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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꺼냈다간 본전도 못 찾는 최악의 고백 타이밍

by 무한 2011. 9. 29.

수 년 전의 일이다. 술에 취한 친구를 그의 자취방까지 데려다 주고 나오는 길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문자가 왔다. '이 시간에 누구지?'라며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김미영 팀장입니다. 고객님께서는 최저 이율로 최고 3천만 원까지..."



잠깐이나마 설렜던 것을 부끄러워하며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는 찰나,

물컹,

내딛은 왼쪽 발목에 신비한 느낌이 찾아왔다. '황홀하다'는 표현을 직접 경험한 것이라고 할까.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아픔과 슬픔, 고통과 불안 등이 모두 사라진 듯 했다. 9와 4분의 3 정류장(소설 <해리포터>에서 마법 학교로 가는 정류장)이 실재한다면, 아마 그 정류장에 발을 내딛는 기분이 딱 그럴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발목을 삔 거다. 난, 나무 조각으로 쌓은 탑의 맨 아래 조각을 뺀 것처럼 무너졌다. 너무 아파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으허허어어허헝 허허 허헝'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다리를 부여잡곤 한참을 그 계단에 누워 있었다. 시간이 지나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난 친구의 자취방이 있는 2층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인어 같았다.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의 심정을 느끼며, 난 친구의 자취방에서 울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부어서 신발도 들어가지 않는 발을 가지고 병원을 찾았고, 깁스를 했다. 반 깁스를 했다가, 붓기 빠지고 통 깁스를 하는 등의 과정도 있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생략하기로 하고, 그렇게 몇 주를 보내니 너무 불편했다. 목발 때문에 겨드랑이는 비명을 질렀고, 깁스 한 다리는 이상하게 간지러웠다. 난 결국, 두 주 더 남아있는 치료기간을 무시하고 혼자서 깁스를 풀어 버렸다.

그 때 마음대로 푼 깁스 때문에, 난 지금까지도 왼쪽 발목이 아프다. 늘 아픈 건 아니지만, 발목을 좀 쓰는 날이면 어김없이 왼쪽 발목에서 신호가 온다. 요즘처럼 날씨가 좀 추워지는 시기나 비가 오는 날에도, 왼쪽 발목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

'이쯤이면 고백해도 되겠지?'라든가 '더 기다리기 힘들어, 지금 고백해야 해!'라며 벌인 고백들 역시, 마음대로 풀어 버린 깁스처럼 '후유증'을 남긴다. 이젠 이쪽의 이름만 들어도 상대가 기겁을 하거나, 애써 '예전처럼'으로 돌려보려 하지만 상대와는 계속 멀어지기도 한다. 그 '최악의 상황'으로 접어들지 않으려면 알아야 할 이야기들, 오늘 함께 살펴보자.


1. 전화도 못 하면서

 

대략이라도 '고백의 타이밍'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잡아달라는 부탁 때문에, 매뉴얼에서는 이미 한 차례 그 선을 정한 적이 있다.

고백 가능 시점 - 상대와 30분 이상의 통화가 주 3회 이상 이루어지는 경우.



'고백의 타이밍'은 수치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조건'을 건 이유는, '상대와 연락하며 지내게 된 것을 기회라고 생각해 고백하는 대원들''뭐해, 그렇구나, 자니, 밥 먹었어, 따위의 대화만 하다가 가까워졌다고 착각하고 고백하는 대원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자로 첫 인사부터 고백까지 다 하려는 대원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잠시, 오늘 아침에 도착한 사연에 나오는 문장들을 잠시 보자. 9월 초, 버스에서 만난 여자사람에게 연락처를 물어본 뒤 지금까지 '다가가고 있다'는 P군(27세, 대전)의 이야기다.

"저녁 6시가 넘어서야 답장이 오더라구요."
"저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날은 문자를 안 보냈어요."
"혹시 이모티콘 때문인가 싶어서, 그 다음부터는 다 빼고 보냈습니다."
"그녀의 답장은 '이러이러(생략)'한 것이었습니다."
"습관일 수도 있겠지만 'ㅋ'를 많이 쓰는 걸로 봐서, 그녀도 즐거운 것 같았습니다."
"그 날 저녁이 될 때 까지도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척 하고, 혹시 제 문자를 못 받은 건지 물어봤습니다."



몇 주 만에 얼굴을 보게 된 상대에게, 그저 "제 문자를 못 받으신 건가요?"라는 이야기밖에 할 수 없는 걸까? 문자로 나누던 대화를, 얼굴 보고 하면 무슨 큰 일이라도 생기는 걸까? P군의 사연을 읽으면서 난,

'상대를 알아가기 위해 문자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문자를 주고받기 위해 상대가 필요한 사람 같아.'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P군과 같은 대원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은 앞으로 '그녀가 답장을 잘하는' 시기가 찾아오면 고백 할 거라는 얘기까지 한다. 내 생각에, 앞으로 그 대원들에겐 '문자로 통보받는 거절'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2. 그냥 '아는 사람'이 되어 버릴까봐?



이건 여성대원들이 많이 하는 실수인데, 상대에게 별 반응이 없을 시 이대로 그냥 '아는 사람'이 되어 버릴까봐 서둘러 고백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들을 막기 위해, 오늘 확고한 '가이드라인'을 하나 더 세워두자.

