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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연애를 처음 하면 겪게 되는 세 가지 증상

by 무한 2011. 4. 14.
그간 매뉴얼에서 이야기 한 대로, 자기 마음의 집에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면, 모태솔로부대원들도 그대도 드디어 '첫 연애'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새 집은 어디나 그렇듯 '새집증후군'의 문제가 남아 있으며, 마음의 집에 들어올 입주자가 잔금을 치르지도 않은 채 집에 눌러 앉아 버리는 문제, 입주자가 안방을 창고로 쓰고 벽에 낙서를 하는 등의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문제들이 실제 부동산과 연관된 거라면, 법적인 구제방법이나 자주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여러 지침들이 있지만 연애엔 그런 게 만들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그 '지침'들의 초안을 만드는 심정으로 매뉴얼을 작성할까 한다. 

아래에서 이야기 할 이 증상들은 마치 수두와 같아서 대부분 연애를 처음 시작했을 땐 한 번쯤 앓게 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아직 연애경험이 없는 모태솔로부대원들의 경우, 겨드랑이에 털이 나기 시작한 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증상들을 경험한 적 없기에, 그 고통과 괴로움이 더 생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남들도 한 번쯤 다 겪게 되는 일이니 '역시 난 연애할 팔자가 아닌가봐.'라거나 '남자는 다 그렇다더니, 정말 맞네.'라며 높은 벽을 세우지 말자. 그 수두 같은 증상들을 자꾸 만지지 말고, 손으로 잡아 뜯지도 말며, 흉터가 남지 않도록 그 시기를 잘 보내는 방법을 함께 알아보자.


1. 손님과 입주자의 혼돈

손님이 동성인 경우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음이 집에 찾아온 '동성손님'과 밥을 먹고, TV를 보고, 커피를 마시는 등의 일을 자연스레 한다. 그리고 그 '동성손님'이 이제 집에 가보겠다며 일어서도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 정도를 하며 집 앞까지 배웅을 한다. 하지만 그게 이성손님이라면,

'뭐야? 여기서 나랑 같이 살겠다는 거 아니었어?'

라며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반가운 사람이 집에 놀러왔다가 떠날 땐 아쉬운 게 당연하지만, 이 이성손님에게는 아쉬움을 넘어 병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배웅은 커녕 원망의 눈초리로 상대를 바라보는 일을 벌이거나, 상대는 알아듣기 힘든 "그냥 어장관리 했던 거였니?"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만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한 사연을 보자. 한 음식점에 젊은 남자 사장님과 식당이모, 그리고 사연의 주인공인 여대생, 이렇게 세 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과 식당이모는 정말 착한 분들이라, 그 여대생에게 학업이나 미래, 건강, 이성교제 등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 주셨다. 그 식당에서 판매하는 음식을 먹는 것은 쉽게 질릴 수 있기에 식사 시간이 되면 사장님이 멀리까지 나가 맛있는 음식들을 사오기도 했다. 그녀의 생일에는 깜짝파티도 열어 주었으며, 여름휴가 때엔 얼마 안 되지만 재미있게 놀고 오라며 휴가비도 많이 챙겨 주셨다.

자, 여기까지 읽으며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는가? 종종 "혹시, 알고보니 그 사장님이 여대생의 친아빠 였던 거 아닌가요?"라며 수목드라마를 쓰는 대원들이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는데, 그런 건 아니다. 전혀 이상한 부분 없이 말 그대로 '가족 같은 식당'의 모범적인 예로 이해할 수 있는 사연이다.

그런데, 그 여대생은 이 이야기에서 엄청난 착각을 해 버린다. 사장님이 자신에게 이성으로서의 마음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잘 해주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이상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 시작하니, 사장님의 모든 행동들이 자신이 추측하는 대로 보이고 만다.

출출하면 간식을 사오겠다는 사장님의 말에 '내가 출출할까봐 걱정하고 있어.'라는 생각을 하고, "숙희도 얼른 연애 해야지. 만나는 남자 없어?"라는 질문에 '나한테 남자친구가 있는지 떠보고 있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 늦게 출근 할 것 같으니 대신 가게 오픈 좀 해달라는 전화에 '이렇게 연락할 거리를 만드는 군.'이란 생각을 해 버린다. 그러다 결국 '내가 이제 학교 수업 때문에 더 이상 식당에 못 나온다고 얘길 하면 어떻게 반응하나 봐야겠어.'라는 엉뚱한 계획을 세우고, 그만 두겠다는 얘기를 한다. 그 말에 사장님은 매우 안타깝다는 대답만 할 뿐 잡지 않고, 하는 일 다 잘 되길 바란다는 덕담만 내민다.

