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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온라인에서 연애를 시작하려는 여자가 겪는 부작용

by 무한 2012. 4. 20.
온라인에서 연애를 시작하려는 여자가 겪는 부작용
동호회 활동을 통해서라도 이성을 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나가길 권했더니,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만 하고 있는 대원들이 있다. 그 대원들이 '많은 대화를 나눴다'며 내민 증거물은 '채팅'과 '댓글활동'이다. "나무를 하나 심어서 키워보세요. 그럼 가을에 열매를 볼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에, "스마트폰 어플 중에 농장 관리하는 어플 있어서 그걸로 대신하고 있어요."라는 대답을 듣는 기분이랄까. 난감하다.

실제로 만나는 것은 어색하고, 불편하고, 부담스러우니 온라인에서 채팅하고 댓글 달며 그 과정을 대신 하겠다는 대원. 그들에겐 "연애도 온라인으로 하실 건가요?"라고 묻고 싶다. 매뉴얼에서 권했던 동호회는 뚜렷한 주제가 있으며, 오프라인으로 자연스레 만남이 이어질 수 있는 동호회였다. 함께 만나서 차를 마시는 차 동호회나,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진 동호회 등의 모임 말이다.

사연을 보낸 대원들이 가입한 동호회는 대부분 '친목'이 목적인 동호회 였다. 동호회 이름을 밝히면 다들 '아- 저런 동호회는 좀 그렇지.'라고 쉽게 공감할 텐데, 각색해서 소개해도 너무 티가 나니 이름은 밝히지 않도록 하자. 여하튼 그런 친목 활동을 오래 하게 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 오늘 하나하나 살펴보자.


1. 연출력의 극대화.


사연에선 외모에 자신감 없고, 어울리는 친구가 별로 없고, 불행한 유년기 때문에 상처가 깊다고 말하는 한 여자가 보인다. 그런데 그녀가 첨부한 채팅이나 댓글 기록을 보면 주위에서 귀엽다는 소리를 종종 듣고, 문화활동을 즐기며, 가족여행을 자랑하는 새침한 여자가 보인다. 

둘 다 연출이다. 하나는 그녀의 보라색 얘기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빨간색 얘기다. 그녀의 '진짜' 모습은 그냥 백색광이다.  

"나는 사람이다. 인간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치고 나에게 낯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는 테렌티우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 무엇. 아마 그것이 '진짜'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스펙트럼 중 한 색을 고른다. 그러곤 그 색만이 자신의 모습인양 연출한다. 

그녀는 자신의 좋은 모습, 괜찮은 모습, 호감 갈 만한 모습만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연출도 기술인지라 계속하면 는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그녀가 빨간색이라고 완전히 믿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그녀 스스로는 자신을 보라색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이대로 쭉 웹에서만 만나는 사이라면 별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실제로 만나서 연애를 하는 것 아닌가. 만나서

"데헷, 히힝, 뿌뿌, 푸푸"


따위의 소리를 실제로 내가며 대화를 할 수 없기에 그녀는 상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 사실 낯을 좀 많이 가리고, 실제로는 말이 별로 없어요..."


도도한 척 하며 와인을 모으고 마시는 게 취미라고 말하던 사람이, "사실 저, 알콜중독 치료를 받고 있어요. 와인보다는 소주를 더 좋아하고요."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애초에 삼겹살과 소주를 좋아한다고 말했으면 아무 문제없을 텐데, 연출을 극대화 한 까닭에 간격이 너무 벌어진 거다. 그녀는 그 간격을 매워야 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상대는 그녀를 본 후 그 넓은 간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2. 휘발성 강한 이야기들.


밤을 잊고 채팅하며 나눈 수많은 이야기들. 한 대원은 이렇게 고백했다.

"밤새, 거의 매일, 채팅한 적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무슨 얘기들을 했었는지 기억이 안나요."



소외되지 않고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과 함께 그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는 것에 들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대화는 그냥 '수다'인 경우가 많다. 어디 사는지 말해줬는데 또 묻고, 생일이 언제인지 말해줬는데 또 묻고, 남동생이 하나 있다고 말했는데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또 묻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쉽게 말해 '카페채팅'과 '실제만남'은 '노래방공연'과 '무대공연'만큼 차이가 난다. 노래방 가려고 며칠 전부터 연습하며 자신의 어색한 부분을 고치거나, 어떻게 노래를 부를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가서 책 넘기다가 마음에 드는 노래 골라 예약하고, 순서가 오면 부르면 된다. 하지만 무대공연은 다르다. 한 곡을 부르더라도 고민하고 연습해야 한다.

그 고민과 연습이 발전과 발견을 부르기에 동호회 활동을 권했던 것인데, 그게 부담스럽고 불편하다며 타자실력만 늘리고 있는 대원들이 있어 가슴이 아프다.