고백 가능 시점 - 연락이든 만남이든, 상대가 날 위해 충분히 시간을 낼 수 있는 경우.



무슨 이유든 간에, 상대가 그대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절대 고백하지 말길 권한다. 그런 상황에서 하는 고백은 '갑을관계''주종관계'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아니면 그냥 그의 '팬클럽 회원'이 되거나 말이다.

"그래도 괜찮아요. 제 마음을 받아주길 바라고 하는 고백이 아니니까요."



뻥치시네. 말이 심했다면 미안하고, 아무튼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대원들이 있을지 모르니, 숨기고 싶은 '불편한 진실'을 잠시 꺼내보자. 그가 그대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건, 그의 마음이 딱 그만하다는 걸 의미한다. 작년 쯤 우리가 즐겨 사용하던,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갑을관계'나 '주종관계' 또는 '팬클럽 회원'보다는, '아는 사람'이 삼백이십 배 정도 낫다. 전자는 이미 '상대'라는 차를 들이받은 상황이고, 후자는 '상대'라는 차와 당신 사이가 좀 벌어진 것과 같다. 이미 들이받은 상황이라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하게 나누어진 것이다.

사고가 나기 전, 상대가 그대의 양보에 비상깜빡이를 켜 감사를 표시하기도 한 일이 있다 해도, 그건 사고 전이고, 지금은 사고가 나 버린 상황이란 얘기다. 상대의 차를 멈추게 하고 싶다고 들이받아선 곤란하다. 상대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어떻게든 더 많은 합의금을 챙기려 할 수도 있다. 상대가 정말 착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 그대가 사고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다치신 데는 없어요? 전 괜찮아요. 차가 부서진 것도 아닌데, 그냥 가셔도 돼요."



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자.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정말 죄송해요. 혹시라도 나중에 아프시면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정도로 미안함을 전하고 다시 차를 몰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저렇게 이야기 하고 차에 올라탄 상대를, 또 들이받는 대원들이 있다. '화를 내지 않는 게 뭔가 이상해. 화를 낼 생각이 없는 걸 수도 있어. 좀 더 들이받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라며 들이받는 것이다. 

그대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상대. 그런 상대의 주의를 끌겠다며 들이받기 보다는, '아는 사람'이란 차선에서 비상등도 켜 보고 경적도 울려가며 상대가 당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편이 낫다. 지금 그대가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상대는, 아직 설 마음이 없는 거다. 무작정 들이받지 말고, 상대 옆 차선에서 좀 더 달려보자.


3. 엎질러 놓고



누군가를 앞에 두고 "백만 원만 빌려줄래?"라고 묻는 것과 "백만 원이 급하게 필요하게 됐는데, 일을 어쩌지. 빌릴 곳도 없는데 말야."라고 말하는 것의 차이는 무얼까? 전자는 부탁이고, 후자는 고민을 가장한 부탁이다. (단, 상대에게 돈을 빌릴 생각이 전혀 없이 꺼낸 거라면, 후자는 푸념이나 고민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정식으로 고백한 적은 없기에,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정식으로 고백하고 싶습니다."



자꾸 그러지 말자. 사연을 보내면 읽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우리끼리 훼이크 쓰진 말자. 나를 속여 용기 내라는 말을 듣는다고 뭐가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사실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정식'으로 고백한 적은 없지만, '비 정식'인 방법들로 수차례 들춰본 '상대의 마음'이란 해답지를 말이다.

그대의 "백만 원이 급하게 필요하게 됐는데, 일을 어쩌지. 빌릴 곳도 없는데 말야."라는 말에, 상대가 "지인들에게 수소문 해 봐봐. 구할 수 있을 거야. 어쨌든, 힘내."라는 대답을 했다면, 그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이미 엎질러 진 걸 알면서도, "제가 정식으로 빌려달라는 얘긴 안 해 봤거든요.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용기 내서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그녀에게 백만 원만 빌려달라고 말해 볼래요. 힘을 주세요."라는 이야길 하는 대원들 때문에, 난 또 슬퍼진다.

상대에게 백만 원을 빌리려면, 동정심에 기대 구걸을 할 게 아니라 그대의 '신용'을 보여줘야 되는 거다. 그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아무에게나 돈 빌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상대에게 알려야 한다. 자신의 신용은 보여줄 생각도 않고, '정식으로 고백한다'며 상대에게 부담 하나 더 떠넘기는 일은 더 이상 벌이지 말길 권한다. 


지난 주 방송된 <나는 가수다 - 조용필 스페셜>에서, 조용필은 <창밖의 여자>를 부른 윤민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초창기에는 나도 감정을 많이 넣었다.
하지만 내가 감정을 많이 넣으면 듣는 사람은 덜 받는다.
감정을 조금 줄이고 밝게 불러도 괜찮을 듯싶다."

- 조용필, <나는 가수다>방송 중에서

 

그대의 심장이 빨리 뛴다고 해서 "들어 봐. 내 심장소리 들리지? 난 이만큼 너를 좋아해."라며 무작정 고백해선 곤란하단 얘기다. '고백의 타이밍'을 잡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상대다. 상대의 심장이 뛰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의 열정적인 고백도 상대에겐 '술 취한 사람의 난동'쯤으로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나'만 생각하던 꼬꼬마의 모습을 벗고, 이젠 '너'도 생각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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