 가득이다. 그건 그냥 같이 추상화를 그린 것 아닌가.
이별을 고민하며 내게 보내는 사연들, 난 그 사연 속에 적혀 있는 이야기들을 사연에 등장하는 상대에게 직접 전해주면 사연에서 말한 '문제'라고 한 것들의 8할은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그 이야기들이야 말로 자신의 트라우마나 속사정이 가득 담겨 있는데, 그런 중요한 문제들을 다 빼 놓고는 왜 '연애'라는 연극만 하고 있는가?
정말 터놓고 얘기해야 할 상대에겐 가벼운 제스처만 취한 채, 알맹이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말자. 엄마에겐 "이번에 담근 김치 너무 짜."라고 어렵지 않게 말하면서, 왜 상대에겐 "밥이랑 같이 먹으면 맛있겠네." 정도로만 얘기하는가. 그렇게 말해두곤 또 친구와 "걔 너무 짜게 먹는 것 같아. 계속 그렇게 짜게 담그면 내가 계속 먹을 수 있을까?"라고 얘길 하니 답답한 거다.
혹시 상대에게 자신이 느끼는 부분들을 다 얘기했다간 기분 나빠하거나, 지금 둘 사이에 흐르고 있는 연애전선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그냥 접어 두었는가? 모두 말하자.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사람이라고 그간 매뉴얼들에서 한 스물 세 번 쯤 얘기했다. 감정이 조금 상하더라도 털어 놓는 것이, 훗날 서로의 한계를 긋고 손도 써 보지 않은 채 남남이 되는 것 보다 낫다.
2. 커보이는 남의 떡
내 인생 외에 다른 사람의 인생은 살아본 적이 없기에, 우리는 결국 남을 어느정도 부러워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뭐, 그 부러움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선택'이라는 케이크를 사기 위해서는 '후회'라는 값을 지불해야 한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연애를 하며 예상치 않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우리는 늘 '후회'를 할부로 갚고 있지 않은가.
그 '후회'라는 할부를 갚아 나가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현빈 돋네)
남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게 허리 휘게 갚아나가는 '후회'없이 편안히 케이크를 먹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거 또 세상에 나만 속은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이놈의 팔자에 낀 살은 빠져 나갈 생각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해결하지 못한 '후회'는 다음 번 후회에 가산금이 붙듯 합쳐지게 되고, 결국 이 무게에 짓눌린 그대는 '파산신청'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남들의 얘기란 '원주율' 같은 거다. 누군가 "내 인생은 요즘 3.14 정도 돼."라고 하는 이야기 속에는 "3.14159265358979......"라는 속사정이 있단 얘기다. 자신만의 원주율을 구하는 것이 인생인데, 원주율은 끝이 없기에 그걸 남에게 얘기할 때는 반올림을 하거나 버림을 해서 얘기하는 것 아닌가.
또한, '최선'은 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그대에게 주어진 것이 검은색 연필뿐이라면 선과 명암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최선 아닌가. 하지만 그대에게 다양한 색의 연필이 주어진다면 이런 저런 색들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최선이 될 것이다.
"그럼 상황이 바뀌었을 때, 그 상황에 맞게 다시 최선을 찾는 게 현명한 것 아닌가요?"
저 위에서 이야기 했듯, 어느 선택이든 '후회'라는 할부는 계속 치러야 한다. 그 '후회'에 못 이겨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도, 여전히 '후회'는 잊지 않고 날아오는 고지서처럼 당신 앞에 나타날 거란 얘기다. 난 그대가 남들의 에누리 붙은 말에 휘둘려 방황하다 늙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3. 바람둥이, 연애의 유목민
연애란 상대가 가진 마음의 집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평생 살게 될 '내 집'을 갖는 과정이란 얘기다. 그렇기에 늘 매뉴얼을 통해 '선택'에 심혈을 기울이란 얘기를 하고 있다. "산 속에 있는 열다섯 평짜리 집과, 도시에 있는 서른 평짜리 집, 그리고 바닷가에 있는 스물 네 평짜리 집 중 당신은 어느 집에 살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먼저 해 본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후회'를 평생 할부로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 후회가 싫어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이 있고, 그 유목민들은 '바람둥이'라고 불린다. 달콤한 케이크만 먹고 값을 지불하지 않은 채 다음 케이크를 먹으러 가는 그들이 자유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이야 말로 '후회'를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다. 끊임없이 자신이 있는 곳과 타인이 있는 곳을 '비교'하고, 언젠가 후회가 자신을 쫓지 않는 집을 갖게 될 거라는 희망으로 걷고, 또 걷는다.
