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동선에 이성과 만날 '기회'가 없다면, 우선 동선부터 수정하라는 말에 많은 대원들이 학원, 교회, 동호회 등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창문 하나 없는 방에서 "빛이 들질 않아요. 이러다 죽겠어요."라고 외치던 대원들이 이제 하나 둘 창을 내며 광합성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는 흡족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그러나'가 늘 문젠데, 빛이 들기를 바란다면 해가 떠 있는 쪽에 창을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림자가 지는 곳에 창을 내 놓곤, "창을 냈지만 여전히 컴컴해요.왜 이러죠?"라는 하소연을 하고 있는 대원들 때문에 또 가슴이 아프다.
오늘은 이러한 대원들을 위해 "창을 낸 곳에서 볕이 들지 않는다면, 이러이러한 이유들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이상한 남자만 만나게 된다는 대원들, 그들에게 창 낸 곳이 혹시 어두컴컴한 집 뒤편이 아니었나 살펴보길 권하며, 괜찮은 남자는 절대 하지 않는 행동들 출발해 보자.
오프라인이라는 창을 내기는 어려웠는지, 온라인에 창을 낸 대원들이 있다. 주로 인터넷 동호회 활동, 채팅, 어플을 이용한 랜덤채팅 등을 이용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식의 '만남'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좀 진한 카키색이에요."라는 설명만 보고 물건을 주문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참 재미있게 본 <하우스>라는 미드에, 극 중 병원의 원장으로 있는 '커디'가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갖기 위해 정자은행의 후보자들을 고르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지금 다시 찾아보니 시즌 2의 23화 에피인 것 같은데, 아무튼 '가장 우수해 보이는 기증자'라며 커디가 선택하려는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형과 비슷하고, 고상한 취미와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닥터 하우스가 직접 수소문해 병원으로 데려온다. 서류에 적힌 것으로는 더 할 것 없이 완벽한 사람이지만, 실제로 그 기증자를 만나게 되었을 때 커디는 자신이 상상하던 것과 너무나 동떨어진 상대를 보며 기겁한다.
바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 쉽다는 거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는, 당장 관심이나 사랑이 너무 고픈 사람들의 밀도가 높기 마련이다. 좀 극단적인 얘길 하자면 현재의 생활이 너무 재미없기에 '탈출구'로 그곳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많단 거다.
그건 그대가 10년 째 외국어 문제집을 사 모으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 책 한 권만 보면 잘 하고 싶은 외국어를 통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문해서 몇 장 풀다 보면 그 책 역시 외국어를 알아서 떠 먹여 주지 않는 다는 걸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책에 관한 소개를 보면, 어김없이 주문하기 마련이다. 이 책만 읽으면 뭔가 될 것 같은 느낌, 바로 그런 느낌으로 "나이는? 성별은? 사는 곳은?" 이런 얘기를 하게 되는 것 아닌가.
라는 말을 급하게 내뱉는 상대는, 그냥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그만큼 강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스로를 제어하는 것에서 부터 낙제점이란 얘기다. 자기 제어에 합격점을 받은 사람들은 당장 사진을 보자고 달려들기 보다는 친분이라는 완충제를 만드는 일에 더 힘을 쏟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 남자는 그냥 자기 사진에 자신이 있는 거다. 그 사진만 보여주면 당신이 덥석 물거라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닥 호감 가는 사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진을 먼저 전달하는 쪽은, 그저 자신의 사진을 보내고 당신 사진을 받는 '사진교환'에 의의를 두고 있거나 자신의 사진이 당신에게 '낙제'는 면할 수 있는 가를 시험해 보는 것일 가능성이 크고 말이다.
불만족의 욕구에서 시작된 만남은 몇 주간 황홀하겠지만, 그 만남에서 다시 불만족을 찾는 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무리 사랑이 결핍에서 부터 시작한다곤 하지만, 그 결핍이 상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당신은 머지않아 지치게 될 것이다. "날씨도 꿀꿀한데, 술 한잔 하실분."이라는 제목으로 만나는 것은 더 말 할 것도 없고 말이다. 아직 상대의 신발 사이즈도 알지 못하면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사연들이 좀 줄었으면 한다.
당장 내일, 아니 오늘 저녁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나중'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나중에 술 한 잔 하자."라는 대부분의 약속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듯, "나중에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되면 너에게 어쩌구."라는 말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기 십상이다.
