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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30년 간 여자에게 어장관리만 당했다는 K씨에게

by 무한 2011. 10. 5.
30년 간 여자에게 어장관리만 당했다는 K씨에게
사연을 보낸 K씨는, 도무지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남들 다 가슴 졸이던 대학입시에서도 그는 별 걱정 없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군대도 별 탈 없이 다녀왔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도 졸업 후 처음 지원한 회사에 합격해 들어간 곳이었다. 그런데 연애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거였다.

K씨가 흔히 말하는 '조건'에서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학교 이름을 말하면 남들의 대접이 달라질 정도로 좋은 대학을 나왔고, 회사 이름을 말하면 친구 부모님의 대우가 달라질 정도로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혹시 그럼...'이라며 지목할 외모나 화술. 그 둘 역시 소개팅 상대가 먼저 애프터 신청을 한 적 있을 정도로 출중한 편이었다. 

"그럼 대체 문제가 뭔가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요?"


라고 묻는 대원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소개 받을 때에도 기준이 되는 외모, 학벌, 직업. 이 세 가지에 문제가 없는데 왜 K씨는 연애를 못 하는 걸까? 그 이유를 함께 들여다보자.  


1. 여자를 숨 막히게 하는 고지식함


고지식한 게 나쁜 건 아니다. 좋은 쪽에서 바라보면, 그건 정직한 사람임을 나타내는 표시이기도 하다. 고지식한 사람은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있기에, 쉽게 찾아오는 타협의 유혹도 물리친다. 하지만 그 원칙을 남에게도 똑같이 적용시키려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 광화문역 7번 출구인데, 왜 안 오시죠? 지금 오 분이나 지났는데요. (출처-오유)


사연에서 K씨는, 상대가 자신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굉장히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인다. 평소와는 달리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상대가 맥 빠질 정도의 실망을 어떻게든 전달하려 한다. '오전에 문자를 보냈는데, 점심시간이 넘어서까지 답장이 없다는 건 내가 싫다는 증거다.'라는 생각을 한 K씨는 상대에게 이런 문자를 보낸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요. 사람 기다리게 만들지 말고."


저 문자를 받으면, 있던 정도 떨어질 것 같다. 스물 몇 살 꼬꼬마 연하남이 보낸 거라면, '어머어머, 요것 봐라. 귀엽게 앙탈부리네.'라며 웃을 수 있겠지만, 시커먼 서른 살짜리 남자가 저런 문자를 보내면, 무서울 뿐이다.

이 외에도, '언어적'표현이 아닌 '비언어적'표현으로 상대를 자극하는 것들. 이를테면,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상대에게 똥 씹은 얼굴을 보여준다거나, 비웃는다거나, 심지어 고개를 가로젓기까지 하는 것. 또는, 긴 침묵으로 불만을 표시하거나, 전화를 갑자기 끊는다거나,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뒤 돌아 가버리는 행위들. 그런 것들이 상대를 숨 막히게 만든다.


2. 검사 K


우리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는 잘 짖는다. 집에 있을 땐 현관에서 발자국 소리만 나도 짖고, 밖에 나가선 낙엽이 바람에 날리는 걸 보고도 짖는다. 사나워서가 아니라, 겁이 많아서 그렇다. 무섭기 때문에, 실제론 그 발자국 소리나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짖는 것이다.

K씨가 사연에

"정말 아파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핑계 아닐까요?"
"돈 때문에 저랑 만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제가 어장관리 당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고 적어 놓은 이야기를 보며, 간디가 떠올랐다. K씨는 겁을 먹은 거다. 상대가 어장관리를 하는 건 아닐지, 돈 때문에 자길 만나는 건 아닐지, 지금은 다정하지만 나중엔 돌변해 차갑게 굴진 않을지 무서운 거다. 그래서 상대에게 우선 '유죄'판결을 내려놓고, "무죄라면, 항소하세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K씨와의 만남은 '재판'이 되어 버린다. 그것도 억울하게 '유죄'를 미리 선고 받은 뒤 참여하게 되는 재판이다. 몇몇 여성들은 K씨의 이런 판결에 항소하는 인내심도 보여줬다.

"싫은 건 아니에요."


같은 얘기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1심을 가까스로 넘긴 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K씨의 2차 재판이었다. 물론, 또다시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로 말이다. K씨는 이런 말을 했다.

"그 여자는 처음부터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난 그저, K씨가 얼른 그 검사복 부터 벗어 버리길 바란다.


3. 공략이 아니다.


지겹도록 한 얘긴데, 연애는 공략이 아니다. 이런 저런 기술 배워 상대를 쓰러뜨리면 연애로 '레벨 업'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몇 번이나 강조하지 않았는가.

외국에 살다 잠시 한국에 놀러온, 사촌 여동생을 대하는 것처럼!

상대는 몬스터가 아니라 그냥 사촌 여동생이다. 그러니 겁내지 않아도 좋다. 사촌 여동생에게 자신의 생활을 보여주듯 데이트를 하자. 또, 그녀는 외국에 살다와 한국말을 잘 모를테니,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충분히 자세하게 설명해 주자. 그리고 그녀는 외국어를 사용할 테니 놓치지 않기 위해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쉽지 않은가?
 
아프다는 상대는 챙겨주면 되는 거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묻고,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도와주면 되는 거다. 그런데 왜 그런 상대를 두고 '정말 아픈 게 맞을까? 무슨 음모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을 품는가. 도와주진 못할망정 아프다는 상대를 두고, "정말 아픈 게 맞는지 증명해 봐."라는 얘기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소개팅 주선해 준 친구가 그러더군요. 일일이 간섭하지 말고, 좀 쿨하게 가라고."


내 생각도 그렇다. 상대에게 목줄을 하려 해선 안 된다. 상대는 애완견이 아니다. 자꾸 목줄을 매려 하니 상대는 도망가려 하는 거고, 상대에게 목줄을 못 맨 K씨는 또 화를 내는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K씨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라는 거다. K씨의 사연엔 '기존에 괜찮다 싶어 연락하고 지내던 여자들'이란 표현과 '이 여자 두 명 중 한 명'이란 표현이 나온다. 그걸 보며 내게 든 생각은,

'뭐야, 이 사람, 연애 할 여자를 쇼핑하듯 고르고 있잖아.'


였다. 진짜 '어장관리'를 하고 있는 건, K씨 본인이 아닐까? 상대들이 자발적으로 어장에 들어온 게 아니라서 그렇지, K씨는 이 여자 저 여자 연락하며 간 보고 있지 않은가.

진심이 아닌 행동은 드러나는 법이다. 마음을 흔드는 한 사람에게 다가가길 권한다. '지금 저랑 연애하실 분!'만 외치지 말고,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상대와 대화부터 시작하자!



▲ 이 어장에 다리 하나, 저 어장에 다리 하나. 문어씨, 자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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