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연애사연 세 가지, 요점만 살펴보기
사연을 받다 보면, 매뉴얼로 발행하긴 좀 곤란한 사연들이 있다. 오늘은 그 사연들에 대해 짧은 답장을 좀 적어둘까 한다. 그리고 왜 사연을 안 읽냐고 독촉메일을 보내는 대원들이 있는데, 현재 8월 중순 사연 까지는 전부 읽었다. 하루에 한 두 통의 사연이 오는 게 아니고, 첨부된 카톡대화들까지 전부 다 읽으려면 꽤 많은 시간을 들여도 실시간으론 소화할 수 없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낯모르는 사람에게 긴 편지를 쓸 정도면 그만큼 절박하다거나 절실하다는 것 아닌가. 그 마음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니 걱정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길 부탁드린다.
자, 매뉴얼로 발행하기 애매한 사연 세 가지. 출발해 보자.
대학생 대원의 사연이었는데, 그는 여자친구와 연애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헤어지자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기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전혀 이별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기에 그는 혼란스러웠다. 여자친구에게 계속 이유라도 말해달라고 매달린 끝에,
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J양은 학기 초부터 그를 좋아했던 여자사람 친구로, 학과에서는 영향력이 큰 친구였다. J양은 그의 여자친구에게 사귀는 티를 내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고, 주변에 좋지 않은 소문들을 퍼트렸으며, 그에겐 아무 내색 안했지만 그의 여자친구를 학과에서 왕따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고 한다. 한 달간 마음고생 하며 버티던 그녀는, J양의 괴롭힘에 결국 이별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저 사연을 보내며 내게 한 말은,
J양에게 지금도 저를 좋아하냐고 물어보고,
전 관심이 없다고 확실하게 못 박아 둘까요?"
였다. 그건, 연애와 학교생활 둘 다를 놓치게 만드는 바보 같은 짓이다. J양 찾아가서 깔짝깔짝 소심한 복수 하지 말고, 여자친구부터 챙기길 바란다. J양이 한 일들을 공개적인 자리로 끄집어 내 상황을 좀 변화시키고, 지금도 홀로 있을 여자친구 곁을 지키는 거다. 가슴이 까맣게 탄 여자친구는 그대로 방치해 둔 채 구경만 하고 J양 찾아가서 좋아하냐 아니냐를 묻는 건, 인기관리 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무슨 짓인가. 여자친구의 바람막이가 되어줄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바람 없는 곳에서 안전하게 사귈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길 바란다.
K씨는 소개팅 이전에 상대와 연락을 주고받다가 그녀의 미니홈피를 들어가게 되었다. 미니홈피엔 몇 년 전 사진과 글 밖에 없었지만 K씨는 그걸 모두 확인하며 그녀가 뚱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뚱뚱한 여자를 제일 싫어하는 K씨는 소개팅을 취소했다. 상대에게 안부를 물으며 들이대던 것도 즉시 접고 연애 할 생각이 없다며 둘러댔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주선자와 술을 한 잔 하다가 상대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성형외과 Before & After 사진처럼 변해있었다. K씨의 이상형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K씨는 다시 태도를 바꿔 들이댔다.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연락에는 답장도 안 해주신 걸로 기억하는데요?"
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연락을 하고, 선물공세 등을 했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급해진 K씨는 내게 메일을 보냈다. 과거의 모습을 사과하고 그녀와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며 말이다.
입장을 바꿔 살펴보자. 한 여자가 그대와 소개팅을 앞두고 차가 뭐냐고 물었다. 차가 없다고 하자, 당장은 연애할 생각이 없다며 답장도 하지 않은 채 연락을 끊었다. 그 이후 그대는 로또에 당첨되어 B사의 차량도 하나 구입하고, 한껏 꾸민 채 살다가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대의 상황이 바뀌었다는 걸 안 상대가 적극적으로 대시를 해 온다. 그대는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은가?
공부를 하지 않은 걸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으니,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건 좀 황당한 얘기다. 후회하고 있으면 지금이라도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지, 후회하고 있으니 결과를 바꿔달라는 건 무슨 심보인가. 상대는 그대에게 코털이 나온 걸 본 실망 정도가 아니라, 그대의 마음속을 한 번 들여다 본 후에 실망한 것이다. 만회하긴 아무래도 어려울 거라 생각하지만, 놓지 못하겠다면 계절이 몇 번 바뀔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그녀에게 자신을 알리기 바란다. '전엔 내가 잘못했고, 아무튼 사귀자'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바뀌었다'는 걸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보여주란 얘기다.