다가왔다가, 나중을 빌미로 도망가는 상대를 애써 쫓지 말길 권한다. 계속 쫓아 봐야 막연한 약속에 걸어둔 희망에 스스로만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 '나쁜남자'라 얘기하거나, '연애하면 잘 챙겨주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말하는 남자, 또 '연락을 잘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와는 되도록 만나지 말길 권한다. 연애에 가장 필요한 것은 노력이다. 지금 서로에 대해 100%의 호감이 있는 두 사람이 만났다면, 앞으로 두 사람의 호감도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 줄어드는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 연애다. 그런데, 노력에 자신이 없다는 핑계를 대 버린 상대에게 당신은 훗날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야 당장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뭐든 다 괜찮으며, 점점 바뀌게 될 거란 '근거 없는 희망'을 가지고 있겠지만, 선포까지 해버린 누군가의 성격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이렇게 얘길해도 당신은 상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가며 찌질 3종세트 (쿨한척, 집착, 물귀신)를 선물로 주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를 알아보려면, 적어도 100일은 넘게 만나보자. 그래야 중간에 쑥과 마늘이 싫다며 뛰쳐나갈지 아닐지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만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진도는 다 나가놓고, 이제 와서 복수를 하겠다느니 나쁜 놈이라느니 하는 얘기를 하진 말자. 늘 얘기하지만, 그의 '말'에 기대기보다는, 그의 '행동'이 무엇을 증명하는지 정신 차리고 보자. 이건 당신의 반평생을 결정지을 수 있는 일이다. 그냥저냥, 하는 식으로 접근해선 위험하다.
한 십 년 전인가, 우리 동네에 일본의 큰 게임회사에서 근무한다는 남자 하나가 이사를 왔다. 그 남자는 일산 호수공원 근처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일본 회사의 게임센터가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그는 일본에 설립되어 있는 게임센터 동영상이며 사업계획서 등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그들의 관심을 믿음으로 바꿔 놓았다.
난 당시 버스에서 오줌을 참다가 버스의 급정거로 인해 방광이 터졌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던 꼬꼬마 였는데, 그 남자의 '게임센터' 이야기엔 관심이 가질 않았다. 그 남자는 게임센터가 들어서면 구역 별로 담당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흘렸는데, 동네 사람들은 자신이 벌써 그 구역 담당자라도 된 듯 그 남자의 기사와 비서노릇을 하며 충성했다.
그 남자는 그 곳의 부지를 촬영해 일본으로 보내야 한다며 캠코더를 수소문 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앞다퉈 캠코더를 사서 바쳤다. 고양시청에 가서 누구를 만나야 한다는 그 남자의 이야기에 동네에서 슈퍼를 하는 아저씨는 가게 문을 닫고 자신의 차로 기사를 자처했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저녁이면 그 남자를 초대해 저녁을 대접하려 치열하게 다퉜다.
일산에 사는 주민이라면, 호수공원 옆에 게임센터가 아닌 킨텍스가 들어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위의 이야기가 '해프닝'으로 끝났다는 걸 알 것이다. 하지만 당시엔 다들 그 남자의 이야기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씨디 한 장과 몇 장의 종이에 그 남자의 호탕한 성격과 매너가 더해지니, 의심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갖은 호의를 다 누리던 남자는 일본에 들어갔다 와야 한다며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다.
공백이 길어지자, 서서히 사람들의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 남자를 모시려고 회사까지 그만 둔 이씨 아저씨는 그래도 얼마 까지는 "그 사람, 그럴 사람 아니에요."라며 충성했다. 하지만 몇 달 후 그곳에 '킨텍스'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씨 아저씨도 새 직장을 구했다.
그 남자가 '사기'를 치려고 접근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 계획을 추진하려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그런 것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동네 사람들에게 직접 뭔가를 요구했다기 보다는, 그가 흘린 말에 동네 사람들이 알아서 모신 것이니,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남자만 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욕하려면, 동네사람들의 욕심과 과잉충성도 함께 그 대상이 되야 할 테니 말이다.
당신이 말하는 '그 남자'와 내가 말하는 '그 남자'는 다르지만, 또 그렇게 다르지도 않다. 좋지 않은 결말엔 그 남자의 잘못만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그 남자가 어떻든, 길게 보자. 길게 보면 보인다. 지금 당장 연애를 못하거나 시집을 못 가서 죽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당신의 반평생을 함께 보낼 사람을 정하는 일엔 좀 더 신중을 가하자. 길게 보면, 분명 볼 수 있으니 말이다.