"그 사람에게 전 어떤 존재인가요? 절 그냥 만만하고 쉽게 봐서 저한테 잘해줬던 걸까요? 아니면 제가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 처지라서 저와 연애를 할 생각이 없어진 건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절 어장관리 했다는 생각도 들긴 하네요. 전 그 사람에게 그냥 이 정도의 존재라는 게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그 사람을 진심으로 대했던 제가 바보 같이 느껴지네요."

결국, 그 여대생은 안드로메다 소인이 찍힌 위의 메일을 나에게 보낸다. 그리고 난 그 메일을 한 번 읽고는 '혹시 내가 독해력이 떨어져서 이야기를 이해 못한 건가?'라며 두세 번 다시 읽는다. 아무리 다시 읽어도 여대생의 분노와 증오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위의 사연은 명확히 읽히는 일이라 다들 혀를 찰지 모르지만, '식당 사장님'이 아니라 '교회 오빠', '학교 오빠', '아는 동생', '대학 동창' 뭐 이런 형태로 재구성 되면 그대도 "남자가 어장관리 한 듯."이라며 엉뚱한 결론을 향해 달릴 수 있는 일이다.

친절한 이성, 매일 보게 되는 이성, 가까이 지내는 이성,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 주는 이성, 생일을 챙겨주는 이성, 이런 모든 이성들을 다 '연애의 상대'로만 생각하진 말자는 거다. 상대가 자신에게 보이는 호의를 모두 '연애할 마음이 있다는 증거'로 해석해선 곤란하다.  

재촉하지 않아도 봄이 오면 꽃이 피지 않는가. 당신의 집에 찾아온 그 사람 때문에 헷갈리거나 아리송한 상황이라면 우선은 '손님'이라고 생각하자. 누가 문을 두드린다고 계약서부터 찾지 말고, 당신의 집을 마음껏 볼 수 있게 해 주자는 거다. 명심하자. 손님을 못 나가게 막는 게 아니고, 상대가 당신과 계속 함께 있고 싶어 입주하게 만드는 거다.


2. 할 필요가 없는 말은 하지 말자

그대가 싼 값에 차를 하나 사곤 마음이 들떠 있는데, 자동차 판매직원이 아래와 같은 문자를 보냈다고 가정해보자.

"그 차, 정말 새 차랑 다름없는 차에요. 전에 그 차를 산 고객님이 색상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5킬로도 안 타고 바꾼 차거든요. 그 고객님이 색상 문제 하나로 교환이 어렵다는 걸 알고, 엔진소리가 크다느니 기어가 뻑뻑하다느니 하는 얘기를 했는데, 그건 정비센터에 알아 본 결과 아무 이상 없구요. 지금은 정말 막 나온 새 차랑 아무 차이도 없어요. 항상 안전운전 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이 문자를 보고 나서 그대는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아, 그렇군. 내가 운이 좋았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대가 나와 비슷하다면 엔진소리가 유난히 큰 것 같고, 기어가 뻑뻑한 것 같으며, 엑셀을 밟을 때 뭔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 거라 생각한다. 게다가 저 문자를 다시 천천히 읽으며,
 
"저 얘기를 나한테 왜 하는 걸까? 뭔가 숨기고 싶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저런 이야기들을 하는 걸 보면, 이 차에 무슨 이상이 있는 것 같은데..."

라는 궁금증을 가질 수도 있다. 그저 '단순변심으로 인해 반품된 차가 반값에 나왔다.'라고만 알고 좋아하던 기분이, 디테일한 위의 이야기를 듣곤 물에 젖은 양말을 신은 듯 찝찝한 기분으로 바뀐다. 연애를 처음 하게 되는 솔로부대원들이 벌이는 실수가 바로 저 판매직원처럼 '할 필요가 없는 말'을 다 해버리는 거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지금 막 함께 연애를 시작한 상대가 자신의 과거 짝사랑 이야기를 늘어놓고, 그간 자신이 느껴왔던 외로움을 열변하며, 목을 조여 오는 것 같던 일상과 늘 패배한 느낌에 젖어 있었다는 고백을 했다. 그대에겐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코 그 이야기를 유쾌한 기분으로 듣고 있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솔로의 시간을 오래 가졌던 대원들은 조금만 친해져도 고해성사하듯 다 털어 놓아 버리는 거다. 그런 이야기들을 털어 놓으며 위로 받는 기분을 느끼고, 자신의 비밀들까지 상대에게 알린다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듣는 사람은 절대 유쾌하지 않으며 그 이야기들을 머릿속 깊이 저장하게 된다.