헤어진 지 2년. 하지만 여전히 여자친구에게 "다 정리하고 나에게 와라."라는 얘기를 하는 Y씨의 사연도 있었다. 실제로 여자친구는 다시 돌아와 Y씨와 사귀기도 했다. '다 정리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들의 연애를 간단히 말하자면, 사귀다가 여자가 이별을 통보한 뒤 다른 남자와 사귄다. 그 '다른 남자'는 그녀가 (Y씨의 말에 의하면)아무렇게나 만난 남자다. 클럽에서 만나 원나잇을 한 남자라든가, 모든 연줄을 동원해 소개팅을 해서 만나는 남자, 뭐 그런 남자 말이다. (역시 Y씨의 말에 의하면)연하남, 유부남 가리지 않고 그녀는 닥치는 대로 남자를 만난다고 한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Y씨가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면, 그녀는 다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다 또 뭔가 불만이 생기면 그녀는 떠나고, 다시 방랑생활을 시작한다. Y씨는 잊어 보려고도 몇 번 노력했지만, 그런 그녀가 안쓰러워 다시 그녀에게 연락을 한다. 그런 관계가 오래 유지되며 그녀는 이제 다른 남자들과 침대에서 있었던 일이나, 병원에 갔던 일(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등을 Y씨에게 말하기도 한다. 그녀의 인생이 점점 막장이 되어가는 걸 보는 Y씨는 다시 또 그녀에게
라는 이야기를 한다. 현재 Y씨의 나이, 스물아홉이다. 소개팅도 나가봤고, 그 중 자신에게 대시해 오는 여자도 있었지만 Y씨는 전 여친을 생각하며 연애로 발전시키기 못했다. 그녀에게 '막장인생'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Y씨의 보호본능은 더욱 자극받고 있으며, Y씨가 잡으면 그녀도 다시 돌아오는 상황이 진행 중이다. 물론, 다시 또 얼마 안 있어 떠나가지만.
먼저 Y씨에게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려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여기다 다 적을 수는 없지만, 사연을 보면 현재 Y씨의 생활도 안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누군가를 부축하려면 자신이 튼튼해야 하는 법 아닌가. 자신의 삶도 겨우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까지 부축하려 하니 답이 나오질 않는다.
두 번째로는 '우리만 진짜'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Y씨의 입장에선 그녀 딱 한 사람이지만, 그녀의 입장에선 여러 명의 Y씨가 있지 않은가. 결혼만 해 달라고 조르는 노총각이나, 달달한 기분을 내며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연하남, 부모님께 인사까지 했다는 다른 남자까지 말이다. 그들도 다 자신과 그녀의 관계를 '우리가 진짜, 나머진 가짜'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막장까지 갔다가 사모님이 되는 여자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사람 인생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건 Y씨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재 상황에선 그녀가 피해자 같고, 저렇게 살다가는 엉망이 될 것처럼 보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엔 막장까지 갔지만, 현재는 사모님 소리 들어가며 남편에게 사랑 받으며 사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니 그녀의 인생 보다는 본인의 인생을 먼저 돌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녀와 그렇게까지 가까운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길 권해주고 싶다. Y씨와 그녀는 사귀다가 헤어졌다는 것 말고는 공유하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이별 이후 상대가 '아무 남자'나 만나는 것 같다는 Y씨의 판단 때문에 점점 깊이 관여하게 된 것일 뿐, 그녀가 Y씨와 한 일은 다른 남자들과 한 일과 동일하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둘만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삽질을 하다 보니 깊이 파게 된 것일 뿐, 이 구덩이를 왜 파는지 파면 뭐가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더 깊게 팔 수 있나 묻기 전에, 대체 그 구덩이를 왜 파는지 부터 생각해 보자.
한 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두 번 꼴로는 앞으로 이런 '모음 사연(응?)'을 다룰 예정이다. 전에 받았던 사연들도 다시 발굴해 다룰 예정이니, 사연이 매뉴얼로 소개되지 않았다고 삐치지 말고, 독촉하지 말고, 화내지 말고 가볍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겨 주시길 바란다.
▲ 자랑도 좋고 염장도 좋으니 블링블링한 사연도 좀 보내주세요! norma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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