가끔 이런 유목민의 생활을 낭만이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걸 아직 실버타운에 입주신청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히 결론짓진 말자. 지금이야 아직 스포츠카를 타도 이상할 나이가 아니고 얼굴에 검버섯도 없으니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잠깐씩 살아볼 수 있겠지만, 주름살과 냄새를 잔뜩 갖게 된 나이가 되었을 땐 저 피트니스 센터에 "물 흐린다, 60세 이상 노인 출입금지."라고 쓰인 것처럼 문전박대를 당할 일이 많아질 테니 말이다. 그때가서, 몸 누일 수 있는 보금자리 하나 없이 떠돌아다닌 삶이 낭만이었나 생각해 보잔 얘기다. 그대나 나나, 60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니 초조하게 기다릴 필요도 없다.
스스로 바람기가 있는 것 같다며, 상대에게 쉽게 실망하고 질리게 된다는 얘기를 하는 대원들에게는 상대라는 광맥을 캐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해 주고 싶다. '후회'라는 고지서를 두려워 할 필요 없다. 당신이 생활을 하고 있다면, 한 달에 한 번은 어떤 고지서든 늘 받지 않는가. 전기요금이나 핸드폰 요금 때문에 비명을 지르며 노숙자가 되려 하진 않으면서, 왜 연애에서는 후회나 실망을 그렇게 두려워하는가. 당신이 날아오는 고지서를 당신이 수고해 번 돈으로 내는 것처럼, 당신에게 찾아오는 후회나 실망의 고지서 또한 '발견'이란 도구로 상대라는 광맥을 캐 지불하면 된다.
당신은 상대와 자전거 여행을 해 봤는가? 함께 도자기를 만들어 봤는가? 함께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해 봤는가? 수영장에 등록해 함께 수영을 해 봤는가? 같은 악기를 배워 봤는가? 같은 책을 읽고 느낌을 공유해 봤는가? 매일 매일 둘이 한 장씩 채워가는 노트를 써 봤는가? 등산을 해 봤는가? 볼링을 쳐 봤는가? 사격을 해 봤는가? 산책을 해 봤는가? 물구나무를 서 봤는가? 하루 정도 말없이 바디랭귀지로만 대화해 봤는가? 영어로 대화를 나눠 봤는가? 출사를 가 봤는가? 누가 더 잠수를 오래 하나 대결해 봤는가?
함께 해 본 거라고는 몇 가지 되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다 안다는 양 한계를 긋지 말잔 얘기다. 물론, 상대 마음의 집에 들어갔더니 물도 나오질 않고, 난방도 되질 않으며, 현관문도 없어 도저히 살 수 없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마음만 앞선 상대가 아직 공사 중인 자신의 집에 당신을 초대했다면 당신은 가구나 집기를 배치할 것이 아니라 공사부터 도와야 할 것이다. 당신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더 집을 완성할 생각이 없는 상대라면 신속히 그 집에서 나와야 할 것이고 말이다.
어젠 작곡을 공부하는 친구가 찾아와 공원에서 이야길 나눴다. 날씨가 추워진 줄 모르고 얇게 입고 나갔다가 부들부들 떨면서 "작곡을 공부하다보니 '퓔(feel, 시캐고 발음)'보다 차곡차곡 기본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한다."라는 내용의 대화를 나눴다. 그간 드라마, 영화, 소설, 만화, 기타 미디어 등을 통해 가진 '작곡'의 이미지는, 부던한 노력보다는 어떤 특수한 재능에 의해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는데, 실제론 그게 아니라 일단 기반이 잘 만들어져 있어야 퓔이든 휠이든 내 뿜을 수 있단 거였다.
연애나 사랑 역시 드라마, 영화, 소설, 만화, 기타 미디어에선 왕자 탄 백마님(응?)이 찾아오거나, 어떠한 계기로 만난 두 사람이 불같이 타오르거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오랜시간 마음에 두고 있다가 나중엔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얘기들로 다룬다. 감정 몰입이 잘 되는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난 "그레이트한 뻥이군."이란 생각을 한다. 그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희열감만을 다룰 뿐이다. 그 정상까지 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오르는 수고를 해야 하며, 중간에 등산이고 뭐고 그만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수도 없이 드는 것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이 매뉴얼은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다. 그대가 가지고 있었던 '달콤하기만 한 연애'라든가 '연애가 지금 내 상황을 바꿔줄 거야.'란 환상을 깨서 미안하지만, 그런 환상은 지금 깨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면, '선택'에 '후회'라는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충격이 더 클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연애가 힘들고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당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있는가? 당신도 잘 모르는 당신을 더 이해하고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늙고 지쳐 당신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갈 때, 당신 옆에서 당신과 함께 있을 사람이 있는가? 지금 당신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가는 길, 그 길의 이름이 연애다. 그리고 당신이 그 길을 외롭거나 슬프지 않게 걸을 수 있도록 난 곳곳에 표지판을 세우고 있는 중이고 말이다. 자, 그럼 발걸음 가볍게!
▲ 표지판을 남들도 잘 볼 수 있게 위의 추천버튼들을 눌러주세요. 추천은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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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예감한 여자가 해야 할 것들
늘 짧은 연애만 반복하게 되는 세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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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없는 여자들이 겪게 되는 안타까운 일들
예전 여자친구에게 돌아가는 남자,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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