물론, 이 부분에서도 댓글이나 채팅 등을 통해 누군가와 친해지고 이번 주말에 만날 약속을 잡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되는 대원들은 '화기애애하고 모두 친절한 분위기'에 취해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는 대원들이다. 3년째 친목 카페를 지키며 "내가 이 카페에서 제일 오래 되었어. 내 밑으로 다 조용히 해." 따위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대원도 있었다. 전에 대화를 나누던 카페 사람들은 면사포를 쓰는데, 그녀는 아직도 채팅 방장 왕관만 쓰고 있다. 아 잠깐만, 나 눈물 좀 닦고.


3. 돌고 도는 물레방아 연애.


내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연애'와 관련된 사연을 보낸 대원들의 공통점은 '두 사람 이상'의 썸남이 있다는 것이다. 그 대원들은 쪽지만 주고받아도 썸씽, 연락처만 교환해도 가능성 이라고 말한다. 뉴페이스가 답글만 달아도 두근두근. 내 눈물샘을 다 말릴 작정인가. 

위에서 말했듯 '화기애애하고 모두 친절한 분위기'니 이성만 보이면 자꾸 엮는 거다. 연락처는 카페활동 어느 정도 했고 정모 참석한 적 있으면 다들 교환하는 건데,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으니 일단 '썸남'으로 분류한다. 이모티콘을 가득 담아 문자를 보낸다. 다들 부드럽고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니 답장이 오지 않을 일도 없다. 

동호회 녀 - 아 맞다, 근데 3권 중반부에서 **가 죽던가요?
동호회 남 - 아뇨. 죽는 건 4권이죠. 3권은 농구장 얘기~ ^^
동호회 녀 - 에구에구. 제가 이래요. ㅠ.ㅠ 왜 기억을 잘 못 하지. ㅠ.ㅠ
동호회 남 - *****는 보셨어요? 그거 ******가 그린 거예요. ㅋ
동호회 녀 - 끼야~~~~앗! 얼른 봐야겠어요~ *^^* 헤헷~



저게 상대와의 대화내용이라며 나에게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시나요? 긴장해서 노멀로그에서 본 기술(?)들은 쓰지도 못했어요."라고 말한 대원도 있었다. 그러니까 저건 일종의 난센스 퀴즈 같은 건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렵다. 

어느 이성에게건 여지를 남겨두고, 그러다 누군가 다가오면 다가오는 대로 친해지고, 새로운 이성이 등장하면 또 새로운 이성에게도 여지를 남겨두고, 섣불리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면 커뮤니티 활동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 뜸 들이며 간 보고, 그러는 와중에 귓말과 개별연락으로 만날 사람은 만나고, 남들은 모르는 무언가가 진행되다가 틀어지면 둘 중 하나 잠수타고, 새로운 이성이 등장하면 또 친절하게 대하고.

오프라인에서도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긴 한다. 단, 오프라인에서는 시간과 용기와 책임감이 더 필요하다. 서로 알아가려는 결심이 선 뒤 의미부여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의미부여를 먼저 한다. 상대에 대한 상상을 먼저 하고, 그 상상한 이미지에 새롭게 알게 된 정보들을 갖다 붙인다. 채팅방에 있는 사람들이 현재 오프라인 카페에 앉아 얘기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기 바란다. 거기선 웃고 있지도 않으면서 'ㅎㅎㅎㅎ' 거리거나, 은밀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귓속말'같은 걸 할 수 없다. 대화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은 '눈팅' 대신 자리를 박차고 집에 가 버릴 것이고 말이다.


상대에 대해 아는 건 닉네임과 전화번호 밖에 없으면서 "저를 좋아하는 사람과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어느 대원의 사연이 가슴 아프다. 집에 숨어서 지켜만 보지 말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라고 했더니, 이번엔 온라인으로 숨어 버렸다. 그녀는

"카페에서는 제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제 사진도 절대 보여주지 않으면서 활동하고 있어요."



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댓글에 빈정상해 그를 미워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채팅창에서 건넨 한 마디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두근두근 하기도 해가면서 말이다. 몇 해가 지나도 자신이 채팅방을 벗어나지 못 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그냥 연애는 이대로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렇게 꼭꼭 숨어서 상상놀이 하면, 앞으로 몇 해가 지나도 그녀는 여전히 채팅방에 있을 것이다. 제발 현관문 밖으로 나가자. 댓글에 달린 단어 하나 가지고 미는 거네 당기는 거네 하는 이상한 얘기 하지 말고, 눈 마주보며 대화 할 수 있는 사람과 시작해 보자. 전기 나가도 볼 수 있고, 이름도 마음껏 부를 수 있는 오프라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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