▲ 버스에서 오줌을 참다가 급정거로 방광이 터졌다는 얘기를 지금도 믿는 건, 안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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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러나'가 늘 문젠데, 빛이 들기를 바란다면 해가 떠 있는 쪽에 창을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림자가 지는 곳에 창을 내 놓곤, "창을 냈지만 여전히 컴컴해요.왜 이러죠?"라는 하소연을 하고 있는 대원들 때문에 또 가슴이 아프다.
오늘은 이러한 대원들을 위해 "창을 낸 곳에서 볕이 들지 않는다면, 이러이러한 이유들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이상한 남자만 만나게 된다는 대원들, 그들에게 창 낸 곳이 혹시 어두컴컴한 집 뒤편이 아니었나 살펴보길 권하며, 괜찮은 남자는 절대 하지 않는 행동들 출발해 보자.
1. 사진 좀 보내주세요
오프라인이라는 창을 내기는 어려웠는지, 온라인에 창을 낸 대원들이 있다. 주로 인터넷 동호회 활동, 채팅, 어플을 이용한 랜덤채팅 등을 이용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식의 '만남'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좀 진한 카키색이에요."라는 설명만 보고 물건을 주문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참 재미있게 본 <하우스>라는 미드에, 극 중 병원의 원장으로 있는 '커디'가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갖기 위해 정자은행의 후보자들을 고르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지금 다시 찾아보니 시즌 2의 23화 에피인 것 같은데, 아무튼 '가장 우수해 보이는 기증자'라며 커디가 선택하려는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형과 비슷하고, 고상한 취미와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닥터 하우스가 직접 수소문해 병원으로 데려온다. 서류에 적힌 것으로는 더 할 것 없이 완벽한 사람이지만, 실제로 그 기증자를 만나게 되었을 때 커디는 자신이 상상하던 것과 너무나 동떨어진 상대를 보며 기겁한다.
▲ 미드 <하우스> 시즌 2 - 23화 중에서 (출처 - CHIC&BLACK)
바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 쉽다는 거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는, 당장 관심이나 사랑이 너무 고픈 사람들의 밀도가 높기 마련이다. 좀 극단적인 얘길 하자면 현재의 생활이 너무 재미없기에 '탈출구'로 그곳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많단 거다.
그건 그대가 10년 째 외국어 문제집을 사 모으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 책 한 권만 보면 잘 하고 싶은 외국어를 통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문해서 몇 장 풀다 보면 그 책 역시 외국어를 알아서 떠 먹여 주지 않는 다는 걸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책에 관한 소개를 보면, 어김없이 주문하기 마련이다. 이 책만 읽으면 뭔가 될 것 같은 느낌, 바로 그런 느낌으로 "나이는? 성별은? 사는 곳은?" 이런 얘기를 하게 되는 것 아닌가.
"사진 좀 보내주세요."
라는 말을 급하게 내뱉는 상대는, 그냥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그만큼 강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스로를 제어하는 것에서 부터 낙제점이란 얘기다. 자기 제어에 합격점을 받은 사람들은 당장 사진을 보자고 달려들기 보다는 친분이라는 완충제를 만드는 일에 더 힘을 쏟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 자기 사진을 보내주는 남자는요? 그런 남자는 괜찮은 건가요?"
그 남자는 그냥 자기 사진에 자신이 있는 거다. 그 사진만 보여주면 당신이 덥석 물거라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닥 호감 가는 사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진을 먼저 전달하는 쪽은, 그저 자신의 사진을 보내고 당신 사진을 받는 '사진교환'에 의의를 두고 있거나 자신의 사진이 당신에게 '낙제'는 면할 수 있는 가를 시험해 보는 것일 가능성이 크고 말이다.
불만족의 욕구에서 시작된 만남은 몇 주간 황홀하겠지만, 그 만남에서 다시 불만족을 찾는 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무리 사랑이 결핍에서 부터 시작한다곤 하지만, 그 결핍이 상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당신은 머지않아 지치게 될 것이다. "날씨도 꿀꿀한데, 술 한잔 하실분."이라는 제목으로 만나는 것은 더 말 할 것도 없고 말이다. 아직 상대의 신발 사이즈도 알지 못하면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사연들이 좀 줄었으면 한다.
2. 나중에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되면
당장 내일, 아니 오늘 저녁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나중'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나중에 술 한 잔 하자."라는 대부분의 약속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듯, "나중에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되면 너에게 어쩌구."라는 말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기 십상이다.