"연인끼리 그런 말도 못하나요? 사귀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요."

라고 말하는 대원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 솔직함이란 무엇인가? 지금 당신이 가지는 감정 아닌가. 그 감정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지금은 깊이 생각해야 하는 영화 보다는 그냥 치고 박고 부수는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 해도, 시간이 지나며 요란한 영화 보다는 차분히 감상할 수 있는 영화가 더 좋아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 감정변화를 상대에게 업데이트 하는 것은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까닭에, 상대는 당신이 처음 얘기한 것을 기준으로 당신의 이미지를 구축할 위험이 있다.

가리고 숨기고 감추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저 감정에 의지해 구구절절 모든 이야기를 풀어 놓지 말고 한 번쯤 생각해서 이야기 하자는 거다. 당신이 지금 상대에게 하는 말이, 상대에겐 당신에 대한 이미지로 박혀 훗날 수정이 불가능해 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 더 조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꼭 자신에 대한 고백이 아니라 상대에게 하는 모든 말에 말이다. 특히 남성대원들은,

"넌 밥만 축내는 똥 만드는 기계잖아."

따위의 얘기를 절대 장난으로라도 상대에게 건네지 말길 바란다. 누가 저런 얘기를 하냐고 물을 지 모르지만, 실제로 저 이야기를 한 대원이 있고, 현재 상대와 모든 연락이 끊어진 상태다. 장난으로 툭툭 던진 말에 둘의 관계는 복구 불가능한 금이 갈 수 있다. 상대가 장난으로 툭, 친걸 가지고 복수심에 불타올라 하이킥으로 반격하지 말자.


3. 보채면, 끝장이다


장담하는데, 보채는 그 순간 끝장이다. 오늘 매뉴얼에서 한 이야기는 다 잊어도 좋은데, 이거 하나 만큼은 좌뇌 한 가운데에 깊게 새겨두길 권한다. 보채면, 진짜, 정말, 레알, 끝장이다.

"네가 자꾸 이럴 때마다 정말 힘들어. 내 할일도 많은데, 그런 부분들까지 다 신경 써야 한다는 걸 진짜 견디지 못하겠어. 나도 좀 마음 편하게 내 할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

상대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아, 내 보챔이 결국 날 스팸메일로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대 놓곤 또,

"저녁 먹고 나서 연락해 달라고 한 게 그렇게 잘못이야? 그 정도는 연인끼리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아니,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걸 공유하면서 사귀는 거 아냐?"

라고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물론, 나야 그대의 친구들처럼 그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뭘 요구한 것도 아니고 밥 먹고 전화 한통 달라는 걸 가지고 무슨 신경을 써야 한다느니 어쩌느니, 내가 지한테 공부하라고 닥달한 것도 아니고, 지가 정신차리겠다며 시작한 공부면서, 왜 짜증을 나한테 내는 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쟨 그냥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다. 그리고 하고 있는 공부도 잘 안 되는 거다. 그러니까 자신의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나오는 괴리감에 미치기 일보 직전인데, 그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는 거다. 사람이 욕을 하거나 화를 낼 때는 언제인가?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거나,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가 앞에 나타났을 때 아닌가. 그래서 저 지경이 된 거다.

거기에 대 놓고 논리적으로 나가봐야, 상대는 극단적인 선택이 자신을 구원해 주길 희망하며 문제들을 잘라 내거나 접는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당면한 대원들에게 늘 "마음의 수도꼭지를 잠그세요."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다. 물이 한 없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다면, 누구나 그 물을 아무 생각 없이 흥청망청 쓰며 '물 따윈 어때도 상관없어.'라고 생각해 버린다. 하지만 물이 나오지 않으면 대체 물이 왜 나오지 않는 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 시작하며, 물이 제대로 나올 수 있게 고치느라 하루 종일이라도 수도꼭지에 들러붙어 있다.

무슨 얘긴지 감이 오는가? 한 없이 쏟아져 나오는 당신의 관심과 사랑 덕에 상대는 아무 갈증도 느끼지 못하고 있단 얘기다. 연애를 시작했다고 해서 '사랑'만을 위해 살거나, '상대'하나만 보며 살진 말길 권한다. 당신이 담당해야 하는 것은 딱 절반이다. 그리고 그 절반을 넘어서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그 절반이 채워지지 않아 괴로워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도 기억하자. 모자란 건 서서히 채워갈 수 있지만, 넘치는 건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 꼭 기억해 두길 바란다.


마무리 짓는 글을 길게 써 두면, 또 위에서 했던 말을 잊을 까봐 그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매뉴얼을 마친다.

보채면, 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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