다가왔다가, 나중을 빌미로 도망가는 상대를 애써 쫓지 말길 권한다. 계속 쫓아 봐야 막연한 약속에 걸어둔 희망에 스스로만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 '나쁜남자'라 얘기하거나, '연애하면 잘 챙겨주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말하는 남자, 또 '연락을 잘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와는 되도록 만나지 말길 권한다. 연애에 가장 필요한 것은 노력이다. 지금 서로에 대해 100%의 호감이 있는 두 사람이 만났다면, 앞으로 두 사람의 호감도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 줄어드는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 연애다. 그런데, 노력에 자신이 없다는 핑계를 대 버린 상대에게 당신은 훗날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야 당장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뭐든 다 괜찮으며, 점점 바뀌게 될 거란 '근거 없는 희망'을 가지고 있겠지만, 선포까지 해버린 누군가의 성격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이렇게 얘길해도 당신은 상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가며 찌질 3종세트 (쿨한척, 집착, 물귀신)를 선물로 주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를 알아보려면, 적어도 100일은 넘게 만나보자. 그래야 중간에 쑥과 마늘이 싫다며 뛰쳐나갈지 아닐지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만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진도는 다 나가놓고, 이제 와서 복수를 하겠다느니 나쁜 놈이라느니 하는 얘기를 하진 말자. 늘 얘기하지만, 그의 '말'에 기대기보다는, 그의 '행동'이 무엇을 증명하는지 정신 차리고 보자. 이건 당신의 반평생을 결정지을 수 있는 일이다. 그냥저냥, 하는 식으로 접근해선 위험하다.
"그 남자는 그런 남자가 아니에요."
한 십 년 전인가, 우리 동네에 일본의 큰 게임회사에서 근무한다는 남자 하나가 이사를 왔다. 그 남자는 일산 호수공원 근처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일본 회사의 게임센터가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그는 일본에 설립되어 있는 게임센터 동영상이며 사업계획서 등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그들의 관심을 믿음으로 바꿔 놓았다.
난 당시 버스에서 오줌을 참다가 버스의 급정거로 인해 방광이 터졌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던 꼬꼬마 였는데, 그 남자의 '게임센터' 이야기엔 관심이 가질 않았다. 그 남자는 게임센터가 들어서면 구역 별로 담당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흘렸는데, 동네 사람들은 자신이 벌써 그 구역 담당자라도 된 듯 그 남자의 기사와 비서노릇을 하며 충성했다.
그 남자는 그 곳의 부지를 촬영해 일본으로 보내야 한다며 캠코더를 수소문 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앞다퉈 캠코더를 사서 바쳤다. 고양시청에 가서 누구를 만나야 한다는 그 남자의 이야기에 동네에서 슈퍼를 하는 아저씨는 가게 문을 닫고 자신의 차로 기사를 자처했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저녁이면 그 남자를 초대해 저녁을 대접하려 치열하게 다퉜다.
일산에 사는 주민이라면, 호수공원 옆에 게임센터가 아닌 킨텍스가 들어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위의 이야기가 '해프닝'으로 끝났다는 걸 알 것이다. 하지만 당시엔 다들 그 남자의 이야기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씨디 한 장과 몇 장의 종이에 그 남자의 호탕한 성격과 매너가 더해지니, 의심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갖은 호의를 다 누리던 남자는 일본에 들어갔다 와야 한다며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다.
공백이 길어지자, 서서히 사람들의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 남자를 모시려고 회사까지 그만 둔 이씨 아저씨는 그래도 얼마 까지는 "그 사람, 그럴 사람 아니에요."라며 충성했다. 하지만 몇 달 후 그곳에 '킨텍스'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씨 아저씨도 새 직장을 구했다.
그 남자가 '사기'를 치려고 접근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 계획을 추진하려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그런 것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동네 사람들에게 직접 뭔가를 요구했다기 보다는, 그가 흘린 말에 동네 사람들이 알아서 모신 것이니,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남자만 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욕하려면, 동네사람들의 욕심과 과잉충성도 함께 그 대상이 되야 할 테니 말이다.
당신이 말하는 '그 남자'와 내가 말하는 '그 남자'는 다르지만, 또 그렇게 다르지도 않다. 좋지 않은 결말엔 그 남자의 잘못만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그 남자가 어떻든, 길게 보자. 길게 보면 보인다. 지금 당장 연애를 못하거나 시집을 못 가서 죽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당신의 반평생을 함께 보낼 사람을 정하는 일엔 좀 더 신중을 가하자. 길게 보면, 분명 볼 수 있으니 말이다.
▲ 버스에서 오줌을 참다가 급정거로 방광이 터졌다는 얘기를 지금도 믿는 건, 안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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